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Xmas.제목을 정할수가 없었습니다(4)
*본 외전은 본편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립니다*
"해독약 만들어요. 지금 당장."
겨우 천장에서 내려온 로웬 백작은 기사들이 검까지 들이밀며 협박조로 으르렁거리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 알았어. 알았네. 그러니까 그것 좀 치워 줘.."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죽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연구실로 돌아간지 단 한시간 만에 해독약이라고 하며 수상한 액체를 들고 돌아와 그들에게 내밀었다.
"약 자체가 여러 개가 뒤섞여 있어서 완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걸세."
그 사이에 여자로 변해버린 루이카엔은 그에게서 약을 낚아채 제일 먼저 라이펜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에게도 돌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꼬맹이 상태로 눈을 끔뻑이고 있는 아시엘에게도 약을 먹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셀레니스 안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잠시 후 기사들은 대부분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왜 또 저냐고요오!"
아시엘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이제 그는 4살쯤의 소녀가 아닌 10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사실 그쪽이나 이쪽이나 머리 길이를 제외하고는 크게 다를 것은 없었지만.
루이카엔은 킥킥 웃음을 터뜨리고 아까보다는 조금 더 커진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못 봤는데 말이야, 역시 귀엽네. 형이라고 불러 봐."
"......"
아시엘은 신경질이 치민듯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티 없는 아이의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입꼬리를 비대칭으로 들어올렸다가 곧 해맑게 미소지으며,
"싫은데요, 아저씨."
루이카엔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순식간에 KO패를 당해 한쪽 구석에 박혀 훌쩍거리는 단장을 무시하고, 아델레트는 짐짓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 상태면 곤란한데.. 우리는 다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왜 아시엘만 이 모양이지?"
"아마 마법사라 그럴 거야. 자네들과는 체내 마력의 흐름이 다를 테니까 말이네. 걱정하지 않아도 곧 원래대로 돌아올 걸세."
로웬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혹시라도 또다시 봉변을 당할까 벌벌 떨면서 설명했다. 다행히 그 말을 대충 받아들였는지 기사들은 찝찝한 얼굴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 아시엘이 너무 귀여워서 불만이 없다,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무서운 후배에게 당할 후환이 두려우니).
저마다 각자의 상념에 빠져있는데-아시엘 귀엽다. 볼 꼬집어보고 싶다. 안아보고 싶다 등등- 갑자기 아시엘이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어? 왜 그래?"
"아니, 뭔가 이상해서요.."
하지만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어요,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러자 갑자기 같은 것을 느낀 듯 구석에 박혀 있던 루이카엔이 몸을 움찔했고, 라이펜 역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스와 케빈, 아델레트, 제르닌도 마찬가지인듯 눈을 크게 뜨고 저마다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또?
"........!"
그들은 갑자기 한순간 덜컥, 움직임을 멈추었다. 놀란 표정 그대로 홀드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사들은 겁을 집어먹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뭐야, 또 뭐냐고. 더 이상의 소동은 머리가 버텨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통하기라도 한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굳어졌던 이들이 다시 작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어쨌든, 백작. 이런 소동은 곤란하... 어라?"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말을 이어가던 아델레트는 또다시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에 기사들은 다시 긴장해버렸다. 아시엘 역시 어라? 어? 하며 자신의 몸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뭐나고오!"
"어어? 어어어어어? 어어?"
"잠깐, 잠깐만! 이거 뭐야!"
보기에는 멀쩡해보이는 이들이 갑자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어버버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델레트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며 절규했다.
"이게 뭐야아아아아아아!"
신은 그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 아델레트 부단장..? 왜, 왜 그래?"
"아델레트가 아냐! 나 너네들 주인이라고!"
아델레트는 연신 뜻모를 소리를 외쳐댔다. 주인이라면 황제 뿐인데- 그들이 상황파악이 안 돼 멍청하게 서있는 동안 무뚝뚝의 대명사, 카이스 역시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뭐야! 왜 내가 눈앞에 보이냐고! 이거 뭐야?"
