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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9화 (9/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9편

(1장 - 환약(丸藥) (3))

금난전권(禁亂廛權)이 사실상 폐지된 한양은 사설 상인과 기존 상인 그리고 도고(都庫 - 매점매석을 주력으로 삼는 경강상인)가 어우러진 장소였고 일상처럼 매점매석이 벌어졌다.

매점매석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며칠 동안 설사에 시달리던 윤 서방은 의원에서 받아온 처방전을 내밀었고 약재가 모조리 동난 약재상은 퉁명스럽게 가격을 말하였다.

“평위산은 아홉 전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겨우 구하였지요.”

“지난여름에는 다섯 전에 불과하였는데 값이 거의 곱절이 되다니요?”

“제가 가격을 정하겠습니까? 도고들이 한 번 쓸고 지나가면 다섯 전 하던 약이 한 냥이 되지요.”

윤 서방이 다른 약재상을 돌아보았으나 다들 비슷한 사정을 논하며 비싼 값을 불렀다. 결국 가장 값이 싼 첫 가게로 돌아온 윤서방의 눈에 이상한 약이 보였다.

약포(藥包)에 싸 둔 환약에서 코를 찌르는 기묘한 냄새가 풍겨왔다. 언문(諺文)이 뭐라 적혀있는지 몰라 윤 서방이 머뭇거리니 약재상은 눈치를 채고 설명해 주었다.

“열수환이라 하는 약인데 다산 어르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설사약이라 하였습니다. 열 알에 네 전입니다.”

설사에 더 시달리다가는 구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처럼 바짝 말라 죽을지도 몰랐다. 꾸르륵 거리는 뱃속의 소리에 겁이 난 윤 서방은 열수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전 드릴 테니 열수환을 좀 주시지요. 이 약은 어떻게 먹는 겁니까?”

“아침저녁으로 한 알씩 먹으라 하였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의원을 찾아 진맥을 받으라 하였지요.”

한지를 열자 염소 똥같이 작고 시커먼 환약이 있었다. 더욱 심해진 냄새에 아찔해진 윤 서방이었지만 장이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생각도 안 하고 한 알을 먹었다.

윤 서방이 약을 꾸준히 먹으며 다음 날 저녁이 되자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흘 동안 여덟 알의 약을 먹은 윤 서방은 아침에 변을 보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배에 방귀가 차오르지도 않고 꾸르륵거리지도 않아. 속이 아프지도 않다고!”

백성들이 겪는 세균성 설사는 중증이 아닌 이상 열수환으로 제압되었다. 콜레라 대유행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백성들은 남은 약을 가족과 이웃에게 주며 권유했고 열수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거 이틀 전에 오신 분이 또 오셨네. 이 약은 다산 선생이 말하기를 닷새를 넘겨 먹으면 장이 꼬일 수 있다 하였소.”

“설사가 멈추지 않는데 어찌 합니까?”

“그럼 이 약을 먹지 말고 의원한테 가 보시오. 다음 사람 오시오!”

대부분의 환자는 열수환을 모두 먹기도 전에 설사가 떨어졌고 소문이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보름이 지나자 김조순의 예상대로 열수환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 생겨났다.

한양에서 나름 명성을 떨치고 있던 의원의 앞에 장정 세 명이 방문했다. 엽전을 조금 내민 장정은 다짜고짜 열수환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어르신께서 열수환이라는 약을 드시려 하는데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 하십니다.”

도고들이 거느린 왈패임을 짐작한 의원이지만 돈을 받았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열수환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쪼개서 내부를 확인한 다음 맛까지 본 의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열수환에 들어있는 약재는······. 감초야 어디에나 들어있고 나머지는 진피와 목초액 그리고 조황련일세. 목초액을 몇 년간 묵혀 정제한 것 같은데 방법을 모르겠군.”

“쌀알을 물들인 약재는 무엇이며 설사를 단번에 멈추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향을 확인하니 치자열매가 분명하네. 이 약의 핵심은 목초액이야, 다른 약재를 먹어 보았자 이와 같은 효능을 내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다고 함부로 목초액을 사용했다가는······.”

배를 감싸 쥐며 구토하는 시늉을 한 의원을 바라본 장정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장정을 살펴본 의원은 콧방귀를 뀌면서 손님을 받았다. 다음 손님도 수상쩍은 사람이 왔는데 똑같이 엽전을 내밀며 말하였다.

“저희 마나님께서 열수환에 대해 궁금해 하시던데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비슷한 일이 도성 곳곳에서 일어났고 각종 약재가 매점매석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진짜 열수환 옆에 다른 열수환이 들어왔다.

“열수환의 모습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약을 종이로 싸매는 방식이 변했군요.”

