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34편
(3장 - 닐슨 조 (2))
여덟 번째 도전자가 조일준의 주먹에 옆구리를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이미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조일준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상대의 모습을 살폈다.
조일준의 거대한 덩치는 무지막지한 주먹을 휘두를 수 있게 하였지만 그만큼 체력이 부족하였다. 세 번째 도전자 이후의 상대들은 이를 알고 조일준의 체력을 고갈시키려 하였다.
“다음 사람 준비해! 빨리 올라와!”
“이 무식한 놈의 새끼들. 너무 무식해서 이 꼴이 날 줄은 몰랐는데.”
조일준도 사태를 수습할 수 없었다. 이는 박현상의 탓이기도 하였으니 위신과 체면에 목숨을 건 이 시대의 프랑스인이 얼마나 무식해지는지 감을 잡지 못한 것이었다.
대여섯 명 정도를 쓰러트리면 인정받을 것이란 예상과 현실은 달랐다. 도전자가 스무 명에 달하였고 사실상 그랑제콜에서 주먹 좀 쓴다는 사람들 모두가 달려들었다.
이제 위빙(weaving)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체력이 고갈된 조일준이 억지로 근접하여 시간을 끌자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동양 놈이 시간을 끈다! 그 주먹은 어디로 갔냐!”
“댁들 제정신이오? 벌써 아홉 명을 상대로 하는데 주먹을 휘두를 수 있겠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프랑스인은 조일준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려눕힐 기세로 결투를 진행하였다. 반대로 유생들은 활을 가지고 그랑제콜의 지붕 위로 올라가려 시도하였다.
졸지에 편입생과 기존 학생 간의 내전(內戰)이 벌어지게 생긴 상황이었지만 이를 누구도 말릴 방법이 없었다. 마침내 사태를 수습하려 기병들이 뒤뜰에 난입하고 허공에 총이 발포되기 시작했다.
“결투를 중단하도록! 스무 명이 한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결투가 아니다! 생도들은 명예로운 프랑스인인가 아니면 명예도 모르는 야만인인가!”
“신성한 결투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이 결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생도들이 기병들을 밀어내고 결투를 진행하려 하였으니 사태가 커지려 하였다. 그러나 대열이 열리고 안에서 말쑥한 차림새의 신사가 지팡이를 짚고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경련하며 다가왔다.
프랑스의 저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인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Joseph Louis Gay-Lussac)이었다. 그가 직접 방문할 줄 몰랐던 생도들이 길을 열었고 게이뤼삭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호통을 쳤다.
“루이필리프 전하께서 나에게 편입생을 가르치라 시켰는데 자네들을 가르쳐야 할 것 같군! 이런 결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결투가 아니라 야만인들이 즐기는 사형방식이 아닌가!”
“그렇다 하여도 상대가 내빼지 않았으니 저희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꼴이라······.”
가쁜 숨을 몰아쉬는 조일준이 마우스피스를 낀 채 변명을 늘어놓는 도전자의 턱을 후려쳐 잠재워 버렸다. 다시 욕지거리가 내뱉어지자 게이뤼삭은 한숨을 내쉬고 말하였다.
“내 닐슨 조가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고 있지. 이번 입학시험에서 수학 문제에 부정이 있었네. 세 문제가 미적분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이 때문에 탈락자가 생겨났지.”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조일준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 답이었다. 졸지에 신고식을 되받아치려다가 그랑제콜에 대한 항의를 전달하는 꼴이 된 조일준이 눈을 굴려댔다.
게이뤼삭은 아예 링 안으로 들어가 조일준의 한 팔을 높게 들었다. 그러더니 생도들에게 만천하에 고변하였다.
“이 결투는 닐슨 조와 그랑제콜의 입학위원간의 결투일세. 나는 전하의 명을 받아 교수로 역임되었으니 편입 시험이 잘못되었으며 우리가 패배하였음을 인정하겠네.”
명성을 떨치는 과학자인 게이뤼삭을 만나게 된 조일준이 헐떡거리는 몸으로 인사를 올렸고 게이뤼삭이 이를 받아들였다. 조만간 다음 시험이 있을 것이라 공지한 게이뤼삭은 조일준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닐슨 조 자네가 고생이 많았군. 좋은 구경을 하였으니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제 명의로 실험실 하나를 배정받고 싶습니다. 조선에서 연구하던 화합물이 제법 많이 있으니 이를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싶군요.”
“그 정도야 내어줄 수 있지. 그러면 그랑제콜 생도들 모두가 볼 수 있게 승리를 선언하게. 이번 싸움은 우리의 패배이니 당연한 일이지.”
