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60편
(6장 - 변혁 (3))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기병들이 사용할 군마를 유럽에서 들여오던 그루시가 순조에게 보고를 올리려고 방문하였다.
눈을 마주치고 흠칫 놀란 그루시는 보고가 우선이라 안드레이를 지나쳤지만 보고를 끝내고 나온 다음 바로 일이 터졌다. 먼저 삿대질을 한 사람은 그루시였다.
“이······. 이 카자크 도적들이! 왜 문명국인 조선의 궁궐에 와 있지?”
“어이구? 그루시는 어디에 있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이는데?”
그루시를 상대로 무조건 이기는 필승 수단이 날아왔다. 뒷목을 잡은 그루시는 군화로 바닥을 박차며 분통을 터트렸지만 안드레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 여기에 있었군! 우리 그루시 원수님! 원수님의 화려한 지휘로 파리에서 휴가를 즐겼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네놈 파리에 왔었나? 나이를 보니 애송이 도둑놈이었군!”
“당시에 스물이 안 되었지. 파리에서 궁전을 보면서 마시던 와인이 각별하였는데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군. 다들 춤이나 추자!”
안드레이를 가운데에 두고 다섯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코사크 댄스를 추기 시작하였다. 그루시는 심호흡을 하더니 질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네놈들은 사내 자격도 없으니 개가 짖는 소리나 다를 바 없군. 오히려 개보다 못하니 개는 주인이 위험에 처하면 맞서 싸우는데 네놈들은 아니었어.”
“지금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보이지도 않는데 들리지도 않아.”
“네놈들이 러시아 원정에서 우리 프랑스의 육군을 상대로 꽁지를 빼고 달아난 건 잊었나? 러시아군이 피를 흘리며 맞서 싸울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서로 옛 상처를 후벼 파내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말릴 필요가 없었다. 코사크 댄스가 멈추고 안드레이가 눈을 부라렸지만 그루시는 태연하게 당시의 일을 말했다.
“내가 퇴각할 때 후방 부대를 담당한 것은 잊었나? 네놈들은 도적떼처럼 야음을 틈타 전리품을 약탈하는 동안 피는 모두 알렉산드르(알렉산드르 1세)의 군대가 흘렸지.”
“패배한 장수에다가 몰락에 일조한 늙은이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네놈들은 사내도 아니야. 치졸하고 옹졸해서 약탈에만 목숨을 거는 야만인이지. 나는 나이가 많아서 싸울 수 없지만 주먹 싸움으로 사내다움을 겨뤄보지 않겠나?”
“이 비실비실 거리는 얄팍한 놈들을 가지고?”
그루시도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일준이는 여유가 생기면 몸도 관리하고 현대식 권투를 퍼트릴 겸 그랑제콜 사람들과 프랑스 군인들에게 권투를 가르쳐 주었다.
기병 장교들도 권투를 배웠고 졸지에 덕수궁에서 프랑스 대 러시아의 권투 시합이 벌어졌다. 그루시에게 지목을 받은 장교는 상대를 살펴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실력차이가 심해서 좀 양보하겠습니다. 나는 글러브를 착용하고 싸울 것이니 알아서 싸우도록. 이 정도는 해야 대등한 싸움이지.”
일준이가 그랑제콜에서 벌였던 일과 똑같은 구도가 재현되었다. 남자 중의 남자라 자처하는 카자크이니 상대는 분노를 억누르며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결투를 시작하였다.
결과는 현대 권투를 배운 프랑스 장교의 승리였다. 계속 주먹을 주고받아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장교는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누렸고 안드레이는 글러브를 끼면서 말했다.
“다음! 다음 상대 나와! 저놈은 지쳤으니 다음 결투를 할 놈 나오라고!”
악과 깡이 좋아도 뇌를 뒤흔들고 내장을 진동시키는 현대 권투 기술을 견딜 수 없었다. 가까스로 체격차로 승리한 한 명을 제외하고 네 명이 패배했다.
안드레이마저도 대자로 뻗어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루시는 콧방귀를 뀌며 안드레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는 뇌진탕으로 휘청거리는 몸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이렇게 잘 싸울 줄은 몰랐는데. 내가 시베리아에 있는 동안 많이 변했나보군.”
“이게 기술이고 제대로 싸우는 방법이지. 러시아의 차르가 조선을 지원한다면서 자네들을 보냈으니 한솥밥을 먹어야 할 사이가 아닌가. 더 이상 싸우지 말고 능력으로 경쟁하자고.”
