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83화 (83/345)

< 9장 - 의회 >

북경에서 도망치듯 떠난 경연군은 1840년 양력 6월 초에 조선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남은 석 달이 조금 넘는 시일은 조선 입장에서 전쟁을 치르기 전 마지막 훈련을 치를 시기가 되었다.

이 소식은 영국에게도 전해졌다. 연락선이 두 달 내내 움직여 1840년 8월 초 영국에 닿았고 순조의 계획을 모르는 아서 웰즐리는 총리에서 물러나 총사령관으로 재임하며 이를 확인하였다.

“청나라가 오만한 태도를 취한 덕분에 조선이 조금이라도 선전할 수 있겠군. 장교들을 집합시켜서 크릭스필 모의전투를 실시하도록!”

크릭스필(Kriegsspiel)이라는 명칭의 워 게임은 1812년 프로이센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물건이었다. 이는 가급적 전장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한계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가상의 전투이며 전쟁에서 배제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쟁 경험이 많은 고위 장성인 웰즐리가 심판을 하였다.

“제 삼십사 회 조선 – 청 가상 전투를 진행하겠습니다. 최근에 들려온 소식에 맞추어 조선군의 개전을 1840년 구월 이십육 일로 설정합니다.”

“제군들은 현실이나 워 게임의 규칙과 다른 점이 있더라도 내 판정에 맞추어 전투를 진행하도록. 이번 가상 전투는 조선에게 최대한 유리한 판정을 내릴 예정이야.”

가상으로 만들어진 조선 북부, 만주, 요동 그리고 산해관까지 나타난 지도에 병력이 배치되었다.

의주에서 출발한 조선군은 본대가 3만 2천 명에 치중대 및 호위 병력이 10만여 명에 불과하였다. 반면 청나라의 군대는 보병과 기병을 합산하여 순수 병력만 24만에 달했다.

“이동 판정을 내리겠습니다. 조선군과 청군 모두 무사히 출병을 마쳤습니다.”

“청나라 군에게 역병이 돌았다고 가정하고 이십 퍼센트를 제거하게. 또한 기습적인 폭우로 인하여 보급 체계가 엉망이 되어 이십오 퍼센트가 출발지에 묶였으니 진군을 늦추고.”

“규칙에 지나치게 어긋납니다.”

“어긋나지만 조선이 섬기는 신들이 보우하였다고 하도록.”

온갖 불리한 판정을 덮어쓴 청나라 군대는 마침내 조선군과 일전을 벌였다. 주사위가 굴러가고 전장 위의 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전투 손실을 표현하였다.

“조선군 전열보병 연대 세 개 소멸!”

“청군 기병 연대 네 개 붕괴!”

“청군 포병 대대 붕괴! 전열보병 연대 여섯 개 소멸!”

“판정이 조금 부족한 것 같군. 청나라의 녹영군은 착검돌격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던 시대 수준으로 가정해야지. 조선군 전열보병 연대를 하나 부활시키도록.”

웰즐리는 청나라의 군대가 구시대적 전술과 병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구시대적 전술과 병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가장 케케묵은 구시대의 전술은 막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관들이 말하던 착검돌격이었다. 당연히 장교들은 이 논리에 반박하였다.

“아무리 구시대적이라고 하여도 적의 대열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착검돌격이라니요? 적의 대열이 완전히 붕괴된 다음 실시하지 않습니까?”

“그래보았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내 말 대로 하도록.”

“지금 조선군의 전투력을 레드코트 숙련병에 준하는 수준으로 설정하였는데······.”

첫 대군끼리의 전투는 조선의 승리로 끝났다. 12만에 달하는 청나라 군대를 우월한 무기와 훈련도 그리고 편파판정으로 압도적인 피해를 입혔다.

물론 녹영군과 팔기군에 대한 고증이 완전히 어긋났지만 이들은 웰링턴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약한 군대였다. 이로 인하여 조선군의 피해도 제법 누적되었다.

