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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19화 (119/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Xmas.제목을 정할수가 없었습니다(2)

*이 특전은 본편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립니다*

에피로스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았다. 일단은 협력하지."

"잘 생각하셨어요."

아시엘은 만족스럽게 방글방글 미소지었다. 절대 저 놈하고는 싸우지 말아야지, 제르닌과 카이스는 몇 번째일지 모르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은 뭐 알아내신 것 있으세요?"

"놈은 지금 우리가 잠복하고 있는 가게에서 노닥거리는 중이다. 바로 저기에."

에피로스는 고갯짓으로 뒤쪽에 있는 술집을 가리켰다. '만남의 장소~ 러브 바' 라는 천박한 이름이 새겨진 낡은 간판이 휘양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경들은. 왜 이곳에 나와있는거지?"

"어떻게 놈을 밖으로 끌어낼까 고민 중이었지. 아무래도 이 곳은 무법지라 훤히 보이는 곳에서 체포한답시고 설치면 되려 이쪽이 당할 테니까."

제르닌의 물음에 그는 뻐근한 목을 비틀며 간단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밖으로 몰기는 조금 어려운 상황이야. 지금 저 안에서 십수 명의 여자들을 주물럭거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계속 지켜봐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레이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끼어들자 셀레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럼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죠. 동태를 살피면서 작전을 세우는게 어때요?"

아시엘은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제르닌, 카이스 그리고 에피로스와 레이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들은 딱히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제르닌이 몸을 움직이는 것에 따라 그의 탈에 달린 토끼귀가 같이 뾰옹, 흔들렸다.

"제르닌 선배는.. 너무 눈에 띄니까 여기에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 그렇게 하지."

아시엘의 말에 제르닌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러자 다시 토끼 귀가 두어 번 팔랑거렸다.

토끼 제르닌을 제외한 네 사람은 에피로스가 앞장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 발을 들이자마자 훅 끼쳐오는 매캐한 담배 냄새와 술 냄새 그리고 독한 화장품 냄새에 아시엘은 인상을 썼다.

"와하하하하! 그래서, 언니. 오늘은 나랑 놀고 싶다는 건가?"

그 때 어두침침한 가게 안에서 남자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에피로스는 그쪽으로 살짝 고갯짓을 했다.

"저 자야. 주변에 있는 양복 남자들은 수하들이고."

"호오."

카이스와 아시엘은 그들을 주시했다. 오묘한 조명 아래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덩치 큰 남자가 옷을 다 풀어헤친 채로 껄껄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담배를 문 여자들이 한껏 몸매를 과시하며 들러붙어 있었고 가까운 곳의 테이블 네 개는 아까 말한 보디가드 역할의 양복 남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시엘은 팔짱을 끼며 인상을 썼다.

"뭔가 많..이 딸려있네요."

"그렇지? 그래서 일단은 저 남자가 가게를 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해. 그 방법밖엔 없으니까."

레이는 소리를 낮춰 작게 대꾸했다. 그에 카이스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언제 나갈지도 모르고. 나간다 해도 저것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러니까 끌어내야지. 어차피 저 경호원들은 몸만 쓸 줄 아는 오합지졸들이니까 문제는 없고."

에피로스는 무심하게 이야기하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아 아시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니까 아시엘 아르셰인. 좀 부탁해도 될까."

"네? 뭐를요?"

아시엘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에피로스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더할 나위 없이 사악하게 보이는 그 미소에 아시엘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인계- 지."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한편, 셀레니스 기사단의 생활관.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야근을 나선 아시엘과 카이스, 그리고 제르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사들이 귀가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마다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있거나, 한쪽 구석에 모여 수상한 책을 읽거나 카드판을 벌이는 엉망진창의 풍경이 오랜만에 펼쳐지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다녀왔어."

"어, 케빈. 이제 와요?"

인간의 모습으로 있던 베르칸이 읽던 책을 내려놓고 그를 반겼다. 하지만 곧 그는 묘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그- 꼬마는 뭐에요? 케빈."

"아.. 나도 몰라! 이 앞에서 주웠어."

케빈은 짜증스럽게 버럭 외쳤다. 그의 한쪽 손은 왠 지저분한 행색의 일고여덟살 쯤 된 꼬마 남자아이를 꽉 붙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안에 있던 기사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그에게로 쏠렸다.

"엥? 꼬마? 근처에서 거지라도 데려온 거냐?"

"글쎄 아니라니까. 진짜 셀레니스 앞에서 뒹굴고 있었다고."

케빈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며 거칠게 아이의 손을 놓았다. 소년은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리며 외쳤다.

"그-러-니-까! 난 꼬마가 아니라니까! 거지도 아니라고."

"그럼 뭔데? 거지 행색의 꼬마가 아닌 꼬맹아."

그가 놀리듯이 빙글빙글 웃자 아이는 부아가 치미는듯 자신의 꾀죄죄한 연둣빛 머리칼을 움켜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너네들 주인이라고! 이 나라 황제란 말이야!"

