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67화 (67/345)

< 7장 - 현혹 (1) >

이미 조선 조정은 청나라와 일전을 벌일 생각을 굳혔다. 영국은 이미 700만 파운드의 차관을 내놓을 것이라 하였으며 이는 조선의 화폐단위인 신(新)냥으로 1억 7500만 냥에 달하였다.

이 차관은 영국 내부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동일하며 관세조차 없는 무기와 화약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물론 순조는 비변사에서 거행되는 논의의 시작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였다.

“영길리에서 청나라와의 일전을 지원해주겠다 공언하였으나 서신을 보니 사정에 의하여 이율과 공급 단가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하였구나. 세자는 이를 어찌 생각하느냐.”

“아바마마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쟁이 시작되면 즉시 무기의 가격이 뛰어오를 것이 분명하옵니다. 영길리는 우리 조선의 우군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지로는 또 다른 적이옵니다.”

조정에서 영국 사람을 믿는 신료는 많아도 영국이라는 나라를 믿는 신료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상호 동의와 계약을 기반으로 한 거래를 하여야 믿는 수준이었다.

나라의 중핵인 효명세자가 영국에 가지 않았더라면, 설령 영국에 가더라도 빈민가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커녕 영국을 무조건 신뢰하고 있으리라.

이런 일을 막은 다시 한 번 효명세자의 선택에 감사하고 있으니 순조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전 비변사제조로 임명된 조만영을 보면서 말하였다.

“얼마 전에 차관의 이자와 원금을 어느 정도 갚았다 하였지.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현재 차관은 신냥으로 칠천오백만 냥이 조금 안 되오며 매년 삼백만 냥을 갚아야 하옵니다.”

“그러하면 영길리의 수작이 눈에 보이는 것 같군. 기존 차관의 이율은 오 푼(5%)이지만 새로운 차관의 이율은 일 할에 달할 것이다.”

내가 뭐라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 정부에서 차관 도입을 거부하라고 경고를 보내왔으니 순조의 의견을 들은 대신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순조는 이 모습을 보며 고뇌하듯 말하였다.

“청나라와 우호를 유지하면서 가만히 있어도 차관을 갚아나갈 수 있거늘 어찌하여 세상이 변란을 원하는지 모르겠구나.”

“하오나 청나라도 언젠가는 이 조선의 변화를 느끼고 경계를 할 것이옵니다.”

“세자의 말이 옳다. 본래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 법이나 조선이 깨우치고 나아가게 되었으니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구나. 다만 차관은 계속 갚아나가도록 하라.”

차관을 갚아나가는 가장 큰 비중은 홍삼 수출이며 각종 신기술 개발로 거둬들이는 특허료와 운산 금광을 비롯한 각종 자원의 수출이 보조하였다.

이론 상 30년 정도를 가만히 있으면 차관을 모두 갚을 수 있지만 더 많은 차관을 도입하라는 말이었다. 순조는 결단을 내렸는지 수도방위 사단인 성부사단의 사단장 이유수(李惟秀)를 보며 말하였다.

“지금 병졸들의 훈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기병들을 제외하면 제 4사단과 제 5사단이 훈련과 편제를 거의 끝마쳤사옵니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삼은 2사단 영일(迎日)과 평양을 중심으로 삼은 3사단 진부(珍富)는 훈련을 거듭하여 강병이 되었더구나. 조만간 사단의 이름을 지어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이미 5개 사단 35,000명의 병력 편제를 마쳤으며 1년 뒤인 1839년 음력 9월이면 최종적으로 7개 사단이 완전 편제될 예정이다. 순조는 사실상 개전을 선언하듯이 말하였다.

“이미 청나라와의 분쟁을 싹틔울 준비를 마쳤다. 이미 의주 일대에서 오천 근에 달하는 홍삼이 밀수꾼에 의해 청나라로 유입되고 있다 들었다.”

“청나라의 밀수꾼들이 몇 번이고 사로잡혀 엄중한 경고를 받음에도 이제는 도가 지나친 태도를 보일 지경이옵니다. 백주대낮에 압록강을 넘어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하였사옵니다.”

의주 일대에 밀수꾼이 드나든다는 소리는 순조가 꾀를 부려 만들어낸 괴질에 대한 공포가 효력을 잃었다는 소리였다. 이미 연행사(燕行使)도 예전과 같이 대접을 받는다더라.