“쌓인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틀린 말이 아니니 여기서 끝내겠소. 다들 일어나 이 머저리들아! 언제까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셈이냐!”
서로 맺힌 앙금은 많았지만 이대로 내분이 계속되면 손해만 보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별채로 향한 안드레이와 그루시는 나와 함께 기병 육성에 대해 논하였다.
“조선의 기병은 솔직하게 말해서 폐품이야. 선발 시험 기준이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이라 힘이 약하고 몸통이 튼튼한 말만 타지. 이런 놈들을 실전에서 쓸 수가 있나.”
“그딴 놈들은 엉덩이를 걷어차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면서 훈련을 시켜야지.”
“엉덩이를 수만 번이나 걷어차면서 가까스로 기병을 육성했는데 이제는 말이 부족해지는군. 쓸 만한 말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서 프랑스에서 말을 수입하는 형편일세.”
“말은 차고 넘치도록 준비했지. 우리 카자크 기병 사천 명이 사용할 말 이만 마리에 추가로 이만 마리를 보내올 예정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즉석에서 가혹한 난이도의 훈련 계획이 세워지고 군마로 사용할 말의 번식까지 결정되었다. 그루시는 조선의 말을 떠올리며 짜증을 숨기지 않고 말하였다.
“기존에 사용하던 말은 농업용이나 식용으로 모조리 변경해야겠군. 곡식만 축내는 놈들이 올바른 일을 하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야.”
“지금 계획한 모든 것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한 것은 잊지 않았겠지? 최소 삼만 명 이상의 인력이 우리를 보조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보리스는 둘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다음 나에게 바로 외교적인 말을 시작하였다.
“차르께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금 우리가 있는 우수리스크 일대를 포함한 연해주 지역을 할양해 달라 하였습니다. 가능한 일입니까?”
“전쟁에서 조선이 패배하면 청나라와의 중재 협상을 통해 할양받을 생각 아니십니까? 어차피 러시아의 땅이 될 곳인데 뭘 물어보십니까?”
“이거 바로 들켰군요. 다만 청나라가 승리하면 힘겹게 얻어내야 하니 확답이 필요합니다. 차르께서 명하신 바는 부동항과 동방으로 진출할 지역을 얻어내라 하셨지요.”
연해주는 러시아에게 내어주기에는 아까운 땅이지만 그렇다고 조선의 힘만 동원하여 개척하기에는 너무 험난한 땅이다. 애초에 만주에 딸려오는 보너스 느낌이지.
이런 연해주에 니콜라이 1세가 애매한 수준의 투자를 해서 다행이다. 지금 러시아 사정이면 카자크 기병을 2만 명 정도 보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만주도 상당수 내어줘야 하리라.
지금 상황은 유망한 벤처기업을 확인한 투자자가 날려먹어도 되는 수준의 자금을 투자한 격이다. 그러니 조선이 연해주에 가질 지분을 올리려고 좋은 제안을 하였다.
“만족스러운 조건이군요. 마침 카자크 기병 여러분들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을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잘 된 일이니 이십만 명 정도를 보내도 되겠습니까?”
“이십만 명?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이 산에서 솟아나나? 사람들이 먹을 양식은 어떻게 챙기고 입을 옷은 또 어떻게 챙기는가?”
안드레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이십만 명 정도는 보내고도 남는다. 올해 1836년에 추가로 걷힐 세금이 곡식으로 삼백만 석에 달한다. 더군다나 공장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대량으로 양산되는 공장제 직물이 단숨에 풀리면 시장에 막대한 충격이 발생하리라. 이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화전민들에게 지원할 물품으로 삼아서 선을 보이려 하였다.
더군다나 다이토 제도로 이주한 화전민들은 인산염 광물을 일 년에 삼만 톤 가까이 캐내서 비료가 남아돌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확답을 내렸다.
“조선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내년 봄 까지 십만 명, 내년 가을 이전까지 다시 십만 명의 인력을 보낼 예정입니다. 부디 이들이 청나라의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하여 주십시오.”
“염려하지 말게. 그나저나 이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라? 호수 주변이 미어터지겠군.”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오던 화전민들에게는 연해주 외곽의 우수리스크 지역이나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산골이나 비슷한 상황이리라. 아마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적응하고도 남겠지.
순조에게 협상 내용이 정리되어 올라갔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조선에서는 엄두도 안 나는 이만 마리의 군마를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만족스러운 협상이라고 치하하였다.
