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06화 (306/391)

306화

현 강호는 유례없는 혼란의 상태였다.

무림맹과 사흑련의 전쟁.

무려 수십 년 동안 강호를 삼분한 구주삼패세 중 두 세력이 펼친 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져 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십 년간 계속 축적되어 온 힘을 한 번에 터트린 것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들이 거의 며칠 간격으로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천검장의 멸문, 아미성전.

철혈단과 신룡대 패퇴 및 강북 몇몇 일대 사파 세력의 북상.

귀원파(歸元派) 멸문 등.

무림맹과 사흑련 사이에 서로에 대한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난무했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 새로운 소문이 강남에서부터 위로 북상해 왔다.

― 파마대와 협위대 그리고 척사귀검, 산수무영, 관천일창, 천력신도 등 무림맹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힘을 합쳐서 불사천교 본단을 습격했다!

충격적인 소문이었다.

파마대와 협위대라 함은 무림맹의 정예들이었다.

거기에 척사귀검과 천력신도까지 포함되었다는 것은 무림맹이 제대로 칼을 뽑아 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림맹이 드디어 뭔가 보여 줄 생각인가 보군!”

몇몇 이들은 무림맹이 강남으로 남하한 것에 눈을 빛내며 말했지만.

“하지만 저 인원으로 불사천교 본단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나?”

대부분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럴 것이 목표물이 불사천교 본단이었다.

오황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사교.

구주삼패세의 시대 이전부터 귀주를 지배하에 두고 있었던 곳이지 않은가.

그와 다르게 무림맹이 승리할 것이라 점치는 자들도 몇몇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나? 파마대와 협위대 거기에 천력신도도 있으니, 혹 불사천교주를 죽일지도…….”

“맞네. 제아무리 불사천교 본단이라고 해도 혹시 모르지 않은가?”

그러나 그건 확신보다, 희망에 가까웠다.

그렇게 소문이 퍼지고 나서부터 모두의 이목이 귀주에 집중되었다.

어찌 됐든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새로운 소문이 다시 북상했다.

전보다 빠른 속도였다.

― 불사천교 본단이 무너졌고, 불사천교주는 매화신협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결과였다.

“뭐? 매화신협이 불사천교주를 죽였다고?”

“아미성전에서도 활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불사천교주까지?”

모두가 헛숨을 들이켰다.

아미성전에서 농질을 죽였다고 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불사천교주까지?

경악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노난 것은 이야기꾼들이었다.

“자자, 다들 이곳에 모이게나! 내가 하오문에서 긴밀히 얻어 낸 아주 따끈따끈한 새로운 정보가 있네!”

“내 예전에 뭐라 그랬소! 매화신협은 장차 천하제일인이 될 인재라고 하지 않았소!”

그들은 신이 나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가 혼란에 빠졌다고 한들, 결국 그것도 무인들의 세계가 그러한 법.

이야기꾼들은 그저 한창 떠들썩한 강호의 이야기를 일반 백성들에게 팔아 주머니만 두둑하게 챙기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들었는가? 신룡대 일개 대대를 몰살한 것이 다름 아니라 칠요선 중 한 명이라더구먼!”

“옥기린이 이번에 장강 유역을 넘으려던 이들을 패퇴시켰다던데…….”

“사흑련주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것을 알고 있소?”

이야기꾼들은 들은 풍문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그것들은 천하를 향해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갔다.

* * *

불사천교주를 죽이고, 불사천교 본단을 무너트린 지 칠 주야가 지날 무렵.

수십 필의 말과 열 대의 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호북으로 이어지는 관도를 힘껏 내달리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었다.

장강을 건너온 그들은 부상자들과 협위대를 근처 무림맹 지부와 의방에 맡겨 둔 채 상세가 괜찮은 자들만 무림맹에 복귀하기 위해 움직였다.

서둘러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행렬의 선두에서 내달리고 있는 마차에선.

“거기서 끊어요.”

천휘가 정면에 앉아 장포에 금실로 수를 놓고 있는 임하율에게 명령하듯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 이렇게 말입니까?”

“네. 거기 그 부분은 옆으로 좀 더 길게 하죠. 그리고 여기는…….”

“알겠습니다.”

