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53화 (53/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53편

(5장 - 비료 (1))

그루시의 가혹한 훈련에 시달린 조선의 기병들은 할 말은 많았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였다. 자신들이 제대로 된 기병이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프랑스 교관들은 활을 쏘지 않을 뿐 병장기를 다루는 실력을 비교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말의 크기도 어린아이와 어른 수준으로 차이가 났다. 그루시는 진흙탕에서 버르적거리던 병사들을 꺼내놓고 말하였다.

“네놈들에게 프랑스에서 들여온 군마를 지급해도 지금 실력이면 질주를 하다 말 위에서 떨어져 자빠질 거다! 더 이상 구더기 소리를 듣기 싫다면 뭘 해야 하겠나!”

대열 사이를 오가며 눈을 부라리는 그루시에게 병사들이 주눅이 들었지만 그는 병사들의 멱살을 잡으며 다시 고함을 쳤다.

“처음은 훈련을 통해 발달된 육체적 능력이다! 다음으로는 적절한 장비와 이에 걸맞은 용기!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정신이다! 그럼 너는 군대에 왜 왔나!”

지목을 받은 병사는 다음 훈련 명분을 찾는 그루시의 눈빛을 보며 생존의 길을 찾았다. 마침내 상식적으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자 그루시를 만족시키는 말을 하였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이런 세상에! 최고의 답변이다! 너는 바보천치이거나 천재다! 이름이 뭐지?”

“임건보입니다!”

한 차례 더 굴릴 마음을 품고 있었던 그루시는 너무나 감동하여 임건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이후 잠시 일장연설을 한 그루시는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음력 8월이 넘어 완연한 가을이 되며 날이 건조해지고 기온이 내려가 훈련에 적합한 날씨가 되었다. 그루시는 내일의 훈련 계획을 조율하려 하였는데 병사들이 그루시에게 다가왔다.

“영감님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희는 내일 훈련에 불참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습니다.”

“집안 사정이라도 생겼는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사정이 생겼는데 무슨 일인가.”

“저희가 가지고 있는 땅에서 작물이 나왔는데 이제 시장에 팔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조선군의 태반은 녹봉이 부족하여 겸업까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평상시라면 스스로 농사를 지었지만 가혹한 훈련으로 인하여 소작농을 고용해 농사를 짓게 하였다.

작물이 다 생산되었으니 이를 파는 것은 가장의 몫이었다. 그러나 부사관 제도와 상비군 제도를 도입하려는 그루시에게는 아예 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었다.

“말 위에 올라 전장을 누벼야 할 사람들이 시장에서 채소와 곡물을 팔아? 너희들이 팔고 있는 물건들을 모두 군용품으로 사들일 것이며 녹봉도 올릴 테니 당장 훈련에 나오도록!”

“영감님께서는 어영청의 중군(中軍 - 종2품 참모장)과 같은 직위라 하셨습니다. 하온데 녹봉에 관여하시니 어명을 받은 몸이라도 되십니까?”

“훈련에 필요한 것은 내 마음대로 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내가 마음대로 하지 그럼 조선 왕의 명을 어기고 내 멋대로 한다는 말인가? 내일 훈련에 물자를 모두 가지고 나오도록!”

순조의 명령을 들었을 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자신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니 마음대로 하겠다고 답한 일 자체가 후회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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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영은 일본에서 넉 달에 걸친 장구한 회의를 마치고 가까스로 귀국하였다. 처음에는 막부와 접촉하여 유황과 차를 비롯한 물산에 대한 수입 물량을 확정하였다.

이후에는 오키나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사쓰마 번과 접촉하여 재차 논의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오키나와까지 내려가서 최종 협의를 보았다. 아직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조만영은 웃는 낯으로 보고를 올렸다.

“논의의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사옵니다. 홍삼 일천 근을 매년 제공하는 조건으로 매년 찻잎 이만 근과 유황 오만 근 그리고 유구(오키나와) 동쪽의 군도를 임대할 수 있었사옵니다.”

“아마 왜국의 대군(쇼군)이 찻잎을 제공하였고 살마(薩摩 - 사쓰마)에서 유황을 내어주었을 것이로군. 혹여나 유구 동쪽의 군도를 임대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던가.”

“유황은 화약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남쪽의 온화한 섬에서 사탕수수를 기를 것이라 하니 크게 의심하지 않았사옵니다. 오히려 외딴 섬에서 거주해야 할 사람들을 염려하였사옵니다.”