잠시 고민을 하던 조일준은 숨을 고르고 보디빌딩의 전형적인 포즈인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를 취하며 포효했다. 그의 꿈틀거리는 근육을 확인한 생도들은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이후 네 명의 편입생이 추가 시험에 통과하고 나머지는 두 번째 낙방의 쓴 맛을 보아야 하였다. 이 사건이 신문 기사에 실리게 되었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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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절단이 그랑제콜에 입학하고 보름이 지나 5월 31일이 되었다. 별 문제는 없었지만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라는 젊은 수학자가 그랑제콜에 항의 전문을 보냈다.
[자격이 없는 조선 사절단이 그랑제콜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한 것은 말이 안 된다. 편입 시험에 부정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다시 검증을 요청한다.]
검증 과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전에도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여준 갈루아는 조선 사절단이 머무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로 불려와 편입 고사를 보았다.
수학은 만점이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낙제였다. 심지어 같이 시험을 본 조일준의 총점과 비교하여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후 조일준의 공식을 트집 잡아 권투로 결투를 벌였지만 결과는 더더욱 가혹했다.
“이 친구 패는 맛도 없는데 계속 일어서네. 더 하실 거요?”
“더······. 해야지! 내가 너보다 못 할 것 같아!”
“본래 주입식 교육과 물리적 교육이 성격을 교정하는 방법입니다. 좀 더 배우십시오.”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된 갈루아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사소한 해프닝이 끝났다. 이후 갈루아의 친구인 혁명가들이 조일준에게 결투를 요청했지만 모두 주먹에 떡이 되어 입원하였다.
오늘도 결투 신청을 받고 한 놈을 시원하게 병원으로 입원시킨 조일준이 강의실에 입장하였다. 그러자 모든 생도들이 조일준과 함께 방문한 유생들을 피해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랑제콜이 조일준을 따돌리는 것인지 조일준이 그랑제콜을 따돌리는 것인지 모를 상황에 강의에 나선 게이뤼삭이 피식 웃으며 강의를 진행하였다.
“기체 반응의 법칙은 기체가 언제나 일정한 부피로 반응하는 법칙입니다······.”
난이도가 제법 높은 그랑제콜 강의인데다 편입생인 조선 출신 유생들은 어떻게든 강의를 따라가려 애썼다. 반면 조일준은 눈을 빛내며 강의를 따라가고 있었다.
“영국의 로버트 보일과 자크 샤를이 이 규칙과 비슷한 기체의 부피, 압력 그리고 온도의 법칙을 만들어 내었지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이 외의 규칙이 있을 것 같습니까?”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가 눈만 굴리고 있었지만 조일준은 벌써 다른 나라의 논문을 탐독할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아마 배정받은 연구실에서 수없이 논문을 읽으리라.
강의를 마친 게이뤼삭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편입생이 아니고 몇 년 동안 자신에게 강의를 배운 사람도 조일준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다. 물론 그 열정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닐슨 조가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쯤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 텐데.”
동양의 기술발달이 뒤쳐진 것은 자명한 현실이었다. 재주가 있는 사람도 기반이 부족하면 자신의 재능을 개화하지 못하며 조일준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리라.
게이뤼삭은 조일준이 유학을 마쳐도 평범한 그랑제콜 졸업생 수준의 지식을 갖추리라 생각했다. 그가 염려하는 마음을 담고 조일준의 연구실을 지나칠 무렵 폭음이 들려왔다.
- 투쾅!
실험실을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났지만 게이뤼삭의 관찰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유리창에 금이 갈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음에도 흑색화약 특유의 하얀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뇌홍이 범인이며 연소된 이후 발생하는 수은 증기를 들여 마신 자신은 물론이고 방 안의 조일준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게이뤼삭은 복도의 창문을 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숨을 쉬지 말고 빨리 탈출하게! 뇌홍이 폭발하며 발생하는 수은 증기는 유독한 물질이라네!”
지팡이도 바닥에 떨군 채 정신없이 창문을 열어젖히던 게이뤼삭의 몸이 흔들거렸고 그 몸을 조일준의 든든한 손이 잡아챘다. 조일준은 당황한 눈초리로 하얀 가운을 펄럭거리며 말하였다.
“뇌홍이 폭발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들고 있던 화합물이 담겨 있던 시험관 스탠드가 풀려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바닥에 충돌한 직후 폭발해 버리더군요.”
“뇌홍 말고 이렇게 폭발하는 화합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합성에 성공해서 교수님에게 확인을 부탁드리려던 차였습니다. 마침 잘 된 일이니 제 연구논문을 평가해 주시겠습니까?”