“나도 잘 모른다네. 그저 양주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여럿 생겼는데 다른 사람에게 제조법을 알려준 것 같군.”

정약용이 만드는 열수환은 하루 일천 알에 불과해 대부분 품절되었고 이 틈을 가짜 열수환이 파고들었다. 이윽고 가짜 열수환의 피해가 속출하였다.

“요즘 열수환의 약효가 떨어진 것 같아. 내가 먹었을 때는 설사가 사흘 만에 떨어졌는데 아들 녀석은 나흘 동안 설사를 앓고 있다네.”

“그럼 생돈만 허공에 날린 꼴 아닌가. 이럴 바에는 약 한 첩 지어먹고 말지!”

먹는 사람을 생각해 목초액을 조금 넣고 한약재를 줄인 가짜는 효과가 없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작정하고 엉망으로 만든 가짜가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

“여보, 이 약은 잘못 만들어진 것 같아요. 냄새가 지난 번 것보다 몇 배는 독한데요.”

“가운데에 치자로 물들인 쌀알이 있는데 같은 약이겠지. 우욱! 웨에에에엑!”

소문을 믿고 가짜 약을 먹은 백성들이 복통과 구토에 시달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정약용이 만든 진짜 열수환이 자취를 감춘 사이 가짜 열수환은 더더욱 많은 양이 유통되었다.

피해를 입은 백성들 사이에서 마침내 열수환이 사람을 잡는 약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가짜 열수환을 판매한 약재상과 다툼을 벌였고 포도청이 이를 포착했다.

사태가 더욱 커져 포도청에서는 관할할 수 없는 사건이 되어 형조에 이관(移管)되었다. 형조판서 서능보(徐能輔)는 장계를 받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명령을 내렸다.

“열수환이라는 약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이 약이 제대로 된 약인지 시험해 볼 터이니 모두 변복(變服)하고 각지의 의원을 돌며 약을 사들여라. 약의 출처도 반드시 확인하도록!”

서능보는 사건의 내용을 확인하고 증거 수집을 시작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친척 서용보와 악연이 있는 정약용이 용의자이니 점차 편견에 사로잡혔다.

“형조판서께서 명하신대로 열수환이라 불리는 약을 사들였습니다. 열수환은 양주에서 올라오는 상인 여럿이 판매하여 자기들도 상세한 일을 모른다 합니다.”

“정약용은 한 달 전에 방문하고 다음부터는 사람을 보냈다 하였습니다. 약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열흘 전이라 하고 이전에는 수량이 부족해도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약을 만들어 보냈겠군. 시일이 지나며 엉망인 약을 많이 만들어 재화를 축적하였을 것이 틀림없어. 각지에서 사들인 약을 주게나.”

범행을 파악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시점부터 편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능보는 수거된 열수환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내의원에 속한 내의(內醫 - 당상관 이하 의관)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들이 보기에 이 열수환이라는 약의 문제가 무엇인가.”

“문제가 많을 겁니다. 목초액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물건인데 약에 넣다니요.”

의관들은 약을 종류별로 뜯어보고 맛을 보더니 간혹 구역질을 하고 입을 헹궈내기까지 하였다. 의관들은 서로 환약에 대한 분석을 하였고 한참 뒤 결론을 내렸다.

“모두가 치자 씨앗으로 물들인 쌀알을 넣었는데 약의 비율은 천차만별입니다. 다만 핵심은 목초액, 진피, 감초 그리고 조황련입니다.”

“목초액을 조금 넣은 물건이라면 복통이 일어나겠지만 아예 엉망으로 만든 물건이라면 큰 일이 납니다. 대번에 구토를 일으키며 혼절할지도 모르지요.”

“아주 작정을 하고 잘못 만든 약을 팔아치웠군! 이게 독약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서능보의 눈썹이 휘어지며 목에 핏줄이 돋아 올랐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였다면 약을 만든 사람이 여럿 있다 생각했겠지만 편견은 마침내 아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집의 근본은 정약용에 대한 묵은 원한이었다. 정약용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내려던 서능보는 고민하며 이후 벌어질 일을 계산했다.

정약용은 나름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 다짜고짜 체포할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정약용을 비호하는 관리들의 상소로 인해 가벼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의금부와 함께 수사할 것이니 증좌를 확실히 보관하도록.”

그러니 의금부가 필요했다. 어명을 앞세워 정약용을 체포하고 최대한 사건을 부풀린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상소를 올릴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사실상 누명을 덮어씌우고 미리 결과를 정해놓은 수사가 되었지만 아집에 사로잡힌 서능보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마침내 서능보가 효명세자에게 피를 토하듯 고변하였다.

“세자저하께 아뢰옵니다.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유배에서 풀려난 정약용이 은혜를 저버리고 도성에 독약을 팔아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겪고 있사옵니다!”