귀중한 인광석이 잠든 다이토 제도를 조만영 덕분에 헐값에 임대하였다. 효명세자가 최종 합의문에 도장을 찍고 나에게 궁금한 듯이 물어보았다.

“박현상 자네의 요청에 따라 세 개의 섬을 임대하였는데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군. 서역에서 들여온 선박을 동원하면 섬을 오갈 수 있지만 험난한 여정이라 사탕수수를 길러도 그리 큰 소득이 없을 걸세.”

“서역의 선박들이 왜국으로 향하는 경로를 막아낼 목적이옵니다. 태평양을 건너온 배들이 여송(필리핀)을 거쳐 북방으로 올라와 왜국과 교역을 하오나 이제는 길이 막힐 것이옵니다.”

“중간에 조선의 영토를 만난다면 경로를 조선 방향으로 틀 것이 분명하군. 이 조선보다 큰 나라인 왜국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게 내버려두면 아니 되는 법이지.”

“또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이니 수많은 물산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신이 듣자하니 왜국의 좌도(사도가)에서는 금과 은 그리고 석영이 산출된다고 하였사옵니다.”

사실은 금보다 더 중요한 자원이 잠들어 있지만. 조만영은 내 말을 듣더니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여러 광물 표본을 보여주었다.

“신 또한 같은 마음을 품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유구로 향하던 중 배 두 척을 분열하여 이광로를 포함한 광맥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을 파견하였고 성과를 거두었사옵니다.”

“얼핏 보아서는 금이나 은이 섞이지 않은 것 같은데.”

“이광로가 말하기를 생전 처음 보는 광석이며 기묘한 결정이 섞여 있다 하였사옵니다.”

“나도 알 길이 없으니 그랑제콜 분원에 보내 조사하게 하여야지. 박현상 자네가 조일준에게 직접 가져다주면 더욱 좋을 것 같군.”

짙은 갈색에 약간의 결정이 섞인 기묘한 광석은 아마 인회석이리라. 나우루에도 어마어마한 양이 매장되어 있지만 수십만 톤에 달하는 양이 다이토제도에 매장되어 있었다.

아예 이광로를 만나 수레 가득 채굴한 인회석을 가져가니 일준이는 간단한 실험과 분석으로 이 인회석의 질을 확인하고는 답해주었다. 이걸로 화약도 만들 것 같았는데 내 생각과 다른 답이 돌아왔다.

“질소가 거의 없는 평범한 인회석이네. 인 함량은 34%에 질소 함량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4%정도고. 이 정도면 비료를 시작으로 백린이나 적린도 만들 수 있을 거야.”

“칠레에서는 질소가 풍부한 구아노를 채굴해서 화약도 만드는데 이걸로는 왜 안 되지?”

“구아노와 인회석은 시작은 같지만 환경이 달라서 결과물이 달라지는 물건이야. 조류나 기타 생물의 분변에 포함된 인과 질산염이 그대로 퇴적되면 네가 말한 구아노가 되지.”

일준이는 샘플로 구아노 덩어리를 준비해 두었는데 퀴퀴한 냄새가 나는 하얀색 물질이었다. 녀석은 구아노를 조금 뜯어내 물에 넣고 세척하면서 말하였다.

“구아노의 원산지인 칠레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서 질산염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반면 다이토 제도라는 섬은 열대기후이니 비가 많이 내리겠지? 그럼 질산염이 다 녹아버려.”

물에 세척한 구아노를 걸러낸 일준이는 파편처럼 남은 조그마한 갈색 덩어리들을 핀셋으로 보여주었다. 이광로가 캐온 인회석을 쪼갠 파편과 흡사한 물질이 남아 있었다.

“이게 인산만 남은 구아노이며 결과적으로 네가 캐온 인회석이 되는 셈이야. 그나마 다이토 제도의 인회석은 질소가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리 많은 양은 아니고.”

“이럴 줄은 몰랐는데. 그럼 내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겠네.”

인도산 초석을 수입하는 것을 중단하고 비료를 만들고 남은 구아노를 화약 제조에 사용하려 했지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준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같은 재료에서 출발하여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도 흔하니까 그리 자책하지는 마라. 화약 값은 인산비료를 수출해서 벌충하면 충분할 것 같아.”

