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36편
(3장 - 선물)
미국에서 고생물학자로 명성을 떨치는 사무엘 조지 모튼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조일준의 신문기사를 들었다. 그는 아예 일간지에 기사를 내서 사람들을 초빙하였다.
조일준은 처음 실험을 진행할 때 들었던 교수의 말을 되새기고 조선 사절단의 신체 기록을 측정하며 언쟁을 준비했다. 반면 조일준의 스승을 자처하는 게이뤼삭은 이를 만류하였다.
“자네가 라마르크를 옹호하던 라부아지에의 죽음을 애도하건 뭐라 말 하지 않겠네. 나이가 올해 24세에 불과하고 고고학 지식도 없으니 언쟁에서 밀릴 수 있지 않겠나.”
“꼬리를 말아버린 개처럼 구석에 숨을 수는 없습니다. 언쟁을 하여 패배하더라도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과학자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풀을 먹여 날카롭게 선 옷자락을 매만지던 조일준은 초조한 표정으로 염려하는 게이뤼삭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잽을 몇 발 날리고 말하였다.
“사무엘 조지 모튼은 아마 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바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질 겁니다. 기자들은 물론이요 승패를 가늠할 공증인(公證人)도 포함되어 있다 하였는데 누구입니까?”
“조르주 퀴비에의 제자인 프리드리히 티에데만(Friedrich Tiedemann)일세.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생물학자이자 해부학의 달인이지. 그래도 큰 기대는 하지 말게.”
게이뤼삭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다. 심지어 프랑스의 장관들마저도 이번 언쟁을 주목하고 있었으니 언쟁에서 조일준이 비참한 패배를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1832년 7월 2일, 기자와 공증인을 포함한 언쟁이 막을 올렸다. 수염을 모조리 깎은 말쑥한 차림새의 사무엘 조지 모튼이 포문을 열었다.
“용불용설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생물의 지속적인 변화와 관련된 논쟁으로 격을 올리도록 하지요. 저는 이런 변화를 많이 분석한 사람입니다.”
이 시대의 생물의 변화에 대해서는 창조설이 대세였다. 신이 한 개의 종을 창조하여 분화시켰는가 아니면 여러 종을 창조하여 나누었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를 현대에는 단일 창조설과 다변 창조설이라 부르고 있었다. 사무엘 모튼은 조일준이 옹호한 용불용설을 자신이 주장하는 다변 창조설로 무너트릴 생각을 하였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제가 고고학에 대한 지식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남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익혀두기는 하였지요.”
“부끄러움이 없으실 수도 있겠군요. 그럼 논쟁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무엘 모튼은 자신의 고고학 이론을 설파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 정상적인 과학자였고 각 지역의 지층을 조사하고 수많은 화석 표본을 수집한 사람이니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었다.
“제가 플로리다, 뉴저지 그리고 델라웨어의 수많은 지층에서 화석을 구해낸 결과 새로운 종을 여럿 발견하였습니다. 다만 용불용설처럼 사소한 변화를 나타낸 경우는 없더군요.”
여기까지는 예상한 결과였다. 자신의 전공이 아닌 고생물학이라 지식이 부족한 조일준이 눈을 지그시 감자 사무엘 모튼은 자신의 승리를 자처하였다.
“용불용설은 아예 잘못된 이론입니다. 혹여나 용불용설이 적용되는 경우라도 보셨습니까?”
“추측에 불과하지만 조선에 당도하자마자 느끼는 것이 체취가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호랑이가 들끓는 환경의 압력으로 인하여 체취가 강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 같습니다.”
“조선 사람은 체취가 적다. 이걸 주님께서 서양인과 다른 모습으로 창조한 동양인 가운데 특이하게 분화된 체질이라 생각하시는 것이로군요.”
드디어 공격의 기회가 주어졌다. 공증인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던 프리드리히 티에데만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조일준은 상대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말하였다.
“저도 사무엘 모튼경이 집필한 몇몇 저서를 읽어 보았지만 그러한 내용은 없더군요. 혹여나 각 인종이 다르게 창조되어 분화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직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라 책으로 엮지는 못 했지만 저의 분석에 의하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인간과 열등한 동물에 대한 두개골 모음집’이면 적당할 것 같군요.”
