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55편
(6장 - 대경장(大更張) (1))
효명세자는 세금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창설하고 차근차근 세금 제도를 지역별로 개편하며 10년에 걸쳐 원상복귀 시키는 장구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는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낮추고 양반 계층의 지주들에게 정상적으로 걷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회유를 시작으로 반란까지 각오하며 무력의 동원까지 생각하였다.
이런 상황에 유스투스 리비히의 인산비료가 모든 과정을 쉽게 하였다. 삼정이정청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효명세자가 장계와 상소문 덩어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본래 차근차근 혁파하려 하였는데 이 혁파가 한 순간에 끝이 나는 것 같구나. 다만 탁지승지를 비롯한 사람들이 고난을 겪을 것 같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토지의 측량과 은결의 양성화를 빠르게 끝내지 아니하면 변란이 일어날 것 같사옵니다. 그러하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탁지서(度支署) 휘하에 배정해 주시옵소서.”
삼정이정청의 총재관(總裁官)을 담당하는 서유구가 제안을 하였는데 사람이 많아져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토지 측량을 위한 임시 관청인 탁지서는 김좌근이 기관장을 겸하며 여기서 측량하고 결산을 내린 토지를 호조에 보내는 방식이다. 그나마 반가운 제안을 받은 김좌근은 피로로 인해 휘청거리며 말하였다.
“신이 추정하기로는 올해 측량을 신청한 토지가 오십만 결에 달하옵나이다. 지방의 지주들이 가진 큰 토지를 측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나 백성들이 걸림돌이옵니다.”
“백성들이 가진 토지가 문제가 될 법도 하지. 평상시에는 지주 아래에서 소작을 하다 여유가 남을 때 자신이 가진 작은 땅에 농사를 짓고 있지 않은가.”
“신이 판단하기로는 큰 땅을 우선 측량하고 이후 여유가 생길 때에 작은 농토를 측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사옵니다. 세금을 많이 거두는 방법이 아니겠사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 수입을 조금이라도 빨리 끌어올리고 지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니 커다란 지주들의 토지를 먼저 측량하는 것이 답이다.
반면 내 입장에서는 아니다. 어차피 이 시대의 땅은 가장 좋은 구획을 지주들이 가져가고 남는 조그마한 땅을 백성들이 개간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게 되면 누더기처럼 기워진 땅이 수없이 생기며 토지 소유의 분쟁을 비롯한 문제가 생긴다.
결국 제대로 된 비료도 공급받지 못 하는 공유지가 되어버린 땅은 생산성을 애매하게 갉아먹는다. 그러니 조선식 인클로저 운동을 제안하였다.
“신 박현상 세자저하께 아뢰옵나이다. 바로 옆에 작은 땅을 두고 큰 땅만 측량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 사료되옵나이다. 그러하니 일대의 경지를 모두 측량하시옵소서.”
“경지를 모두 측량하라 하였는가. 한 덩어리의 땅을 측량하니 일이 편해지지만 내부에 세세하게 갈려진 땅을 모조리 다시 측량하며 시일이 더 걸릴 것인데.”
“전체 면적을 구하고 백성들이 가진 작은 땅을 여기서 새로 갈라서 만들면 될 일이옵니다. 네모 번듯한 농토에서 제대로 된 작황이 나오는 법이니 이치에도 맞사옵니다.”
“어찌 보면 영길리에서 실시하던 인클로저 운동과 흡사하군.”
내 주장은 정확히는 영국식 인클로저가 아닌 조선식 인클로저다. 전체 농토를 온전히 측량하고 큰 땅의 외곽을 찢어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지주들이 노른자위 땅을 가지겠지만 농민 입장에서도 누덕누덕 기워진 땅 대신 네모 번듯한 새 땅이 생기니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제안을 하였다.
