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86화 (86/345)

< 9장 - 진군 >

덜컹거리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24시간 내내 의주까지 이동하려니 몸이 쑤셔서 견딜 수 없었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잠시였으며 해가 저물고 식사가 나왔다.

“주상전하께서 명하시어 식사로 요리를 하지 못 할 경우를 대비하여 만든 통조림과 찐 쌀을 지급하라 하였습니다.”

순조는 병사들과 함께 고난을 겪겠다고 말했는데 식사조차도 통조림으로 대접했다. 프랑스의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통조림은 군사용으로 쓰이니 사람 머리통만큼 거대했다.

이걸 조선에서 개발한 깡통따개로 따서 반찬을 한 국자씩 내놓고 찐 쌀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죽처럼 만든 밥을 먹는 것이 취사가 불가능한 때를 대비한 병사용 배식이었다.

그나마 기차 안이라 증기기관으로 덥힌 뜨거운 물과 통조림을 배식하지 실제로는 차가운 상태로 배식하리라. 박규수는 식판에 놓인 반찬의 맛을 보고 말하였다.

“고기가 많이 들어있어서 기력은 북돋지만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울 것 같군. 진일 자네가 보기에는 맛이 어떠한가?”

“급할 때가 아니라면 먹지 말아야 할 겁니다. 이 나라 사람은 아삭거리는 김치와 나물이 없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도 않지요. 심지어 국물도 없지 않습니까?”

그보다는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통조림의 접합부를 땜질한 납이 문제이지만. 몇 번 정도는 먹어도 괜찮지만 많이 먹으면 납 중독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열차에도 식량이 필요하였다. 역에 잠시 정차하여 석탄 배급을 받고 20미터 높이의 급수탑에서 물을 흘려보내서 급수작업을 실시하였는데 박규수는 이를 적어나가며 말하였다.

“얼마 전에 주상전하의 은혜로 춘추관 동지사(同知事 - 종2품 관직)가 되었으니 이 또한 기록해야 할 일이지. 그러고 보니 자네는 외부승지 자리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 같은데.”

“오래 머무르고 있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야 언변을 여기저기에 활용해야 하는 사람인데 예조참판이 되면 직접 나서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그 또한 옳은 말이지만 아쉬울 뿐일세.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여유가 생기면 제도를 개편하고 관직을 새로 꾸릴 수 있을 것이니 그 날을 기다려야지.”

지금 조선 관리들은 요동 일대를 전장으로 삼아 청나라의 주력군을 모조리 격퇴하고 협상을 맺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는 격전 끝의 무승부로 자주성을 지키는 수준이다.

반면 힘으로 밀고 들어가 모든 군대를 무너트리고 북경을 함락시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벌어질 전장의 상황을 이야기 할 필요가 없으니 조심스럽게 박규수에게 말했다.

“주상전하께서 모범을 보이시니 패배는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일이지요.”

“옳은 일이지. 국운을 걸고 나선 것이니 최소한 큰 피해를 입혀 협상을 해야 한다네. 그럴 때에 자네와 같은 외교관이 필요하니 청나라를 잘 구슬릴 준비를 하게.”

박규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는지 팔짱을 끼고 잠을 청하였다. 모두가 잠을 청하려고 고래 기름을 태우는 등잔까지 꺼트렸으니 조심스럽게 일어나 열차 뒤쪽으로 향하였다.

“외! 외무승지님을······.”

“병사들이 곤히 잠을 청하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경례를 올리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해 장병들을 깨우지 않으려 하였다. 병력 수송을 위해 조립해둔 의자를 모조리 빼고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 병사들을 운반시켰다.

이런 상황이니 병사들은 자신들의 등짐을 구석으로 몰아넣어 의자로 만들어 위에 걸터앉고 나머지는 바닥에 깔아 베개로 삼고 잠을 청하였다

군 시절에 트럭 뒤의 수송공간에서 짐짝처럼 수송되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다. 지금이야 급히 진군하니 이런 꼴이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해야지.

하루를 꼬박 달린 열차는 의주에 도착하였고 순조를 비롯한 주요 신하들은 청나라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한 역관에 머물렀다. 다음날인 9월 24일 아침이 되자 강 건너에서 돌아온 그루시가 순조에게 보고를 올렸다.

“조선의 임금께 보고를 올립니다. 이미 보고를 올린대로 저희 프랑스 파견 기병 여단과 카자크 기병 여단이 미리 상륙지 소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두었습니다.”

“전신으로 미리 보고를 들어 두었네. 다른 일은 자처하고 포로를 얼마나 사로잡았는가?”

“포로는 육백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모두 임시 수용소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들을 이미 심문하여 일대의 지리와 병력 배치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입수하였습니다.”