“내용이 궁금합니다. 인간의 뼈를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벌써부터 새 저서를 집필하고 계시는군요.”
조일준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라 생각한 사무엘 모튼은 아직 완성하지 않은 서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 각 인종마다 최소 일백 개의 두개골을 수집하여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뇌의 용적을 기반으로 우열을 나누었는데 명백하게 백인이 흑인보다 뇌의 용적이 크더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그럼 이 이론의 기준은 뇌의 용적이 클수록 발달하였다는 말씀이십니까?”
뇌의 크기가 인류의 우열을 가늠한다는 무식한 이론을 설파하는 사무엘 모튼의 말이 이어졌다. 프리드리히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증인임에도 짜증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인류는 주님께서 여러 종류를 창조하였습니다. 각각의 뇌 크기에 격차는 있지만 평균을 따지면 백인은 남을 지배해야 하는 민족이며 흑인은 지배당해야 하는 민족이지요.”
“한 가지 빠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동양인, 특히 조선인이 진정한 왕족입니다. 제가 조사한 사절단의 두개골 추정 자료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사무엘 모튼은 웃음을 지으며 자료를 살펴보았으나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그가 조사한 백인의 뇌 용적은 1,426㏄이었다. 반면 조선 사절단의 평균 뇌 용적은 1,480㏄로 명백히 컸다.
배에 주먹을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사무엘 모튼은 어떻게든 피할 구석을 찾았다.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조일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두개골의 크기는 체격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니 평균을 어지럽히는 체격이 큰 사람 일곱과 체격이 작은 사람 일곱을 제외하였지요.”
“인원이 제한되었으니 올바른 평균이 아니지요. 다른 자료를 수집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조선의 두개골 표본은 제가 개입할 지도 모르니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일본은 화장(火葬)으로 장례를 치르니 이 뼈의 본을 떠서 동양인의 표준으로 삼으면 되겠군요.”
졸지에 수만 개에 달하는 대두(大頭)들의 두개골을 수집할 처지에 놓인 사무엘 모튼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일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피하려고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새로 수집할 표본이 늘어난 것 같군요. 두개골의 본을 뜨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해부학을 조금은 배웠는데 두개골로는 성별을 판단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여성의 두개골은 크기가 작으니 혹시나 작은 두개골만 받으실까 염려가 되는군요.”
“그야 기록을 하나하나 남겨둘 것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경에 대고 맹세하실 수 있습니까?”
태연하게 성경에 손을 얹고 신에게 맹세하는 사무엘 모튼을 보며 조일준은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 넘겼다. 과학 실험을 실시하며 교수가 했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과학은 순수한 학문이다. 이념이나 개인의 편견 그리고 정치적 논리로 과학에 접근하면 비참한 결말을 야기한다. 이는 사무엘 조지 모튼이 인류학에 끼친 악영향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무엘 조지 모튼의 편견으로 시작된 자료는 우생학자들의 근본이 된다. 이 영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71년이 지난 2011년이었다.
그가 성경에 대고 맹세하였으니 인생을 걸고 서적을 집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리라. 조일준은 해부학자인 프리드리히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료로 사용할 두개골의 혼입(混入)을 판별할 방법도 있어야지요. 두개골은 물론이고 척추와 골반 그리고 신장을 추정할 수 있는 대퇴골도 있어야 합니다.”
다시 묵직한 충격이 사무엘 모튼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는 두개골을 수집하여 각 인종의 뇌 크기의 차이를 증명하려 했지만 아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니 자료를 조작하였다. 그가 백인의 평균이라 주장한 두개골의 대다수는 머리가 큰 남성의 것이며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여성을 위주로 선별하여 차이를 극대화 하였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이 꼭꼭 감추고 있던 사실이 조일준에 의하여 드러났다. 이를 웃어넘기려 하였지만 공증인인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저 또한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는 두개골만 수집했다 하더라도 이후 수집할 자료들은 온전한 두개골, 척추, 골반 그리고 대퇴골까지 필요하지요.”
