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33화 (133/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22. 하얀 사냥개(2)

"루이카엔 씨! 케빈 선배, 카이!"

아시엘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그들은 저마다 몬스터들을 막으면서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시엘은 덤벼드는 몬스터 하나를 간단하게 쓰러뜨리고 말을 이었다.

"저쪽으로 갈 테니까, 엄호좀 부탁해요!"

"어?"

그들은 의아하게 되묻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고는 단박에 상황을 이해했다.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 아직까지도 검은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의 가운데에 주저앉아있는 한 인영을 발견한 것이었다. 척 보기에는 다른 몬스터들과 같은 모습을 한 그것은 미동도 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케빈은 눈앞의 괴물을 냅다 집어던지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알겠어. 저게 핵이란 말이지?"

"좋아. 맡겨둬!"

루이카엔 역시 몬스터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고 그쪽으로 몸을 돌렸고, 카이스도 예외 없이 검을 고쳐쥔 후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그들의 공격 방향이 바뀌자 몬스터들은 당황한듯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세 사람이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동력원을 노리는 것을 알아차린 몬스터들은 그쪽으로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아오, 진짜 빡세네!"

순식간에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꼴이 된 케빈은 욕을 내뱉으며 무식하게 괴물들을 베어냈다. 그 바람에 검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자 루이카엔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외쳤다.

"야 임마, 살살 좀 해! 더럽잖아."

"이미 다 지저분해진 마당에 상관 있나요?"

케빈 대신 카이스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검기가 맻힌 그의 칼날 끝에서 몬스터의 몸이 찢겨나가고 있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나아가 핵으로 보이는 물체 쪽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그럴수록 몬스터들은 한층 격하게 괴성을 질러대며 그들을 막았다.

"키에에엑! 케에에엑!"

"시끄러워, 이것아."

루이카엔은 몬스터 하나의 아가리에 검을 쑤셔넣고 그대로 머리를 찢어버렸다. 그 기세로 다른 몬스터의 옆구리까지 벤 그는 힐끗 곁눈질로 밖을 살폈다. 역시나 타이밍을 잘 맞춘 아시엘이, 몬스터들의 신경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틈을 타 이 싸움을 종식시킬 자리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검은 웅덩이의 지척까지 다가갔을 때- 뒤늦게 아시엘의 존재를 알아채고 무리에서 튀어나간 몬스터들이 그 앞을 막았다.

"스톤 스피어!"

그가 주저없이 마법을 시전하자, 흙 속에서 창이 솟아나 그것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아시엘은 순간 몰려오는 두통을 참으며 검을 바로 쥐었다. 이제 거의 모든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놈들이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던 루이카엔이 외쳤다.

"아시엘, 빨리!"

"알고 있어요!"

아시엘은 곧바로 땅을 박차고, 검은 웅덩이 가운데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 괴물- 핵에게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그것의 가슴의 정 중앙에 검끝이 닿기 직전. 갑자기, 괴물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얼굴에 뻥 뚫려 있는 2개의 구멍에 박혀 있는 붉은색 안구와 눈을 마주친 아시엘은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자신 주변의 공기만 차갑게 냉각되어 가는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저 눈동자 안의 빛은 분명 어디에선가 본 것이었다. 뚜렷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틀림없었다. 케케묵은 머릿속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상한 기억. 그 때, 괴물이 꾹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아...... 시... 엘."

".....!"

"아....르.....셰이...인.."

이것 역시 들은 적 있는 음성이었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눈동자와는 달랐다. 아주 가까운 과거에, 어느 화려했던 파티장에서-

순간 아시엘의 의식이 현실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금색의 레이피어가 선명하게 붉은빛을 띄며  몬스터의 가슴을 꽤뚫었다. 쨍그랑! 하고 무엇이 깨지는 듯한 감각이 그의 손 끝에 전해졌다.

그 뒤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숨막히는 고요함이. 아시엘은 눈을 크게 뜨고 레이피어를 바라보았다.  미미하게 붉은빛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륵, 하고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아쉬움에 쯧, 작게 혀를 차던 그의 눈에 또다른 것이 들어왔다.