“이틀 밖에 안 지났는데 대부분의 정보를 입수하였다고? 적을 기만하기 위한 거짓 정보일지도 모르니 더욱 철저히 심문하여야지.”

순조는 너무 쉽게 정보를 토해낸 팔기군을 보며 의문을 제기하였다. 모든 병력이 도착하고 휴식을 취할 때 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으니 직접 심문을 할 생각 같았는데 그루시가 이를 제지하였다.

“굳이 몽둥이를 들이댈 필요도 없이 정보를 술술 내뱉었고 몇 번의 심문에도 모두 일치하였습니다. 수백 명의 인원이 몇 번의 심문에서 공통된 의견을 제시하였다면 옳은 정보입니다.”

“대체 어디에서 굴러먹던 놈들인가? 길림성에서 기강이 헤이해진 팔기군이라면 모르겠군.”

“자신들을 하남(河南) 일대에서 올라온 팔기군이라 하였는데 청나라 내부의 주방팔기가 아니겠습니까? 혹시나 다시 심문하실 것이면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순조는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나 아직 상식이 패배하기에는 먼 상황이었다. 그러더니 대수롭지 않게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대군을 움직이려면 기병을 사방에 두어 척후를 두어야지. 얻어낸 정보를 모두 신뢰하지 말고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도록 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하면 포로는 후방에 두어 엄히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루시는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며 순조에게 보고를 올리고 돌아갔다. 슬쩍 따라붙으니 그는 한탄하듯이 나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우수리에서 상대한 팔기군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놈들이었어. 강을 건너온 삼천여 명은 우리가 달려들자마자 강으로 돌격하여 총에 맞고 물길에 휩쓸려가며 대부분 죽었지.”

“결국 마적과 같은 놈들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두 번 말해서 뭘 하겠나. 저기 강가에 익사체가 보이는가? 놈들의 말은 영리하게 기수를 떨구고 헤엄쳐서 도주하였는데 사람은 허우적거리다 죽어나가더군.”

잡부들이 갈고리로 압록강변의 시체를 건져내 대충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저게 팔기군의 현실이었다. 그루시는 이 광경을 보면서 훌쩍거리며 울분을 토해냈다.

“나는 워털루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열심히 병사를 조련하였네. 이렇게 힘을 기울였는데 저런 사람도 되다 만 놈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다니 무슨 명예가 있고 영광이 있는가.”

“그래도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 있으니 설욕의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멀쩡한 어른이 어린아이의 팔목을 꺾는다고 힘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런 놈들을 훈련된 기병으로 상대하는 것 자체가 치욕일세!”

그루시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병사를 열심히 훈련하고 성과를 거두어 워털루 전투의 실책을 무마하려 하였는데 상대는 너무나 나약하였다.

자신이 거둔 성과를 드러낼 수 없으니 때려치우고 싶겠지만 루이필리프를 보아 참고 있으리라. 나는 그루시의 의욕을 돋우기 위해 좋은 제안을 하였다.

“그러하면 그루시 원수님의 말씀대로 적이 마적들이라고 가정합시다. 마적들이 이 벌판으로 달려 나와서 무얼 하겠습니까?”

“그야 들어둔 대로 인근 주민들에 대한 약탈을 하겠지? 설마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는 전역(戰域 - 전투 공간)인근에서 본대가 싸우는데 약탈을 한다는 말인가?”

“이미 약탈을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팔기군의 엉망진창인 기강으로 인해 개전까지 3개월이나 미뤄졌으니 요동 일대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했다. 북경으로 소집된 팔기군은 자발적 진군을 주장했으리라.

이들은 조선을 정탐한다면서 요동 일대의 한인들을 약탈하여 재물을 채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를 실행에 옮기고도 남았다. 나는 저 머나먼 강 건너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러니 전쟁에서 전과를 거두십시오. 도적들에게 약탈당하는 마을을 구원하면 힘은 자랑하지 못 하더라도 명예와 영광은 거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해야지. 최소한 회전에서 밥값은 하고 나서야겠군.”

그루시도 다시 의욕이 샘솟은 것 같았다. 뽕에 살고 명예에 껌뻑 죽으며 영광을 추구하는 프랑스인이니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9월 26일. 압록강을 배다리로 건넌 조선군의 대열은 순조가 정말 최전선에 위치하였다. 척후 역할로는 그루시와 안드레이 두 지휘관이 기병 군단을 이끌고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순조는 말 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마차로 만든 어가(御駕)에 올라 흉갑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진군하였다. 번뜩거리는 기병들의 흉갑을 살펴본 순조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토록 훌륭한 흉갑기병이 함께 있다면 몇 배나 되는 청나라 병사들을 도륙하고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지 않겠느냐.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아무리 보아도 사태가 헝클어지면 본대와 분열하여 미끼 역할을 자처하려는 발언이지만 흉갑기병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왕이 앞으로 나서는데 도망칠 군인은 이 자리에 어디에도 없었다.