-----
가을이 깊어져 한가위가 될 무렵 조선의 2차 서역 사절단이 출발하게 되었다. 이번 사절단의 대표는 종친의 일원인 남연군이었는데 그는 이미 서양 문물을 많이 배워두었다.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라틴어를 일부 배워두었지만 효명세자는 실제로 경험을 한 사람의 조언이 필요하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내가 남연군에게 달라붙어 이런저런 일을 가르쳐 주었다.
“당부할 것이 있으니 서역은 각 나라간의 알력다툼이 심하여 언제나 논하는 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남연군 대감께서는 이 나라에 대하여 가급적 논하는 바를 피하여 주십시오.”
“염려하지 말도록 하게. 내 그렇지 않아도 하응이의 이야기를 하고 친하게 지내는 다산 대감에게서 배운 바를 논할 것이네.”
본래 역사에서 이미 죽었어야 할 남연군은 석 달 전에 종기를 말끔히 치료하고 일어났다. 아마 일준이가 개발한 요오드팅크와 로버트 리스턴의 치료가 운명을 바꿨으리라.
남연군이 대표인 사절단의 방문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프로이센과 이탈리아 전체를 돌아보고 다시 프랑스를 통해 돌아올 예정이었다. 방문이 프랑스인 이유는 간단했다.
“듣자하니 영길리에서 열린 박람회가 불란서에서 열린다 하였지. 여기에 초청을 받았으니 온갖 신기한 문물들을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을 것 같군.”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제가 서신을 통해 듣기로는 영길리와 불란서에서 배운 조선의 사람들이 박람회에 물품을 출품할 것이라 하였지요.”
지난 첫 국제 박람회가 런던에서 열렸는데 2차 국제 박람회는 파리에서 열린다 하였다. 영국은 필사적으로 새로운 문물을 개발하여 두 번째 박람회에서 승리를 거두려 하였다.
프랑스는 알루미늄 풍선과 알루미늄 호일을 시작으로 막 양산에 들어간 가황고무를 선보일 예정이니 이번에도 프랑스의 승리가 확정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본래 역사의 흥선대원군인 이하응이 남연군에게 인사를 올렸다.
“부친께서 머나먼 불란서에 다녀오시는 동안 학문에 매진할 것입니다. 소자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나 그랑제콜의 교수님들이 친절하게 가르치는 덕분에 배움을 거듭하고 있사옵니다.”
“염려하지 말고 학문에 매진하도록 하여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길이니 무슨 변고라도 생기겠느냐? 부디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대성할 때 까지 임하거라.”
올해 16세에 불과한 이하응은 종친의 일원임에도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영리하여 일준이도 독보적이라 칭찬하였다.
이번 사절단의 배웅은 순조가 함께하기로 하였다. 이번 사절단은 개성까지 철도를 타고 움직일 것이기에 인왕산 고개를 넘어가 위치한 한성역에 순조가 도착하였다.
이점버드 브루넬은 이득을 챙기고 약아빠진 성향이 있었지만 실력만큼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 그는 조선의 환경을 일 년 동안 체험하고 바로 이에 적합한 철도를 마련하였다.
“수도인 한양과 옛 수도인 개성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고 이제 첫 여객 운행이 시작될 겁니다. 제가 특별히 설계한 광궤(廣軌)를 도입한 복선 노선이지요.”
“듣자하니 기관차도 특별히 설계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차이가 있는가?”
“넓어진 선로에 맞게 기관차도 크게 설계하여 출력이 늘어났습니다. 영국에서 사용하는 4.7피트(1,435mm의 표준궤) 간격보다 훨씬 넓은 7피트의 선로를 사용하였습니다.”
조선에서 사용하는 선로의 궤간은 2,140mm에 달해서 현대의 광궤보다 훨씬 폭이 컸다. 이점버드 브루넬은 선로 수리를 위해 비축한 예비 부품을 보여주며 말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조금 늘어나겠지만 조선의 기후가 워낙 가혹해서 안정성을 추구했습니다. 장마로 인한 토사 유입과 겨울 추위로 인한 동결심도를 감안하였지요.”
“자네가 여러 공사를 할 때 겨울 추위를 감안하여 설계를 모두 뒤엎었다 하였지.”
“덕분에 좋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본국의 조지 스티븐슨 경에게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기관차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차세대의 기관차는 이 녀석이 될 겁니다.”
측면에 Locomotion No. 2이라 적힌 기관차는 예열을 마친 채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영국에서 사용하는 증기기관차를 부풀린 녀석이니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점버드 브루넬 경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크기가 크다고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 기관차의 상세 성능이 궁금합니다.”