이미 청나라 조정의 관료들은 상인들이나 여러 소식을 통해 조선의 정보를 입수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으리라.

그러나 오천 근에 달하는 공식 수출 홍삼과 같은 양의 홍삼을 뇌물로 바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첩보가 청나라 황제인 도광제에게 보고되지 않고 중간에 소실되었다.

도광제에게 보고가 올라가면 조선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신의 파견이 이루어지리라. 이렇게 되면 조선에서 몇 번이고 공식 서한을 통해 요청한 밀수 방지에 대한 대책이 수면 위에 불거져 올라올 것이다.

결국 청나라의 부패한 관료들과 서양 열강을 오랑캐로 천대하는 시선이 이런 화근을 불러왔다. 효명세자는 이를 모두 인지하고 순조에게 제안을 하였다.

“소자의 식견이 좁고 경험이 일천하여 옳은 말인지는 모르겠사옵니다만 청나라에게 더 많은 물산을 공급하여 눈을 가리고 현혹을 시키시옵소서.”

“아니다. 아무리 숨기려 하여도 의심은 시일이 지날수록 커질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다음 연행사를 보낼 적에 서역과 통교함을 공언하고 새로운 문물을 보내는 것이 옳을 것 같구나.”

“하오나 서역과의 통교를 행하였다 공언하면 의심이 격분으로 나아갈지도 모르옵니다.”

끝까지 숨기자는 효명세자와 어느 정도 소식을 알려주자는 순조가 의견을 대립하였지만 양 쪽 모두가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순조는 결국 나를 바라보며 의견을 물어보았다.

“박현상 자네가 보기에는 어느 쪽이 옳은가. 설령 세자의 의견이 옳다 하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니 자네의 뜻을 논하여 보도록 하라.”

“신 박현상 감히 아뢰오니 주상전하의 방침이 옳사옵니다. 이는 청나라가 대국임을 고려한 판단이니 신이 이에 대해 상세히 논하겠사옵니다.”

발언 기회를 얻었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어차피 청나라가 조선의 현실을 알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이득을 최대한 챙겨야 하는 법이었다.

“첫째 이유는 청나라가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자 대국으로 생각하는 오만함이 보이기 때문이옵니다. 사실을 고변해도 오랑캐들이 번국과 교역을 행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옵니다.”

“옳은 말이로군. 듣자하니 상인들이 병장기를 언제라도 판매하려 하였지만 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였지.”

“실로 그러하옵니다. 오랑캐라 상대를 한없이 얕잡아보며 문물을 천히 여기는데 조선에서 같은 일을 행하여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옵니다.”

순조는 서양의 병장기의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있었다. 조선에서는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변란인 홍경래의 난에 새로 편성된 일개 사단을 보내면 변란을 30일 이내에 진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예외적인 인물이 몇 있기는 하다. 아편전쟁 시기의 임칙서 같은 경우는 서양의 무기를 받아들이고 군사학을 익혀 자신이 담당하는 광주는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그래보았자 다른 군대가 형편없이 약해서 아편전쟁에서 패배하였지만. 다들 내 의견에 동의하여 다음 의견을 제시했다.

“둘째 이유는 청나라가 대국이라는 점이옵니다. 우리 조선은 전신을 통하여 각지의 소식을 속속들이 알 수 있사오나 청나라는 명을 내리고 이행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옵니다.”

실제로는 지방 행정의 ‘ㅎ’ 자도 없는 엉망진창의 나라이지만 대국이라 인식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를 포장하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설령 청나라가 경계하여 전쟁이 일찍 벌어져도 큰 문제가 없사옵니다. 병력 소집에만 일 년은 걸릴 것인데 이 나라의 군대는 한 달이면 의주에 모일 수 있사옵니다.”

“일곱 개 사단이 완전 편제되고 1년의 훈련을 마친 1840년 9월을 개전 시기로 결정하였지. 청나라가 지금 군대를 소집하여도 우리가 먼저 요동까지 군대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이로군.”

“물론 요동으로 진격하며 회전을 벌여야 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이 나라의 군대가 고작 한 번의 회전으로 무너질 약졸은 아니옵니다.”

조선이 선전포고고 뭐고 없이 기습적으로 공격하면 북경이 함락될 때 까지 무주공산 수준으로 진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들 이해하였으니 마지막 과정으로 넘어갔다.

“셋째는 청나라와의 전쟁 이후 교역을 실시해야 하니 상품의 소개가 필요하옵니다. 이미 그랑제콜 분원의 학자들이 수많은 물산을 연구하였는데 눈앞에 큰 시장이 있지 않사옵니까?”