“또한 이 방법을 더욱 널리 퍼트릴 방안이 있사옵니다. 한 결 미만의 농지를 소유한 백성들에게 지주들이 토지를 배분하여 한 결을 만들면 지주들의 지세(地稅)를 감하여 주시옵소서.”
“생각하여 보니 한 가구에는 언제나 한 결의 토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농민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 배를 곪지 않고 살아가려면 필요한 땅이 아닌가.”
효명세자는 즉석에서 새로운 포고령을 작성하였다. 지주를 중심으로 땅을 측량하고 한 결 이하의 땅을 가진 농민에게 땅을 떼어주면 지세를 면해주겠다는 방침이다.
농민들에게 떼어준 땅 1결당 10결의 지세를 영구히 면세하기로 하였다. 매년 토지 공시가격의 1%를 내야 하는 지주들 입장에서는 고작 10년만 버티면 이득이 생긴다고 좋아하겠지.
만주를 점령한 다음에는 땅 가격이 폭락할 예정이니 조정에서는 큰 손해도 아니다. 농민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토지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일석삼조의 방식이다. 효명세자의 제안을 정리한 김좌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이 정도면 올해 육십만 결 이상의 토지를 측량하고 내년 말에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옵나이다. 세자저하께서 이리 계책을 마련해주시니 신의 마음이 놓일 지경이옵니다.”
“유생들 사이에서 산학이 유행이라 하였는데 별시를 통해 탁지서에서 일하게 하면 좋을 것 같구려. 그럼 육십만 결의 토지에서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가 궁금하군.”
효명세자가 눈을 굴리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는데 1836년 10월에는 새로 생긴 토지에서 최소 300만 석 이상의 막대한 세금이 걷히게 되었다.
이 세금으로 군대의 녹봉을 대고 새로운 사단을 육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작업에 착수할 수 있으리라. 효명세자는 사람들을 지목하며 명령을 내렸다.
“이번 해에는 오만 결의 토지를 측량하였으니 조금의 여유가 생겼구려. 우선 의주로 향하는 철도의 공사를 시작할 것이니 토지 보상을 논하여 주시오.”
“하오면 내후년부터 공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실 예정이옵니까?”
“그렇소. 화전민들을 추포하여 철도 공사에 투입하며 각종 토목공사를 실시할 여력이 생기지 않겠소. 또한 각지에 증기기관으로 돌아가는 공장을 마련할 생각이오.”
조선의 구조 자체를 바꿀 대경장(大更張)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회의를 마치고 군사고문단을 만나려 준비하는 효명세자는 나를 보며 다른 명령을 내렸다.
“올해부터 공장의 터를 잡고 기술자를 각지에 파견해야 할 것 같군. 한 번 점검하여 보게.”
“세자저하의 명을 받아들일 것이옵나이다. 영길리의 참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신이 공장을 점검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법을 제안할 것이옵나이다.”
지금쯤 로버트 오언이 운영하는 공장에는 각 공장으로 파견될 근로자들과 공장의 증기기관 관리자가 일 하고 있으리라. 마침 잘 된 일이니 서둘러 공장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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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져온 증기기관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직물을 직조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의 대부분은 조선 사람인데 이들은 도성에서 데려온 실직자들이었다.
“조선의 임금이 정말 싼 편이라 마음이 놓이는군요. 조선의 화폐단위로 따질 때 런던의 숙련공들은 한 달에 은자 일곱 냥의 월급을 받습니다. 반면 조선은 다르지요.”
“숙련공의 월급은 한 달에 은자 두 냥이면 충분하고 견습공이라면 은자 반냥이면 되지요.”
로버트 오언이 데려온 영국의 인부들은 일 년 동안 조선 사람들에게 기술을 알려주고 여러 비결을 전수하며 이들을 점차 숙련공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온전한 숙련공이라 볼 수는 없었지만 조선에 새로 설립될 공장에서 중간 관리직으로 일하며 다른 인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로버트 오언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선이 어떠한 나라인지 알게 되니 근로자의 천국이 만들어질 것 같아서 가슴이 설렙니다. 국가 제도가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에 전념하였으니 쌀값이 폭등할 이유도 없지요.”
