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21편
(2장 - 홍삼 (3))
그 날 저녁이 되기가 무섭게 형조의 업무를 관할하던 순조가 효명세자를 대신하여 모든 당상관을 인정전으로 불러들였다. 당연히 이 자리에 끼이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함께하였다.
이들은 최고의 세도가인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움직인 순간 자신들도 따라 움직여야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리라. 내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인정전에 들어가는 관료들은 보고 있으니 박규수가 다가와 슬쩍 물어보았다.
“내 세자저하께서 서학교도들의 재산을 갈취할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군. 오히려 가장 올바른 길을 택하셨으니 그동안 죄를 저지른 이들이 엄한 처벌을 받을 것 같군.”
“엄한 처벌을 받는다 하였지만 아직 죄상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먼저 석고대죄를 하면 홍삼을 압류하고 부당히 취한 이득을 거둬들이고 끝이 날 것입니다.”
“그 석고대죄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중요한 일이지. 사실 우리 가문에서도 몇 명이 홍삼 밀매를 실시한 정황은 있었다네. 만약 이들이 계속 발뺌을 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야 엄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미 길을 열어두었는데 여기에 응하지 아니 하면 법대로 밀수에 손을 댄 사람을 모조리 사형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할 것 같군요.”
박규수는 반남 박씨에 소속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정약용이 두 달 전에 저술한 앵속제독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두 달 전에 이 서적이 인쇄되어 곳곳에 퍼져나갔는데 아마 청나라에도 퍼져나갔을 것일세. 사람이 참 우스운 것이 서적에는 분명 앵속으로 인한 음위(陰痿 - 발기부전)를 해소한다 하였지. 지금 도성에 돌고 있는 소문이 무엇인지 아는가?”
“앞뒤를 모두 자르고 음위에는 홍삼이 좋다는 말이 돌아다니겠군요.”
“사람 생각이 다 똑같으니 한숨만 나오는군. 이미 이 나라 전체에 소문이 퍼져 산간 오지에 잠들어 있던 홍삼마저도 비싼 값에 사들이니 정작 중요한 약을 쓸 수 없을 지경이네.”
그럴 줄은 몰랐는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 표정을 확인한 박규수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이러다가 자네가 말하였던 영길리나 불란서의 사람들이 서적을 읽은 뒤 같은 생각을 하고 달려들지도 모르겠군.”
박규수를 비롯하여 정세에 민감한 사람들은 계속된 경연으로 생각이 어느 정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호레이쇼 넬슨의 전기를 경연 주제로 삼았을 때 나왔던 말이 있었다.
‘서역의 배는 이 나라의 판옥선과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하옵나이다. 이런 좋은 배를 한 척 정도는 구매하여 이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보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사헌부 대사헌인 정원용(鄭元容)이라는 관료의 주장이었고 오히려 효명세자가 군대를 훈련시키느라 자금이 부족하여 거절하고 훗날 한 번 거론해 보자고 하였다.
아직 현실을 모르는 하급 관료들이나 시골 유생들은 이런 변화를 모르고 있지만 중앙 관리들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소문이 퍼진 것을 확인했으니 박규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용태(조일준의 자)가 함께 저술한 서적이니 영어로 이를 번역하여 영길리에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세자저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지만 이들이 조선까지 올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습니다.”
“자네가 보기에는 희박하다 하여도 염두는 해 두어야 함이 마땅하네. 자네의 언사(言辭)가 우리를 깨우치듯이 조용태의 서적이 서역인을 깨우칠 수 있지 않겠나.”
“그러하면 홍삼을 사들이기 위해 이 머나먼 조선까지 항해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생각해보니 저희도 그동안 모은 재산을 모조리 털어 이 땅에 닿았습니다. 불가한 일은 아니지요.”
불가한 일이 아니라 하였지만 효명세자는 이미 내 이야기의 핵심을 눈치 채고 있으리라. 조만영과 김조순 둘에게 대략적인 계획을 이야기 했는데 모를 리가 없다.
설령 세도가들이 반발을 하여도 이를 찍어 내릴 명분은 물론이요 무력도 갖추고 있었다. 어영청과 훈련도감을 순시하여 병사를 다시 훈련시키고 망가진 장비를 나름 새 것으로 바꾸었다.
