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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2화 (12/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12편

(2장 - 홍문관 (1))

당장이라도 병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효명세자의 태도를 보니 병이 있다 하면 이를 억지로 숨기고 아무 말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하니 병이 있음에도 병이라 할 수 없었고 약을 먹어야 함에도 이를 약이라 할 수 없었다. 이를 주의 깊게 생각한 정약용은 마침내 처방을 내려주었다.

“세자저하의 옥체(玉體)에 질병의 징후는 느껴지지 않사옵니다. 다만 병이 되기 이전의 화기(火氣 - 뜨거운 기운)가 복부에 맴도는 것이 느껴지옵니다.”

“화기라 하였소? 내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하였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신이 가까스로 짚어낼 정도로 약한 징후이니 탕약도 시침도 필요 없사옵니다.”

처방이 필요 없다 말 한 순간 효명세자의 표정이 풀어졌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짐작한 정약용은 위궤양의 치료법을 조곤조곤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다만 섭생을 조금 변용(變容)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먼저 화기를 불러오는 매운 음식을 줄이셔야 합니다. 또한 어주(御酒 - 임금이 권하는 술)가 아니라면 받지 마시옵소서.”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니 염려하지 마시오. 다만 매운 음식은 줄여야겠구려.”

위궤양의 증상은 한의학적으로는 탄산(呑酸 - 역류성 식도염), 비만(痞滿 - 소화불량) 그리고 조잡(嘈雜 - 위염)으로 나뉜다. 정약용은 이 세 질병을 다스릴 수 있는 생활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식습관 변화를 시작으로 생활 태도의 교정을 요청한 정약용의 말을 효명세자가 경청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약용은 효명세자가 가장 원하는 처방을 내렸다.

“화기가 맴도는 이유 중 하나는 물로 인하여 한기(寒氣)가 스며오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언제나 끓였다 미지근하게 물을 드시되 가급적 조금씩 자주 드시옵소서.”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구려. 계속 이야기 하시오.”

“또한 화기를 억누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적이 있사옵니다. 미역을 달여 만든 진액(津液)과 석화(石花 - 굴)를 응축해 만든 환을 올릴 것이니 끼니 사이에 드시옵소서.”

정약용이 잘못된 처방을 내릴지 몰라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해 하였다. 이런 처방을 내리면 호통이 돌아와야 정상인데 효명세자는 지극히 만족하고 있었다.

“미역으로 만든 진액과 석화를 응축해 만든 환이라? 장계를 보니 조일준이 열수환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 있더군. 그가 알려준 약··· 아니지, 음식이오?”

“그러하옵니다. 제가 조일준을 많이 가르쳤지만 저 또한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효명세자의 증세는 정약용의 예상대로 초기 위궤양이었다. 그는 역류하는 위산과 위궤양으로 인해 붕괴되어 가는 위 점막의 고통이 점차 심해지고 있음에도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처방은 침과 탕약 대신 솟구치는 위산을 쓸어내리는 미지근한 물과 공복에 아파오는 속을 다스릴 방법이었다. 다시금 정약용을 바라본 효명세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편작(扁鵲 - 중국 전설속의 의원)의 이야기가 떠오르는구려. 편작은 병을 고치지만 두 형은 병이 나타나기 전에 고쳐 명성을 떨치지 못한다 하였소. 가만히 보니 이 일이 떠오르는구려.”

“신의 의술은 편작과 비견할 수 없사옵니다. 신의 사소한 재주를 중히 여겨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사소한 재주가 아니오. 내의원 부제조(副提調)로 임명할 것이나 이는 다른 관직과 겸하지 아니 할 거요. 이런 의술과 처방이라면 부제조로 항시 머물며 내의원을 통솔해도 될 것 같소.”

내의원에 돌아온 정약용은 방에 들어간 직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설득에 성공했지만 자신이 불가능한 일을 현대의 지식을 빌려와 억지로 해결한 것과 같았다.

“내 지식만 있었다면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 것인데 많은 도움이 되었군.”

