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 두 노예 >
화기애애하게 시작하여 혼란과 불꽃으로 마무리된 사업 설명회가 끝났다. 마무리는 사진 촬영이었는데 하나같이 폭염과 혼란에 질린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삼 분만 기다리십시오!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졸업생의 사진 촬영도 끝나고 일준이에게 배정된 연구실에 들렀다. 녀석은 건물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참 황당한 노릇이네. 이황화탄소에 적린을 비롯한 인(燐)이 융해되는 실험을 한 번 했는데 급하다고 이걸 시험해 버리다니. 안전수칙도 깡그리 무시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수습 안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 군사 시연장이라면 환호성을 받았겠지만 하필 사업 설명회를 하는 중이잖아.”
“아마 종친으로서의 자존심과 조선 출신 졸업생의 대표로서의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 네가 수습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나도 골치가 아팠을걸.”
일준이가 말을 굳이 안 했지만 퇴학이나 정학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으리라. 나름 수습이 잘 되었다 생각했는데 일준이는 이하응의 실험 보고서를 확인하고 말하였다.
“본래 인조섬유인 레이온을 만들려고 준비하던 물건이 이황화탄소였어. 학과장인 내가 다루니 다른 학생들은 신주단지 모시듯 연구했고.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지.”
“레이온을 만들 수는 있고? 만들게 되면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상품인데.”
“어림도 없더라. 수산화나트륨의 순도가 높아서 시도해 보았는데 중간 유도과정도 힘들어. 그래도 이런 실험을 하지 않으면 화학이 발전하질 않으니 도리가 없었지.”
일준이는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정밀도나 기술력이 부족하여 만들 수 없는 물질은 연구를 해 보고 제자들이나 다른 천재들이 이를 완성하기를 원했다.
이황화탄소 실험도 결국 레이온이라는 합성섬유를 더욱 빠르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럼 이걸 써도 되는지가 궁금했다.
“그럼 이황화탄소는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야? 살충제 용도로 사용한다면서?”
“살충 효과가 뛰어난 건 맞는데 인체 독성도 심하고 보관도 어렵지. 그나마 물에 안 녹고 물보다 무거운 성질을 이용해서 수중 및 냉암소에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니까.”
녀석은 이황화탄소의 위험성을 설명해주었다. 폭발은 물론이요 독성이 강해 정신이상과 시각장애를 시작으로 수많은 위험이 있으니 철저히 환기하고 관리하며 실험한다고.
반면 이하응이 만든 백린탄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하였다. 내가 보아도 착탄과 발화까지의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일준이도 이를 감안하여 평가를 내렸다.
“현대처럼 만든 백린탄이면 모를까 이황화탄소로 만든 백린탄은 사용이 굉장히 불편해. 유산탄의 살상범위를 감안하면 나을 것도 없으니 연막탄 용도로 쓰거나 공성용 아니면······.”
일준이가 말을 흐렸는데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일방적인 대량학살에 사용해야 효과적인데 결국 민간인을 상대로 쓴다는 소리다. 일준이는 이를 알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물론 알프레드 노벨처럼 심리적 부담을 짊어지진 않겠지. 노벨이야 무연화약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했지만 녀석은 우연에 의한 발명이니까.”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은데 너 이하응을 의심하고 있지?”
“혹시나 날 속이고 야심을 숨긴 채 권력욕을 무럭무럭 키우지 않을까? 본래 역사에서 한 일이 있으니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아.”
일준이의 염려와 달리 이하응의 상황과 기반도 달라졌다. 순조도 멀쩡히 살아있고 효명세자도 살아있으며 미래의 헌종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가족 관계도 달라졌다. 남연군은 더 오래 살게 되어 유럽에 머무르고 얼마 뒤 귀환할 예정이다. 여기에 둘째 형인 흥완군(興完君) 이정응은 포병 화력시험을 보더니 장교가 되겠다고 아우성을 쳐댄다.
설령 일이 터져도 얼마 전 복권된 순조의 사촌 이광(李㼅)이 비상시에 왕위를 물려받으리라. 이를 고려하니 이하응의 즉위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남연군 계열의 이하응이 즉위하려면 방법이 있기는 해. 창덕궁에 운석이 한 발 떨어지고 진고개 근처에 살고 있는 이광의 자택에도 운석이 한 발 떨어지면 가능하겠지.”