실험실 안으로 들어간 게이뤼삭은 피해 규모를 점검하였다. 실험실이 입은 피해라고는 금 간 유리창을 제외하고는 책상 다리에 금이 가고 바닥 장마루가 무너진 정도에서 끝났다.
시험관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은 이 시대에 사고조차도 아니고 늘 벌어지는 일이다. 하필 극도로 민감한 새로운 화합물이 범인이었으니 조일준을 탓할 이유도 없었다.
게이뤼삭은 흥분한 눈빛을 애써 감추며 불산 누출 후유증으로 엉망이 된 몸을 움직였다. 조일준은 그에게 자신이 작성하던 논문 초안을 제출하였다.
“육백여년 전 중국의 연금술사들이 불로장생의 비약을 만든다고 초석으로 만든 액체와 황으로 만든 액체를 섞어서 가열하였다 폭발을 일으켰다 하였습니다. 이를 연구해 보았지요.”
연구서를 펼친 게이뤼삭은 동양의 연금술이라는 말에 실망한 눈빛이었지만 순식간에 논문 초안에 빠져들었다. 완벽에 가까운 실험 계획을 시작으로 체계적인 안전 조치까지 담겨있었다.
제대로 화학을 배운 사람이라 하여도 실험 과정 자기만 알아보면 충분할 정도로 대충 기록하는 것이 이 시대의 상식이었다.
반면 조일준의 실험 기록은 알아보기 쉽도록 여러 색의 안료로 강조된 주석이 달려 있었다. 이런 양식을 처음 보는 게이뤼삭도 더욱 이해하기 쉬워진 기록을 바로 이해하고 질문을 하였다.
“이런 방법은 어디서 배웠는가? 연구서를 완성하기 전의 실험기록은 자기가 마음대로 적어두고 논문을 완성할 때 정리해서 옮기는 것이 기본인데.”
“저는 그런 방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실험기록 자체를 논문 초안에 사용해도 될 정도로 열심히 작성했습니다. 제가 마음대로 기입한 것은 라벨이 전부이지요.”
고개를 끄덕인 게이뤼삭이 논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미 조선에서 몇 차례에 걸쳐 같은 실험을 진행한 내용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기록되어 있었다.
“조선에서는 최종 교반(攪拌 - 섞음) 작업을 실시하고 삼 분 이내에 폭발하였다고? 이유를 알고 있나?”
“제 추측이지만 조선에서 제가 만든 물질에 있던 불순물로 인한 사고 같습니다. 불안정하게 일렁거리는 층이 생기고 발열을 억제할 수 없더군요.”
“본래 과학은 실패를 거듭하며 발전하는 법이니 당연한 일이지. 다만 기록이 빠진 것 같다네. 여기 와서 진행한 삼십이 번 이후의 실험기록은 어떻게 되었나?”
“방금 전 진행한 실험이 서른세 번째 합성 실험입니다만.”
게이뤼삭이 진지한 표정으로 실험기록을 살펴보았다. 과학은 정답을 보여주지 않으니 연필에 들어가는 흑연 심 같은 사소한 물질도 수백 회의 실험을 거쳐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시대였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수십 회의 실험으로 가까스로 갈피를 잡고 이론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이뤼삭은 우연히 일어난 일을 재현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다음 실험을 독촉하였다.
“즉시 서른세 번째 실험을 실시하여 화합물을 재현해보게. 시료는 그대로 사용해도 좋지만 폭발 위험이 있으니 뒤뜰에서 실험을 진행하도록.”
우연에 의한 발견이라면 조일준은 그저 운이 좋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반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실험으로 서른세 번 만에 새로운 화합물을 완성했다면 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어느 새 뒤뜰에 나선 게이뤼삭을 따라 모인 생도들은 조일준의 등을 보며 야유를 보냈다. 아마 폭발 사고를 일으켜 대놓고 굴욕을 당하는 모습으로 여겨졌으리라.
조일준은 이 야유를 귓전으로 넘기고 손을 움직였다. 소금을 섞은 얼음물로 발열반응을 억제하고 자신의 손을 믿으며 니트로글리세린을 합성하였고 두 번째 완성품이 탄생하였다.
“게이뤼삭 교수님! 합성이 끝났습니다. 지금 기폭실험을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나 완성하였는가? 비중과 무게도 측정해야지.”
“비중은 물을 기준으로 약 1.6배이며 총량은 10밀리리터입니다. 다들 비키시지요!”