"에엥?"

생활관을 쩌렁쩌렁 울리는 꼬마의 목소리에, 기사들은 한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벤은 지금 아주 기분이 좋았다. 고급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신 데다 가게의 온 여자들이 자신에게 몸을 기꺼이 내주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곁에는 듬직한 경호원들이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역시 돈이 최고였다. 더럽건, 깨끗하건 돈은 돈이었다. 슬럼가의 아이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들고 사람들을 타락시켜 번 돈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차피 마약을 한 것은 그들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는 빙그레 웃으며 가까이에 있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 술을 한 잔 더 들이키려는 찰나, 그는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사람인가?'

순간 인간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이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뽀얀 피부에, 날씬한 몸매. 거기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은 마치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것 같았다.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여자를 안고있던 손을 뺐다.

"어이, 거기 아리따운 아가씨. 거기에서 뭐 하시나?"

".....!"

빌어먹을. 소녀, 아시엘은 속으로 살벌하게 욕을 읊었다. 하지만 곧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귀엽게 대답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오지 않으려나 봐요."

"그래? 그럼 쓸쓸하겠군. 이 아저씨와 함께 노는 건 어때? 최고의 하룻밤을 선물할 수 있을 만큼 아저씨는 돈이 많아."

남자가 싱긋 웃자 아시엘은 짐짓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잠깐 생각 좀 해 보고요."

"생각? 무슨 생각?"

"음.. 적어도 여기에선 싫거든요. 어디 다른 데에 데려가 주신다면."

아시엘이 혀를 빼물고 하는 말에 가벤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껄껄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보기보다 순진한 꼬마 아가씨는 아닌가 보군."

"그런 아저씨는 보기보다 순진하신가봐요."

지랄하네. 아시엘은 그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건지 모를 욕을 또한번 중얼거렸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좋아. 그럼 나가지. 너희들은 이제 됐어. 꺼져버려."

가벤이 거칠게 손을 내젓자 여자들은 험한 말을 투덜거리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다듬고 아시엘에게 다가갔다.

"그럼 가볼까."

"네, 가요."

네 인생 종칠 곳으로. 아시엘은 자연스럽게 미소지으며가벤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뒤에 줄지어 앉아있던 경호원들도 일어나 그들을 따라왔다.

아시엘은 조금 앞서가면서 그를 자꾸만 안쪽으로, 안쪽으로 데려갔다. 점차 어두운 골목길로 접어들자 가벤은무슨 상상을 했는지 재미있다는듯 킬킬 웃었다.

"앙큼한 아가씨로군."

"아저씨도 이런 걸 바라셨던 것 아닌가요?"

아시엘은 노래하듯 달콤하게 속삭였다. 가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가 잡아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왔다. 뒤의 경호원들 역시 어린 소녀가 무슨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거리를 두고 뒤따르기만 했다.

이윽고 그들은 가로등이 하나밖에 없는 으슥한 곳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췄다. 아시엘은 몸을 빙글 돌려 생긋 웃었다.

"다 왔어요. 여기라면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거에요."

"그렇군, 아가씨."

가벤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아시엘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 때, 길의 안쪽 어둠으로 뒤덮인 곳에서 네 인영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래.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겠지."

네 개의 그림자 중, 토끼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거에요."

변성기 지난 소년의 목소리로, 예쁜 드레스를 입은 적발의 소년이 덧붙였다.

"그러네요. 방해꾼은 없어요."

주근깨가 있는 분홍색 프릴 치마를 입은 소녀 역시 소년의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엄격한 얼굴의 고양이 귀 바텐더가 이상한 끝말잇기를 마무리 지었다.

"제국 최고의 기사 다섯에게 이런 꼴을 하게 하다니. 각오는 되어 있겠지."

얼핏 광기까지 느껴지는 네 쌍의 눈동자는 살기로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괴상한 집단에 드디어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뒤의 경호원들이 곧장 공격 태세를 취하려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이성을 잃은 기사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너네 다 뒤졌어어어어어어!"

"으아아악! 막아아!"

하얗고 붉은 건 지금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다. 정말로 네 사람은 말 그대로 '쥐어 패기' 시작했고 경호원들은 순식간에 대열을 잃고 '두들겨 맞고' 있었다. 도망갈 길마저 막혀버린 가벤은 이를 악물고 아시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년! 날 속였어!"

"네, 저 당신 속였어요. 그리고-"

아시엘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드리우며, 가벤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작게 속삭였다.

"년이 아니라 놈이야, 멍청아."

"뭐..?"

가벤은 놀라 무어라 말하려 입술을 뗐지만, 다음 순간 복부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고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코멘트

달이 꾸는 꿈 님- 라이펜이 어려진 채로 셀레니스 기사단 앞에 거지같은 차림으로 고아처럼 버려져서, 자기가 국왕이라고 박박 우기는데 아무도 안 믿어 줌

작가: 이 뒤에 이어질 개판의 스타트를 끊어 주신 황제폐하께 만세!

라이펜: 죽고싶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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