“여기가 퉁구스카도 아니고 운석이라니 뭔 소리야. 야심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즉위 가능성도 없고 머리도 좋으면 내 연구생이 되어서 박사학위 논문까지 제출하고 교수까지 역임해야지.”
“웃는 얼굴로 잔인한 소리를 잘도 하네.”
일준이는 내 이야기를 듣자 웃음을 참으면서 끅끅거렸다. 에이다나 갈루아 같은 천재를 만나본 녀석이 머리가 좋다고 말하니 이하응의 재능이 보통 수준이 아니리라.
밤이 깊어가서 돌아가려 하는데 본관에 아무도 없어야 할 건물의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발소리라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과장님 계십니까? 저 흥선도정입니다. 오늘 무례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으니 학과장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들어오도록 하게.”
창백한 표정의 이하응이 손발을 벌벌 떨며 들어왔고 그 뒤에 오귀스트 마르몽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함께하였다. 자리에 앉은 이하응은 초조한 표정으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사고를 치고 가까스로 수습한 철부지의 모습이다.
저게 연기라면 당장 오페라 배우로 뛰어들어도 대성공을 거둘 정도의 연기력이 확실하다. 마침내 한참을 고민한 이하응의 입이 열렸다.
“오늘 무리한 일을 저질러 학과장님은 물론이요 교수님들과 졸업생 일동에게 큰 폐를 끼칠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게 되었습니다. 죄를 뉘우치고자 하니 저의 학위를 거두어 주십시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실험의 안전성 검토조차 안 한 물건을 무턱대고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크나큰 잘못이며 퇴학에 준하는 처벌을 받지 않습니까?”
이하응이 처음 실험했을 때는 이황화탄소와 백린의 혼합물이 스스로 불을 붙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였으리라. 아마도 뇌홍을 대신한 발화용 물질로 사용할 수 있다 생각했겠지.
욕심을 앞세워 물질을 대량으로 사용하니 위험성이 폭주해 사고를 칠 상황까지 악화된 것이다. 이하응은 나와 일준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학과장님이 나서서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외무승지님이 사태를 수습하지 않았다면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지 않았습니까? 그러하니 이 잘못을 뉘우치려 합니다.”
“그렇다고 배운 것을 모조리 묻어버리고 학위를 받지 아니하면 지난 사 년의 노력은 어떻게 할 셈인가? 자네를 가르친 교수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아무리 봐도 제자를 타이르는 교수가 아닌 노예를 잡아오는 교수가 하는 행동이었다. 일준이는 이하응의 연구서를 다시 확인해 보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하였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네. 자네가 작은 규모로 연구하던 물건을 명확히 알지 못했고 행사를 진행하느라 같은 물건을 두 졸업생이 발표하게 만들었지.”
“학과장님의 잘못은 없습니다.”
“제자의 잘못은 스승이 감당하는 법이지. 자네의 학위를 거둘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내 아래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모두 이수하도록 하게. 이게 내 답변일세.”
이하응은 멋도 모르고 감동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고 일준이는 웃음을 참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인사를 받아들였다.
결국 이하응은 멋도 모르고 일준이의 은혜에 힘입어 대학원생이 되었다. 서류까지 작성한 이하응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자 일준이의 첫 명령이 떨어졌다.
“다음 달에 입학식이 거행될 것은 잊지 않았겠지? 내가 보기에는 아직 마음을 다스려야 하니 완두콩의 육종(育種) 실험을 내가 배정한 신입생들과 진행하도록 하게.”
“학과장님께서 이렇게 배려를 해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돌아가 푹 쉬도록. 앞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이수하는 사람을 각 교수에게 배정할 예정이지만 자네는 내 아래에서 연구생으로 일해야 할 걸세.”
겉으로 보기에는 실수를 저지른 제자를 학과장이 감싸주는 것 같으니 아무려면 좋았다. 이하응이 인사를 올리고 돌아가자 마르몽이 일준이에게 제안을 하였다.
“폭염수라는 물건으로 포탄을 만들 수 있을까 하여 찾아왔지. 혹시나 가능한 일인가?”