쏟아지던 야유는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 사상 최초의 무연화약이자 본래 15년 뒤에 발명되었어야 할 니트로글리세린의 재현에 성공했고 생도들은 연기가 거의 없는 폭발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조일준을 바라보았다.
“완성된 화합물이 충격에 의해 폭발하였으니 재현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화합물의 안정화와 폭발 방지 대책이로군요. 여러 방법을 모색해 보았는데 몇 개나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게이뤼삭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일준과 폭발흔적을 바라보았다. 우연으로 인한 일시적 발견이 아닌 재현이 가능한 새로운 화합물의 개발이 되었다.
새로운 액체 폭약의 폭발력은 같은 무게의 흑색화약과 비교하면 세 배에 달하며 연기도 별로 생겨나지 않는다.
조일준의 말 대로 안정화와 폭발 방지 대책만 만들어낸다면. 그리고 질산과 황산의 양산 과정을 만들어 내면 기존의 체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위대한 발명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조일준은 수십 번의 실험으로 평범한 사람을 앞지르는 천재에 속했다. 마음을 정리한 게이뤼삭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가가 조일준의 손을 잡았다.
“동양의 연금술사의 기록에서 이런 위대한 발명을 이끌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 화합물의 이름은 자네가 결정하도록 하고 혹시나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저와 함께 연구를 진행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화합물을 널리 쓰이게 하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알아서 해 주겠네. 프랑스의 모든 과학자들에게 이 새로운 화합물에 대한 소식을 알리도록 하지. 일단 특허를 구매하고 싶은데.”
“만든 사람은 저이지만 이걸 완성한 장소는 프랑스가 아닙니까? 양국이 공동으로 소유한 특허로 하되 특허로 거둬들인 돈은 조선에 대한 지원금으로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조일준이 태연하게 말하자 게이뤼삭은 잡은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시하였다. 그는 조일준의 눈빛을 보며 어떤 사람인지 유추하기 시작하였다.
스승도 두지 않고 독학(獨學)을 하였음에도 미적분을 풀고 순식간에 그랑제콜의 강의에 적응하는 지능. 흐트러짐이 없이 실험을 진행하는 열정과 집중력까지 있었다.
프랑스가 그토록 원하던 천재가 이 자리에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결과로서 입증하였으니 이제 약간의 검증과 추가 연구를 통해 재능을 개화시키면 끝날 일이다.
얼마 전 그랑제콜의 문을 두드렸다 박대당한 갈루아와 달리 인성과 품격을 갖추었으며 욕심마저 없는 사람이기에 게이뤼삭은 조일준에게 정중하게 권유하였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겠네. 조금 더 언어를 배우면 그랑제콜의 교수는 물론이고 프랑스 과학원의 정회원으로 임명해 주겠네. 그러하면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걸세.”
“제가 교수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면 연구생도 마음대로 뽑을 수 있겠군요.”
“원하는 사람 모두를 연구생으로 뽑아도 된다네. 이를테면 지금도 내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마티아스를 선임 연구생으로 뽑으면 어떻겠나?”
조일준의 태도를 보아하니 수많은 특허를 프랑스 정부와 조선 정부의 공동소유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 인하여 상승하는 위신과 막대한 이득은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소실된 과학의 계보가 조일준이라는 천재로 인해 부활할지도 몰랐다. 프랑스로 망명을 오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아도 명예 프랑스인 대접을 하면 되리라. 조일준은 아예 게이뤼삭을 껴안으며 말했다.
“부족한 몸이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더더욱 많은 성과를 거두겠습니다.”
“자네가 부족하다 하면 걸출한 과학자는 누구인가? 아이작 뉴턴이라도 되는가?”
덕담을 나눈 게이뤼삭은 피로를 느끼며 부축을 받고 자신의 교수실로 돌아갔다. 잠시 뒤 조일준이 실험기자재를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생도들은 조일준의 앞길을 막지 않고 길을 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조일준은 연구실로 돌아와 다음 계획을 확인하였다. 면화약의 개발과 가황고무의 개발 그리고 아스피린의 합성을 비롯한 수많은 물질들을 만들 예정이었다.
“내가 애써서 조선에서 개발해 보았자 특허권 강탈이 기본인 시대니까 차라리 프랑스 소유의 특허로 만들어서 지원이나 받아야지. 그나저나 현상이 말 대로 흘러가서 소름이 돋는데.”
다음 날, 그랑제콜의 연구실에서 새로운 화합물을 개발하였고 여기에 조선의 유학생 닐슨 조가 끼어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는 동양의 과학자 닐슨 조의 명성을 알리는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