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30화 (130/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19. 몬스터 사냥(2)

쿠웅. 괴물은 작게 크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한발자국 나섰다. 몬스터의 거구에서 후두둑 하고 불똥이튀며 근처에 불이 옮겨붙어 죽어버린 나무들과 무너져내린 집들을 조금씩 태우기 시작했다.

쿠웅. 몬스터가 거대한 발을 한번 더 움직이자 불이 점점 더 넓게 번졌다. 루이카엔은 불길을 피해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간격을 유지하면서 공격을 계속해!"

"알겠습니다!"

긴장하면서도 우렁차게 대답하는 병사들의 목소리에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쿠웅. 한 발짝 더 다가오는 몬스터에, 기사들과 키프스는 몸을 긴장시켰다.

"뭘 하려는 거지?"

카이스는 검자루를 꽉 쥐었다. 퍽. 퍽퍽. 그러는 와중에도 불화살은 끊임없이 괴물의 몸에 박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콰앙! 하는 파열음과 함께 발사된 포탄이 몬스터의 무릎에 직격했다.

"쿠어어어!"

쿠우웅! 괴물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듯 주저앉아버렸다. 순간 훅 끼쳐오는 열기에 그들이 주춤하는 찰나 몬스터는 크릉, 하고 작게 울더니 무사한 나머지 팔을 천천히 들어올려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우왓!"

위험을 감지한 그들이 몸을 날리기가 무섭게, 거대한 팔뚝이 딱딱한 땅에 파고들며 콰앙! 하는 굉음으로 하늘을 뒤흔들었다. 화약보다도 강한 위력의 일격에 지면이 쩍 갈라지고 커다란 바윗돌이 하늘로 치솟았다.

루이카엔은 거칠게 혀를 차고는 바로 검기를 일으켰다.그리고 땅을 박차고 가볍게 뛰어올라, 서걱. 병사들 쪽으로 날아드는 바위들을 손쉽게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쿵, 쿵. 육중한 소리를 내며 돌조각이 바닥과 부딪히는 것을 병사들이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안전하게 착지한 루이카엔이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아시엘! 카이스! 너희들은 뒤에서 방어를 위주로 움직여. 우리가 앞에서 공격하면서 움직임을 봉쇄한다. 아시엘은 장거리 공격도 가능하니까 견제도 부탁해."

"네!"

아시엘과 카이스는 공격 태세를 취하며 선배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런 그들을 확인한  세 남자는 아직까지 넘어진 채로 있는 괴물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디?"

케빈이 짧게 내뱉자 루이카엔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목, 나머지 팔 한쪽."

"방법은?"

"상관 없습니다."

키프스가 덧붙인 물음에 그는 우드득, 어깨를 풀며 다시 한 번 답했다. 케빈 역시 본격적으로 놀 기세로 손목 관절을 투둑 꺾었다.

"나 저번부터 당하기만 하고. 선배의 위엄을 제대로 못 보여준 것 같단 말이야, 저 녀석들한테."

"그 무식한 힘 말고 네가 보여줄 게 있었던가?"

루이카엔은 씨익 미소지으며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키프스는 품 안의 단검에 손을 가져갔고 케빈은 무어라 욕을 궁시렁거리더니 검자루를 양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어차피 금방이야. 온 몸에 불이 붙었으니 이제 얼마 못 버틸 테니까, 저 놈."

"그렇지. 그렇게 대책 없이 자신만만하기라도 해야지."

"뭐라고 임마?"

결국 그는 단장의 비아냥에 험상궂게 으르렁거렸다. 그때. 우두두둑. 괴물이 바닥에 깊숙히 파고들었던 팔을 천천히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몸을 일으킬 셈인지 상처입은 다리도 서서히 수습하려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때, 세 남자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거세게 돌진했다.

가장 선두로 나선 루이카엔은 훌쩍 뛰어올라 검기를 일으켜 막 들어올려진 괴물의 나머지 한쪽 손등에 콱, 검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곧장 검자루를 거꾸로 잡은 채 화염에 휩싸인 괴물의 팔을 가르며 어깨 쪽으로 치고 올라갔다. 콰드드득- 그의 검 끝에서 살이 갈리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퍼졌다.

"안 뜨겁습니까?"

키프스는 혀를 낼름거리는 불꽃을 온몸으로 뚫으며 덜리는 그를 향해 외치며 단도 두어 개를 품에서 꺼내들었다. 짧은 검신에 일순 검기를 일으킨 그는 그것들을 정확히 괴물의 무릎을 향해 던졌다. 퍽, 퍽. 계속해서 뒤에서 발사되는 화살들을 제친 단도는 깊숙히 몬스터에게 박혔다.

"쿠어어어어억!"

남은 팔과 다리에 동시에 공격이 가해지자 괴물은 길게 울부짖으며 다시 쿠웅, 주저앉아 몸을 뒤틀었다. 그에 루이카엔은 재빨리 뛰어내렸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콰르륵, 굴렀다.

"큭.. 케빈!"

돌과 자갈에 여러군데 찍히고 긁혔지만 아파할 시간도 없이 그는 상체를 일으키고 소리쳤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케빈이 루이카엔과 교대하듯 달려들어 도약했다.

"이야아압!"

