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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18화 (118/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Xmas.제목을 정할수가 없었습니다(1)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기사단은 사람을 너무 막 굴리는것 같아."

깊은 밤의 유흥가 골목. 화려한 불빛이 어둠을 밝히는 그 곳에서 두 소녀가 몸을 숨기고 숨죽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말이."

금발에 독특한 홍안의, 누구라도 뒤돌아보고 숨막히게 만들 만한 화려한 외모를 가진 어린 쪽의 소녀가 하는 말에 붉은색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트린 조숙한 쪽의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굽이 있는 하이힐이 어색한듯 조금은 어정쩡한 자세로 익숙하지 않은 드레스 자락을 끊임없이 매만지고 있었다.

두 소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소속의 아시엘 아르셰인 경과 카이스 루 메르티스 경이었다.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라는 사실 역시 두말할 것 없었다.

그들이 이런 꼬락서니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상관이자 부단장인 아델레트의 등쌀에 떠밀린 것이었다.

몇 달 동안이나 추적하던, 마약으로 돈을 모은 거부가 이쪽 골목의 유흥가에 자주 나타난다는 제보가 들어와 그녀는 곧바로 미소녀 '아린' 양과 그녀의 보디가드 역할의 카이스에게 출격 명령을 내렸었다. 덕분에 아시엘은 지난번 대공의 귀환 파티때 잠복 용으로 쓰고 처박아 뒀던 귀여운 빨간색 드레스와 가발을 다시 꺼내야만 했고, 카이스 역시 아델레트의 푸른색 드레스를 빌리고 로웬 백작의 특제 가발도 반 강제로 선물받았다.

"젠장.. 왜 또 여장이야!"

"어쩔 수 없잖아. 구르는 게 셀레니스의 숙명이니까. 그리고 그 갑부가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

카이스가 위로하듯 말했지만 아시엘은 짜증스럽게 긴 머리를 쓸어올렸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같은 남자의 눈에까지 아름답게 보일 뿐이니 그로서는 통탄할 일이었다.

"아- 그래도 카이. 너도 꽤 잘 어울리네?"

"농담하지 마."

이번에는 카이스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탄탄하게 다져진 몸을 여성스럽게 만들려고 코르셋을 미친듯이 조이고 가슴에 동그랗게 생긴 것- 일명 '뽕' 까지 집어넣는 난리법석을 친 그였다.

"어쨌든 나가자. 여기에서 푸념해봤자 답이 나올 리도 없으니까."

아시엘은 카이스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와 온갖 소음과 독한 향수 냄새, 술냄새가 뒤섞인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유흥가가 밀집해 있는 이 곳은 황실에서도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않는, 그런 거리였다. 덕분에 불법으로 규정된 창녀촌이라던가 마약이 난무하는 무법지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은 인상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남자가 은근슬쩍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징그럽게 웃으며 눈길을 주기도 했고, 내놓고 치근덕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여자들은 두 사람에게 말을 걸며 이상한 전단지를 주기도 했다. 돈이 필요하면 꼭 이쪽으로 와, 라고 적힌.

"쳇.. 이게 뭐야."

아시엘은 종이를 구겨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더러운 토사물 위에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버린 구인 광고지가 철퍽 하고 떨어졌다.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 카이스는 이미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져 있었다. 아시엘은 그런 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조금만 참아."

"응.."

카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엘은 그의 등을 툭툭 토닥여주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했다. 그 때. 푹신한 무언가가 그의 드러난 어깨에 턱 얹혔다.

"....!"

아시엘은 움찔하며 놀랐지만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자기 남자가 붙잡고 대시해오는, 이때까지와 비슷한 패턴이라고 여긴 그는 그 털복숭이의 장갑 같은 손을 치우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에? 어라? 제르닌 선배?"

"역시나 너희들이었군."

그- 제르닌은 무뚝뚝한 얼굴에 약간의 당황을 담은 눈동자로 두 소년, 아니 소녀, 아니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희들.. 꼴이 그게 뭐냐?"

"...아뇨, 선배. 그건 저희가 해야 할 말 같은데..요."

하지만 아시엘은 애매하게 웃으며 제르닌을, 정확히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꼴이 그게 뭐에요?"

"아.."

어쩐지 손이 푹신푹신하더라 했더니- 아시엘은 뒷말을 꿀꺽 삼켰다. 카이스보다도 과묵하고, 표정 변화 없기로 유명한 그는 지금 깜찍한 토끼가 되어 있었다.  꽃분홍색 털복숭이에, 배에는 하얀 털이 동그랗게 있고 엉덩이에는 꼬리까지 달린. 머리에는 같은 색깔의 토끼 뒤가 달린, 얼굴 부분만 뻥 뚫려 있는 탈이 씌워져 있었다.

"......"

"아, 아, 아, 그게, 이, 이건 아델레트가-"

"피차 마찬가지인가 보네요."

후배들의 힐난이 담긴 표정에, 제르닌이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변명하자 아시엘은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카이스역시 그런 선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선배도 잠복수사?"

"어. 그렇게 됐어.. 원래는 루이카엔이 할 일이었는데."