“내가 알기로 비료의 삼 요소는 질소, 인산 그리고 칼륨인데 인산 하나로 충분하겠어?”

“충분하고도 남지. 이 시대의 논에는 질소고정 미생물이 풍부하게 번식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유스투스 리비히가 인산 비료 시험을 끝낼 무렵인데 확인하러 가 보자고.”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생선 썩은 냄새와 비린내가 올라오는 창고에서 유스투스 리비히가 수확된 농작물을 확인하며 비교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일준을 보더니 꾸벅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닐슨 조 학과장님께 보고를 드리려 하였는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각종 비료를 투입한 논을 대조 분석한 결과 수확량 차이가 극명하게 생겨났습니다.”

“가장 많은 논은 수확량이 거의 30% 가까이 증가했군.”

“비료의 성분을 어박(魚粕 - 기름을 짜낸 물고기)으로 하니 가장 효과가 좋았습니다. 조선의 주요 작물인 벼에도 제가 개발한 비료가 통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비료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논이 썩어버릴지도 모르겠어.”

이는 기름을 짜내고 분쇄하여 다시 발효시킨 정어리를 1결의 논에 200kg이나 투입하여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일준이는 잠시 머릿속으로 셈을 하더니 말하였다.

“지금 조선에서 원양어업을 도입해 수많은 생선을 잡아들이고 있지만 이대로 어박만 사용하면 고작 이십만 결의 농토에 비료를 공급하는 것이 전부로군. 이를 대체할 물건을 알려주겠네.”

인광석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유스투스 리비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를 황산으로 녹여내 분석하였다. 분석을 마친 그는 나에게 호기롭게 말하였다.

“예전에 조선의 왕자님께서 농토 이백만 결에 비료를 공급할 계획을 세우라 하셨는데 이제야 답이 나왔습니다. 이 광석 이만 톤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만 톤이라고? 정말 그 양이면 충분한가?”

“정어리로 만든 어박에 인산염을 황산으로 녹인 물질을 섞으면 충분합니다. 토양 산성화가 문제이지만 이는 석회나 탄산칼슘을 섞으면 될 일이지요!”

유스투스 리비히가 아예 종이를 가져와 자신의 계산을 적어 내려갔고 필요한 재료가 적혀나갔다. 인광석 2만 톤과 이를 녹여낼 황산의 재료인 유황 100톤이다.

“연실법으로 만든 황산도 좋지만 여기서 르블랑 공법으로 만든 염산도 좋습니다. 아무튼 필요한 물질만 주시면 제가 사력을 다 하여 비료 제조를 진두지휘 하겠습니다!”

남아있는 인광석도 모조리 비료로 바꾸고 시험하려는 그를 내버려둔 채 일준이는 보고서를 작성하려 하였다. 그러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다이토 제도는 엄청 먼 곳에 있는 섬 아니야? 그 섬까지 가서 매년 광석 이만 톤을 캐내는 일이 보통 중노동이 아닌데? 사람은 어떻게 동원하려고?”

“동원할 방법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 화전민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조선이 숨이라도 쉴 수 있겠지. 이 과정에서 병사도 양성하고 산림녹화도 동시에 진행할거야.”

“그거 완전 일본제국······.”

“식사 똑바로 주고 월급도 똑바로 줄 거니까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아예 노동 기한이 끝나도 눌어붙으려 할 수준으로 대접할 예정이다.”

화전민은 나라의 역량을 갉아먹는 사람들이다. 생활은 궁핍하고 미래도 없이 그저 산림을 훼손하고 있을 뿐이니 제대로 된 직장이라도 찾아주는 것이 차라리 나은 일이다.

효명세자에게 보고를 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하였다. 그리고는 공을 세운 이광로를 먼저 불러 이를 치하하였다.

“서역에서 기술을 배워 지금까지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이광로이다. 이광로가 캐낸 광물이 곧 비료가 될 것이며 작물의 소출을 삼 할이나 증가시킨다 하였다.”

“신은 그저 배움이 부족한 광물을 캐내어 궁금한 마음에 가져왔을 뿐이옵니다.”

“궁금한 마음이 답을 내었다. 백성들이 항산항심(恒産恒心 - 일정한 생산을 가지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을 가질 것 같구나. 이름을 내릴 것이니 항상 정진하도록 가운데 자를 항(恒)으로 고치도록 하여라.”

