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25편
(2장 - 지부상소)
한자로 필담이 통하니 조만영과 몇몇 호조 관리들 그리고 임상옥이 추천한 만상(灣商)의 상인들이 감시를 위하여 휴 린지와 함께 청나라 광주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광주에는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도 있고 아편을 먹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을 통해 홍삼의 약효를 검증할 것입니다. 거래 대금은 저희에게 전량 주시는 것이 맞습니까?”
“확인을 위하여 한 번 다녀오는 것이니 그 비용을 우리가 보증함은 마땅한 일이지. 부디 상행을 다녀오며 큰 변고가 없기를 원할 뿐이네.”
조만영과 관리들은 청나라 남부에 다녀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나름 기대감에 차 있었다. 다만 조만영은 기대와 달리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을 보게 되리라.
한 달이 지나고 경연 주제는 단순한 역사가 아닌 철학과 경제를 논하는 자리까지 올라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내용을 요약한 서적을 효명세자가 논하였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농부와 백정 그리고 이를 옮기는 상인이 나라에 충성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한 욕심 덕분이다. 이 말이야 말로 핵심이오.”
사상이 다른 조선이라 원문 그대로를 가져올 수 없으니 조금 개선한 내용을 이야기했는데 효명세자는 물론이요 신료들 모두가 공감하였다.
거래를 통해 이득을 약속받고 충성심이 올라간 세도가, 홍삼을 압수당하였지만 영국과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보장받은 고위 관료들이니 다들 이해할 만 하였다. 효명세자는 국부론을 통해 주의할 점도 이야기 하였다.
“상업 활동과 새로운 규칙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품고 확인하라 하였소.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기만하는 것이 이득을 불러올 수 있다면 욕심이 생길 것이라 하였으니 이 또한 마땅한 일이오. 가급적이면 원서(原書)를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군.”
“역관들에게 영어를 익히게 하여 처음으로 번역할 서적으로 정하시옵소서.”
여기서 끝이 아니고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론과 차액지대론 그리고 노동가치설도 중요하다. 서구 열강들이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정책이며 조선이라는 나라가 취할 정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교역이 시작되면 영국에 다녀와서 세부 조약을 조정하며 여러 서적을 들여와야 하리라. 점점 깨어가는 관료와 효명세자를 보며 마음이 놓였는데 갑자기 관원이 들어왔다.
“세자저하께 아뢰옵나이다. 저하께서 필히 휴식을 취하라 명하였던 김조순이 사지를 가누지 못하는 채로 입궐하였사옵니다. 듣자하니 마지막 간언(諫言)을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명이 경각에 당한 사람이 어찌하여 여기에 당도했단 말인가! 금군은 무엇을 하는가!”
“기세에 밀려 아무도 돌려보내지 못하였사옵니다. 신 또한 만류하였지만 부제조 정약용이 부축하고 마지막 뜻을 전하겠다고 하여서 더 이상은 만류할 수 없었사옵니다.”
“경연을 중단하겠소.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 이 선정전을 비워주시오.”
순조도 소식을 듣고 김조순을 만나러 선정전으로 들어갔고 정약용의 부축을 받은 김조순이 마지막 힘을 불태워 선정전으로 향하였다. 어떠한 대화를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셋은 한 시간 가까이 논의를 하였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순조와 침통한 효명세자가 나오고 김조순이 아예 금군에게 업혀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마지막으로 간언을 아끼지 않았다.
“세자자하께서···제가 안배한 것을 꼭··· 이 세상에 퍼트리시옵소서.”
“내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염려하지 마시오. 이 나라를 위하여 사력을 다 할 것이니 돌아가 쉬고 필히 쾌차하시오. 이는 어명이오.”
“제가 생전에······. 어명을 거스를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김조순은 이미 기력을 되찾을 가망이 없었으며 정약용도 이를 알고 있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었는지 그는 주변 사람들을 불러들여 유언을 남겼다.
“유근이는 들어라. 네가 매사에 열중하고 언제나 근면하니 마음이 놓인다만 이 아비처럼 때를 놓쳐 몸을 게을리 보면 명을 달리하는 법이다. 삼 년 동안 상을 치르되 처음 한 달만 초막(草幕)에서 지내어라.”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 유언을 남긴 김조순은 마지막으로 우리 둘을 불렀다. 나와 일준이가 무릎을 꿇고 앉자 김조순은 웃는 얼굴로 말하였다.
“박현상 자네 덕분에 즐거운 일을 많이 알게 되었고 세상 물정에 능통해졌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조일준 자네도 재주가 충분하니 그저 이 나라를 위하여 힘을 쓰게.”
