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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99화 (99/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93. 향기(2)

어마어마한 그의 성량에, 청력을 열고 있던 아시엘은인상을 쓰며 귀를 콱 틀어막았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작은 형님?"

카이스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그에 케빈과 루이카엔이 놀라며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사내가 급하게 말을 세우는 바람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케흑! 콜록! 쿨럭!"

"콜록, 콜록!"

네 사람은 반사적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마른기침을 쏟아냈다. 눈을 쿡쿡 찌르는 자잘한 모래알갱이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꽤 시간이 지나고 강한 바람이 휘잉 불어와 먼지를 걷어내주고 나서야 그들은 갑자기 난입해온 이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훤칠한 키에, 적당히 탄 듯한 준수한 얼굴. 눈매는 카이스보다 순한 인상이었지만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 것은 똑같았다. 첫인상은 매우 달랐지만, 그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가 그가 메르티스 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예상 외의 등장에 잠시 벙쪄있던 루이카엔이 입을 열려고 했을때, 불청객의 남자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카이스의 팔을 붙잡고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와락.

"카이이이이! 이게 얼마만이냐!"

힘껏 껴안고 얼굴을 마구 부비기 시작했다.

"....."

케빈과 루이카엔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카이스는 무표정하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잔뜩 띄우고 "잠깐만, 형님!" 하며 떼어놓으려 애썼고, 아시엘은 이럴 줄 알았다는듯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 귀여운 막내! 고생하지 않았어? 무뚝뚝한 척 하지만 사실은 이 형님이 반가운 거지? 3년 만인데 반갑지 않을리가 없지?"

"형니임...!"

억센 손에 붙들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카이스는  일행들에게 구원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결국 보다못한 아시엘이 말에서 내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이만하면 되지 않으셨어요? 저희도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말아 주세요."

"응?"

그- 키프스는 그제야 동생을 꽉 안고 있던 손을 풀고 아시엘 쪽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붉은색 눈동자와 마주치자 그는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 아, 아시엘?"

"네. 오랜만이에요, 키프스 님."

아시엘은 생긋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러자더이상은 벌어질 수 없을것 같던 키프스의 입이 헤벌쭉 가로로 찢어지더니, 동생에게서 몸을 돌리고 그를 팔로 감싸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시엘은 재빨리 몸을 확 숙여 격한 포옹을 피했다.

"어라, 너무 냉정한 거 아냐? 그래도 여전히 귀엽네!"

키프스는 포기하지 않고 킬킬 웃으며 그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자신이 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헝클어지는 아시엘의 금발을 조금 질린 눈으로 지켜보던 루이카엔은 결국 몸소 말에서 내려 은근슬쩍 그의 손목을 잡고 뒤로 빼내고 싱긋 미소지었다.

"하하! 상봉은 이쯤 하도록 하고- 처음 뵙겠습니다.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의 단장 루이카엔. 드. 카시마엘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케시비언 경입니다."

"아.. 하하. 실례했습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카이스 녀석의 작은 형님 되는 키프스. 루. 메르티스입니다."

키프스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생각보다 더욱 어마어마한 악력에 루이카엔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고 재빨리 손을 놓았다. 카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형님. 영지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형님께서 계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아. 큰형님이 나한테 전서구를 보냈더라고. 영지에 괴물이 날뛰고 있다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부리나케 달려왔지."

키프스는 씨익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동생의 머리에 손을 턱 얹었다.

"집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영지민들에겐 죄가 없지. 덕분에 네가 온다는 소식도 들었고 말이야."

"하지만 딱히 제가 파견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카이스는 그의 손을 치우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왠일로 셀레니스 기사단이 지원하러 온다길래,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상의 한마디 없이 횅하니 가버린 귀여운 동생도 올까 하고 조금 기대한거지. 그리고-"

키프스는 루이카엔의 뒤에서 방심하고 있던 아시엘을 확 잡아 끌어당겨 어깨를 감싸안았다. 졸지에 봍잡힌 꼴이 된 아시엘은 엥? 하고 의아하게 키프스를 올려다 보았다.

"함께인 것을 보아하니, 역시나 네 출가를 빙자한 가출의 이유는 이 꼬마였군? 대충 예상은 했지만 말이야."

"...."

카이스는 지켜보던 루이카엔과 케빈이 깜짝 놀랄 정도로 인상을 팍 쓰고는 아시엘을 빼내왔다.

"이 녀석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하고싶은 대로 했을 뿐."

"야, 야."

아시엘은 난처한 얼굴로 카이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런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던 키프스는 픽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아, 나도 아니까 너무 날 세우지 마. 그리고 딱히 책망하는 것도 아니고, 난 형님이나 어머님과는 달리 네 친구가 아주 마음에 든단 말이야."

어쩐지 그 모습이 묘하게 거슬려 케빈은 쳇 하고 혀를 찼다.

"카이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주 웃기는 집이야. 고작 친구 하나가지고 이 난리법석을 떠니."

"저도 동감이랍니다, 케시비언 경. 그래서 저도 가문이고 뭐고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함께 엮어서 책망하진 말아 주십시오."

키프스는 한번 더 씩 입가에 곡선을 그리고는 곁에 세워둔 말에 훌쩍 올라탔다.

"원인 제공은 제가 했다지만 이 이상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면 곤란할 듯 싶으니 슬슬 성으로 가시죠. 길 안내는 제가 하겠습니다- 황제 폐하의 기사 나으리 님들."

그의 눈이 살짝 휘어 반달 모양이 되었다. 루이카엔 역시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그를 따라 다시 말에 올랐다.

"그럼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당신네 영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괴물 녀석을, 이 셀레니스 기사단이 베어 넘길 때까지."

말을 끝맻은 그는 히죽 입꼬리를 올리고 말에 박차를 가해 저만치 앞으로 달려나갔다.  키프스가 그를 뒤따랐고 남겨져버린 나머지 셋도 허겁지겁 말에 올랐다.

"같이 가요! ..으아아아앗!"

물론 아시엘의 비명소리 역시 해가 완전히 얼굴을 내민 하늘 위로 위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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