이외에도 다이토 제도에 다녀온 인부들에게까지 포상을 내린 효명세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막 생산이 끝난 인산염 비료가 담긴 병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화전민을 왜국에게서 임대한 대동(大東 - 다이토) 제도에 보내 광산을 꾸릴 것이라 하였지. 필요한 물목의 선별과 화전민을 추포하여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겠는가.”

“명을 내려주시니 기꺼이 응하겠사옵나이다.”

효명세자는 화전민이 기껏해야 수십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대략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 화전민의 수는 300만 명에 근접하고 있다.

화전민의 체포 작업은 커다란 산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나가 이들이 투항하게 만드는 일종의 군사 작전이었다. 여기에 쓰일 군대는 순조에게 청원하여 군사고문단이 훈련하고 있는 수도방위사단을 동원하였다.

이들은 기동 훈련과 수색훈련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말에 내가 알아봐둔 경기도 인근의 산 아래에 집결하였다. 산 중턱에 있는 마을과 농토를 확인한 마르몽은 코웃음을 쳐댔다.

“참 별 일이 다 있군. 조선의 행정이 나름 철저한 줄 알았는데 수천 명에 달하는 유랑민들이 산 속에 숨어 화전을 일삼고 있다니.”

“우리도 구석구석을 뜯어보면 저런 일이 많지. 스웨덴이나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화전민이 산맥에 숨어 숲을 갉아먹고 살고 있다네.”

화전민 마을의 탐색에는 상인들이 한 몫을 하였다. 본래 겨울을 나기 위해 소금과 젓갈을 팔아야 하는 상인들은 약간의 돈을 받고 화전민 마을의 위치와 진입로를 알려주었다.

산 아래에 군대가 집결하니 화전민들도 이를 알아차리고 소란을 일으켰다. 망원경으로 보니 부뚜막의 불이 꺼지며 연기가 잦아들었고 마르몽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하였다.

“한센 박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저들은 나라의 법을 어기고 멋대로 산 속에서 사는 자들이지만 조선의 백성이 아닌가. 가벼운 인사를 하여 항복을 권고하면 좋을 것 같은데.”

“화포를 쏘아보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것 같으신데요. 아무려면 좋으니 쏴 보십시오.”

“다들 말을 들었지! 중형 화포 준비! 산 중턱을 노려서 쏴라! 유산탄은 절대 쏘지 마라!”

사표에 따라 목표를 계산하는 포병들은 아직도 굼뜬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마르몽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열다섯 문의 화포가 일제 발사되고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포격을 시작으로 로널드 하트만의 보병들이 천천히 좁혀 들어왔고 그루시 휘하의 기병들이 산 아래에서 기동을 하며 무력시위를 하였다. 여기에 내가 정중한 항복 권고를 하였다.

“투항하라! 주상전하께서 명을 내리시어 일대의 사람들을 이주시킬 것이라 하였다! 너희들에게 필요한 양식과 의복 그리고 각종 물품을 지급할 것이니 당장 투항하라!”

군사 고문단은 기껏해야 오백 명 정도가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산 아래로 내려와 항복하였다. 거의 이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내려오자 오히려 질색을 할 지경이었다.

“목숨이 아까워 항복하였지만 앞으로 겪을 고난이 무엇입니까? 더군다나 소문만 듣던 서역의 사람들이 있으니 서역에 노비로 팔려나가는 일을 겪을까 심히 염려됩니다.”

“주상전하께서 약조하였으니 그저 거처를 옮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남방에 있는 섬에 머물며 광물을 캐내고 사탕수수를 기르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화전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매년 쌀을 보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까지 하였다. 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필요한 인광석을 캐내는 것이 전부이니 당연한 일이다.

여러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하였다.

“저희에게 은혜를 내리시니 이 보잘 것 없는 몸을 다 하여 나라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입니다. 여기에 병졸의 소질이 있는 자를 선별할 것이며 몇 가구는 그대로 남아 산림을 복원하는데 협력하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녹봉을 지급할 겁니다.”

몇 가구정도는 남겨두어서 자신들이 황폐화한 산림을 복구하는 산지기로 일하면 될 것이며 소질이 뛰어난 사람은 즉석에서 입영시키면 될 일이다.

로널드 하트만을 비롯한 세 고문단이 미소를 지으며 치아를 확인하고 등을 두드리며 장정들의 몸을 확인하였다. 여기서 선별된 수십 명의 장정들이 병사로 선별될 시험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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