"어어어? 저, 키가 이렇게 컸던가요? 어?"
거기에다 루이카엔 역시 어울리지도 않는 존댓말을 하며 연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라이펜이 외쳤다.
"이게 뭐야! 왜 내가 눈앞에 있어? 것보다 컸던가요, 라니! 그것보다 이건 누구야!"
".... 아무래도 또다시 문제가 생긴 것 같군."
케빈이 진중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고 제르닌은 골치가 아프다는듯 이마를 턱 짚었다.
"이게 뭐야.."
"저, 저는.. 약의 부작용이 생겼습니까? 저도 갑자기 작아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꼬마 상태의 아시엘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부의 모두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머리가 도저히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태연하게 있던 로웬 백작이 깔끔하게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역시 이런 곳에서 문제가 생겼군. 자네들, 서로 몸과 영혼이 뒤바뀌어 버렸다네."
"......? 뭐어어어어어?!"
몇 초 후. 로웬 백작은 다시 꽁꽁 묶인 채로 샹들리에에 매달렸다. 그가 잘못했네! 미안해! 라고 꽥꽥 소리를 질렀지만 루이카엔-껍데기-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럼 일단 각자가 누구인지부터 파악하는 게 낫겠어요. 전 아시엘이에요. 루이카엔 씨, 어디 계세요?"
"여기."
라이펜-껍데기-가 손을 슥 들고는 주변을 휘휘 살폈다.
"폐하는 어디에 계십니까?"
"나."
아델레트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르닌이 길지 않은 머리를 뒤로 넘기려 하다 곧 실수를 깨닫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내가 아델레트야."
"제르닌은 이쪽이다."
그리고 케빈이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카이스가 완전히 구겨진 얼굴로 뒷통수를 건성으로 긁적이며 입술을 뗐다.
"난 케빈이고. 그럼 자동으로 아시엘이 카이스겠네. 다른 놈들은 다 정상이냐?"
"우린 문제 없어."
오스카가 어이가 없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찝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루이카엔의 몸이 아시엘, 꼬마 아시엘의 몸이 카이스고, 아델레트의 몸이 라이펜 그리고 라에펜의 몸이 루이카엔. 제르닌의 몸에는 케빈이 들어가 있었고 카이스는 케빈이 되어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젠장."
아시엘, 그러니까 루이카엔, 아니 아시엘이 허허롭게 소리내어 웃다가 결국 끝에서 험한 욕을 툭 내뱉았다. 그리고는 허리춤의 긴 검을 스릉, 뽑아들었다.
"어차피 전 지금 루이카엔 씨니까. 로웬 백작님을 베어도 감옥에 가는 건 루이카엔 씨겠죠?"
"야,야야야,야! 진정해, 심정은 알겠지만 진정해!"
화사하게 웃으며 살벌하게 말하는 루이카엔인 아시엘에게 라이펜 안의 루이카엔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말렸다. 하지만 복병은 다른 쪽에도 있었다. 카이스 안의 케빈이 클클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아, 그렇네. 그렇다면 지금 저 망할 단장을 베어버려도 내 죄가 아니라는 거지?"
"잠까안! 저 안에는 아시엘이란 말이야! 그리고 나는 왜 죽여!"
"시끄러워! 어차피 원래대로 돌아오면 끝인거야, 임마."
케빈은 정말로 루이카엔, 아니 아시엘을 벨 기세로 검을 꺼냈다. 아시만 그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꼬마 아시엘- 카이스였다.
"하지 마십시오! 죽는 건 단장님이지만 지금 안에 있는 아시엘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면 책임지실 겁니까!"
그는 빨간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딱딱하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기세로 자신의 몸이자 케빈을 쏘아보는 꼬맹이 때문에 결국 케빈은 단념하고 검을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야, 정신 없으니까 소란 피우지 마. 도대체 연금술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딴 것까지 가능한 거야?"