“다산이라 하였는가? 그 자는 지금 양주에 있는데 도성에서 독약을 팔았다?”

“한 달 전부터 열수환이라는 약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사옵니다. 열수라는 두 자는 정약용의 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 이상의 증좌는 중요치 않사옵니다!”

가뜩이나 업무에 파묻혀 살던 효명세자는 어쩔 수 없이 의금부를 움직였다. 마침내 의금부가 움직였고 판의금부사 김이교가 양주까지 직접 나서 정약용을 체포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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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형조도 의금부도 움직이지 않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열수환을 천 개나 만들어야 하니 점심을 먹고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치자 열매와 미역취 꽃잎으로 물들인 쌀알 여기 있습니다.”

“그럼 환약을 만들도록 함세. 손을 놀리고 머리로 글을 익히니 이 얼마나 좋은가.”

정약용은 우리를 한 시도 쉬지 않게 하는 좋은 교수는 아니고 좋은 스승이었다. 일준이도 나도 툇마루에 걸터앉아 정약용과 함께 열수환을 만들었다.

“다산 선생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진품 열수환이 잘 팔리는지가 문제로군요. 혹시나 중간에 물량을 가로챌 수도 있지 않습니까.”

“웃지 말게나. 우리가 만드는 열수환은 흥인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동이 난다 하였네. 아무리 보아도 도고들이 열수환을 미리 빼돌려 세도가에 팔고 있겠지.”

혹시나 가짜와 진짜 약을 섞는 놈들이 나올지는 몰라 염려했는데 그럴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면 가짜와 진짜를 섞어 사람들을 골탕 먹이는 놈들이 생기리라.

의금부나 형조의 관원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오면 좋을 것 같았다. 환약을 뭉치며 눈으로는 한자 공부를 위해 전해진 소식을 확인하던 일준이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예상보다 피해가 적습니다. 이백여 명 정도가 곽란에 시달린 것이 전부라 하더군요.”

“그래도 방도가 없어서 백성에게 피해를 떠넘긴 꼴이 아닌가. 세자저하께서 훙서하시는 시일이 조금만 늦었어도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것인데.”

“원흉은 가짜 약을 만든 도고가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현상아,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인 도고는 어떻게 족쳐야 하지?”

“이번 일의 후폭풍으로 한 번 쓸려나가겠지. 쌀을 매점매석해서 사람을 굶어죽게 만들 놈들인데 미리 박살내놔야 하지 않겠어? 이놈들을 내버려 두면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거야. 차라리 지금 사건으로 싹 쓸어버리는 게 좋지.”

설령 우리가 약을 팔지 않아도 도고들은 매점매석으로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놈들이었다. 가짜 약으로 복통에 시달리나 생필품 물가가 폭등해 고통에 시달리나 거기서 거기였다.

고통의 합계가 같다면 차라리 나중에 일어날 고통을 줄이는 것이 옳은 선택 같았다. 슬쩍 정약용의 눈치를 보았는데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시일이 촉박하고 방도가 없어서 택하였을 뿐이니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네. 그나저나 밖이 수상하군.”

밖이 수상하다는 말을 하였는데 정말 웅성거리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때가 되었음을 짐작한 정약용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동네가 소란스러운 것 같으니 자네들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의금부다! 도성을 어지럽힌 죄인이 있다 하니 어서 문을 열어라!”

정약용의 말 대로 결국 의금부가 움직였다. 바로 대문을 때려 부쉈는지 큰 소리가 나고 나장(邏將)들이 몰려왔으며 가장 앞에 있는 노인은 정약용을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쳤다.

“다산! 자네가 도리를 찾아 선대왕의 어명을 거부하였을 때 내가 옆에 있었네! 그러하였던 자네가 독이든 약을 퍼트려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다니!”

“죽리(竹里 - 김이교의 호) 대감께서 이 누추한 곳에 오실 꿈에도 몰랐습니다.”

“더 이상은 묻지 않겠네! 증좌를 얻어내도록 모두를 포박하고 저택을 확인하라!”

체포 과정도 신속하였다. 막 만들고 있던 열수환과 저녁에 한양으로 보내려던 열수환마저 압수당했다. 노인은 우리의 손 냄새를 맡더니 가담자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약을 손으로 빚어서 만들었으니 약의 냄새가 남아있을 것이다! 이 셋을 당장 포박하고 나머지 백성들도 모두 확인해 보아라!”

집안사람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도 졸지에 손 검사를 받았으나 억울한 피해자는 없었다. 우리 셋은 포승줄에 묶여 한양으로 올라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미 준비를 하였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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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두 청년을 의금부에 하옥하고 엿새가 지났다. 그동안 의금부에는 여러 사람이 찾아왔는데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김조순이었다.