“이런 모습을 보이시면 아니 됩니다. 재주가 있다 하여도 이를 오만하게 사용하다 큰 화를 입을 것 같습니다. 맹렬히 꾸짖어 주심이 마땅합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 자네들의 뜻을 알고 있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올해 스물셋이라 혼기(婚期)가 지나가고 있군. 유근아, 잠시 오도록 하여라.”
혼기라는 말에 우리 둘의 시선이 교차했는데 가짜 신분으로는 23세라 조선 기준 노총각 딱지가 붙을 시기였다. 장남인 김유근이 오자 김조순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유근이 너의 셋째 딸이 올해 나이가 열다섯이라 알고 있다. 혼처(婚處)를 구하고 있다 하였는데 여기 있는 박현상과 혼인을 하면 어떠하겠느냐.”
나를 안동 김씨의 사람으로 넣으려 했는데 일종의 안전장치 겸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는 것 같았다. 김유근은 새어나오는 눈물을 닦으면서 아버지 김조순의 요청에 응하였다.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하여도 재주가 출중하니 나라에서 중히 쓸 인재가 될 것입니다. 조일준 자네는 체격이 너무 크니 어울리지 않아서 차마 추천하지 못 하겠군.”
187cm에 달하는 신장과 권투로 다져진 체격이 독이 된 일준이가 피식 웃었고 김조순은 누운 자리에서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이미 정해진 일이나 마찬가지지만 신부의 나이가 문제였다.
내 나이가 30세인데 나이가 15세와 결혼을 하면 법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성인이 되어야 결혼해도 문제가 없으니 결혼 시기를 조금 늦추자는 제안을 하였다.
“대감님께서 저의 혼처를 정해주시니 마땅히 응할 일이지만 저는 조만간 영길리에 다녀와 조약을 맺으려 합니다. 이역만리를 다녀오고 병에 걸리거나 태풍에 배가 침몰할지도 모르지요.”
“생각하여 보니 과부(寡婦)를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로군. 그러하면 약혼(約婚)을 하고 자네가 무사히 영길리에서 돌아오면 혼사를 추진하도록 하세.”
다음으로 방문한 사람은 효명세자였다. 모두가 자리를 피하였고 효명세자와 대화를 마친 김조순은 정신을 잃고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삼일 뒤인 1831년 음력 4월 17일 새벽에 결국 명을 달리하였다.
문무백관은 물론이요 수많은 이들이 장례에 참석하였고 나 또한 안동 김씨의 사위가 될 사람이라 상복을 입고 장례에 참석하였다. 정약용은 흰 한복을 입은 채 푸념하였다.
“내 풍고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변모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조금 전에 세자저하와 논의를 하고 왔는데 조만간 각지에서 올라온 유생들이 지부상소를 벌일 예정이네.”
“아마 풍고 대감께서 원하신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세자저하께 마지막 상소를 올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상세한 일은 알려줄 수 없지만 풍고는 자신의 목숨을 근본으로 삼아 이번 일을 추진하였네. 아마 자네가 바라고 있던 일이 벌어질 것이라 하더군.”
정약용은 김조순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트린 격문(檄文)을 보여주었는데 정말로 함정이 숨어 있었다. 효명세자가 여기에 응하겠다고 했으니 지방의 유생들도 머리를 채워줄 길이 열렸다.
조금 극단적인 대처가 되겠지만 각 지방에서 글만 읽으며 살아온 유생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명분이었다. 이를 불타고 있는 화로에 넣어 태운 뒤 한 달 뒤 벌어질 일을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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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린지를 비롯한 동인도회사 직원들과 함께 광주에 다녀올 사람들이 조선으로 돌아올 무렵 유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김조순이 지급한 돈으로 멋들어진 단령(團領)을 빼입고 도끼를 지닌 채 지부상소를 시작하였다.
[주상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양이와의 교역을 폐하시고 올바른 뜻을 바로 세우시옵소서! 이 나라가 순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각 향교와 서원을 대표하는 유생들은 아마 지방에 대한 수사에 반발하여 올라왔으니 머리수만 채웠다. 반면 이 속에는 위정척사의 사상을 품은 유생들도 끼어 있었다. 일준이는 이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쳐댔다.
“좀 화끈하게 할 수 없나? 죄다 밥 먹으러 사라졌다 돌아오고 서로 언쟁이나 벌이다니. 이래서야 뜻이 전해지기나 하겠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야. 김조순이 저지른 일이라면 이보다 더 하겠지.”