조선군의 주 병력은 2만 9천으로 감소하였으며 청나라는 9만 6천명이 되었지만 후방의 부대가 합류하며 다시 16만 명을 회복하였다. 웰즐리는 아예 조선에게 후하게 퍼주기로 하고 다음 전투까지 진행하였다.

“두 차례에 걸친 회전 이후 조선군의 인원은 이만 육천 명, 청군의 인원은 십일만 명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해상 보급이 가능한 시기입니다.”

“조선은 병력 충원이 아직까지 불가하지만 청나라는 충원이 가능합니다. 출발지인 산해관에 증원 십만 명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웰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점심으로 먹을 삶은 달걀을 깠다. 그가 달걀에 로시니의 신비한 허브소금을 뿌려 소금 범벅으로 만든 것처럼 전략이 변하였다.

청나라의 군대는 두 차례에 걸친 회전을 마치고 분열하였다. 후방 수비를 위해 2만으로 줄어든 조선군을 보병인 녹영군이 가로막고 청군의 절반에 달하는 5만의 기병이 분열하여 후방을 유린하였다.

“조선군 보급 실패! 보급대가 청나라 기병 연대에 격파되었습니다!”

“조선군 후방의 부상병이 기습당하였습니다!”

“바다가 얼어붙어서 해상 보급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웰즐리의 기준에서 아무리 나약한 기병이라 하여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 시대 기병의 본분은 우회와 추격 그리고 허점을 노리는 예상을 뛰어넘은 공격이었다.

기병들의 요격으로 보급이 끊기고 겨울 추위에 시달린 조선군은 회전 두 번으로 입은 손실을 집어삼킨 채 의주 방면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이 진격을 재개한 것은 전쟁 시작 후 5개월이 지난 1841년 2월이었다. 불만스러운 듯이 조선군의 규모를 확인한 웰즐리는 다시 말도 안 되는 편파판정을 내렸다.

“조선군에게 사단 두 개를 증원······. 아니, 세 개를 증원하도록.”

“사단 세 개면 이만여 명에 달합니다. 이 인원들을 어디서 데려오셨습니까?”

“프랑스에서 사단 두 개를 동원하고 러시아에서 어떻게든 사단 하나를 충원했다 가정하지.”

장교들은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 중얼거렸지만 웰즐리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3개 사단, 약 2만여 명이 합류하며 조선군의 규모는 4만으로 불어났다.

조선군은 치중대를 호위하며 느릿느릿한 진군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요동의 요충지 심양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심양성의 탈환을 목표로 삼은 청군과 다시 회전이 벌어졌다.

“전장 기후 판정을 내리겠습니다. 호우입니다!”

“한 번 정도는 조선군도 당해야겠지. 그대로 진행해!”

양력 6월의 요동에는 삼 일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린다. 주사위의 눈이 2를 가리키며 전장에는 비가 쏟아졌고 다음 판정으로 이슬비나 가랑비가 아닌 제대로 된 비가 내렸다.

비로 인하여 전열보병은 제대로 된 사격이 불가능하였고 기병이 전장에 난입하였다. 한 장교가 심양성으로 조선군을 후퇴시키려 하였지만 웰즐리가 이를 제지하며 말했다.

“자네는 멍청이인가? 심양성에 머물러 있으면 청나라 기병이 조선군의 요충지인 의주를 타격할 걸세. 불리하더라도 이럴 때에는 억지로 끌려 나와 회전을 해야지.”

빗줄기 속에서 기병에게 호되게 당한 조선군은 편파판정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을 입었다. 다시 3만 명으로 줄어든 조선군을 기다리는 것은 충원된 청군이었다.

“청군 육만 명 충원되었습니다.”

“조선군은 더 이상 충원이 가능하긴 할지 모르겠군. 신병 충원은 석 달 뒤로 미뤄.”