- 내 벗인 다산과 말년에 만든 제자들이 하옥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함부로 다루지 말고 정중히 심문할 수 있겠는가?

김이교는 자신의 친척인 김조순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그러니 하옥하지 않고 출두를 시키며 고변하게 만들려 하였지만 같이 사로잡힌 두 청년의 신상이 문제였다.

- 저희는 머나먼 서역의 영길리에서 살던 이들입니다. 선친의 유언을 이행하기 위하여 머나먼 길을 건너 이 나라에 들어와 다산 선생님께 의탁했습니다.

첫 대목에서 의금부가 뒤집어졌다. 머나먼 서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라 증언하여 연이은 심문이 이어졌고 둘 다 법의 지엄함을 알고 있었는지 심문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검증을 위해 간단한 말을 영길리의 글로 쓰라고 지시했고 이들은 붓 대신 깃털펜으로 작성하여 제출했다. 오늘도 모든 추국이 끝나고 해가 저물어가니 보고가 시작되었다.

“판의금부사님께 보고 올립니다. 네 번째 추국을 하였는데 증언이 거의 일치하였습니다. 오늘은 ‘꽃이 지고 낙엽에 물이 든다.’ 라는 글을 쓰게 하여 보았습니다.”

둘이 쓴 필기체 문장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형태가 일치하였다. 김이교는 일치하는 형상을 검토한 다음 질문을 하였다.

“영길리라는 서역의 나라에서 건너온 과정과 인생사도 일치한단 말인가?”

“둘의 증언에 차이는 있지만 개개인의 증언은 계속 일치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논하는 것이 아닐까 궁금합니다.”

이 시대에도 거짓을 분별하는 심문 방법이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반복할 때 차이가 생긴다는 점을 응용하여 대질심문과 반복심문을 병행하는 것이다.

둘의 인생사와 같은 대질심문을 할 때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옛 기억은 쉽게 변질되기 마련이니 김이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보았다.

“둘이 거짓을 논하는 것 같지 않으니 일단 지켜보도록 하면 될 것이네. 그러하면 다산은 어떠한가? 여전히 기회를 달라 하던가?”

“자신이 만든 약을 구분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하였습니다. 논하기 전에 보여주고 싶으니 약과 기구를 주면 증명할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의금부에서도 압수된 열수환을 이용해 검증 작업을 하였다. 일부 죄인들에게 열수환을 먹였는데 정약용의 집에서 나온 물건은 사람에게 해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를 호조에 알리니 서능보는 '정약용이 대충 만든 물건을 팔다 정상적인 열수환을 준비해 두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라고 혐의가 있다 하였고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

김이교는 눈살을 찌푸리다 마음을 돌리기 위해 증거물을 확인하였다. 개중에는 서역의 기술로 만든 청색 안료와 어설픈 유리도 있었다. 이 물건을 청년들이 만들었다 하니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인재들이었다.

“청년들은 이 나라에서 만들 수 없는 안료를 만들어내는 인재이니 멋대로 벌을 내릴 수도 없지. 형조에서는 당장 중죄를 내리라 하고 세자저하께서는 여유가 없으시니······.”

생각 같아서는 일단 방면하고 차근차근 조사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애매했다. 형조는 길길이 날뛰고 효명세자는 업무가 너무 많아 이번 사건에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이교가 고뇌하고 있을 무렵 김조순이 움직였다. 그는 작년 4월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딸 영은 옹주(永溫翁主)에게 보내는 시문을 쓰고 있는 순조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도성에서 변고가 일어나 기색이 흉흉하니 신 김조순 상소(上疏)를 올리옵나이다.”

“변고?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고 있으나 무언가 문제라도 일어났소?”

의욕이 없이 흐리멍덩한 눈을 굴리던 순조는 무기력한 눈빛으로 김조순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한 대목에서 눈을 부릅뜨고 질문을 하였다.

“정약용이 독이든 약을 퍼트려 세상을 어지럽게 하였다? 더군다나 영길리에서 이 나라로 찾아온 두 청년이 정약용의 제자로 들어왔다 하였는데 옳은 말이오?”

“의금부에서 새어나온 소식 외에는 알 길이 없었사오나 심히 염려되옵니다. 신의 좁은 식견으로는 주상전하께서 친국을 행하시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몇 년 전의 순조라면 친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질색하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수행하여 아무 일을 하지 않으니 흥미를 느끼고 사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친국이라. 세자가 요즘 정무에 매진하여 친국을 거행할 수 없을 것인데.”

순조의 표정을 본 김조순은 웃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건을 의금부에서 끝낸다면 김조순도 큰 이득을 챙길 수 없었다.

그러니 일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큰 이득을 챙길 준비를 마쳐 놓았다. 이제 수확을 거둘 때가 되었으니 김조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순조의 개입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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