이제 치료가 끝났다 생각하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병이 있을 수도 있었고 앞으로 병이 급격히 악화될 지도 몰랐다. 정약용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자신을 더 갈고 닦기로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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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혜민서로 들어가고 엿새가 지난 다음에야 우리 집에 방문했다.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하루를 꼬박 쉰 다음에야 우리의 집으로 찾아와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내의원 정이 아닌 부제조가 되었다네. 열수환을 먹인 백성 중 절반 이상을 치유하여 공을 세워 주상전하께서 나를 임명해 주시더군.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해결하였네.”

아무리 보아도 효명세자의 병을 찾고 처방을 내린 것이 분명한데 일준이의 지식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잠시 주변을 살피던 정약용은 일준이를 보며 부탁을 하였다.

“다만 치유를 위해서 이전에 말한 약이 필요하다네. 조일준 자네가 일전에 말한 미역에서 나오는 알긴산과 굴에서 나온 탄산칼슘을 만들려면 오래 걸리는가?”

“알긴산 추출은 원재료인 미역과 르블랑 공법으로 만든 재료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관직에 나서고 일을 시작해야 하니 약 보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먼 훗날에도 쓰이는 약이라 하니 이 시대에도 효과가 있겠지. 급히 만들다 일을 그르치지 말고 천천히 만들도록 하게. 자네들 모두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려다가는 뭇매를 맞을 수 있지 않겠나.”

정약용의 뜻은 먼저 일을 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라는 말인데 이럴 필요성이 있다. 김조순이 조정을 뜯어고쳤으니 나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하여 당분간 움츠리고 있을 계획이어서 바로 답했다.

“그러하면 저희 둘 다 한 달 정도는 조용히 업무에 매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고비는 넘겼으니 한 시름 놓을 수 있으니 그리 해야지. 자네들이 관직에 올랐으니 아직 호(號)는 아니더라도 자(字)는 필요할 것 같군. 내가 지어주겠으니 잠시 기다려 주게.”

며칠 남은 적응 기간 사이에 정약용이 우리의 자를 지어주었다. 내 자는 진일(振佚)이고 현상이의 자는 용태(踊兌)라 하였다.

마침내 처음으로 조정에 출근하는 날이 되었다. 새벽 별을 보며 관복을 입었는데 일준이는 너무 키가 커서 정강이가 드러나자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래서야 억지로 가운 걸친 사람 꼴이잖아. 너는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데 나는 초등학생이 유치원 시절 옷 입은 것 같네.”

“그럼 새로 만들어야지 별 방법이 없을 거야. 매사에 조심하고 항상 존대를 하면서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도록 해. 흠집이 잡히면 골치 아파진다.”

“어련 하겠어. 다산 선생님이 경고한 대로 견제를 당하겠지만 너도 마찬가지니까 조심해.”

일준이에게 말은 잘 했지만 궐로 들어가니 나도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쭈뼛거리다 아무도 없는 홍문관에 들어가 잠시 기다리니 관원이 한 명 출근하여 바로 인사를 하였다.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어 반남 박씨의 적(籍)을 얻게 된 현상이라 합니다. 다산 영감께서 지어주신 자는 진일(振佚)이며 호는 없습니다.”

“자네가 영길리에서 머나먼 길을 떠나 이 땅에 온 사람이로군. 앞으로 업무를 배워 주상전하께서 내린 은혜에 부응하도록 하게나.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 간단히 알려주겠네.”

굴러 들어온 돌이라 하여도 우리에 대한 소문이 퍼졌으니 평가는 아주 좋았다. 머나먼 외국에서 조선에 충성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들과 한창 인사를 나누니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놀랍게도 김조순이 홍문관에 방문하였다.

“영돈령부사께서 소식도 없이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내가 홍문관 대제학을 겸직하고 있으며 여기는 홍문관일세. 다시 인사를 하게.”

“대제학 대감께 인사를 올립니다.”

김조순이 홍문관 대제학을 겸직하기는 하지만 일이 있을 때만 방문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사람들을 살피다가 나를 한참동안 살펴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친국을 행하는 자리에서는 봉두난발에 행색이 엉망이더니 관복을 입으니 얼마나 좋은가. 자네의 언변을 들어 보니 여기에서 꼭 시키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뭔가.”

“대제학 대감께서 재주가 없는 저에게 무엇을 시키려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재주는 키우면 되는 법이지. 자고로 말과 글을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많이 쓰고 많이 읽는 것일세. 그러니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겠네.”