“이황화탄소와 백린 모두 충격으로 인하여 자폭할 수 있는 녀석입니다. 직사포격은 불가능하고 박격포를 이용하여 약하게 곡사로 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것 같군요.”
“자네는 신형 화약을 응용한 포탄과 총알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정말 불가능한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려면 언제나 문제가 기다리는 법입니다. 당장 쓸 수 있는 물건은 박격포용 탄환을 만드는 것이 전부로군요.”
오귀스트 마르몽은 포병 원수 아니랄까봐 백린탄의 가능성을 전장에서 시험해보고 싶은 것 같았다.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이를 시험하려 하는 것 같은데 일준이는 딱 잘라 말하였다.
“일 년이면 시간도 예산도 너무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백린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안전을 극도로 중시한 실험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가 힘들다고 말하니 참으로 아까운 일이로군. 보나파르트가 전선에서 늘 요청하던 푸댄퍼(feu d'enfer – 지옥불)와 같은 포화를 내 손으로 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단 박격포용 포탄을 실험용으로 몇 개 만들어 두겠습니다.”
프랑스는 소극적인 러시아와 달리 적극적인 참전으로 더 많은 이득을 얻어내길 원하였다. 이러한 의지도 영국의 외교가 개입하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마르몽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는데 익숙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손자인 마티아스 그루시가 졸업하는 와중에도 방문하지 못 한 에마뉘엘 그루시가 이제야 방문한 것이다.
“마르몽 자네가 여기에 있었군. 마침 한센과 닐슨 두 명도 함께 하고 있다니 잘 되었네.”
“오늘 재미있는 물건을 보아서 말일세. 자네는 왜 도성에 늦게 방문하였나?”
“배를 타고 내려오는 중에 풍랑으로 시일이 지체되었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금 전에 도착해서 손자의 졸업식에도 참관하지 못 하였네.”
그루시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연구실에 걸린 흑백 사진 속의 마티아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참 감상을 마친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네는 청나라의 근황을 잘 알고 있겠지. 청나라와 같이 부패하고 주변의 상황을 모르는 나라라면 군벌들이 멋대로 뛰쳐나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도적떼에 불과한 놈들이 멋대로 날뛰며 국경을 넘을지도 모르지요.”
마르몽은 그루시가 전쟁이 벌어지면 멋대로 사라질 것이라고 투덜댔지만 같은 원수로서 그의 판단만큼은 존중하였다. 그루시는 불안한 듯이 일준이와 나에게 물어보았다.
“결국 급하게 병력을 옮겨야 할지도 모르는데 철도 노선이 제대로 완공되지 않아서 문제라네. 이제야 평양을 넘어 안주군이라는 도시로 향한다고 들었는데 한참 남지 않았나?”
“그야 아직 테르밋이 해금이 안 되어서 벌어진 일입니다. 알루미늄을 대량으로 소모하여 선로 공사를 가속할 수 있는 신기술인데 이를 공개하면 영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알루미늄의 원료인 빙정석 수출을 중단시키고 가격을 끌어올리겠지. 놈들은 언제나 혐오스러운 짓을 저지르니 할 일이 눈에 보이는 것 같군.”
테르밋 반응의 공식적 발표일은 프랑스와 협의를 보아 1839년 양력 9월 1일로 정했다. 앞으로 한 달도 안 남았고 철도 공사를 마치고도 남을 수준의 알루미늄을 비축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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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와의 시범적 교역이 이루어지고 다시 한 번 밀수꾼에 대한 단속을 요청한 9월 1일. 새로운 기술인 테르밋 반응의 시연회가 막을 올렸다. 이는 철도 공사의 최전선인 안주군에서 거행된 행사였다.
“이번에는 또 다른 신기술을 도입하겠다고 하시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철도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하려면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야지 기술 도입이라니요?”
총 책임자 이점버드 브루넬은 3월부터 8월까지는 각지의 토목 공사를 실시하고 9월부터 2월까지는 철도 공사에 매진하였다. 그의 초조한 표정을 보며 철도 공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공속도가 예정보다 느려진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조선의 땅은 북부로 올라갈수록 지형이 험해지기도 하지만 동결심도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안주 쯤 되면 삼 피트가 넘고 안전을 감안하면 오 피트로 보아야지요.”