그는 단번에 몬스터의 팔뚝을 밟고 한번 더 뛰어올랐다. 검을 다잡고 주황빛의 선명한 검기를 일으킨 그는 몸을 비틀어, 정확히 몬스터의 정수리에 콰직! 검을 깊숙히 꽂아넣었다. 뜨거운 불꽃이 그를 잡아먹을듯 휘몰아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 위에 착지해 검을 비틀어 뽑았다.

"키에에에엑!"

"우왓!"

몬스터가 한층 더 거세게 몸부림을 쳐대기 시작하자 그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미끄러지듯 떨어져내렸다. 케빈은 칫, 하고 혀를 찼지만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 손으로 가볍게 바닥을 짚고 재주 넘기를 반복해 아시엘의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그런 그의 하얀 제복은 이미 여기저기가 그슬려 있었다.

"선배, 뒤로 물러나요!"

"뭐?"

갑작스러운 아시엘의 외침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가 기겁하고 물러섰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케빈이 서있던 자리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떨어졌다. 잠깐 눈을 뗀 사이 몬스터가 죽은 가로수를 집어 던진 것이었다.

"또 옵니다!"

안심할 틈도 없이 조금 떨어진 곳의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괴물에 의해 던져진 거대한 바위들이 날아와 지척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아시엘은 이를 악물고 마력을 운용하며 그쪽으로 달려가 병사들 앞을 가로막고 섰다.

"에, 에?"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병사들은 기겁했다. 자신의 몇 배는 될만한 돌덩이를 그가 막을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시엘은 두 손을 뻗고, 시동어를 외쳤다.

"파이어 버스트!"

그의 손바닥 위에 붉은색 마법진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불꽃이 공중에서 터져나오며 커다란 바위가 폭발했다.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시엘에게 여기저기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에릭 란 루서 아만. 실드!"

순간적으로 푸르스름한 막이 그를 중심으로 감싸며 폭발적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방어막에 막힌 돌덩이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

잔뜩 긴장하고 있던 병사들은 말문이 막혀 어버버, 하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시엘은 방어막을 거두어들이며 조금 뻐근해진 뒷목을 주물렀다. 케빈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 쿡, 웃음을 터뜨렸다.

"잘했어."

"별말씀을."

아시엘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케빈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다시 앞의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 때, 괴물이 발을 쿵 구르며 튀어오른 파편 몇 개가 다시 그들 쪽으로 날아들었다. 순간 멈칫한 그가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는 찰나, 카이스가 달려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카이?"

"....."

캉! 카앙! 카이스는 검기를 일으킨 검으로 날아오는 돌조각들을 쳐냈다. 아시엘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받은 그는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그냥. 아직 마법 너무 많이 쓰면 안 좋잖아."

"아..."

그의 말에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던 아시엘은 곧 쿡,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별말씀을."

카이스는 아까의 그가 내뱉은 말을 따라하며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몬스터는 다시 거세게 몸부름을 치기 시작했고  집채만한 바위 하나가 정확히 두 소년을 향해 날아왔다.

"....!"

그들이 재빨리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자마자 쿠웅! 하고 돌덩이가 바닥과 충돌하며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켰다.

몬스터가 점점 더 격하게 온몸을 튀틀자 바짝 붙어서 대시하던 세 남자는 황급히 그 자리에서 이탈해 두 소년 쪽으로 물러섰다. 여차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고 몸을 긴장시킨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괴물을 바라보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길게 고성을 뽑아낸 괴물은 불타는 몸을 이끌고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 찌꺼기와 먼지가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슬슬 버티기 힘들어졌나 봅니다, 저 녀석도."

"마지막 발악이죠."

키프스의 말에 루이카엔이 대꾸했다. 그 때 뒤에서 병사 한 사람이 외쳤다.

"화살과 폭약이 떨어졌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물러서. 앞으로는 우리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까."

그 명령에 병사들은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자신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제 어제와 같이 전면전의 상황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괴물은 이미 반쯤 죽어가는 상태였고 기사들 역시 온몸이 성하지는 못했다.

아시엘은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레이피어를 뽑아들었다.

"-나중에 화재 수습하는 것도 일이겠어요."

괴물의 몸에서 시작된 불길은 꽤 넓게 번져 달빛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폐허들과 수습하지 못한 유골들을 태우며 매캐한 연기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몸을 긴장시키며 몬스터를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괴물이 고장난 것처럼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그들은 의아해져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잠사 후- 불덩어리가 된 살점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다시금 몬스터가 길게 포효했다. 마치 독기를 잔뜩 품은 단말마같은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몸은 더욱 빠르게 녹아내렸다. 뭐야,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다섯 사람은 당황해 섯불리 접근하지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키에에엑! 쿠어어어!"

상당히 고통스러운듯 괴물은 쿠웅,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다 갑자기 일순 모든 움직임을 멈추더니- 후두두둑. 그대로 몬스터의 몸은 와르르 무너져 끈적끈적한 액체가 되었다.

"......아."

뭐야, 이게. 아시엘은 망연한 눈으로 점점 넓게 퍼지는 시커먼 액체를 바라보았다. 죽은 건가. 뼈가 부서져라 고생한 것 치고는 허무한 결말에 힘이 쭉 빠질 지경이었다. 한곳에 고여 웅덩이를 이룬 괴물의 시신이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퍼지고 있었다.

타닥. 타닥. 아직도 남은 불의 잔재가 타는 소리만 울려퍼질 뿐 사위는 고요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침묵이 흘렀지만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제야 몸의 긴장을 푼 기사들과 키프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