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26편
(3장 - 서역 사절단(1))
효명세자의 말이 끝나자 조정(朝庭)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김조순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격문을 작성하였으며 이는 효명세자가 철저히 이용하고 있었다.
논의의 주제가 서역과 관련된 일이 되어버렸으니 보아야 할 것은 서역임은 마땅하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광로는 원리원칙을 들먹이며 이를 만류하려 하였다.
“세자저하! 아니 되옵니다! 서역의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이고 굴종함은 인조대왕께서 흉변(凶變 - 병자호란)을 당한 이후 효종대왕께서 겪으신 일과 같은 것입니다!”
“효종대왕께서 볼모로 잡혀 후금에 끌려가신 일은 강압에 의한 것이지 않소. 나는 스스로 나아가 견문(見聞)을 넓힐 목적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하오나 옥좌에 오르실 분이 한낱 사신으로 다녀오시다니 이는 지극히 외람된 행위이옵니다.”
“태종대왕께서는 북경으로 나아가 사행을 하셨거늘 내가 못 할게 무엇이 있겠소.”
효명세자의 행동은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기존의 조선 왕들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옛 기록과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생들에게는 이를 반박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았다.
“나선(羅禪 - 러시아)이라는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표트르라는 왕은 영길리에 유학을 다녀와 많은 것을 배웠소. 이는 서역의 예법에는 어긋나지 않는 일이더구려.”
심지어 효명세자는 내가 가르쳐준 서양의 역사를 응용하여 아예 서양의 예법에 거스르지 않는다며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응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뜻을 굽힌 것과 같았다. 몇 년 동안은 이들이 의견을 내놓아도 조정에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받아칠 수 있다.
김조순의 의견대로라면 이번 일에 응할 사람은 많아야 쉰 명이라 하였다. 효명세자는 호응이 적다며 실망하고 유생들의 대표로 적당한 종친을 선별하고 젊은 관료들을 서양으로 보내리라.
너무 많은 유생들이 호응하면 효명세자가 함께 나서야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이들의 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침묵하는 유생들을 보고 냉소를 흘리는 조만영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리 말이 없으시오. 나는 지금에라도 서역에 다녀와 견문을 넓힐 생각에 수많은 사람과 함께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소. 서로 견문을 넓힐 자리이니 모두가 응해야 하지 않소.”
풍양 조씨의 대표 조만영이 청나라가 오랑캐의 나라라고 말하였다. 그 잠시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며 위정척사 사상에 금이 가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으리라.
효명세자는 이러한 변수를 예측하지 못하고 계속 유생들을 질책하였다. 예측대로라면 여기서 분열을 일으킬 유생들은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였다.
“심히 중요한 일이오니 옥석을 가려 세자저하를 보필할 사람을 마련할 예정이옵니다. 며칠의 말미를 두어 세자저하와 함께 견문을 넓힐 사람을 선별할 것이옵나이다.”
“며칠의 말미를 두어 옥석을 가린다 하였소?”
“대를 이을 수 있는 후사를 둔 사람은 물론이요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앞둔 사람을 가려내야 할 일이옵니다. 충심을 가지고 응할 기회를 마련해 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효명세자는 나와 조만영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김조순의 자택 방향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여기서 몇 명을 남기고 모두 돌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일이 단단히 잘못되었다.
인사를 올리고 밖으로 나간 이광로가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자 여러 소리가 섞였다. 주상전하 천세부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창덕궁을 메워댔다.
이후 두 각(30분) 정도가 지나자 옥석이 가려졌다. 자신의 이득을 지켜내기 위해 도성으로 올라온 자들은 모조리 해산하였고 남은 이들은 자신이 짐을 맡긴 양반가로 돌아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충문(忠文 - 김조순의 시호)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되었네. 유생들이 대체 무엇을 보고 예상과 다르게 마음이 움직였단 말인가.”
조만영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청나라에 다녀오느라 두 달 동안 자리를 비워서 이번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아마 김조순이 평상시 말하던 지방의 유생들을 깨우치라는 말을 떠올려 저들을 질책했으리라.
막대한 변수로 작용한 조만영을 뒤늦게 알아차린 효명세자이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흘이 지나자 예상보다 몇 배는 많은 유생들이 효명세자의 뜻에 응하였다.