“조만간 쌀값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것 같더군요.”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닙니까? 사람은 배불리 먹고 생활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어야지요.”
공장의 환경은 런던에서 시찰한 여러 공장들과 비교해도 준수하다 못해 탁월한 수준이었다. 조도의 확보를 위해 유리창을 설치하고 통풍용 창을 여럿 두어 내부를 환기하였다.
심지어 지붕에도 이 시대 기술로는 만들기 힘든 천창(天窓)을 두어 공장이 훤하기 그지없었다. 이 설계를 조선에 퍼트릴 공장의 표준 설계로 삼으면 가장 적합하리라.
노동자는 이 좋은 환경을 제대로 활용하여 직물을 세세히 살펴보며 기계가 잘못 직조한 직물을 찾아나갔다. 로버트 오언은 공장 밖으로 나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영국의 표준 노동법보다 적은 하루 열 시간의 근로가 표준입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적응하더군요. 조선 사람들은 영민한 것 같습니다.”
“그야 평생 농사를 짓던 사람이니 적응하기 힘들 만도 하였지요.”
“해가 중천에 뜨면 알아서 낮잠을 자려 하니 참 피곤하지 뭡니까. 그래도 석 달 정도 지나자 바짝 긴장하여 일에 매진하니 이보다 좋은 공장 근로자를 찾기도 힘듭니다. 또한 공장 관리자들도 찾기 힘들지요.”
공장 관리자도 있었는데 대부분 권세가의 여식(女息)들이 배정되었다. 직물을 직조하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 생각한 조정의 권신들이 제안한 일이었다.
아내를 비롯한 권세가의 사람들은 지난 일 년 동안 로버트 오언이 세운 공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답을 하고 개선점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아내는 물론이요 사람들의 기록을 천천히 살펴보니 쓸 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휴식종이 울리고 공장이 멈추며 로버트 오언이 콧노래를 부르며 인부들에게 외쳤다.
“휴식 시간이네! 나와서 다과를 즐기고 햇볕을 쬔 다음 기분 좋게 공장으로 돌아가도록!”
세 시간에 걸친 작업이 끝나고 10분의 휴식이 허가된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공장 밖으로 나와 옷과 마스크에 달라붙은 섬유 조각들을 털어내고 식혜를 들이켜며 떡을 먹었다.
굉음과 분진에 시달리는 공장에서 신경을 집중하다 휴식을 취하니 다들 바닥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아내는 그 사이에 여러 사람들이 발견한 개선점을 이야기하였다.
“듣자하니 그랑제콜이라는 기관에서는 새로운 힘을 이용하여 돌아가는 부채를 만들었다 하였습니다. 이를 창문에 두어 바람을 일으키면 분진이 많이 쓸려나갈 것 같습니다.”
“좋은 제안이니 받아들이겠소. 그나저나 얼마 전부터 근로시간을 조금씩 변경하며 여러 사항을 기록했다 하였는데 이를 정리한 것을 보고 싶구려.”
“여기 있습니다. 제 배움이 부족하여 명확하게 마련하지는 못 하였지만 지금의 방식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정리한 서류에는 작업시간, 휴식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전체 근로시간을 비롯한 시간에 비례한 업무 효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아내는 경제학적 논리로 근로시간과 생산성에 대한 비교 분석을 시행하였고 결과를 도출하였다. 이를 확인하니 조선에 적용할 새로운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대한 자료가 드러났다.
기록의 상세함을 보니 내가 출근하면 공장에 나서서 사람들을 통솔하고 수많은 기록을 하며 쉴 틈이 없었으리라. 아내의 성과를 정리하고 로버트 오언과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효율이 부족한 것 같은데 조선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적용해야 할 것 같군요.”