“아직 노선이 길지 않고 시험 운행이어서 속력은 시속 이십 킬로미터보다 조금 느립니다. 대신 출력은 월등히 증가하여 백이십 톤 혹은 그 이상도 운송이 가능합니다.”
“백이십 톤이라 하면 화물 하중이 팔십 톤 이상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더 될 겁니다. 이미 사절단 여러분이 유럽에서 사용할 짐과 무역품을 보낼 용도로 한 번 시험해 보았는데 조금 여유가 있었지요. 다만 안전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기관차 한 대당 750파운드, 은자로 3,750냥에 달하지만 이 정도 성능이면 지극히 만족스러운 녀석이었다. 순조는 설명을 듣더니 흡족한 듯이 말하였다.
“내 살아생전 이런 철마에 몸을 올릴 줄은 꿈도 꾸지 못했거늘. 그러하면 개성까지는 얼마나 걸리는가? 정녕 두 시진(4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가?”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노선이 완공되어 의주까지 도달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지만요.”
“의주까지 하루가 걸린다 하였는가. 파발을 보내도 삼 일이 걸리는데 대단한 일이로군. 이대로 숨을 뿜어내는 철마가 마음에 걸리니 어서 출발하도록 하세.”
가장 먼저 군관의 안내를 받은 순조가 전용 객차 위에 몸을 올리고 사람들이 줄줄이 탑승하였다. 열두 량에 달하는 객차는 이백 명에 달하는 사절단을 받아들이고도 여유가 있었다.
남은 자리에는 열차 시승식을 겸해 개성에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은 순조의 호위 병력과 내관이 탑승하였다. 기적소리가 울리고 증기가 더욱 많이 뿜어져 나오며 기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조금 덜컹거리지만 점점 빨라지는군. 말 위에 오르는 것 보다 나은 형편인데.”
순조를 비롯한 사람들은 진동을 느끼며 마차와 다를 바가 없으며 더 편안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처음에는 희뿌연 증기가 창밖을 메웠지만 속력이 올라가며 시야가 트였다.
선로 주변에는 백성들이 도열하여 순조에게 절을 올렸다. 지금까지 몇 차례의 시연이 있었음에도 연기를 뿜는 괴물이라 경계하였지만 왕이 나선 이상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상전하께서 기차에 오르시니 백성들이 안심하고 있사옵니다. 이들은 기차를 요괴라 생각하였고 가뭄이 들면 요괴가 물을 안개로 바꾸어 벌어지는 일이라 탓하기도 하였사옵니다.”
“그러한 소문이 돌아다녔단 말인가? 이 조선이 요괴가 사는 나라가 되었겠군.”
“청나라의 사람들이 기차를 보면 요괴가 돌아다닌다며 경계할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아니지. 양이(洋夷)의 사악한 술법이라고 불을 지르려 할지도 모르네.”
순조가 웃음을 터트리고 기차가 점점 더 속력을 높였다. 공릉천에 설치된 교각을 통과할 무렵 순조는 주변에 있는 역참을 확인하며 말했다.
“기차라는 물건을 들여올 때에는 쓸모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아니로군. 이러한 속도로 십만 근에 달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옮길 수 있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실로 그러하옵니다. 의주까지 철로가 연장되는 것을 시작으로 이 나라 방방곡곡에 철도가 부설되면 물산이 소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열릴 것이옵니다.”
현대 기준으로는 굼벵이 수준의 속력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고속 철도였다. 순조는 흡족한 듯이 창밖을 바라보다 산의 풍경을 보고 말하였다.
“본래 산이 헐벗어서 시뻘건 흙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제는 아니로군. 점점 녹색이 번지는 것 같은데 화전민들이 일을 한 덕분이군.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화전민 가운데 대가족을 이룬 사람들을 남겨두어 나무를 심으라고 명하였사옵니다. 한 사람 앞에 매년 천오백 그루를 심으라 하였으니 조만간 숲이 되살아날 것이옵니다.”
조선의 화전민은 300만 명이며 이들 중 2%인 6만 명을 산지기로 남겨둘 계획이다. 이들은 황폐한 숲에서 잘 자라는 아카시아나무, 소나무 그리고 오리나무를 심고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모든 화전민이 제대로 된 자리를 찾으면 매년 1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격이다. 아직은 화전민의 자리를 마련할 수 없지만 만주를 정벌하면 자리가 생겨나리라.
조선에서 사용할 기관차의 원형인 Locomotion No. 1입니다. 상업적인 최초의 증기기관차이며 1855년 까지는 현역으로 활동하였지요.
조선에서 사용하는 기관차는 더욱 큰 궤간을 사용하여 1.5배 정도의 출력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