천휘의 말에 임하율은 바늘을 움직여서 재빠르게 수를 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됐어요.”

소매에 그려진 괴팍한 문양을 보던 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뭐지?’

임하율은 장포의 소매에 완성된 문양을 보면서, 미간을 살짝 좁혔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문양이었다.

글귀 같으면서도, 그림 같고.

그림 같으면서도, 글귀 같았다.

“독특한 문양이로군.”

천휘의 옆에 앉아서 이를 구경하던 육원이 문양을 보며, 중얼거렸다.

문양은 중구난방으로 그려진 것 같았지만, 그는 무언가 기묘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범어(梵語)나 고어(古語)인가?”

“뭐, 비슷해요.”

천휘는 귀찮다는 듯 대충 답했다.

이 문양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려면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 봐요.”

“아! 여기 있습니다.”

임하율이 바삐 의복을 넘겼다.

“흠.”

천휘는 받아 든 장포를 샅샅이 살폈다.

정확히는 의복의 소매에 그려진 수실의 문양을 확인하고 있었다.

‘일단 쉬운 진법을 새겨 봤는데.’

소매에 그려진 것은 환환미진(幻幻迷陣)을 간단히 풀어 작은 규모로 적용한 것이었다.

만약 진법에 조예가 있는 자들이 봤다면 놀라서 까무러칠 일이었다.

진법이란 그 자체로 완성된 것.

그것을 풀어헤쳐서 재정립한다는 것은 진법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놀라운 일을 선보인 천휘는 아주 담담했다.

그에겐 이 정도는 당연할 만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잘되나 봐 볼까?’

천휘가 소매의 문양을 매만졌다.

매화신공의 내력을 흘리면서였다.

그러자.

스으으―

문양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신묘한 광경에 임하율과 육원 그리고 조용히 구경만 하던 협위대주 추계광이 두 눈을 부릅떴다.

“……!”

“이 기운은…….”

“진법?!”

그냥 놀라는 임하율과 다르게 육원과 추계광은 그 흐름을 읽어 내고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천휘는 그런 그들을 슬쩍 보더니.

휙―

장포를 몸에 걸쳤다.

이어서 내공을 흘려, 소매에 덧대어진 문양의 환환미진을 제대로 발동해 보았다.

순식간에 마차 내 분위기가 변화했다.

주변을 감싼 공기가 발동된 환환미진을 타서, 층층이 흔들려 갔다.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듯이.

‘이런 식이었지?’

불사천교주가 부렸었던 무공을 회상하던 천휘가 손을 가볍게 털었다.

돌연 소매가 살짝 흔들리더니.

휘이익―

우수가 유려하게 움직였다.

간단한 금나수법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셋은 경악했다.

흔들리던 천휘의 손이 갑자기 수십으로 나뉘더니, 마차 안을 꽉 채웠기 때문이다.

경이롭고,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소, 손이 여러 개로 나뉘었어!’

‘환영인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세가 거짓이 아닌 것 같은…….’

‘바로 앞에 있건만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다니…….’

그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흔들리는 소매와 함께 움직이는 손바닥은 마치 나비와도 같았으나, 안에 담긴 위력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수십, 수백의 손 모두가 하나하나 진짜 힘을 품고 있었다.

금나수법과 소매에 그려진 진법을 하나로 엮은 천휘가 눈을 반개했다.

‘운용하려면 꽤 귀찮겠는데.’

막상 해 보니, 한 번에 진법과 무공을 같이 펼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의식을 둘로 나눠야만 했다.

‘차라리 따로 운용하지 말고, 아예 하나로 합쳐 봐?’

문득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진법은 진법, 무공은 무공이었다.

그러나 하나로 합쳐 본다면?

천휘의 의식이 비상하게 흘렀다.

온갖 심득이 날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상단전이 열리며 의식이 바다와도 같이 광활해졌다.

그가 머릿속에 담아 둔 수많은 마도 절학과 화산파의 무공 그리고 강호에서 마주한 중원의 무학, 전생에 새외에서 만났던 그들의 절학들까지 마구잡이로 떠올려 댔다.

수십, 수백, 수천의 무학들이 얽히고, 흩어지기를 잠시.

‘됐어.’

하나의 무공이 머리에 남았다.