제르닌, 안의 아델레트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위에서 자랑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건 내가 연금술에 있어서는 제국에서 따라올 자가 없기 때문이지!"
"그 재능을 좀 다른 데에 투자를 하란 말이야! 이런 거 말고!"
아델레트인 라이펜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백작은 허허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뭐 어떻습니까, 폐하. 이런 것도 하나의 값진 체험이지요!"
"OK. 너 사형 결정이다. 특별히 집행은 셀레니스에게 맡기지."
아델레트, 라이펜은 뒷목을 주무르며 쌈박하게 말했다. 그러자 뒤늦게 말실루를 깨달은 로웬이 잠깐만요! 잘못했습니다아! 하고 몸을 뒤틀기 시작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건지가 문제로군. 시간이 지나면 돌아가나?"
"저기, 미안한데 제르닌. 케빈 녀석의 면상으로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지 말아줘. 소름돋는다."
슌이 어색하게 웃으며 소매를 걷어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케빈 안의 제르닌에게 들이밀었다. 그러자 카이스인 케빈이 방방 날뛰기 시작했다.
"야!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지!"
"너도 카이스 얼굴근육 혹사시키지 마. 평소에 워낙 안움직여서 근육통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오스카가 옆에서 진지하게 거들자 이번에는 아시엘 안의 카이스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 정도로 무뚝뚝하지 않습니다. 저는 웃고 싶을 때 웃는 것 뿐입니다."
"아시엘 앞에서만 한정으로?"
카이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뚱한 얼굴로 그 말을 한 라이펜 안의 루이카엔을 노려볼 뿐이었다. 아시엘은-루이카엔 안의-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너무 놀리지 말아요. 정신없어 죽겠는데."
"하긴 공손한 루이카엔도 레어품이긴 하지."
이번에는 아델레트 안의 라이펜이 웃으며 이죽거렸다. 그리고 언쟁이 최고조에 다다를 찰나, 다시 그들은 덜컥.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갑작스러운 침묵에 기사들은 입을 꾹 다물고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뭔가 더 벌어지려는 것인가. 그들은 긴장한 채로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몇 초가 흐르고. 마치 봉인이 해제된 것처럼 루이카엔이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니, 전 예의를 지킬 곳에서는 제대로 지켜요. 애초에 폐하께서 저희를 너무 막 대하시니까 그런 오해가 생기는 거잖습니까."
"내가 뭘? 설마 감봉당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라이펜은 못 들은 척 연둣빛 머리칼을 베베 꼬며 대꾸했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위화감을 느낀 그들은 일순간 말을 멈추었다.
"어라?"
"....돌아왔네."
여전히 꼬마이긴 하지만. 아시엘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기사들은 순간 긴장이 탁 풀린 듯 하아아아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로웬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금세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이거, 내가 봐도 걸작이로군. 다시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어."
"......."
빠직. 그들은 일제히 이마에 혈관을 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둘 그들은 검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자. 그럼 남은 건."
"백작님을 어떻게 요리해 드릴까, 라는 거죠."
루이카엔의 말을 받아 아시엘이 끝마쳤다. 잠깐의 정적 후. 분노한 기사들의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백작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음? 여긴 어디죠? 어라? 제 성냥들이 어디로 사라졌죠?"
그 와중에 정신을 차린 루이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깜찍하게 말했지만, 그 누구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코멘트
진하 님- 영혼 바꾸기요! 아시엘과 아델리트, 제르카인과 카이스 등등..!
작가:... 신청해 주신건 매우 감사드립니다만..허헣.. 아델리트가 누구죠..? 제르카인은 또 누구야..헣헣..그래도 바디체인지 짱 재밌었습니다ㅋㅋ
자 이제 다음편이 끝이로군요! 호호호홓 월요일에 본편과 함께 업뎃될지 내일 올라올지는 아무도 몰라요.. 심지어는 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