루이카엔은 자신과 코앞에서 대치하던 몬스터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한 것을 느끼고는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케빈과 카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몸의 긴장을 풀지 않고 멈춰버린 몬스터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초 후, 이번에야말로 끝이라는 것을 알리듯 몬스터가 하나 둘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검은 액체조차 남기지 않은 그것들은 가루가 되어 공중에 흩어졌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몬스터들의잔해 역시 사라져버렸다.

"....휴우."

그제야 안심한 루이카엔은 한숨을 내쉬고 검을 제자리에 꽂아넣었다. 지쳤다, 하고 머리를 쓸어올리던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려 아시엘 쪽을 바라보았다.

점점 좁아져가는 웅덩이의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그는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 의아해진 케빈과 카이스는 그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야, 아시엘! 거기서 뭐 하냐?"

"......"

아시엘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얼어붙은듯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세 사람은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해 결국 웅덩이에 발을 들였다. 풍덩 풍덩, 하는 유쾌하자 않은 소리와 함께 그들의 바짓가랑이에 검은 물이 들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시엘?"

"..이것 좀 봐요."

루이카엔이 그의 어깨를 짚으며 이름을 부르자, 아시엘은 그제야 착잡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소년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옮겼고, 곧 그와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사람이잖아?"

케빈과 카이스가 교대하듯 중얼거리는 소리에 아시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알몸인 채 피부가 검게 괴사해버린 한 남자가 그의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다른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끈적한 점액질의 검은 피부가 사라진 후 남아있는 그 몸뚱이는,  배 부분에 큰 상처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직 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듯 그의 손 끝에서 작게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고, 고통에 찬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눈을 새하얗게 까뒤집고 있었다.

"잡아먹힌 인간인가?"

"아니에요."

케빈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자 아시엘은 딱 잘라 말했다. 그에 세 사람의 의아한 시선이 모두 그에게 모였다.

"어떻게 알아? 물론 잡아먹혔다고 하기에는 옷도 없고, 상처도 한군데 말고는 없으니까 이상하기는 하지만."

루이카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시엘은 마음이 복잡해졌는지 미간을 찌푸렸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이름이 아마... 게르만, 이었던가."

"....?"

"그 파티장에서 대공 쪽의 사람들과 거래를 하던 상인이에요. 그런데 어째서.."

"뭐?"

그의 말에, 루이카엔과 케빈은 경악하며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경미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던 가슴이 어느 순간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아시엘은 착잡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온몸이 거멓게변해 있었지만 틀림없었다. 아울이라는 남자에게 마약을 팔고, 그 대가로 구슬을 넘겨받았던 남자였다.

왜 여기에서 이런 모양으로 발견된 것인지, 도저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분명 제가 구슬을 가로챘는데.. 왜 여기에 이런 꼴이 되있는 걸까요?"

"글쎄. 이렇게 된 이상, 이번 건은 어떤 식으로든 슈베이만 대공과 관련이 있다는 거겠지."

루이카엔은 팔짱을 끼고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입을 꾹 다물고 시신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다들 무사합니까?"

"아."

그들은 퍼뜩 고개를 들고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니나다를까,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온 키프스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시엘은 끙, 하고 신음을 흘리고 더러워진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이 남자, 숨은 대충 붙어있는 것 같으니까 성으로 옮기는게 좋지 않을까요? 상태를 봐서 오래 살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이 녀석이 괴물이었다면 여러모로 캐물을 것도 많으니까요."

"그러자. 근본적으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부터가 골 때리는 문제이긴 하지만."

루이카엔은 찝찝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업데이트 시간 변경입니다

아침 6시 반→1시간 미룬 아침 7시 반

다음주부터 이렇게 변경될 예정입니다:) 정식으로 고3이 되면 등교시간이 당겨져서 업데이트 시간이 들쑥날쑥해질지도 몰라요ㅜㅠ 그건 그때되서 따로 공지하겠습니다. 항상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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