“세자저하께 아뢰옵나이다. 신 이광로 외 이백육십이 명 모두 세상을 돌아보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 자리에 남았사옵니다. 세자저하께서 옥석을 가리시어 추려내시옵소서!”
“서역에 나아가지 못 하더라도 청나라의 정황을 알고 싶사옵니다. 호조판서가 말한 대로 신들을 청나라의 광주를 견문하는 일을 허가하여 주시옵소서!”
지부상소는 일반상소가 되었고 나라의 미래를 묻는 상소는 머나먼 나라를 보고 오겠다는 상소가 되었다. 졸지에 263명의 유생들을 떠안게 된 효명세자는 피로하다며 대답을 회피하였지만 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저 사람들 관리하는 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궐에서 나오니 여전히 상소가 이어졌다. 효명세자가 표트르 1세의 사절단을 예로 들었는데 당시의 인원은 250명이니 지금과 비슷하였다. 다만 인원수가 흡사할 뿐이지 큰 차이가 있었다.
러시아 사절단은 대다수가 젊은 귀족이니 관리도 편하고 표트르도 영국의 문물을 수입하겠다는 확고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한 몸으로 움직인 셈이다.
반면 지금 조선에서 보낸 사절단은 유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두가 섞여있다. 집으로 돌아가 고민하고 있으니 막 퇴근한 일준이가 와서 물어보았다.
“지금 서양에 가겠다는 사람이 이백 명이 넘는데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해? 세자저하께서 함께 가시지 않으면 너도 곤란할 것 같은데.”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영국 정부에게 넘어가서 젊은 친영(英)파라도 양성되면 두고두고 골치가 아프다. 내가 조율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벗어난 숫자니 이걸 어떻게 할까.”
효명세자라는 중심이 없으면 영국의 특기인 현지세력 포섭을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여러 정황증거를 보여주어 안전장치를 마련했지만 사람에게는 언제나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럼 이대로 주저앉아서 가만히 있을 거야? 뭐라도 할 생각 아니었어?”
"해 볼 때 까지는 해 봐야지. 주저앉아서 죽을 순 없지."
“나도 해 볼 때 까지는 해보려 한다. 방금 전 생각난 건데 사절단을 둘로 나눠서 프랑스에 방문하게 하면 어떨까 싶어. 내가 프랑스 사절단에 참가하고 네가 세자저하와 함께 영국 사절단에 참가하는 거지.”
“이렇게 많은 인원을 또 둘로 나눈다고? 거기다가 프랑스에 네가 간다고?”
프랑스에 사절단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프랑스라는 국가와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은 아주 단순하여 외교적으로 서신만 보내도 처리할 수 있다.
영국은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이며 이득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반면 프랑스는 오로지 자신들의 위신, 속된 말로 ‘뽕’을 채워주면 뭐든 좋다고 생각하는 국가이다.
위신이 바닥에 떨어졌을 경우 벨기에보다는 못 해도 일본제국 수준으로 미친 짓거리를 자행하니 위신만 채워주면 되리라. 내 표정을 확인하던 일준이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나 혼자서 제안한 건 아니야. 예조판서 이지연이 말하길 서양에 가게 되었으니 자신이 서학(西學)의 수괴와 면담을 하여 이 나라에서 서학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 했지.”
“그거 참 볼만한 대결이겠네. 파리 외방전교회의 주교들과 조선의 유생들의 입담대결이라니. 아무 결과를 얻어낼 수 없고 힘만 쓰다가 돌아오겠네.”
“그러니 내가 함께 가야지. 젊은 사람들과 프랑스 대학교에 유학을 가서 여러 성과를 거두면 새로운 문물도 얻어내고 미터법도 쉽게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일준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말하지만 프랑스는 심각한 서열문화가 존재한다. 현대에도 그 흔적이 각종 똥군기와 병영 부조리 그리고 신고식으로 남아있다.
대학교 신고식은 속옷만 입고 진흙과 밀가루로 폭격을 당한다. 포병이면 포신에 와인을 따라 마시다 중금속 중독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고 공군에 들어가면 전투기 기총(機銃)사격용 표적지에 묶여 훈련이 끝날 때 까지 방치된다.