경험이 부족하였지만 이 병사들은 산간 오지를 돌아다니며 밀수꾼을 색출하는 실전을 거치며 경험을 쌓을 예정이다. 이미 이겨놓고 벌이는 싸움이니 자신 있게 박규수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밀수를 일삼으며 포삼세를 피하던 사특한 자들은 모조리 주상전하께서 엄벌을 내리실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일은 좋은 것이지. 다만 순리대로 돌아가는 일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닌 것 같군.”
박규수가 보는 방향을 확인하니 방금 전 인정전으로 들어간 김조순이 아예 기어 나오다 시피 지팡이에 의지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경고를 하였음에도 듣지 않으니 조만간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이후 수많은 세도가가 자신의 잘못을 고변하며 석고대죄를 하였다. 당연히 효명세자는 먼저 죄를 고변하였으니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인삼밭을 국고로 편입시켰다.
물론 아직까지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도망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두 달이 흘러 해가 넘어가 1831년 음력 1월이 되었다. 동지사로 북경에 다녀온 이지연이 돌아와 휴식도 취하지 않고 보고를 올렸다.
조정(朝廷 - 인정전 마당)에서 효명세자에게 보고를 시작하였는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 홍삼이 고스란히 남아 앞마당에 쌓여 있었다.
“신 이자연 세자저하께 아뢰옵나이다. 만상(灣商)의 일원 임상옥과 함께 오천 근에 달하는 홍삼을 교역하기 위하여 북경에 당도하였나이다. 하오나 교역에 실패하였사옵니다.”
“교역에 실패하다니 이 무슨 일이오. 대체 무엇이 문제였소?”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자연이었지만 이미 효명세자의 지시를 다 들은 상태였다. 이자연이 고개를 계속 찧어대자 효명세자는 다른 사람을 지목하였다.
“이자연은 교역에 대하여 명확히 알지 못 하니 이번 교역을 담당한 임상옥이 답하도록 하라.”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임상옥은 쉰이 넘은 나이임에도 앞으로 나와 머리를 찧어댔다. 그 모습을 본 효명세자가 손짓하자 임상옥은 피가 끓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소인이 나라의 은혜를 입어 만상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지낸지 어언 삼십 년이 넘었사옵니다. 그 동안 수많은 홍삼을 청나라 상인들과 교역하였으나 이러한 일은 본 적이 없사옵니다.”
“이러한 일을 본 적이 없다 하였느냐? 정황을 상세히 고변하여라.”
“소인이 오천 근에 달하는 홍삼을 북경으로 가져가니 상인들이 이를 사들이지 아니 하였습니다. 여러 정황을 파악하여 보니 인삼의 시세가 일백오십 냥에 달하였으나 이들이 담합(談合)을 실시하였사옵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이 시대의 상인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물건을 싼 값에 후려쳐 사들이고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 것이 표준이다. 애초에 법 이전에 뇌물이 우선인 시대이다.
매점매석이야 정부의 통치를 어지럽히니 금지하지만 저런 담합정도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청나라 전체에서 홍삼의 발기부전 치료제라는 소문이 돌았고 상인들이 집결한 것이다.
이들은 조선에서 더 많은 양의 홍삼이 들어왔음을 알아차리고 아예 작정을 하고 담합하였으리라. 임상옥은 피가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닦지도 않은 채 고개를 들어 보고를 이어갔다.
“소인이 아무리 고변하여도 말을 듣지 아니하여 방도가 없었나이다. 결국 세자저하께서 소인을 신뢰하시어 일임하신 홍삼 가운데 삼천 근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사옵니다.”
“내가 알기로 청나라의 사람들은 홍삼을 끝없이 사들이고 이를 약재로 사용한다 하였다. 그러하면 이미 청나라 안에 있는 홍삼은 모조리 자취를 감추지 않았겠느냐.”
“실로 그러하옵니다. 그나마 이천 근에 달하는 홍삼을 구매한 것도 상인이 아닌 각지의 부호가 자신이 사용할 홍삼을 사들인 덕분이옵니다. 이 일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나라의 일을 그르치고 말았사옵니다.”
원인이야 정약용이 일준이와 함께 저술한 서적이지만 효명세자는 새로운 명분을 얻었다. 발뺌하는 자들을 모조리 쓸어낼 계기를 마련한 효명세자가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말하였다.
“원흉을 알 것 같구나. 한 해에 적게 잡아도 오천 근, 많게는 칠천 근에 달하는 홍삼이 밀매로 팔려나가고 있다. 이들에게서 홍삼을 구할 수 있으니 동지사를 통하여 홍삼을 사들이지 않은 것이구나.”