그 자식이 어디론가 도망치는 바람에- 제르닌은 미간을 찌푸리며 험악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단장, 하고 그가 살벌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아시엘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 때 또다시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왔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뭐 하는 짓입니까. 통행에 방해됩니다."

"....."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곳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물고 설마, 설마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

돌상처럼 딱딱해진 것은 상대방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깐의 불편한 침묵 후, 아시엘은 힘겹게, 정말 힘겹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 랜만입니다, 에피로스 경. 그리고 레이."

"......"

고양이 귀 머리띠를 한 키가 큰 웨이터 차림의, 루아 이클립스의 단장 에피로스. 드. 헤이타와 그 아래에 귀여운 프릴 치마를 입은 소녀- 가 아닌 소년 레이 베르튼은 무어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황제 직속과 대공 직속의 기사들이라는 자들이 하나같이 이 꼴이라니. 서로 서 있는 입장은 달랐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이 제국 괜찮을까.

"..제르닌 경과 셀레니스의 신입들.. 이로군. 여기는 어쩐 일이지? 그런 꼬락서니로. 아니, 그것보다 그쪽의 땅콩만한 신입은 여자였던가?"

"그 말 그대로 반품입니다, 에피로스 경. 고양이 귀에 꼬리라니, 무슨 매니악한 패션입니까? 그리고 멀쩡한 남자 여자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에피로스가 겨우 충격에서 헤어나와 비꼬는듯 말을 건네자 우득, 하고 이를 가는 수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어쨌든 아시엘은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에피로스는 저도 모르게 얼굴근육을 꿈틀했다.

"이건 잠복 수사일 뿐이다. 그러는 너희들은. 그 모습도 썩 잘 어울리는데 혹시 취미인가?"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쪽은 부단장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쪽은-"

아시엘은 노골적으로 그와 레이를 아래위로 훝어보았다.

"당신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은 없을 텐데. 어째서 레이까지 데리고 이런 곳에 그런 꼴로 계시는 거죠? 자진해서 했다는 말 밖에는 설명이 안 돼는데요."

"아시엘!"

곁에서 조마조마해하며 자신의 상관과 기가 센 친구를 바라보던 레이는 결국 소리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아시엘은 칫 하고 혀를 작게 차고는 입을 다물었다. 저 녀석, 화풀이였군. 제르닌과 카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너는 짜증날 정도로 그쪽의 단장과 닮았군. 뭐, 그보단 성실한 것 같지만."

"그건 칭찬인가요?"

에피로스가 이마를 짚으며 그렇게 하는 말에 아시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루아 이클립스의 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여기에서 말싸움 하고 있을 필요도 없으니, 우린 이만 가겠다. 서로 방해는 않기로 하지."

"에피로스 경, 실례지만 경은 어떤 임무 때문에 그 꼴-흠흠, 으로 여기에 있는 거지?"

제르닌은 복슬복슬하고 동그란 발바닥 모양의 손을 들어 끼어들었다. 에피로스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마약상의 확보다. 일단 우리도 수도의 치안을 경비하니까. 경들은?"

"......우리도."

기사들은 다시 한번 합죽이처럼 입을 꼭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같은 임무에, 한 놈의 범죄자를 위해 다같이 이런 몰골이라니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아시엘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으니, 여기에선 협력하죠?"

"뭐? 말도 안 돼는 소리. 우리가 어떤 입장인지 잊은 건가?"

에피로스는 곧바로 인상을 팍 쓰고 불쾌하다는듯 내뱉았다. 제르닌과 카이스 역시 편치 않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레이는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아시엘은 그 모든 불만들을, 싱그럽고 화사한, 그야말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아름답고 살벌한 미소로 잠재웠다.

"어차피 목적도 같고, 서로 봐주기 힘든 꼴이라는 것도 같으니까요.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에피로스 경의 부하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단장이 고양이 귀라니."

"뭐?"

"저희는 이미 망가질 이미지도 없지만, 이 사실이 퍼진다면 대공 전하와 루아 이클립스가 조금 민망해질 텐데요. 귀족들도 수군댈 테고."

에피로스는 얼이 빠져 멍해진 얼굴로 아시엘을 바라보았다. 카이스와 제르닌, 그리고 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누구던지 얄짤  없는 아시엘의 고운듯 거친 입담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코멘트

Shein 님 - 카이스, 아시엘이 여장하고 비밀임무 나가면 어떨까요... '단 둘이'

작가:처음은 단 둘이었지만 막판은 단 둘이 아니게 되버렸네요ㅋㅋㅠㅠ

아시엘:여장이라뇨.. 여장이라뇨! 전 여자가 아니란 말이에요!ㅠㅠ

카이스:아시엘이라면 몰라도 왜 저까지.. 어울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마이캣 님 -엌ㅋㅋㅋ재밌어욬ㅋㅋ그럼 비밀임무 나간 두 사람이 인형탈 쓰고 아르바이트하는 척 하면서 잠복한 제르닌을 만나는거요!

작가:제르닌 경에게 묵념.. 토깽이가 됐습니다★

제르닌:재미있지 않아!!(책상을 쾅 내리친다)

이프 님- 대공 전하의 기사단과 황제 폐하 기사단이 연합 임무를!!

작가: 넵 덤으로 에피로스 경과 레이까지 망가트렸습니당!

에피로스: ..... 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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