6월부터 8월까지 삼 개월 동안 조선군은 불리한 상황에서 회전을 강요받으며 병력이 3만 명으로 감소해 버렸다. 이마저도 웰즐리의 편파판정 덕분에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워 게임이 진행되며 개전 이후 1년이 지난 1841년 9월이 되었다. 조선군은 기적적으로 압승과 손실이 적은 퇴각을 반복하였지만 2만 4천명으로 인원이 감소하였다.

반면 청군은 첫 전쟁 당시의 규모를 넘어서는 20만 명으로 늘어났다. 심양성을 탈환하였으며 요동의 지배권을 되찾은 청군을 상대로 조선군은 의주에 머물며 수비에 몰두하였다.

“아무리 판정을 후하게 내리고 운이 좋다 해도 이미 끝난 싸움이야. 사실 조선군 입장에서는 기습 공격으로 수도를 정벌한 뒤 협상에 나서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지.”

“의주 함락! 조선군은 안주까지 물러납니다!”

마침내 의주가 함락되고 지도가 변경되었다. 한반도를 나타낸 지도에서 조선군은 안주를 전선으로 삼아 청천강을 낀 채 수비 일관도의 전략을 실시하였다.

조선에서 억지로 만든 해군이 후방을 타격하고 신병을 꾸역꾸역 투입하여 버텼지만 청군의 물량은 끝이 없었다. 청천강 전선이 붕괴되고 평양까지 전선이 물러난 것은 1842년 6월이었다.

이제 영국 의회의 동의하에 웰즐리가 명령을 내려서 조선에 지원군을 보내더라도 최소한 5개 사단을 지원해야 뒤집어질 규모였다. 이는 영국 입장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조선의 패전이로군. 다른 방은 어떻게 되었는지 볼까?”

워 게임은 편파판정이나 지나친 불운을 방지하기 위해 같은 주제로 세 개의 팀으로 실시하는 것이 표준이었다. 웰즐리는 조선이 아무리 버텨도 1842년 2월에 무너질 것이라는 다른 방의 결과를 보고 평가하였다.

“이게 정상적인 결과이지. 애초에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모든 지원을 받아도 희망이 없었는데 상황이 이 꼴이 되어서 어디에 희망이 있겠나.”

지금까지 34회를 세 번, 총 102회나 실시된 워 게임에서 조선은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 하였다.

그나마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것은 단 한 번, 프랑스와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을 가정하여 기습에 성공하고 북경 인근까지 진군한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청나라 수도에 있는 10만에 달하는 호위군에 포위당해 고전을 치르다 몰살당하였지만. 모든 계산이 끝난 웰즐리에게 외무장관 파머스턴이 다가와 질문을 하였다.

“가상 전투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청나라가 만에 하나라도 패배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패배는 뭔 소리인가. 내가 아무리 판정을 좋게 내려도 악전고투 끝에 조선이 무너진다네.”

“참으로 다행이군요. 제가 세운 전략은 오로지 장군님의 판단에 의거한 것이지요.”

“노즈 링(코뚜레) 전략 말인가? 자네도 참 잔혹한 전략을 세운다니까.”

아무 답도 없이 미소를 지은 파머스턴 자작을 본 웰링턴은 질린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파머스턴이 계획한 노즈 링 전략은 청나라를 소로, 조선을 코뚜레로 그리고 영국을 말벌이라 가정하는 계획이었다.

청나라라는 거대한 시장이자 제국은 영국의 무역정책에 반발하였다. 이를 제압할 방법이 없으니 또 다른 우수한 시장인 조선을 억제기로 삼으려 하였다.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패배가 확정된 조선과 청을 중재하며 막대한 차관을 덮어씌워 속국으로 만들고 중재를 실시한다.

물론 오만한 청나라의 콧대를 꺾고 조선과의 중재 협상을 주선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지만 이를 해결할 수단이 있었다. 파머스턴은 이 수단을 확인하듯이 웰즐리에게 물어보았다.