내 예상대로 며칠이 지나자 벽오지의 유생들도 집결하여 총원 일천 명이 확실히 넘어갔다. 각 세도가들도 유생을 접대하였고 우리 집에도 유생 몇 명이 문을 두드려서 방을 내어줄 지경이었다.
유생들은 이미 창덕궁 앞을 점거하였다. 김조순이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효명세자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정책을 폐기해야 하였으리라.
마침내 이들이 지쳐갈 무렵 청나라 광주에 다녀온 암허스트호가 도착했다. 조만영을 맞이하고 서로의 말을 번역하기 위해 응하였다. 그러나 조만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혹여나 무슨 변고라도 겪으셨습니까?”
“자네가 운이 좋다는 사실만 알아차릴 수 있었네. 더 이야기하다는 내가 분통이 터져서 죽을 것 같으니 도성으로 나아가세나.”
도성의 상황을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창덕궁 근처까지 향하였다. 지부상소를 진행하는 유생들이 내는 소리를 들은 조만영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휴 린지는 유생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저들이 대체 누구입니까? 복식을 보아하니 양반이라 불리는 이 나라의 귀족들이 아닙니까?”
“ 각 지방에서 정책 수립에 반대하는 뜻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모인 양반들입니다.”
일제히 목소리를 높인 유생들은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고 그러다 휴 린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살벌한 시선에 휴 린지가 도망치려 하였지만 유생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다시 절을 올리고 구호를 반복하였다.
“동인도회사와의 교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니요? 저 날이 선 도끼를 보십시오. 저를 도끼로 찍어버릴 줄 알았습니다.”
“찍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 도끼를 가져온 이유는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스스로의 목을 도끼로 치라는 의미이지요. 뜻이 받아들여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오로지 발언을 위하여 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내어놓았단 말입니까? 이 나라는 대체 어떻게 된 나라입니까?”
영국에 이 사실이 전해지면 눈앞이 깜깜해질 거다. 인도처럼 중앙과 지방을 이간질시킬 수작은 불가능하다 여기리라.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은 휴 린지는 뒤로 돌아 도망칠 준비를 마치고 말했다.
“일이 틀어질지도 모르니 어서 물품을 하역하고 선원들을 배에 미리 태워두겠습니다. 저야 책임자이니 여기에 남아 있겠지만 안전을 보장해 주시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혹시 일이 틀어질지도 모르니 배정받은 자택에서 보호를 받으시지요.”
휴 린지가 병사들과 함께 사라지자 조만영은 구호를 계속 듣고 있다 코웃음을 쳤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냉소(冷笑)가 깃든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조만영은 성큼성큼 걸어 지부상소의 대표인 이항로 앞에 당당히 섰다. 조만영이 휴 린지와 함께 청나라에 다녀온 소식을 알고 있는 유생들이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호조판서 대감께서는 정녕 제정신이십니까? 변복을 하고 신분을 속여 상국에 다녀오다니 이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번국으로서 상국을 모셔야지요!”
“도덕도 모르는 양이들과 함께 하였으니 나라의 질서가 땅에 떨어졌음을 알겠습니다. 상인으로 변장하여 이문을 가로채는 짓을 하시다니 낯을 드실 수 있겠습니까?”
돌아온 직후부터 표정이 좋지 않던 조만영은 이들의 질문세례를 받고 얼굴이 분노로 뻘겋게 물들었다. 조만영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의 뽑혀나간 어금니 자리를 보여주고 말하였다.
“상국? 상국이라 하였소? 청나라의 근본을 망각하였단 말이오? 저들은 천명(天命)을 강탈한 오랑캐요! 스스로 분수를 넘어선 짓을 자행하고 이백 년이 지나 오랑캐보다 못 한 놈들이 되었소! 내 치아가 어찌하여 사라졌는지 아시오?”
“그야 불민한 사고로 인하여······.”
“불민한 사고라 하였소? 내가 상인으로 변복하고 홍삼을 털어놓자마자 일이 벌어졌소. 벌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고 뭉개는데 아편에 취하여 사지가 꺾여서도 기어오더구려!”
북경에서 내려왔어야 할 홍삼 공급은 끊겼는데 정약용이 저술한 앵속제독서로 인하여 홍삼의 수요는 폭증하였다. 아편에 중독된 이들이 범인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었다.
“아편에 빠진 이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하면 넘어갔을 것이오. 가까스로 사태를 진정시켰는데 청의 관리라는 작자들이 다가와 이 나라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가더구려.”
“상국의 위엄이 있으며 기강이 있으니 일부 부패한 관리일 겁니다.”
“청나라 광주에서 일하는 관리들 모두가 그러하오. 사람을 가둬놓고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니 어금니가 뽑혀나갔소. 이후 내 말도 듣지 않고 몽둥이를 들이밀며 홍삼을 내놓으라 하더구려.”