사람이 죽는 수준이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이 전부이며 아예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닌다. 이 시대에는 더욱 심할 것이 분명하니 일준이를 말리려 하였다.
“미터법을 도입하려는 네 의지는 알겠는데 프랑스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야. 네가 입학하자마자 신고식부터 심하게 할 텐데 그거 견뎌낼 성격이 아니잖아.”
“신고식? 서양에는 결투 풍습이 있다던데 그냥 주먹으로 해결하면 안 될까? 주먹으로 다 두들겨 패 버리면 역 신고식이네.”
“이길 수는 있어? 네가 프로선수라면 모르는데 아마추어잖아.”
“휴 린지를 따라온 선원들이 권투 하는 것 보니 기본도 모르는 개싸움이더라. 전문적인 선수가 아니면 열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체력 배분 때문에 내가 쓰러지겠지.”
녀석은 자세를 취하고 좌우로 권투 스텝을 밟으며 주먹으로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냈다. 생각해 보니 무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달했고 복싱도 마찬가지이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 현대의 복싱 규칙을 강요하면 저 말이 실현되리라. 이것은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두면 충분하니 일준이가 프랑스에서 할 행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부터 너는 명예 프랑스인이 될 생각으로 유학을 다녀와야 할 거야. 농담이 아니고 네가 권투로 육체를 부각시키고 과학으로 지식을 부각시키면 언론에서도 주목하겠지.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은 네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
명예 프랑스인 일준 조, 영국에서 멋대로 지은 이름인 닐슨 조가 될지도 모르지. 일준이에게 프랑스에서 겪을 수 있는 일과 대처법을 알려주는 동안 사태가 점차 진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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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의 상소로 인한 고함소리를 들으며 정무를 진행하는 효명세자의 붓이 파들파들 떨리며 그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세자저하께 아뢰옵나이다. 영길리의 상인 휴 린지가 입궐하였사옵니다.”
“들라 하시오.”
사소한 변수로 인해 틀어진 계획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김조순과 계획을 세울 때에는 50명의 유생을 선별하고 30명의 관료와 함께 파견할 계획이었다.
이들의 대표로 남연군(南延君)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최소 263명, 관료를 포함하면 거의 300명에 달하는 사람을 보내야 할 지경이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분석이 먼저이기에 휴 린지를 궐로 불러들였다. 그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효명세자에게 인사를 올리고 질문을 받았다.
“입궐하면서 이미 보았듯이 궐 앞에 집결한 유생들은 영길리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소. 이 나라에서 삼백 명에 달하는 사절단이 출발할 것 같은데 가능한 일이오?”
“소식을 미리 전하기 위해 몇 달의 말미를 주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비용이 문제이니 한 명당 일 년에 은자 오십 냥 정도는 여행비용과 체류비로 제공하셔야 합니다.”
“비용은 충분하니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가 배우러 가는 처지인데 아예 계산이 편하도록 홍삼을 판매한 관세를 비용으로 충당할 것이며 남는 돈은 문물을 사들이는데 쓸 것이오.”
효명세자는 이미 박현상이 알려준 소식과 조일준이 만들어내는 문물을 보며 자신도 한 번 서역에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생각이 있을 뿐 이 나라와 아버지 순조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원손(元孫)도 올해 다섯 살이 되었으니 잘못하면 자리를 비운 사이 후사가 끊길지도 몰랐다.
“일단 돌아가시오. 혹여나 다른 이문을 원하는 것이라도 있소?”
“다름이 아니고 조선의 왕실에서 비전(祕傳)으로 전해지는 약인 열수환의 제조법입니다. 궁중 의사들이 만들어낸다 하였는데 이 제조법을 사들이고 싶군요.”
“제조법에 대해서는 내의원 부제조인 정약용과 여기에 쓰이는 재료를 만드는 법을 알아낸 조일준과 논하시오.”
휴 린지가 물러나고 깊은 한숨을 내쉰 효명세자는 업무를 다시 보려다가 붓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두 마음이 서로 팽팽하게 싸움을 벌이니 점점 고민이 쌓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순조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생각하였다. 순조가 머무르는 선정전(宣政殿)으로 향하자 의외의 인물이 안에서 순조와 논의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 이지연 주상전하께 간언을 올리옵나이다. 모든 일에는 근본을 파악해야 하는 법. 신이 유생들과 함께 서역으로 나아가 서학의 수괴(首魁)와 논의하여 더 이상 서학이 퍼지지 않게 만들 것이옵니다.”
