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46화 (146/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33. 각자의 일(1)

카아앙! 두 사람의 검이 최초로 맞부딪히며 거친 쇳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아시엘은 힘으로 밀어 붙이려 하는 루이카엔의 검을 요령 좋게 옆으로 흘려버리고 몸을 빙글 돌려 상대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루이카엔은 간단하게 그것을 쳐냈다.

캉! 다시 한 번 파열음이 귀를 때렸고 아시엘은 재빨리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자세를 잡고 파박, 달려들었다.

"... 웃!"

생각보다 훨씬 빠른 반응속도에 루이카엔은 황급히 몸을 확 숙였다. 그런 그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레이피어가 스쳐지나갔다.

목표를 놓친 검은 허공을 갈랐지만 아시엘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다시 공격했다. 하지만 캉! 그것은 다시 루이카엔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제법인데? 많이 늘었어."

단장은 픽 웃으며 팔을 비틀어 레이피어를 강하게 밀어냈다. 덕분에 아시엘이 균형을 잃고 삐끗하자,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옆구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아시엘은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마력을 운용했다.

"실드!"

콰아앙! 순식간에 형성된 투명한 막은 루이카엔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그가 주춤하자, 곧바로 아시엘은 마력을 운용하며 외쳤다.

"헤이스트!"

카앙! 눈 깜짝할 새 쇄도해오는 레이피어를 루이카엔은 혀를 칫,차고 막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힘으로 쳐내려는 찰나, 검이 물 흐르듯 미끄러지고 아시엘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그리고 다음 순간 살기가 느껴진 것은 등 뒤였다. 루이카엔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검을 막았다. 카아앙- 이때까지보다 훨씬 큰 파열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신호로, 연무장 안에는 찬물이 끼얹어진듯 침묵이 감돌았다.

"....."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다른 기사들은 할 말을 잊고 입을 벌리고 서로 검을 맞댄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루이카엔 역시 말을 잃어버린듯, 멍하니 눈앞의 아시엘을 바라보았다.

끼긱, 끽, 끼긱. 그러는 와중에도 힘이 가해지고 있는 검들이 서로 마찰하고 있었다.

"...너. 언제부터?"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부르자 아시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금빛 레이피어의 도신은 선명한 붉은빛에감싸여 있었다.

루이카엔은 바로 앞에서 대치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다 곧 씨익 미소짓고 팔에 힘을 줘 그를 떨쳐냈다. 아시엘은 뒤로 풀쩍 뛰어 단장과의 거리를 벌리고 다시 공격 태세를 취했다.

"될까 안될까 긴가민가 했었는데 어떻게든 되네요."

"놀랐잖아, 이 녀석아. 다짜고짜 검기라니. 게다가 방금 그 마법은 뭐야?"

루이카엔의 물음에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4서클의 기초, 가속 마법이에요.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빨라지는. 이것도 성공할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갈수록 태산이네. 이거 거의 사기 아냐?"

단장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4서클 마법과 검기라니. 루이카엔의 회색 눈동자에는 흥미로움이 가득 차 반짝거리고 있었다.

"일단 축하한다. 그리고-"

그는 왼손에 쥐고 있던 검을 휙 위로 던져 오른손으로 척 받았다.

"역시 한 손으로는 무리일 것 같군."

"살살 부탁해요."

진심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에 아시엘은 어색하게웃었다. 하지만 잡담도 잠시. 그들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검을 한 손으로 잡은 아시엘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왔다.

카앙! 루이카엔은 씩 웃으며 레이피어를 여유롭게 막은채 몸을 비틀어 빼냈다. 갑자기 버티고 있던 힘이 사라져버리자 아시엘은 이크, 하고 앞으로 쏠리는 몸을 지탱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루이카엔은 그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 우왓!"

짧게 놀란 소리를 낸 아시엘은 황급히 몸을 확 숙여 피하고는 그대로 팔을 뻗어 바닥에 손을 대고 주문을 영창했다.

"엔사 루 케이샤 아만 슈엘. 스톤 웨이브!"

아시엘의 손을 중심으로 연무장 바닥에 노란빛의 큰 마법진이 떠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콰지지직! 갑자기 땅이 치솟아 파도처럼 루이카엔에게로 덮쳐졌다.

"뭐야, 저거!"

성인의 키만큼 땅이 솟으며 사방으로 튄 돌덩이와 흙에 봉변당할까 뒤로 물러서면서도 구경하던 기사들은 당황해 외쳤다. 하지만 정작 루이카엔은 흐음- 하고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땅의 파도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마법사의 약점은 마법을 시전하는 중이나 직후에 몸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거지."

그는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상체를 숙였다. 그의 도신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선명하게 맻히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소리를 내며 그의 코앞까지 마법이 닥쳐왔다.