아편을 공급하는 소중한 영국 상인을 건드릴 수 없으니 만만한 조선 상인을 잡아 가뒀으리라. 조만영은 삿대질을 하면서 유생들에게 말하였다.
“더 이상 청나라는 상국이 아니오. 이들이 옛적에 요동에서 발흥하여 후금(後金)이라는 나라를 세울 적의 기강은 어느 때에도 없소!”
“하오나 상인에게 뭇매를 때리고 금품을 갈취하는 일은 간혹 있는 일입니다. 이는 호조판서께서 상인으로 변복하여서 벌어진 문제라 여겨집니다.”
“영길리 상인들이 선물로 아편 한 관(3.75kg)을 내어주자 청나라 병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아편에 취하였소. 그 틈을 타 열쇠를 가져와서 나를 풀어주었소이다. 이게 상인과 관련된 문제요? 아니면 청나라가 오랑캐의 나라라는 증거요?”
유생들이 서로 언쟁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성리학 논리에 몰두하여 천조(天朝 - 중원을 차지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질서를 근본으로 삼으니 청나라를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품은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근본인 위정, 성리학적인 질서가 붕괴한 것이다. 조만영은 궐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일갈(一喝)하였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영길리의 선박을 통하여 광주에 다녀오시구려. 한 달만 머무르면 마음이 변할 거요. 이 끔찍한 나라가 상국이라? 이를 모시는 조선은 어떠한 나라가 되겠소?”
아예 근본 자체를 뒤엎는 발언을 해버린 조만영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순조와 효명세자 앞에서 고변하였다. 물론 이 자리에 없는 휴 린지를 대신하여 홍삼의 시세를 제대로 알려주었다.
“광주의 홍삼 시세는 한 근에 은자 육백삼십 냥에 달하옵니다. 사실 거부(巨富)가 홍삼 이백 근을 사들여 경매를 하였으니 더 높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기록은 이러하옵니다.”
“영길리에 홍삼을 은자 삼백 냥에 팔아도 적당하겠습니다. 관세(關稅)를 오 할 로 정하여 홍삼 한 근의 가격은 이백 냥으로 하고 관세를 일백 냥으로 정하면 어떠하신지요.”
“신 또한 바라던 바이옵니다. 청나라와의 교역은 불민한 사고를 감당해야 하니 약간의 이문은 중요치 않사옵니다.”
조만영의 보고를 들은 효명세자는 무릎을 치며 웃어대더니 궐 밖에서 들리는 함성을 잠시 들었다. 그러더니 명령을 내려 신료들을 궐 안에 들이게 하였다.
“궐이 번잡해질 수 있으니 유생 오십 명을 안으로 들이도록 하여라. 조정(朝廷)에서 이들을 맞이하여 논의할 것이다.”
명을 받은 유생들은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 궐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관직은 가지지 아니하였지만 나름 지방에서 한 가락을 하는 사람들이라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나둘씩 경전의 내용을 읊으며 고변을 하니 효명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척 하였다. 마침내 김조순이 작성하였던 격문이 전해지고 효명세자는 내용을 정리해 말했다.
“서역의 사람들이 법도 도덕도 없으며 그저 이문을 위하여 움직이는 짐승이라 하였으나 궁금한 것이 있소. 이 나라에 방문한 휴 린지는 사특한 뜻을 품은 적이 없소이다.”
정확히는 내가 원천 차단했지만 다른 것이 뭐가 있겠는가. 협상에서 이득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를 후려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이다. 유생들도 이를 알고 반박하였다.
“하오나 웃는 낯으로 사특한 행위를 몰래 저지를지도 모르옵니다.”
“그러한 일을 막아내기 위하여 여기 모인 유생들과 같이 의기를 품은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오. 참으로 좋은 말이구려.”
점차 효명세자가 설득되어가고 있다 판단한 이항로. 개명 전의 이름인 이광로는 방금 전 조만영에게 받은 충격을 극복하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효명세자가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격문에 보니 논의를 할 수 있는 데 까지 할 것이며 볼 수 있는데 까지 세상을 본다 하였군. 내가 조만간 영길리에 나아가 조약을 맺을 생각인데 이에 응할 것이오?”
여기 모인 유생들은 효명세자의 뜻을 돌리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으니 효명세자가 영국에 다녀오자고 하면 당연히 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왜 말이 없소.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나은 일이라 하였소. 내 영길리에 직접 다녀와 입조(入朝)를 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의 삶을 보고 정말 법과 도덕이 없는지 알아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