김조순은 벼루를 가져와 자신이 가져온 연적(硯滴)으로 먹물을 넣고 붓을 축였다. 그러더니 종이를 가져와서 두 장을 서진(書鎭)으로 눌러 정돈한 다음 말하였다.

“내 의금부에서 나온 추국 결과를 보았다네. 듣자하니 조일준이라는 젊은이는 화학이라는 학문을 배웠지만 자네는 불란서(佛蘭西)의 말과 서역의 여러 정황에 대해 배웠다 하였네.”

“스승에게 배우지 아니하고 여러 서적을 빌려서 읽고 스스로 터득하였을 뿐입니다. 영길리나 불란서에서 공식으로 쓰이는 서적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배운 서양사는 현대까지 계속 수정한 올바른 역사이고 이 시대의 서양사는 연구가 미흡하니 완성도가 부족하였다. 이걸 감안해 말했는데 김조순은 슬쩍 웃고는 말하였다.

“우리가 불란서와 통교(通交)를 하는 사이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부터 자네가 알고 있는 서역의 여러 사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을 논하여 보게.”

“그러하면 불란서의 명장이자 군주였으며 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나팔륜(拿破崙 -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시키는 일이니 하였다. 김조순은 내가 나폴레옹의 인생에 대해 말하자 이를 모조리 한글로 받아 적고 다른 종이에 한문으로 옮겨 쓰고는 말하였다.

“서역의 역사라 하여도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으니 서적으로 엮으면 좋을 것이네. 다른 관원에게 말을 하면 이를 글로 옮겨 적을 것이니 다음에는 자네가 이 글을 베끼도록 하게.”

외국의 말과 글을 익히는데 필요한 요소는 말하기, 듣기, 쓰기 그리고 읽기이다. 김조순이 시키는 작업은 이 시대의 한국어를 배우는 요소가 모두 들어 있었다.

“이리 하면 말과 글을 일치시킬 수 있지. 종이가 조금 많이 소모되겠지만 중요한 인재를 기르는데 종이를 아까워하여 뭘 남길 수 있겠는가.”

“대제학 대감께서 저를 이렇게 가르쳐 주시니 온 힘을 기울여 업무에 임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내가 가르치지 않고 다른 관원들이 돌아가면서 가르치면 되겠군. 업무가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은 서역의 역사를 적고 이를 제대로 된 사서로 엮을 준비를 하게.”

김조순의 취미가 반영된 업무가 분명했다. 김조순은 젊은 시절에 소설을 즐겼다는데 나이가 들어도 취미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예상대로 김조순은 밖으로 나가기 전 나를 흘겨보며 말하였다.

“다른 관원이 옮겨 적은 글은 여기서 사서로 엮으면 될 일이지만 자네가 필사(筆寫)한 글은 내가 확인할 것이네. 실력이 나아지지 않으면 엄히 꾸짖을 것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딱딱한 사서를 읽느니 여기에 들어가지 않은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이야기를 확인하겠다는 말이다. 김조순에게 서양의 이야기는 젊은 시절 즐겨 보았던 소설이나 마찬가지이리라.

하루 종일 입이 부르터라 말을 하고 적어둔 글을 베끼기 시작하였다. 정약용에게 붓 쓰는 법을 배웠지만 내 서예실력은 초보자의 것 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였다.

“자네의 솜씨가 부족하지만 계속 붓을 놀리다 보면 나아질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가만히 보니 획에 힘이 없으니 손목의 힘이 빠진 것이 분명하군. 잠시 쉬다 오게.”

“힘이 조금 들지만 계속 쓸 수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예는 온 몸의 정신을 집중해야 하니 억지로 붓을 움직였다가는 잘못된 습관이 몸에 배일 수 있다네. 그러하니 쉴 때는 꼭 쉬어야 한다네.”

손목의 힘이 풀릴 때 까지 글을 쓰니 친절하게 나에게 휴식을 권유하였다. 인사를 올리고 잠시 쉬러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친한 척을 하였다.

“자네가 박현상이라 하였는가? 마침 자네를 만나러 잠시 방문하였는데 마침 잘 되었군.”