모든 문제는 홍삼 밀매 때문이 되었다. 아예 홍삼 밀매에 가담하고 실토하지 않는 이들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할 마음을 품은 효명세자는 앞으로 나와 삿대질을 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네놈들이 법도를 모르고 날뛴 탓에 나라의 대계가 무너지게 생겼구나! 이 나라는 청나라와 교역을 하며 인삼을 팔고 수많은 물산을 사들이고 있었다. 야음을 틈타 산골을 넘어 많은 인삼을 팔아치웠으니 벌어진 일이 아니더냐!!”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스스로의 죄를 고변한 이들은 밀매를 위하여 만들어 둔 홍삼을 압수하는 처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죄가 드러나는 이들은 엄히 벌할 것이다!”
이제는 본격적인 숙청에 돌입할 차례였다. 수많은 하급 관료들이 끌려와 죄를 뉘우치려 하였으나 가산 몰수와 귀양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
효명세자는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하였다. 이미 효명세자와의 협상, 표면상으로는스스로 죄를 고변한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고발을 일삼기 시작하였다.
밀수꾼을 단속하고 돌아온 어영청과 훈련도감 병사들은 수만 냥에 달하는 은자와 압수한 홍삼 삼천 근을 가져왔다. 여기에 스스로 고변하여 바친 홍삼을 포함하니 오천 근이 넘는 홍삼이 도성에 축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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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의 항해 끝에 음력 2월 경 황해도 몽금포에 도달한 로드 암허스트 호는 주변을 측량하며 정박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미 인근의 장연현에서 파견한 병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들이 백사장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제법 빠른 대응에 휴 린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명령을 하달했다.
“인구가 제법 많은 나라 같군. 하긴 해도를 보면 브리튼 본토와 대등한 크기이니 당연한 일이지. 먼저 인사를 나누어야 하니 어서 배를 내리게.”
나룻배를 타고 백사장에 도착한 휴 린지와 선원들을 확인한 장연 현감이 경계를 숨기지 않으며 병사들과 함께 접근하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휴 린지는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교역을 실시하러 온 휴 린지라 합니다.”
“중국어를 아는 분이 계시는구려. 내가 필담을 할 수 있으니 필담으로 합시다. 본관은 주상전하께 명을 받아 장연현을 다스리고 있는 현감 이원율이오.”
단 한 마디의 대화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조선은 중앙집권 국가이며 장연현이라는 고장이 얼마나 큰지는 몰라도 조총을 들고 있는 병사 열 명과 날붙이로 무장한 병사 열 명이 뒤에 대기하고 있었다.
휴 린지가 몇 번의 교역을 위해 다녀온 청나라의 광주는 다들 아편에 취하여 허우적거렸지만 조선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표정을 살펴본 휴 린지는 옆에 있는 통역관을 보며 말하였다.
“어디보자. 대화를 나눈 이후의 방침이 선물을 줘서 환심을 사고 각 지방의 홍삼 시세를 알아내라는 것이었지. 선물로 뭘 주면 좋을까?”
“이럴 줄 알고 사탕을 많이 가져왔으니 내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조선에서 수입하는 물건 중 설탕이 있다 했으니 귀한 물건입니다. 단 것을 먹으면 입이 열리지요.”
휴 린지가 고개를 끄덕였고 배로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갑자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휴 린지를 본 이원율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곧이어 선물을 받고 미소를 지었다.
“단 것이라도 먹으면서 마음을 풀어보는 것이 어떠합니까? 이 만남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여러분들 모두에게 계피 사탕을 선물하겠습니다.”
“사탕이라 하였소? 이거 법도를 잘 아는 사람들이로군.”
설탕을 수입에 의존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사탕은 제법 비싼 물건이었다. 어른들에게는 한 움큼을 쥐어주고 아이들에게는 입 안에 넣어주기까지 하니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번져나갔다.
“사탕에 계피가 많이 들어서 아주 짜릿하구려. 영길리라는 나라는 법도를 아는 것 같으니 주상전하께 보고를 좋게 올리겠소. 혹여나 원하는 것이 있으시오?”
“물과 식량은 제 값을 주고 구매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홍삼이라는 약재가 귀하다 하였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건입니까?”
이원율은 사람 좋게 웃는 휴 린지를 보면서 정색하였다. 근처에 작은 인삼밭이 있었고 자신의 집에 홍삼 한 근 정도는 있었지만 조만간 사용할 물건이었다.