“이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군. 청나라는 대국이니 모든 물산을 자급자족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부패한 관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은 이상 교역이 영원히 중단될 것 같군.”

“하오나 일부 부패한 관료가 밀매를 실시할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청나라에서 이미 금지된 아편도 버젓이 팔려나가고 있사오니 기회를 노리시옵소서.”

내 설명을 들은 효명세자는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오히려 순조가 내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성균관에서 일하며 그랑제콜의 명분 상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이목연(李穆淵)을 바라보았다. 이목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를 올렸다.

“얼마 전 에이다 바이런 교수가 새로운 자동방적기의 실험을 마치고 양산에 들어갔사옵니다. 또한 조일준이 곤포를 사용하여 곤포당(昆布糖 - 글루탐산나트륨)을 만들고 있사옵니다.”

“이번 연행사에는 저 두 가지 물품을 활용하여 청나라의 비위를 맞출 것이네. 서역의 열국들을 오랑캐라 얕잡아보며 신기한 물건을 조공으로 바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아닌가.”

결국 순조의 뜻대로 어느 정도의 진실을 고변하고 청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연행사가 결정되었다. 사행의 총 책임자는 예전에 일준이와 합을 맞추었던 박기수(朴綺壽)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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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소개할 물품 확인을 위해 박기수와 함께 그랑제콜을 방문하였다. 박기수는 먼저 에이다가 완성한 자동방적기를 확인하러 다른 곳으로 향했고 나는 일준이와 만나 글루탐산나트륨을 확인하였다.

“글루탐산나트륨은 이미 초도 생산을 시작했어. 처음에는 전기분해로 만든 수산화나트륨과 염산의 품질이 별로라 못 먹을 물건이 나왔지만 이제는 제법 맛있는 물건이 나오더라.”

예전처럼 다시마를 쪄내지 않고 염산으로 녹여내는 공정이 보였다. 여기서 용해된 염산에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하면 글루탐산나트륨 분말이 가라앉았고 일준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은 초도 완성품은 육 개월 전에 나왔지만 이 물건은 프랑스에 머무는 조아키노 로시니에게 보냈지. 글루탐산나트륨······. 그러니까 곤포당의 유럽 특허를 판매한건 알지?”

“이미 거래가 정해진 물건이니 상관은 없지. 아까운 일이지만 어쩌겠어.”

“아까운 일은 아니더라. 로시니는 미식가라서 이걸 활용할 방법을 알려주더라고.”

로시니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일종의 레시피 목록이 적혀있었다. 로시니는 글루탐산나트륨을 본래 물질로 팔지 않고 여기에 맛을 더해 개량한 맛소금 형태로 팔려 하였다.

로시니의 신비한 허브소금은 바질이나 로즈마리를 비롯한 허브에 소금 그리고 10%의 글루탐산나트륨이 섞여 있었다. 아마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한 미각공식을 적어 넣었으리라.

짜릿한 버섯소금, 화려한 스프를 위한 비프스톡을 비롯한 글루탐산나트륨의 활용 공식이 적혀있었다. 심지어 로시니가 편지의 마지막에 남긴 말은 극찬에 가까웠다.

- 미각의 정점을 제 눈으로 확인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미각 지식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공식을 몇 개 만들어 보았으니 이를 응용해 주시지요.

“결국 뭐라 포장해도 허브가 들어간 맛소금이랑 비프스톡이잖아.”

“내 말이. 그래도 이 맛소금들이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리지 않겠어?”

글루탐산나트륨의 프랑스 수출가격을 확인해 보았는데 1kg당 50프랑에 불과하였는데 이 돈이면 원가에 못 미칠 지경이었다. 이 수치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일준이에게 물어보았다.

“이거 제대로 된 가격 맞아? 소금물로 염산과 수산화나트륨을 만들고 그 비싼 말린 다시마를 사용해야 하는데 정말 이 가격에 수출할 수 있다고?”

“이미 다시마 양식을 실시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 그렇지 않아도 양식 다시마가 막 성공해서 첫 물량이 들어왔어.”

현대에는 다시마 양식이 가능하지만 이 시대에는 가까스로 김 양식이나 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정말 조선에서 팔리는 다시마보다 좀 얇고 작은 말린 다시마가 있었다.