이 시대 사람들의 외모를 가늠해 보면 아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관료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손목을 주무르던 나에게 와서 아는 척을 하였다.

“이 나라에서 서역에서 건너온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나는 세자저하께 은혜를 입어 주제에 맞지 않게 궐에서 일하게 된 반남 박씨의 환재(桓齋)일세.”

“저 또한 주상전하의 은혜로 반남 박씨의 호적에 들어가게 된 진일이라 합니다. 아직 호는 없으며 명은 현상이지요. 혹여나 존함(尊銜)이 어찌 되시는지요.”

“규수라 하지. 자네가 들어가게 된 호적은 내 숙고조부(작은 고조할아버지)의 호적이니 우리는 먼 친척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하니 자네가 하는 일을 보러 왔다네.”

갑자기 박규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친척이라 말하였지만 그저 관심이 생겨 찾아 온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박규수는 내가 한창 베끼고 있던 책을 보면서 말하였다.

“영돈령부사 대감께서도 참 난해한 일을 행하라 하였군. 서역의 역사를 말하고 이를 옮겨 적은 물건을 필사하라 하다니. 이 나라에 온 지 일 년도 안 된 사람인데······.”

박규수는 내가 옮겨 적은 글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른 사람이 적은 원본을 보았다. 아직 나폴레옹의 인생 초반부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잠시 주변을 살피다 질문을 하였다.

“불란서에 대하여 잘 아는가? 근래에 들어 이양선(異樣船)이 계속 나타나며 변방이 혼란해 지는데 이들이 임진년처럼 변을 일으킬지도 모르지 않나.”

“이 땅에서 서역의 사람 여럿이 죽는다면 모를까 사소한 이유로 군대를 보낼 이들은 아닙니다.”

아편전쟁이야 이권과 자존심이 걸렸으니 움직인 사례고 선교사가 몇 명 죽어야 명분을 삼아 침략할 거다. 박규수는 자기가 괜한 소리를 했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면 영길리라는 나라는 또 어떠한 나라인지 알려줄 수 있겠는가.”

시간이 부족하여 아주 상세한 정보는 알려줄 수는 없었다. 그것만 해도 박규수 입장에선 충분한 것 같았다. 지금 영국이 얼마나 많은 배를 보내는지 알려 주니 박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햇다.

“이양선이 출몰하는 와중에도 서역의 정황을 몰라 답답하였는데 알 길이 생겼으니 다행이군. 세자저하께서 요즘 여유를 찾으셨으니 이런 글을 보시면 더욱 마음을 놓을 것 같다네.”

“세자저하께서 여유를 찾으시다니요?”

“주상전하께서 형조의 일을 처리하시니 범에 날개를 단 격이지. 여기에 도고에게서 압수한 자금이 백성들을 위문하고도 사십만 냥이 넘게 남았지. 이를 세자저하께서 활용하고 계시네.”

정책을 진행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여 알력을 조정하거나 자금을 줘서 무마하는 방법 중 하나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자금 40만 냥이 생겼다.

근대화를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지금 조선의 재정을 생각하면 정책을 추진하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지금 효명세자는 대리청정을 시작하고 가장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다만 조선이 얼마나 폐쇄적인지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려준 정보는 북경의 상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정보다. 박규수는 내 울적한 표정을 잘못 이해하고는 손사래를 치며 말하였다.

“자네의 글은 요긴히 쓰일 수 있으며 이는 사실일세. 이를 책으로 엮게 되면 세자저하께서 행하시는 경연(經筵) 자리에서 논할 수도 있을 것 같군. 그때가 되면 나와 함께 하세.”

“경연이라 함은 경서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서역의 일을 담은 서적을 논하다니요.”

“본래 경서에 대해 논하는 자리이지만 정세도 중요한 법이지. 자네의 말이 서적으로 만들어지면 내 상소를 올려 경연의 주제로 삼고 자네가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네.”

박규수가 좋은 기회를 줬다. 마침 나폴레옹의 연대기를 집필하고 있으니 효명세자를 비롯한 조정 중신들은 내가 제공한 글을 읽고 제법 많은 생각을 하리라.

유럽에서 10만 대군을 동원하여 전쟁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경계심을 가지고 나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 하리라. 이를 기대하며 며칠 동안 더욱 열심히 글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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