정약용이 저술한 의서에는 아편 복용으로 인한 발기부전을 치료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40대 중반인 그에게는 그저 발기부전 치료라는 여섯 글자만 보였으니 귀중한 물건이었다.
한 근당 은자 오십 냥 정도라면 팔아치울 수 있지만 도성의 홍삼 시세가 폭증하니 가격이 더 오를지도 몰랐다. 시세를 고려한 이원율은 이를 과장되게 답하였다.
“홍삼은 산간오지에서 자라나는 인삼을 오 년 이상 매일매일 돌보아야 가까스로 얻어낼 수 있는 귀한 약재요. 한 근에 은자 일백오십 냥으로 사들인다면 모를까 그 아래는 팔지 않겠소.”
“한 근에 은자 일백오십 냥이라 하셨습니까? 혹시나 농장이 근처에 있습니까?”
“인삼 밭은 저기 보이는 고산준령의 기슭에 있소이다. 산 속에는 호랑이와 늑대가 출몰하며 이를 물리치기 위한 병사와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인부들도 두어야 하오.”
“그리도 귀한 물건을 이런 곳에서 얻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휴 린지는 웃는 얼굴을 하였지만 속으로는 심각하게 고뇌하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홍삼 시세를 물어 보았지만 아무리 낮게 불러도 한 근당 은자 100냥 이하로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배로 돌아온 휴 린지는 답례로 받은 쇠고기 구이를 안주삼아 이원율이 내어준 소주를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원산지 근처에서 은 100냥의 이상의 시세가 형성되었다면 거래 시세는 두 배 이상 뛰어오를지도 몰랐다.
“선장님. 조선 관리가 저희가 식료품 대금으로 지급한 은화를 확인하더니 이 물건도 내어주었습니다. 돈을 너무 많이 줘서 답례가 필요하다 하더군요.”
“그런 일에 보고는 필요 없고 알아서 하면 충분하지 않나.”
“저희 선에서 처리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한 번 보시지요.”
이원율은 식료품 값으로 지나치게 많은 은을 받아서 손상된 호랑이 가죽을 답례로 주었다. 칼자국이 여럿 나서 상품 가치가 부족하지만 엄연한 귀중품이었고 선원은 혀를 내두르며 말하였다.
“조선의 산봉우리 하나마다 이런 호랑이가 여럿 살고 있다 하였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마을 사람을 공격하여 이를 막아내다 얻어낸 물건이라 하더군요.”
창 밖에 펼쳐진 끝없이 넘실거리는 산봉우리를 확인한 휴 린지는 동인도회사에서 내려진 지침서를 펼쳤다. 여러 가지 수단이 있었지만 몇 가지 수단은 폐기해야 하였다.
지금 확인한 호랑이의 크기는 인도에 서식하는 호랑이보다 한배 반 이상 거대하였다. 이런 괴물들이 들끓는 산 속이라면 최정예 병사들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현지의 부패한 관리와 작당하여 홍삼의 원산지를 알아내고 인원을 투입하라고? 레드코트조차도 경험이 없으면 호랑이에게 습격당해 먹이가 되겠군.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생각 외로 골치 아픈 일이 될 지도 모르게 된 휴 린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몇 달을 기다리며 조선 정부의 답을 받아내야 하는데 홍삼 시세 조율조차도 문제였다.
반면 이원율은 계피 사탕을 우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서역에서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투를 각오하였으나 이들은 너무나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라니까. 서학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에는 경계하였지만 선물도 주고 물품 가격도 비싸게 쳐주니 얼마나 좋아. 장계에 이를 반드시 기입해야겠군.”
“현감님! 서원에서 유생 분들이 방문하여 서역인을 당장 내쫓으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뭍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배 위에 머물며 기력을 북돋우고 있다 전하게.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신 다음 이들을 내칠 것인지 도성으로 들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네.”
서학은 잘못된 학문이며 서역의 오랑캐들은 상종해서는 아니 된다는 관념을 가진 유생들이 항의하였다. 반면 이미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선물을 받은 이원율은 콧노래를 부르며 계피 사탕을 하나 더 삼켰다.
이후 장연현을 시작으로 두 가지 소문이 퍼져나갔다.
첫 소문은 영길리의 사람들이 법도를 알고 있으며 훌륭한 상인이라는 것이고 다음 소문은 서학을 퍼트리려는 사악한 자들이 떼로 몰려든다는 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