“우리가 강력한 중재자로 나설 수 있는 근거인 해군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네메시스급 철갑증기선 중 하나인 메두사의 시연을 똑똑히 보았지. 일급 전열함이라 해도 당해낼 수 없는 함선이며 화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우수해.”

네메시스급은 배수량이 660톤에 불과하지만 방어력은 1급 전열함을 능가하며 기동력은 프리깃과 대등하였다.

이러한 배라면 선장들이 머저리가 아닌 한 격침될 염려가 없었다. 파머스턴은 웰즐리의 확답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않고 말하였다.

“그러하면 저희가 할 일을 똑바로 수행할 수 있겠군요! 육군이야 무기가 조금 부족해도 인원과 훈련도로 메꿀 수 있지만 해군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알고 있습니다.”

영국은 이번 전쟁에서 철갑 증기선 네메시스와 자매함 중 프랑스의 견제를 위해 남겨둔 한 척을 제외한 세 척을 앞세운 해군 전단을 동원하면 충분했다.

이를 이용해 청나라 남해안의 주요 도시를 무너트릴 수 있었으며 함락 이후 약탈을 통해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예상된 피해는 기껏해야 상륙전에서 기습을 당한 수병 수십여 명에 불과하리라.

설령 청나라에서 프랑스 전열함을 수입해도 네메시스를 당해낼 길이 없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해군에 억눌린 청나라는 영국의 중재를 받아들이리라. 파머스턴은 흥분을 숨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조선은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무역수지도 건실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수입한 물품의 관세와 총 교역 이득이 매년 백칠십 만 파운드에 달하지 않습니까?”

웰즐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조선은 동방의 극빈국이라는 인식을 몰아낼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였고 영국에서도 본받을 정도로 계획적인 정책을 수립하였다.

건실한 농업체제를 유지한 채 증기기관을 통한 산업발전과 철도부설을 비롯한 목표를 모두 초과달성하였다. 이 성장세까지 감안한 파머스턴은 다시 말하였다.

“청나라와 조선의 전쟁을 중재하고 중앙집권과 괜찮은 수준의 행정력을 가진 정부를 차관으로 얽어매면 이 이득을 더욱 극대화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청나라를 억제하면 매년 삼천만 파운드가 넘는 추가······.”

“그야 충분히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다만 이 전략을 위해 프랑스와 러시아의 외교 관계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나? 이를 어떻게 무마할 셈이지?”

“조차지를 주면 놈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겠지요. 러시아에게는 조선의 함경도 북부를 떼어주고 프랑스에게는 전라도의 남부를 떼어주도록 합시다.”

웰즐리는 파머스턴의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에는 조선을 통해 이득을 얻어내려 하였으나 파머스턴이 이를 더욱 큰 이득으로 만들려 하였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 웰즐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 내각 총사퇴를 각오해야겠군.”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습니까? 철갑 증기선 네메시스와 자매함들이 갑자기 침몰이라도 합니까? 아니라면 조선의 육군이 청나라 군대를 돼지를 만난 호랑이처럼 도륙이라도 한답니까?”

“그럼 청나라의 기병은 어떻게 육성하는지 궁금하군. 혹시나 훈련을 대신하여 도적떼처럼 백성들을 약탈하고 학살하며 아편을 먹는다고 할 셈인가?”

농담이 진실을 말했지만 웰즐리의 입장에서 알 길이 없었다. 만약 프랑스나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면 그루시가 상대한 팔기군의 몰골이 유출되겠지만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외교관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마침내 의회가 소집되었고 총리인 멜버른 자작 윌리엄 램이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조선 – 청의 전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아서 웰즐리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발언을 시작하였다.

“저는 예전부터 조선의 왕자를 만났습니다. 그를 통해 조선이 정상적인 독립 국가가 아니며 청나라의 가혹한 수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조선의 사정을 왜곡하여 말하였다. 무역의 형태를 한 조공외교를 강압적인 착취로, 청나라의 권고를 사실상의 선전포고라 하였다.