효명세자가 문제를 덮어 두려고 이지연의 면담을 거절하였더니 바로 순조에게 달려들어 고변하고 있었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두 세도가를 제외한 관료들도 점점 관심이 커지고 있으니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관료들이 물러나고 효명세자가 들어가자 순조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상소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조만영이 저들을 꾸짖어 마음을 움직였으니 이는 백성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에서 학문을 배운 자들의 뜻이 아니더냐. 이를 억누를 수는 없구나.”
“소자가 정녕 영길리에 나아가게 생겼으니 오로지 고민이 앞설 뿐이옵니다.”
“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나라의 정사(政事)가 문제로구나. 내가 있음을 잊었느냐? 네가 대리청정을 수행하기 전에는 아무런 마음도 없이 붓을 놀렸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렇게 의기에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손을 놓고 있겠느냐?”
어좌(御座)에서 내려온 순조는 효명세자를 바라보았고 두 부자(父子)의 눈이 마주쳤다. 눈을 질끈 감고 시선을 돌린 효명세자를 본 순조는 손을 맞잡으며 말하였다.
“내가 열 살이 넘어서 선고(先考 - 선친)를 여의었는데 태산이 나를 누르는 것 같더구나. 외롭게 위태로운 나라를 보전하며 수많은 변란을 경험하고도 이 자리에 있음은 하늘과 조종(祖宗 - 시조)께서 말없이 도와준 덕분이다.”
본래 효명세자를 떠나보낸 순조가 남겼어야 할 제문(祭文)은 효명세자의 사절단 참가를 독촉하는 말이 되었다. 순조는 애틋한 눈으로 굳은살이 박인 손을 매만지며 말하였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그저 붓을 놀릴 무렵 네가 태어났고 마음에 즐거움이 생겨났다. 나라의 근본을 되새기며 마침내 네가 관례를 치르고 장가를 들어 자식을 두게 되었구나. 마침내 내가 하던 정치를 섭행(攝行)하게 되었지.”
“소자는 그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다 이 지경에 몰리게 되었사옵니다.”
“아니다. 세도가는 물론이요 권신들이 네 앞에 뜻을 합치고 서역에서 두 청년이 오며 새로운 물산을 만들어 나라를 이롭게 하였다. 여기에 각지의 의기가 넘치는 유생들이 함께 하는데 무엇이 필요하더냐. 그러니 어명을 내리겠다.”
숨을 고른 순조는 다시 어좌로 돌아갔고 효명세자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 부복(俯伏)하였다. 마침내 효명세자가 원하고 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세자에게 명을 내린다. 의기가 넘치는 유생 가운데 후사(後嗣)를 둘 이상 두고 연령은 스물이 넘으며 예순이 안 되는 사람들을 엄선하며 관료 육십 명과 함께 서역을 보고 오너라. 필히 일 년을 넘게 머물며 서역의 모든 것을 알아보도록 하여라.”
“소자 아바마마의 명을 필히 수행할 것이옵니다.”
“상세한 일은 서역의 정세에 능한 박현상과 조일준 두 젊은이에게 논하도록 하여라. 정약용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제 일흔이 다 된 사람이니 불가할 것 같구나.”
오히려 효명세자가 원하던 일이었다. 명의로 손꼽히는 정약용이라면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의 급사(急死)를 막아낼 수 있으리라.
마음을 정한 효명세자는 깊게 절을 올리고 궐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 어명을 전하였다.
“주상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셨소. 인원을 다시 선별할 것이니 모두 응하시오!”
효명세자의 선별로 유생 213명과 관료 60명이 최종 선별되었다. 여기에 호위를 위한 군관 30명이 참가하자 총원 303명의 대규모 사절단이 만들어졌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움직이니 청나라 광주와 인도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이들을 순차적으로 서역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사절단의 부사(副使)격인 예조판서 이지연은 조일준이 포함된 프랑스 사절단으로 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