"검사의 약점은 적을 해치우기 위해서 적의 사정거리 내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고."

루이카엔은 검자루를 쥔 손에 살짝 힘을 풀었다가 다시 그것을 다잡았다. 그리고, 서걱.

검을 가볍게 휘둘러 거침없이 진격해오던 바윗더미를 베어버렸다.

"......!"

일동은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요동치던 땅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곧 엄청난 흙먼지를 일으키며 쿠웅- 하고 아래로 내려앉았다. 모양을 유지하던 마력이 흩어지며 땅의 파도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을 뒤로하고, 루이카엔은 땅을 세게 박찼다.

"마검사는 그 둘의 동시에 쓰면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커버할 수 있지. 하지만!"

"....! 앗!"

아시엘은 황급히 검을 들고 방어했지만 그는 눈 깜짝할 새에 코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카아앙! 루이카엔의 검과 아시엘의 레이피어가 다시금 강하게 충돌했다. 그리고- 땡그랑.

"아..."

아시엘은 결국 검을 놓치고 말았다. 루이카엔의 검에 튕겨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레이피어를 놀란 눈으로 좇던 그는 문득 자신의 목에 칼날이 겨눠져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직 소드마스터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

"아..."

그와 눈을 마주친 루이카엔은 히죽 웃고 검을 거둬들였다. 아시엘은 짧게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장난스럽게 두 손을 들었다.

"제가 졌어요. 역시 루이카엔 씨는 대단해요."

"야, 야. 대단한 건 네 쪽이야. 도대체 언제 검기를 끌어낸 거야? 고작 16살에 서클 마법에 검기를 함께 쓰는 마검사라니, 말이 돼?"

구경꾼 중에 섞여 있던 오스카가 흥분해 외치자 일동은 동의의 뜻으로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카엔 역시 새삼 감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 미숙해서 그럴 뿐이지, 이대로 5년만 지나면 나 같은 건 상대도 안 될걸."

"에이, 그건 아니에요... 우왓!"

아시엘은 손사래를 치다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가까이에 있던 기사가 놀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대충 예상했던 일인지 생긋 웃으며 도움을 사양했다.

"괜찮아요. 갑자기 큰 마법을 써서 힘이 빠진것 뿐이니까. 앉아서 조금만 쉬면 나아요."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루이카엔은 아까 날아갔던 레이피어를 주워 아시엘에게 건네주고 그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아시엘은 불만스럽게 입을 애 취급 하지 마세요, 하고 툴툴거리며 그 손을 부드럽게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판 대련에 어느새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슥 닦았다.

"으.. 더워. 나가기 전에 샤워부터 해야겠다."

"어디 가게?"

루이카엔이 의아하게 묻자 그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랜만에 아저씨도 뵐 겸 아카데미에 잠시 다녀오려고요.여기 들어오고 나서 한번도 못 찾아갔으니까요. 다른 데 볼일도 좀 있고요."

"아아- 루이스 경?"

'그' 루이스 아르셰인에게 아저씨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어영 어색한지 루이카엔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주변의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시무시한 얼음 기사를 팔불출 아버지로 바꿔놓은 아시엘이 그저 존경스러우면서도 묘하게 납득이 되는듯 몇몇은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팔불출 루이스 경이라.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에 루이카엔은 킥킥 웃음을 터뜨리고 팔짱을 꼈다.

"그러면 제복을 입고 가는 게 어때? 한번도 보신 적 없을 거 아냐."

"음.. 그럴까요?"

아시엘은 검과 들고왔던 수건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럼 저 먼저 나가볼게요. 지금 당장 준비해야 수업 끝날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오냐. 얼른 가."

손을 휘휘 내젓는 루이카엔과 그 뒤의 선배들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보인 그는 곧장 몸을 돌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루이카엔은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루이스 아저씨, 라. 나도 다음에 그렇게 불러 봐?"

"칼 맞아 보고 싶으면 그래보시던가."

누군가의 웃음기 섞인 단호한 대꾸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됐네요. 난 오래 살고 싶으니까.. 아,아야야."

갑자기 느껴지는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에 루이카엔은 인상을 쓰고 어깨를 부여잡았다. 괴물 놈이 바람구멍 뚫어놓은 상처가 벌어졌나, 그는 장난스럽게 툴툴거리다 다시 씩 미소지었다.

"설마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는데, 저 녀석. 너네들 위기의식은 느끼고 있지?"

".. 수련이나 하자."

누군가가 툭 내뱉은 말에 기사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그들의 모습에 루이카엔은 다시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위험했어.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과 대련이라는 제한이 없는 상황에서 전력으로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이었다면 그 특유의 책략과 끈질김으로 절대 방금같이 쉽게 끝났을 리는 없었다.

'무서운 녀석.'

그는 질렸다는듯 홀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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