“······. 이러한 일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패배와 굴욕을 모르는 나라이며 우리의 동맹 조선이 이러한 굴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이 나라에 대한 모욕입니다.”

모욕이라는 말을 하였지만 다음부터 제시한 의견은 조선과 청의 무역구도를 개선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이었다. 웰즐리는 숨을 고르고 연설을 마무리 짓는 말을 하였다.

“저 아서 웰즐리는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싶습니다. 독립국가 조선이 문명국으로 개화하여 동방의 등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횃불을 들려줍시다. 조선을 우리의 위대한 해군으로 지원하여 이 횃불에 불을 붙이도록 합시다.”

동방 무역으로 인한 이득을 알고 있는 의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조선 독립이라는 단어를 제창하였다. 바로 투표를 시작하여 전쟁 계획서와 예산안을 통과시킬 준비를 했지만 젊은 의원이 기립하여 논하였다.

“저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이 논하겠습니다. 조선의 독립이라는 좋은 말을 앞세워 청나라가 가진 권리를 무시하고 부정한 무역을 강화하는 전쟁을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웰즐리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글래드스턴을 노려보았다. 빈민가를 드나들며 차티스트(참정권 확대 운동) 운동가들을 만나는 오만한 애송이라 보았지만 그의 연설은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역겨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행위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조선은 전쟁을 회피하고 있었으나 아편을 밀매하는 자들을 통하여 청나라의 의심을 키우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는 반론이 있네. 조선이 자주적인 국가라면 청나라가 무기를 수입한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이는 조선이 자주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지.”

“웰즐리 전 총리께서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최신 병기를 수입하는데 경계를 하는 것은 청나라의 권리입니다.”

웰즐리도 뭐라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점차 분위기가 반전되며 글래드스턴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주전파들은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연설을 지켜보았다.

“또한 전 총리께서 횃불이라는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선은 불구덩이에 다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횃불에 불을 붙이려는 국가였습니다. 이런 훌륭한 국가를 영국이 불구덩이에 집어 던진 꼴입니다.”

“전쟁에서 얼마나 큰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볼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전쟁의 기원은 우리 영국의 오만함과 부정함이며 이것만큼 영국을 불명예로 빠트릴 전쟁은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하니 제가 감히 주장하겠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기 이전 중재를 실시하여 조선과 청을 정상적인 관계로 되돌립시다. 지극히 힘든 일이지만 이는 진정한 명예를 얻는 길입니다.”

웰즐리에게 쏟아진 박수보다 조금 적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지금까지 중립을 지키려는 태도를 고수하였던 윌리엄 랭 총리는 글래드스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을 개전 이전에 중재할 방법은 우리가 청나라에게 굴종하는 것이지.”

이미 영국 상인들의 합법적인 로비를 받은 윌리엄 랭은 중립에서 주전파로 입장을 바꾸었다. 글래드스턴이 뭐라 반박을 하려 했지만 윌리엄 랭의 말이 이어졌다.

“오만불손하게 동방의 고리타분한 예법을 주장하며 우리를 오랑캐라 멸칭하는 청나라에게 중재를 한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겠는가? 그러한 일을 받아들일 수 없네.”

“말을 듣지 않는다고 몽둥이를 들이대는 것은 문명국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조선이라는 희생양을 앞세우는 것은 더더욱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이 나라의 총리로서 오만하고 부정한 청나라에 고개를 숙이는 것을 치졸한 행위이며 불명예로 규정하겠네. 물론 표결을 통하여 가부를 결정해야겠지.”

이어진 표결의 결과는 개전 찬성 329표에 반대 204표였다. 본래 역사의 아편전쟁과 달리 조선의 독립이라는 좋은 명분은 개전 찬성에 힘을 실리게 하였다.

“영국의 양심은 이렇게 가벼운 물건이란 말인가.”

글래드스턴의 탄식과 함께 영국의 참전이 확정되었다. 확정된 개전 일자는 명령이 하달되고 조선이 요동에서 청나라와 첫 전투를 치를 1840년 10월 초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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