일준이는 이 말린 다시마를 몇 개 확인해 보더니만 하나를 꺾어 조그마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녀석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먹어온 물건인지 질겅거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품질이 그리 나쁘지는 않네. 조선 사람들 입맛에는 다시마가 너무 부드럽고 두께도 얇지만 어차피 가수분해할 물건이니 상관없어.”

“내가 알기로 다시마를 비롯한 해조류는 포자로 번식하는데 이 시대에 양식이 가능해?”

“엄밀히 말하면 양식이 아니고 장뇌삼 같이 애매한 과정으로 종자를 붙이는 방식이지.”

일준이는 다시마 양식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먼저 다시마의 원산지인 원산 인근에 갯바위를 파낸 연못을 여러 개 만들어 둔다. 여기에 수차를 이용하여 신선한 바닷물을 계속 공급하여 생태계를 유지한다.

이후 근방에서 채취한 다시마에서 신선한 뿌리부분을 도려내서 연못 안에 포자를 뿌리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수온과 산소공급량까지 조절했다 하더라.

일준이는 양식 다시마를 검수하는 교수 중 한 명인 생힐레르 데 아우구스투스(Auguste de Saint-Hilaire)를 흘겨보며 말했다.

“내가 너무 바빠서 기초 개념만 제시하고 손을 댈 수 없었는데 아우구스투스 교수가 도움을 많이 줬지. 내가 모르던 과학자였지만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야.”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네. 서양에서 다시마 같은 물건은 바다잡초(see weed)취급을 받지?”

“고작 잡초라 하지 마시지요. 제가 조선에 와서 해초를 양식하고 즐겨서 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옛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법 아닙니까?”

아우구스투스 교수는 우리의 말을 듣고 쾌활하게 답했다. 세계 최초로 해조류인 김 양식에 성공한 나라가 조선이었고 이 기술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다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우구스투스 교수는 수온을 정리한 표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소한 문제가 있으니 서해의 수온이 높은 편이라 양식 다시마가 8월 이후에는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양식을 편히 하려면 수면 근처에서 해야 하는데 참 골치가 아프군요.”

“그럼 서해에서 양식을 하려면 매년마다 원산에서 다시마 종자를 밧줄에 붙여서 남해와 동해를 거쳐 끌고 와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차라리 원산 인근에서 다시마 양식을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른 식물종도 이러한 기후를 고려하면 대량 육성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군요.”

결국 기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노릇이니 동해안 다시마 양식을 추천해야겠다. 원대한 성과를 거둔 아우구스투스 교수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갔고 일준이는 다음 공정을 소개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 설명을 조금만 쉽게 해주겠소?”

“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던데요? 더 쉽게 하라면 도저히 못 하겠어요.”

옆구리에 손을 대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에이다의 앞에 박기수가 머리를 감싸 쥐고 수학과 공학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자네라면 젊고 머리가 영특하니 알 수 있겠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다른 교수를 만나서 좋은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네.”

“저도 모를 것 같습니다만.”

철컥거리는 소리가 맴도는 방 안에는 사상 처음으로 제작된 자동방적기. 천공카드를 통해 원하는 무늬를 짜낼 수 있는 방적기가 가동되고 있었다. 에이다는 실망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한센 박에게 소개해드리기는 부끄럽지만 오 년을 노력한 작품인 자카드-에이다 방적기의 첫 물건이 드디어 완성되었어요. 아직 제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네요.”

기존의 방적기보다 훨씬 느린 속도이지만 분명히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방적기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팔뚝만한 크기의 천공카드를 삼키고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방적기는 붉은색, 노란색, 청색 그리고 검은색의 실을 배합해가며 직물을 직조하고 있었다. 대충 옷감 한 필을 짜내는데 하루를 걸릴 것 같은 속도였지만 사람보다는 빨랐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계는 익숙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록 색이 너무 화려하여 촌스럽고 애매한 느낌이 들었지만 호피무늬와 비슷한 옷감을 직조하고 있었다.

“이건 호피무늬 아니야?”

“네! 타입 1번 호피무늬에요. 날실(세로실)은 기본 색상인 노란색으로, 씨실(가로실)은 여기에 검은색 무늬를 넣는 방식이에요. 이론상 세 가지 색상을 추가로 넣어서 더욱 화려한 무늬를 만들 수 있어요.”

이건 방적기이기도 하였지만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원시적인 프린터이기도 하였다. 대체 뭘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에이다는 머리가 부셔질 것 같은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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