“설마 맨체스터의 공장처럼 하루 14시간의 노동을 시킬 생각입니까? 노동자도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오랜 노동을 시키면 청각장애는 물론이요 폐병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로버트 오언은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하더니만 산업재해를 시작으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린이 교육을 비롯하여 각종 복지에 대해 논하였다.
“한센 박이 어떠한 생각을 하던 노동자는 사람이며 이들은 하루 열 시간의 노동을······.”
“조선에서 새로 만들어질 노동법에 의거한 근로시간은 하루 여덟 시간입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자에 대한 배려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로버트 오언은 내 말을 듣자마자 뭔 미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도 근거는 있었다.
“총 근로시간과 단일 작업시간은 총 근로 효율과의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집중력이 떨어진 근로자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지요.”
“그······. 그렇습니다. 기계를 빠르게 멈추고 꼬인 실을 풀어내지 않으면 원단을 엉망으로 직조하게 되지요. 그래도 여덟 시간의 근로는 말이 안 되는데요? 네 시간씩 끊어서 합니까?”
“두 시간도 아니고 한 시간 사십오 분을 근로하고 십오 분을 쉬는 게 가장 적합할 겁니다.”
아내가 기록한 사항은 현대의 근로기준법과 거의 일치하였다. 사람의 집중력은 보통 2시간이 한계이며 4시간은 억지로 버티는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에도 4시간마다 30분 이상의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건 노동자의 권리보호 이전에 업무 효율을 상승시키기 위한 휴식이다.
그는 나를 설득하려 했는지 휴식시간 동안 증기만 피우며 동력을 전달하지 않는 증기기관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증기기관의 동력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공장을 운영해서 소모되는 비용이 또 있습니다! 일단 열이 올라온 증기기관은 가급적 오래 써야 합니다! 이를 작동시키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하시지요!”
“그야 노동자를 교대하며 공장을 운영하면 충분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4시에 출근하여 12시에 퇴근하는 조와 12시에 출근하여 8시에 퇴근하는 두 개의 조로 운영하면 되겠군요.”
“그럼 조명 확보를 위해 새벽과 저녁에 3시간씩 등잔을 켜야 하지 않습니까? 등잔에서 기름이 새어나와 옷감에 불이라도 붙으면 어떻게 대처하실 작정입니까?”
“최근 그랑제콜 분원에서 화력 발전기와 전구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기로 작동하는 환기구를 설치해야 하는데 전구를 사용하지 못 하겠습니까?”
내가 제안하는 근로기준법은 공장 근로자를 한정된 시간동안 최대 효율로 일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는 아내의 분석을 통해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철저히 적용한 방식이다.
8시간의 근로를 마치고 귀가한 사람들이 텃밭을 일구건 다른 부업을 하건 관심이 없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급료도 줄어들기 마련이니 최대 효율로 노동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시대 기준으로는 미치광이 같은 주장이다. 아직 사회주의도 없으며 가장 자비로운 공장장이라 다른 공장들에게 질시를 당하는 로버트 오언조차도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의 빨간 맛을 넘어서서 아예 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먼 맛이 아닐까? 로버트 오언이 우물쭈물 거리자 나는 이 제안을 시험해 보라고 하였다.
“올해 말이 되면 본격적인 공장을 만들 예정이 아닙니까. 제가 제안한 대로 여덟 시간의 노동과 두 시간마다 십오 분의 휴식을 제공해 보시지요. 어차피 손해는 제가 봅니다.”
“알겠습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지만 어떻게든 해 보도록 하지요.”
손해고 뭐고 이 방식의 효율성이 확인되면 누구나 발전기를 공장에 설치하고 노동자를 2교대로 굴리며 효율성을 추구하리라.
공장에 필요한 물건이 생겼다. 일준이는 발전기에 슬쩍 손을 대더니 다음 달 쯤에 베서머 전로를 시험할 것이라 했는데 그랑제콜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