“제가 알기로 동결심도는 땅이 얼어붙는 깊이라 하였습니다. 그럼 땅이 일 미터가 넘게 얼어붙는 겁니까?”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나마 이건 노동력을 더 투입하면 해결 될 일이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조선에서 만드는 선로의 품질 문제이지요.”
이점버드 브루넬은 레일을 현장에서 확인하며 불량품을 선별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기술자들이 레일에 압력을 가하고 표면을 긁으며 측정하고 있었다.
“이런 험준한 지형에는 최소한 십오 피······. 오 미터의 선로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안전하게 하중을 지탱할 수 있고 속도를 유지하여도 문제가 벌어지지 않지요.”
“기존의 선로는 길이가 삼 미터 아니었습니까?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요.”
“공학적 요구치를 계산한 결과입니다. 선로는 기차가 움직이며 발생시키는 동하중(動荷重)을 감당해야 하는데 구배가 클수록 문제가 됩니다.”
설명을 요약하면 철도의 레일이 짧을수록 경사로 인한 불균등한 하중을 감당하기 힘들다 하였다. 여기에 짧은 레일로 인한 진동이 겹치면 기차가 이탈할 위험이 폭증한다더라.
“이를 닐슨 조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만드는 삼 미터 선로의 불량률은 십 퍼센트 내외이지만 오 미터 레일부터는 불량률이 삼십 퍼센트가 되어서 문제이지요.”
이점버드 브루넬은 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 제대로 된 선로를 수입하라는 압박을 가해왔다. 불량률이 말이 30%지 실제로는 더 높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렸으니 다행이다. 테르밋 반응의 준비를 마친 일준이가 다가와 손짓을 하며 나와 이점버드 브루넬을 불렀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어서 오시지요. 앞으로 조선의 철도 공사에 적용할 신기술입니다!”
“무슨 기술인지 알 길이 없지만 제 기대가 제발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향한 곳에는 삼 미터 레일 두 개가 가운데에 점토로 만든 거푸집을 두고 맞닿아 있었다. 이점버드 브루넬은 이 모습을 보더니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삿대질을 하였다.
“지금 레일을 가지고 장난치시는 겁니까! 닐슨 조도 기본은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였는데 철을 함부로 야지에서 가열하면 물성이 약화되어 고철이 됩니다!”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고 철도 공사의 혁신을 가져올 신기술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점버드 브루넬이 말리건 말건 테르밋 반응이 시작되었다. 알루미늄이 점화되며 산화철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석면을 겉에 덧댄 방화복을 입은 사람이 철이 융해되다 못해 증발하는 수준의 온도의 테르밋을 도가니에 부어넣었다. 거푸집에서 격한 불꽃이 치솟자 이점버드 브루넬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론 상 가능한 일이야. 두 금속이 완전히 융해될 정도의 강한 열로 단번에 접합시키면 물성이 유지되고도 남지······.”
거푸집을 떼어내고 달라붙은 여분의 철을 뜯어내자 두 레일은 완벽하게 접합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이점버드 브루넬이 물성을 시험하였지만 모든 검사를 통과하였다.
“앞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여 철도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철도는 물론이고 철갑선의 리벳접합을 대신하여 거대한 선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군요.”
“제발 이 기술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제가 십 년 이내에 조선을 위하여 이 금속 접합기술을 활용한 철갑선을 설계해 보겠습니다! 전열함보다 거대한 녀석으로요!”
이점버드 브루넬은 이득이고 뭐고 관심도 없이 일준이에게 매달렸다. 이전과 달리 조선과 함께 기술을 공유하면 저절로 떡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이하응이 일준이의 노예가 되었으며 이점버드 브루넬은 조선의 노예가 되었다. 두 노예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할 일이 넘쳐나리라.
작가의말
이하응 : 교수님이 기회를 주시니 평생 은혜로 생각해야지.
이점버드 브루넬 : 공학! 내 공학적 망상이 현실로 다가온다!
일준이 : 그러면 노예 계약서에 서명하시지요.
이점버드 브루넬은 건축적 성과도 대단하지만 증기선의 설계도 진보시켰습니다. 말년에는 1만 8천톤의 거함 그레이트 이스턴호도 만든 사람이지요.
이 사람이 결국 조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철과 철을 접합하는 신기술을 보았는데 눈이 안 돌아가면 사람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