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21. 하얀 사냥개(1)
카아앙! 금속이 격돌하는 소음이 귀를 때렸다. 루이카엔의 바로 코앞까지 바싹 다가온 몬스터의 얼굴을 바라보며 쿡 웃었다.
"야, 엄청 못생겼구만."
"크르르.."
그는 괴물과 힘겨루기를 하다, 곧 낫처럼 생긴 몬스터의 두 팔을 강하게 쳐내고 곧장 서걱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뒤에서 쇄도해오는 공격을 슬쩍 피하고 몸을 홱 돌려 몬스터의 배에 칼을 찔러넣었다.
"케엑!"
"두 놈 잡았고."
루이카엔이 지체없이 검을 뽑자 몬스터에게서 검은색의 점액질이 확 튀어 그의 옷자락과 얼굴에 떨어졌다. 그는 괴물이 흐물흐물 허물어져가는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고 찔러들어오는 날을 막아냈다.캉! 다시 한번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파열음이 짧게 울렸다.
"키에에-!"
몬스터는 작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루이카엔은 냉정한 얼굴로 반대쪽 손으로 몬스터의 낫을 절묘하게 쳐 부러뜨리고, 무력화된 상대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뒤에서 달려드는 또 한 놈을 베어넘기고, 쉴 틈 없이 정면에서 덤비는 몬스터의 다리를 확 걸어 넘어뜨리고 가슴에 칼을 쑤셨다.
"켁! 케엑!"
몬스터가 가슴에서 검은 액체를 쏟아내며 단말마를 내지르다 그 자리에서 마치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 모습에 루이카엔이 잠깐 움찔하는 사이에 또 한 몬스터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앗!"
푸욱. 급히 뒤로 피하기는 했지만 어느새 낫의 끝부분이 그의 어깨에 박혀 있었다. 붉은색 피가 흘러나와 그의 하얀 제복에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루이카엔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기를 일으켜 눈앞의 몬스터를 베었다.
"키에엑!"
"쳇."
그는 가볍게 혀를 차고 어깨를 감싸쥐었다. 하지만 아파할 새도 없이 다음 공격이 이어져왔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그에게 낫을 휘두르는 바람에 루이카엔은 재빨리 한 발짝 물러섰다. 부웅, 칼날이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고 가슴 부근의 옷섶이 잘려나가며 가느다란 붉은색 줄이 그였다.
"귀찮구만, 이거!"
루이카엔은 씨익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자세를 확 낮췄다. 몬스터들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그를 찾느라두리번거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그는 몸을 굴려 뒤쪽으로 돌아가, 서걱. 둘의 살을 동시에 갈랐다.
푸슉, 질척질척한 검은 액체가 그에게 쏟아져내렸다. 루이카엔은 발딱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대충 닦았다.
"더러워."
그 때 그의 양 옆으로 얼음창 두개가 날아왔다. 루이카엔의 어깨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그것들은 어느새 다시 재생되어 그에게 접근하던 몬스터들의 머리에 퍽,퍽 하고 박혔다. 루이카엔은 그대로 뒤로 쓰러져버리는 두 몬스터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 아시엘.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나까지 골로 보낼 생각이냐?"
"잘 피해서 맞췄잖아.. 요!"
아시엘은 레이피어로 눈앞의 몬스터를 베어넘기며 대꾸했다. 순간 검은 체액이 확 튀어 그의 하얀 얼굴과 옷 위에 투둑 떨어졌다.
"그래, 그래."
루이카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옆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베었다. 아시엘은 불만스럽게 뭐라 대꾸하려다 앞에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발견하고는 칫, 혀를 찼다.
"너무하시네.. 파이어 버스트!"
그가 손을 뻗고 외치자 가장 앞서서 접근하던 몬스터의 배에서 불꽂이 터져나오며 소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다. 아시엘은 뒤따르던 몬스터들이 멈칫하는 순간에 자신이 폭사시킨 괴물의 잔해를 밟고 돌진해 나머지 둘의 목을 베었다.
그가 한숨 돌리려는 찰나에 쉴틈도 없이 또다시 낫이 달려들어왔다. 아시엘은 몸을 비틀어 검으로 공격을 차단했다. 카앙! 금빛의 도신이 살짝 진동하면서 엄청난 힘이 그의 양 팔에 가해졌다. 아시엘은 살짝 힘을 빼 낫을 옆으로 흘려버리고, 곧장 마법을 시전했다.
"엔사 루서 카이렌 아만 슈엘. 스톤 스피어!"
노란빛의 마법진이 그의 손 위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갑자기 땅이 날카롭게 치솟아 몬스터의 몸을 꿰뚫었다.그것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확인한 아시엘은 몸을 돌렸다가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있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촤악!
"윽!"
몬스터가 한 발 먼저 휘두른 낫에, 오른쪽 어깨부터 사선으로 베이고 말았다. 엄습하는 고통에 순간 비틀거릴 뻔 했지만 그는 곧바로 반격해 놈의 몸통에 레이피어를 꽂아넣었다.
"키에엑!"
몬스터는 검은 액체를 확 뿜어내며 쓰러졌지만 곧 다시 꿈틀거리다 몸을 홱 일으켰다. 그에 아시엘은눈 밑에 튄 체액을 대강 닦아내고 혀를 찼다. 케빈은 한꺼번에 몬스터 두 마리의 목을 베어내다 그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야, 괜찮야?"