언쟁이 아닌 공개처형이 시작되었다. 성경에 대고 맹세한 이상 회피할 방법도 없으며 자료의 신빙성이 없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 사기꾼의 낙인이 찍히는 길만 남아 있었다.
주장을 받아들이면 원하는 결과는커녕 동양인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서적이 될 것이다. 설령 뼈에 손을 대려 해도 공증인은 유명한 해부학자이니 들킬 것이다.
모순에 빠진 사무엘 모튼에게 조일준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아예 사무엘 모튼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말이 결정타처럼 날아왔다.
“혹시나 불순한 사람들이 자료를 잘못 제공했다 하더라도 이를 판단하는 것은 사무엘 모튼경의 책임입니다. 저는 변수가 있는 결과는 신뢰하지 못 하여 완성된 화합물을 폐기하지요.”
“동의합니다. 과학적 조사는 편견도 사심도 들어있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더 이상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기자들은 어느 새 태도가 변하여 닐슨 조의 승리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기사 제목을 정하였고 공증인조차도 자신을 공격하려 하였다.
마침내 사무엘 모튼이 택한 길은 주먹을 두들겨 맞고 혼절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일준에게 달려들며 결투를 신청하였다.
“그냥 결투를 벌이자 이 동양 촌뜨기 새끼야!”
상대가 갑자기 달려들자 조일준은 반사적으로 발로 밀어냈고 사무엘 모튼은 비명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여기서 기절한 척을 하여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반면 조일준은 그의 멱살을 잡고 반대쪽 주먹을 날렸다. 소스라치게 놀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주먹을 피한 그를 보고 조일준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하였다.
“인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분화하였는지 아예 분화하지 않고 따로 형성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사무엘 모튼 경의 주장은 틀린 것 같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공증인인 저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 자격을 걸고 주장이 틀리다는 말에 동의하겠습니다.”
조일준의 자랑거리인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았지만 구타로 인한 고통보다 수백 배는 끔찍한 마음의 상처가 사무엘 모튼에게 남았다.
다음 날 신문 헤드라인은 [닐슨 조, 미국 교수를 상대로 언쟁에 승리하다]라는 기사가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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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이 조일준에 대해 젊은 천재라 하며 열광하였지만 새 소식을 듣고 더더욱 열광하기 시작하였다. 신문에서 조일준의 유창한 언변에 대해 설파하자 새로운 사람들이 모였다.
“닐슨 조와 언쟁을 벌이고 싶습니다. 다른 교수를 상대로 실험의 허점을 파악하여 즉시 대응하는 모습을 보니 제 수학 실력을 다시금 논하고 싶군요.”
“자네는 어서 비키도록 하게. 나 빅토르 위고가 얼마 전 발매한 파리의 노트르담을 논하고 싶으니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겠나.”
그랑제콜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밀려난 갈루아가 분통을 터트렸지만 왕실에서 보낸 마차가 도착하였다. 비대한 체격의 조아키노 로시니는 마차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닐슨 조! 루이필리프 폐하께서 자네를 접견하려 하여 여기까지 왔다네. 연구를 중단하지 말라 하였으니 연구가 끝나면 나오도록 하게!”
루이필리프의 명령이니 모두가 그를 존중하여 자리에서 물러났다. 마지막까지 물러나지 않던 갈루아가 친구들에게 끌려가고 삼십 분이 지나자 조일준이 옷을 입은 채 나왔다.
“전하께서 저를 뵙고자 하시니 연구생 몇 명을 거느린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을 것인데 염려하지 말게. 그나저나 자네의 언변에 대해서는 들어 두었는데 내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군. 언제쯤이면 되겠는가?”
“그야 언제라도 좋지요. 저도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로시니 경의 초대를 받고 싶었습니다.”
후원자 예정 목록에 있는 로시니와 약속을 잡은 조일준은 마침내 루이필리프와의 접견을 시작하였다. 여러 장관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교육부 장관 프랑수아 기조가 먼저 악수를 청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의 여러 발명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네. 얼마 전에는 새로운 진통제에 몰두한다 하였는가. 우리 프랑스의 과학이 자네 덕분에 몇 배로 발전하였네.”
