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202. 비탈길 레이스(2)
톡, 톡, 톡, 톡. 초조한 공기로 가득 찬 세 사람의 방에는 시곗바늘이 성급하게 돌아가는 소리 외의 것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걸터 앉아 다리를 달달 떨던 카이스는 고개를 들어 힐끔 시계를 곁눈질했다. 새벽 세 시. 왜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거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케빈 역시 혼잣말처럼 사납게 중얼거렸다.
"이러다 날 새겠네..."
"그래도 이때까지 연락은 꼬박 꼬박 왔었는데. 진짜 무슨 일 있는거 아냐?"
오스카의 말을 끝으로 다시 방 안에는 짙은 침묵이 감돌았다. 사실 그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갑자기 후작의 태도가 달라진 데다 영지전이 하루 앞당겨지고 아시엘과의 연락이 두절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세 사람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카이스의 목걸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까 병사가 다녀간 이후 계속 이 상태로 대략 4시간 째. 갑자기 달라진 상황 덕분에 일이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아시엘의 안위에 대해서도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일단 오늘 안에 연락이 안 되면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우리끼리 움직일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구해 내긴 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교단을 박살내는 수 밖에."
오스카의 말에 케빈이 덧붙였다. 넷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고작 셋의 전력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셰단 후작까지 적으로 둔 이상 병력을 더 요청하기도 곤란했다. 카이스는 답하지 않고 묵묵히 목걸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때였다. 지이잉- 붉은색 물방울 장식이 미미하게 진동하며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벌떡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목걸이를 낚아채 통신을 연결한 카이스가 외쳤다.
"야,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어어... 생각보다는 멀쩡해. 무슨 일은 제대로 났고.]
특유의 여유 있는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자 카이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은 거 맞지?"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카이. 그것보다 상황이 심각해졌는데... 지금도 길게는 못해. 케빈 선배 좀 바꿔줄래?]
"알았어. 선배님."
케빈은 카이스가 건네는 목걸이를 받아 손에 쥐었다.
"어, 나야. 왜 이제 연락한 거야?"
[에쉬리아한테 들켰어요. 지금 아마 지하 3층에 있는 것 같은데... 감옥에 끌려와서 갇혔어요. 신전에 왜 이딴 게 있는진 모르겠지만요. 지금 감시하는 녀석이 잠깐 나가서 연락했어요.]
"탈출은 가능해?"
"네, 당연하죠. 감시라고 해 봤자 민간인인데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며 아시엘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지금은 나가봤자니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려구요."
[기다리라니, 뭘?]
"내일 난장판이 벌어질 때까지요."
그는 느긋하게 다리를 쭉 뻗었다. 돌바닥의 냉기가 슬슬 올라와 몸을 차갑게 식혔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시커먼 쇠창살이었다. 몇 대 얻어맞은 곳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몸 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시엘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이죠? 아까 에쉬리아가 이야기하는 걸 언뜻 들었어요. 이제 아무래도 전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니까.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 저 꺼내러 올 궁리나 하란 말이에요. 갑갑해서 돌아가실 지경이에요. 전력이 셋 뿐이라 심히 걱정스럽긴 하지만."
[뭘 새삼. 어쨌든 무사하다니 다행이네. 별로 좋진 않아 보이지만.]
묘하게 허탈히 들리는 케빈의 힘 빠진 음성에 아시엘은 킥킥 웃음소리를 냈다.
"뒤는 부탁해요. 나 신경 쓰다 일 망치면 진짜 화낼 거에요."
거기까지 말 했을때, 곤두세워 뒀던 그의 귀에 발소리가 감지되었다. 배가 고파 죽을것 같다며 밖으로 억지로 내 보낸 감시인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아, 이런. 그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 버렸다.
"망할 꼬맹이. 걱정도 제대로 못 하게 하네."
연결이 끊어진 목걸이를 망연하게 바라보며 케빈이 중얼거렸다.
"뭐라고 합니까?"
"자기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하래. 기회 봐서 탈출도 하겠대."
카이스의 물음에 그가 간단히 대꾸했다. 오스카는 그럴 줄 알았다는듯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걱정 안 해도 되는 거냐?"
"일단은 무사한 모양이니까... 우린 이제 내일을 대비하는 수 밖에."
해독약도 도착하지 않았고, 전력은 고작 셋에다 약에 쩐 민간인을 앞세운 자칭 교단에 마지막에는 후작의 병사들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가까스로 사람들을 교단과 떼어놓나 싶더니만 말짱 도루묵이 되고 일정은 하루나 당겨져서 대책도 하나도 없는 이 막막한 상황에서, 세 기사는 눈을 반짝였다.
"이때까지 해왔던 것들 중에 역대급으로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별 수 없잖냐. 그래도 아직 죽을 때는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카이스가 중얼거리는 것에 덧붙여 케빈이 무책임하게 툭 내뱉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오스카도 끼어들었다.
"날뛰는 건 좋은데 민간인 피해가 나면 시끄러워 질걸."
"별 수 있냐. 최대한 안 나게 해야지."
"두드려 패죠. 어차피 다 약에 쩔어 있는 상태 아닙니까. 몇 대 맞으면 정신이 돌아올지 누가 알아요."
다소 카이스의 사사로운 감정이 실린 말이었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영지전 개시, 당일이 되었다.
황립 셀레니스 기사단 - 휴재공지입니다..!
죄송합니다ㅠㅠ요즘 분량도 짧고 업뎃 시간도 들쑥날쑥이 되어 버렸네요. 만우절날의 장난질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도 휴재공지를 가져와 버렸습니다..ㅠㅠㅠ 요즘 집을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고 어수선하네요. 간신히 휴재 없이 이사를 끝냈나 싶었는데 더 폭풍같은 뒷정리와 과제의 산, 그리고 실기시험과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번주만 쉬고 다음주부터 제대로 된 컨디션과 분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