"남 걱정 하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시엘의 말대로 그 역시 엉망진창이었다. 하얀 제복은그의 피와 괴물의 체액 때문에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케빈은 검을 들고 옆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간단하게 처리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것 같네. 우악!"
그는 어디선가 날아드는 낫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는 곧장 검기를 일으켜 공격한 몬스터의 몸을 두 동강을 냈다. 케빈은 바로 또다시 옆까지 다가온 놈들을 걷어차 쓰러뜨리고 그 머리를 쑤셨다.
"케엑!"
"후. 놀랐잖아, 이놈들아."
"선배는 놀랐을 뿐이지만 그쪽은 죽었네요."
카이스는 몬스터를 '세로'로 가르면서 말을 건넸다. 정확히 이등분되어 팔 한 쪽 다리 한 쪽씩이 양 옆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괴물을 본 케빈의 떨떠름하게 말했다.
"..거기는 아예 신세를 망쳤구만."
"....."
카이스는 대꾸하지 않고 또 하나를 베어내고, 다른 녀석의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서다 돌부리에 걸려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재빨리 그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기다렸다는듯 몬스터들이 달려들어 낫을 휘둘렀다. 카이스는 누운 채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카아앙! 하는 소리 뒤에 무기와 무기가 마찰하며 내는 끼긱거리는 소음이 만들어졌다. 두 몬스터를 한꺼번에 막기는 힘에 부치는지 카이스의 팔이 조금씩 전율하기 시작했다.
"큭.."
그는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 해 그것들을 뿌리치고 몸을 굴렸다. 팍! 그 결과 몬스터들의 날은 땅에 깊이 박혀버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카이스가 한꺼번에 목을 쳤다.
툭, 툭. 끈적한 점액질 상태가 되어 바닥에 떨어지는 목 두 개에 카이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세게 바닥에 부딪힌 등과 언제 베였는지도 모를 허벅다리의 상처가 욱씬거렸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꾸준히 수를 줄여나가고 있는데, 그 중 세 마리가 그들에게서 벗어나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네 기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외쳤다.
"키프스 씨!"
"형님!"
"알겠습니다!"
키프스는 대치하고 있던 몬스터를 단칼에 베어 떨쳐내고 이탈한 녀석들을 쫒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막고 있으면서도 잠시 곁눈질로 그 뒷모습을 따르던 아시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고, 레이피어에 저지당해 더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코앞에서 크르릉 소리를 내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악취와 기분 나쁜 마력의 응집체. 그는 발을 들어올려 퍼억, 몬스터의 배를 걷어차 밀어내고 깔끔하게 목을 쳤다.
"하아..."
끝이 없네. 아시엘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목을 날리거나 급소를 완전히 박살내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재생하는 능력 때문에 수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뎠다.
재생하는 몬스터와 괴물급 인간 4명의 격돌. 거의 도박 수준에 가까웠다. 아시엘은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떠돌고 있던 사실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곧 그는 원하던 것을 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키프스가 놓친 몬스터들을 따라잡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피신한 병사들을 노리고 있는그것들을 발견한 그는 곧장 품에서 단도를 꺼내 머리를 노리고 던졌다.
"키에엑!"
퍽!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정확히 뒤통수에 검을 맞은 괴물들은 병사들에게서 신경을 돌려 키프스 쪽으로 돌아섰다.
"둘째 도련님!"
"아아."
감격해 자신을 부르는 그들에게 손을 슬쩍 들어보인 그는, 검을 들고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달려드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한 후 목을 쳤다. 켁, 하는 소리와 함께 질퍽해진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머지 둘도 손쉽게 처리한 그는 검을 털어내고 벌벌 떨고 있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예? 예.. 그것보다 도련님, 어떻게.."
그가 어버버거리며 대답하자, 키프스는 픽 웃음을 터뜨리고 팔짱을 꼈다.
"아마 그 사람들한테는 나도 방해였겠지."
"네?"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병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키프스는 머쓱하게 뒷통수를 긁적이다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자신들과 호흡이 안 맞는다는 거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난 눈앞에 있는 놈들 처리하기도 버거웠는데.. 그 여유로움이라니- 몬스터들보다 그쪽이 더 무섭더라."
"그..렇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격하게 싸우면서도 우스갯소리를 나누고,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키프스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그들의 얼굴에 미미하게나마 감돌고 있던 미소.
목숨을 걸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에 키프스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싸우는 와중에 내가 벅차하는걸 깨닫고 미련 없이 보낸거야, 그녀석들. 일부러 세 마리를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서."
무서운 놈들. 그는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카이스까지 그에 동참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었다. 평소에 막내보다 실력이 있다고 자신하던 참이었지만 오늘 그 모습을 보고 그마저도 확신하기 어려워졌다.
"어쨌든 돌아갈 생각은 안 하는게 낫겠지. 기사 나리들이 알아서 정리해줄 테니까."
허리에 손을 올린 키프스는 몸을 앞뒤로 숙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걱정받았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여러모로 다치기도 하고 지친 상태였으니까.
잘 부탁합니다. 저까지 내쫒으셨으니 책임지고 끝마쳐 주시길.
그는 픽 입꼬리를 올리고,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