이내 두 눈에서 광망을 터트린 천휘가 다시 손을 움직이려던 그 순간.

“어?”

중간에 손이 우뚝하고 멈췄다.

그의 시선은 소매를 향해 있었다.

은은한 광채를 흩뿌리던 소매의 색이 바래져 가고 있었고, 흘리던 내력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져 갔다.

불현듯.

파스슥―

소매가 바스러지며, 가루가 되었다.

천휘가 깨달은 심득을 소매에 새겨진 진법이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투두둑.

천휘는 무릎 위로 떨어지는 가루를 보다가, 내력을 갈무리했다.

그 뒤 형체도 없이 사라진 소매 부분을 보며, 차가운 눈빛을 발했다.

‘쩝, 평범한 옷으로는 무리였나.’

불사천교주가 입고 있던 의복. 아니, 법복(法服)을 떠올리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대충 알겠어. 진법이든 무공이든 술법이든 결국 그 시작은 모두 똑같단 말이지?’

‘만류귀종’이라는 말을 떠올린 천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그마한 심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후에 제대로 해 봐야겠어.’

짧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방금 걸친 장포를 그대로 벗어 던졌다.

환환미진이 새겨져 있던 소매가 뜯긴 장포는 더 쓸모가 없었다.

“아!”

임하율은 놀라며 던져진 장포를 주워 들고는 조심스럽게 사라진 소매 쪽을 바라봤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아직도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마차 안에서 날아다니던 손이.

그리고 그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는지, 육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방금 그건 무엇인가? 분명 진법의 흐름이 느껴졌는데.”

육원이 눈을 빛내며, 천휘를 봤다.

“그냥 의복에 진법을 새긴 뒤 무공과 한 번 합쳐 보려고 했어요.”

천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에 육원과 추계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마만변의(神魔萬變衣)와 같은 법복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가?”

육원은 천하에서 가장 신비롭다고 알려진 기보를 떠올리며 물었다.

하나 그 물음에 천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신마만변의요? 그게 뭐죠?”

육원은 신마만변의를 모르는 모습에 당황했으나, 곧 천휘의 나이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강호행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말했다.

“온갖 독을 막아 주고, 주화입마를 방지해 준다는 법복이네.”

천휘가 턱을 매만졌다.

독을 막고, 주화입마 방지라…….

“따지고 보면 비슷하겠네요.”

담담한 천휘의 대답에 육원이 놀라다가, 이내 흥미로운 얼굴로 말했다.

“대단하군. 설마 의복에 진법을 되새길 줄이야. 진법에도 조예가 깊나 보구먼.”

“어느 정도는요.”

천휘는 이번에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혹시 내 의복에도 진법을 새기는 것이 가능한가?”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법이 새겨진 의복이라니.

탐이 날 따름이었다.

그의 말에 추계광과 임하율마저 눈을 반짝이며, 천휘를 바라봤다.

‘괜히 여기서 했나?’

불사천교주와의 싸움에서 얻은 심득을 써 보고 싶어서 시도한 것이었는데, 귀찮게 될 상황이었다.

천휘는 바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뇨. 방금 봤듯이 무리예요. 아마 의복이 버티지 못할 걸요.”

“그래도 한 번은 사용이…….”

그러나 육원이 포기하지 않았다.

천휘는 그런 그를 보며, 눈을 찡그렸다.

‘끈질기네.’

천휘는 바로 머리를 굴리고는 좋은 생각을 떠올려, 즉시 말을 뱉었다.

“해 줄 수야 있는데 괜찮겠어요? 그나마 저라서 이 정도지. 다른 사람이라면 주화입마에 걸렸을걸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거든요.”

“주화입마?”

육원이 미간을 찡그렸다.

단 한 번 사용하는 것치고 주화입마는 너무나도 큰 대가였다.

“그럼 어쩔 수 없구먼.”

그가 아쉽다는 듯 말하며 포기할 무렵.

“이제 곧 맹에 도착합니다.”

앞에서 마부가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마차가 멈춘 순간.

어?

천휘가 눈을 반개했다.

저 멀리서 익숙한 기운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응? 왜 맹에 이 기운들이?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벌컥!

마차의 문이 활짝 열리며, 말괄량이 같은 모습의 여도사가 안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사제!”

바로 천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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