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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셀레니스 기사단-180화 (180/289)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169. 유령 잡기(3)

"실례합니다! 계세요?"

"어라, 누구세요?"

그녀는 마당에서 나와 아시엘의 바로 앞에 섰다. 후드를 눌러 쓰고 있다고 해도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얼굴이 노출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아시엘은 개의치 않고 시뻘건 물이 줄줄 흐르는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지금 형이랑 제국 여행 중인데요. 혹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아무리 찾아봐도 여관이 안 보여서요."

"처음 보는 꼬마 손님인가 했더니 여행자였구나.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무슨 일로?"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거든요."

쿨럭, 쿨럭! 오스카는 마른 사레가 들려 기침을 토했다. 하지만 아시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여긴 정말 활기찬 곳이네요. 저까지 마음이 편안해지는것 같아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런데 어쩌지? 이 근처에는 머물 만한 곳이 없는데. 바로 영지를 나가서 계속 가면 얼마 안가서 다른 도시가 나오는데, 그쪽으로 가는게 나을 거야."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피곤한걸요. 며칠, 아니 하루라도 묵을 곳 없나요?"

같은 편이었지만 오스카는 그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때, 여자의 입에서 나온 단호한 한 마디에 그 역시 아시엘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아니, 없어. 이 영지도 풍족한 편은 아니니까 민가에 가서 머물기도 힘들거야."

"으음...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실례했습니다!"

아시엘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떨어져 있던 오스카에게로 돌아갔다. 오스카는 빨간 망토가 총총거리며 다가오자 그에게 퉁바리를 주었다.

"야, 멋대로 그런 짓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저 아줌마가 네 얼굴이라도 기억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건 걱정 없어요."

아시엘은 씩 웃으며 후드를 살짝 들어보였다. 오스카는 흠칫했다. 그 속에 있는 얼굴은 화사한 백금발의 소년이 아니라 평범한 갈색 머리의, 별로 인상적인 구석이 없는 사내아이였다.

"너.... 그...."

"환영 마법의 한 종류에요. 유지하긴 좀 힘들지만... 해제."

스륵, 아시엘의 얼굴 쪽에 모여있던 마력이 흩어지며 그의 앞머리가 바람에 날린듯 살짝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물이 빠지듯 그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시엘은 머리칼을 대충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일단 몇 가지는 알아냈네요. 여기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여행자를 반기진 않는다는 거랑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쫒아내는 데 익숙하다는 것 정도? 보통은 묵을 곳이 없다고 하면 알아서들 나갈 테니까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겉보기론 모르겠지만 거의 고립 상태랑 비슷..... 한데 선배 표정이 왜 그래요?"

"아, 아니."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오스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아시엘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커다랗고 맑은 적안이 오스카를 똑바로 향했다. 그가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찰나 아시엘이 헤실 천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아직 시간은 남았으니까 광장 쪽으로 가 봐요, 형아."

"콜록! 쿨럭!"

기습 공격 뺨치는 위력에 오스카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아시엘은 짓궂게 킬킬 웃으면서 얼굴이 시뻘개져 아까보다 심하게 기침을 토하는 선배를 잡아끌었다. 사내자식 주제에 이건 반칙이잖아! 오스카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반항할 힘도 사라져 후배의 손을 따라 질질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영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비슷하게 광장 역시 말끔하지만 소박했다. 바닥에는 회색의 돌이 곱게 깔려있었고 중앙에는 작은 분수대 하나에서 맑은 물이 퐁퐁 솟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몇몇 나와 자리를 펼치고 생필품이나 과일 같은 것들을 파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별다를 건 없네요."

"그래 보이네."

겨우 진정한 오스카 역시 아시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나마 상점 몇 개가 모여있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이 중심부인듯 보였다. 하지만 호객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한 황도의 시내에 길들여진 아시엘과 오스카의 눈에는 어색하게만 보였다.

"차라리 아까 그 골목에 사람이 더 많았던것 같아요."

"그러게. 하긴 요즘 계절이면 농사일로 바쁠 때니까."

오스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흘려들으며 아시엘은 아까 했던 것처럼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때 그의 눈에 분수 근처에 앉아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제 발을 핥고 있는 녀석을 보며 아시엘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유로운 녀석이네.... 어?"

그때 뭔가가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에, 아시엘은 시선을 아래로 주었다.

"아."

언제 다가왔는지 또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다리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아시엘은 부드럽게 미소짓고 몸을 숙여 고양이의 노란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손을 멈췄다. 오스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 그래?"

"... 잠깐만요."

아시엘은 고양이를 아예 안아들고 주변의 잡상인 하나에게 다가갔다. 오스카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의아해 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아시엘은 얌전히 안겨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상인에게 내보였다.

"이 고양이는 혹시 주인이 있나요?"

"아니. 그 녀석은 길고양이야. 저기 다리 건너 골목길이랑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는 놈이지."

남자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감사합니다, 하고 짧게 인사한 아시엘이 몸을 돌리자 마자 오스카가 그에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선배, 이것 봐요."

아시엘은 고양이를 고쳐 안아 목이 잘 보이도록 했다. 오스카는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 곧 그가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을 찾아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목걸이를 했던 자국같지 않아요?"

아시엘의 말대로 노란 고양이의 목 주변의 털이 일정한 굵기로 눌려 있었다. 목걸이 종류가 아니라면 절대로 생길 리 없는 자국이었다. 아시엘은 다시 고양이를 똑바로 안았다. 고양이는 작은 머리를 그의 가슴에 비비며 골골거렸다.

"그러게... 그나저나 이 녀석은 사람을 정말 잘 따르는구만."

"잠깐만요. 뭔가 감이 좀 잡혔어요."

아시엘은 오스카의 말을 대충 흘려듣고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한참동안 그의 곁을 맴돌던 녀석은 곧 등을 돌려 분수대에 있는 점박이 고양이 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아시엘은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감을 잡았다니 뭐야, 라고 오스카가 옆에서 말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두 마리 고양이를 말없이 지켜보던 그는 곧 오스카의 손을 잡아끌었다.

"저 녀석들 따라가 봐요."

"뭐? 야, 잠깐만...!"

오스카는 뭐라 항변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고양이 두 녀석은 잠깐 같이 노는 듯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분수대를 떠났다. 그들은 광장을 유유히 가로질러 징검다리를 능숙하게 건너 마을 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고양이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아시엘은 분수대 쪽으로 다가갔다. 오스카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어? 이게 뭐지?"

아시엘은 점박이가 앉아 놀던 자리에 흩어져 있는 두어 개의 풀조각을 발견했다. 오스카가 그것을 하나 집어들고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거 캣허브라고 하던가. 내 여동생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집에도 키웠었거든. 고양이들이 이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던데."

"그래요?"

아시엘이 호기심에 눈을 빛내자 그는 풀떼기를 내밀어 주었다. 아시엘은 그것을 받아 코를 갖다댔다. 미미하지만 톡 쏘는듯 독특한 향이 풍겨왔다. 오스카는 머릿속에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아시엘 역시 마찬가지인듯 했다.

"선배, 나 좋은 생각이 났는데요. 하루 버리는 겸 해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나 복잡한 건 자신 없는데."

"걱정 말아요. 아주아주 간단한 거니까."

아시엘의 눈에 악동같은 빛이 반짝 하고 스쳐지나갔다. 오스카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후배를 내려다 보았다. 아아, 케빈. 네 말이 맞았어. 이 녀석은  진짜 종잡을 수가 없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가볍게 아침 산책 겸 나온 자리에서 느닷없이 유령의 덜미를 잡아버렸다. 어쨌든 결과는 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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