“저는 그저 씨앗에 불과하였습니다. 루이필리프 전하께서 제 입학을 허가하였으니 파종을 한 격이지요. 그랑제콜이라는 토양과 여러 교수님들의 지원이 물처럼 쏟아진 것입니다.”
“그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 꽃이 필 때가 되었네. 어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게.”
서양 격식으로 인사를 올린 조일준을 한참동안 바라본 루이필리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조일준의 존재는 이미 그랑제콜의 응시자를 폭증시키기에 이르렀다.
“자네가 프랑스에 오고 고작 여섯 달이 지났네. 벌써 폭약 두 종류를 발명하고 이번에는 진통제를 발명할 예정이 아닌가. 자네는 참으로 대단한 인재야.”
“전하께서 말씀하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정진하고 어떠한 물질을 만들어 낼 지에 대한 생각에 몰두할 뿐입니다.”
“그러니 자네에게 제안을 하겠네. 물론 프랑스 망명은 아니니 염려하지 말게. 조선에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니 프랑스 망명은 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지.”
“그야 당연한 일입니다. 저의 모국은 결국 조선이며 저를 이 자리에 보내신 분이 주상전하가 아니겠습니까. 두 나라의 신하를 자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조일준에 대한 프랑스 망명 권유는 실패했지만 루이필리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이 충(忠)과 효(孝)라는 관념에 얽매어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많은 은혜를 주어 마음이 움직이게 하면 충분하였다. 아예 장기전을 준비한 루이필리프는 조일준의 몸값을 더더욱 키우기 위해 제안을 하였다.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겠네. 다만 자네의 과학적 성과가 프랑스와 조선 양 국이 공유함을 알고 있는가. 이를 공유할 나라를 더 만들면 어떠하겠나?”
“공유하는 나라라 하셨습니까? 제가 발명한 기술이 특허가 되었지만 여기에 국제적 규약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시대의 국제적 법률은 권고사항에 불과하였다. 기술을 오랫동안 묶어두고 있으면 첩자를 동원하거나 새어나간 정보로 다른 나라가 기술을 도용(盜用)하였다.
그랑제콜의 교수들도 십 년 이내에 다이너마이트의 제조법이 유출되어 유럽 각 국가가 사용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반면 루이필리프는 계획서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과학적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박람회를 개최한다네. 자네의 찬란한 성과를 앞세워 우리 프랑스는 런던에서 제 1회 국제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네.”
“국제 박람회라 하셨습니까? 왜 파리가 아니라 런던입니까?”
“그야 영국에게 영예를 안겨주고 특허권을 판매할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니 당연한 일이지. 자고로 영예를 남에게 주고 이득을 챙기는 것이 영국 놈들의 특기가 아닌가.”
프랑수아 기조가 작성한 계획서에는 국제 박람회를 통하여 특허를 판매하고 지속적인 특허료에 대한 청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이필리프는 이 항목을 손으로 짚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 특허 판매 대금과 특허료의 40%로 조선 발전 기금을 만들 것이네. 자네와 같은 인재가 탄생한 조선을 내버려두면 우리 프랑스의 명예가 무너지는 것이네.”
박현상이 예상한 특허료 배분 비율은 20%에 불과하였다. 최소한 은자 수십만 냥에 주기적으로 추가 지원을 받을 기회가 생긴 조일준이 경악하였고 루이필리프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하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영국 놈들이 어떻게 자네들을 현혹시키고 이용하려는지 잘 알고 있으니 이에 대응할 예정이네. 군사고문단을 보내면 똑같이 응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할 뿐입니다.”
국제 박람회를 제안할 정도로 콧대가 높아진 프랑스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워준 조선에게 손익을 가리지 않고 선물을 제공했다. 이는 프랑스의 집착과 지배욕에 대한 광기(狂氣)가 올바른 방향으로 표출된 결과물이었다.
이 선물에는 답례가 있어야 하니 조일준은 주머니에 있는 가황고무 샘플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에서 수많은 인재를 빼올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