주변을 살피며 잔뜩 긴장하여 이틀 내내 진군한 조선군에게 안드레이가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인근에 마을이 하나 있다는 정찰을 어제 하였는데 오늘은 마을에 드나든 것 같았다.

“조선의 군주께 보고를 올립니다. 진군 경로에 해당되는 마을에서 주민이 소개(疏開)된 흔적이 보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변란이 시작되기 이전에 소개된 것 같습니다.”

“변란이 벌어지기 전에 주민을 소개하였다고? 그러하면 이 나라의 군대를 괴롭히기 위해 우물에 분변을 뿌리고 밭을 갈아엎었으며 모든 식량을 가져갔다는 말이냐?”

“제법 큰 강이 있으니 분변을 뿌리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진군 경로에 있는 마을이니 보급을 챙기고 병사를 휴식시킬 겸 확인해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안드레이의 보고를 들은 순조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숙영을 할 수 있어도 장병들이 제대로 된 마을에 머물며 비바람을 피해야 피로를 덜 수 있으니 경로를 변경하라는 명령이었다.

예상대로 처음 진군한 마을은 텅텅 비어있었다. 약 오백 호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마을에 남은 흔적을 확인한 카자크 기병들은 유목생활을 하며 얻어낸 지혜로 결론을 내렸다.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남은 흔적이 사라진 양으로 보아 한 달 혹은 그 이전에 마을이 모조리 비워진 것 같습니다.”

“한 달 이전이라 하였는가? 병법서에는 견벽청야(堅壁淸野)라 하여 적에게 한 톨의 보급도 넘기지 말라는 말이 있었지. 그렇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니 피해야 하는 일인데.”

“저희 입장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대응이라 사료됩니다.”

나폴레옹의 원정에서 러시아 제국의 청야전술을 직접 확인한 안드레이가 저 정도로 평가를 내렸으니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

마을에 도착한 순조는 주변을 살펴보다 강가를 확인했다. 통행로로 쓰는 여울이 있었는데 강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며 진흙에 찍힌 말발굽 자국이 여러 차례에 걸쳐 생성되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말발굽 자국이 보이는데 여러 시일을 두고 겹친 것 같군.”

“큰 군세가 여러 번 내려와 마을을 여러 차례에 걸쳐 비운 것 같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창고에 남은 것이라고는 피에 적셔져서 먹을 수 없게 된 곡식을 감싸 안은 백골이 전부였다. 순조는 사방에 널브러진 백골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청나라의 백성이라 하여도 사람이 아니더냐. 자신의 땅을 버리지 못 하여 병사들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분명하니 간단하게 봉분을 만들고 안치하도록 하여라.”

이미 들짐승들이 먹어치워 백골이 된 시신을 대략 염습한 순조는 마을 한복판에 숙영지를 차리라 하였다. 순조는 그 틈을 타서 간단하게 다과와 차를 올려 위령제를 지내며 말하였다.

“변란이 일어나면 언제나 백성들이 희생을 당하는 법. 스스로의 땅을 지키려다 주검이 되었으니 혼백이라도 편히 남도록 스스로 살던 땅에서 영면하라.”

순조를 따라 장병들도 자연히 고개를 숙였고 몇몇 천주교 신자들은 성호를 긋고 기도까지 올렸다. 박규수는 이런 모습을 훗날 실록의 기반이 될 기록에 적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주상전하께서 여기까지 나와 맞서 싸우지 아니하였다면 이 나라의 백성들이 이러한 꼴을 당하지 않았겠는가. 참으로 훌륭한 일이지.”

“실로 그러합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이 정든 땅을 버리고 피난을 가면 그 고난이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맞장구는 쳤지만 진실은 명확하다. 청야전술을 하려면 적에게 쓸 만한 물건을 주지 말아야지 이렇게 탈탈 털어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설령 끌려가기를 거부하여 살해당하더라도 마을 밖에서 죽어야지 창고 안에서 백골로 발견될 이유는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붕에서 떨어진 너와를 살펴보니 화살 자국이 있었다.

“아주 깔끔히 털어먹고 가셨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만 직접 보니 역겨워서 감탄이 나올 지경이네.”

이런 병장기의 흔적을 조선 사람들이나 안드레이는 위협을 가한 흔적이라 판단하였다. 반면 내가 보기에는 한 달 전에 일어난 마을의 상황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였다.

북쪽에서 느닷없이 달려온 팔기군이 약탈을 시작하였고 마을 주민들의 재물을 시작으로 돈이 될 물건을 모조리 쓸어갔으리라.

이후 다른 팔기군이 며칠 간격으로 와서 털어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털어갔으리라. 재물이 없으니 곡식을 털어가고 그 다음은 사람을 털어간 것이 분명하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팔기군이 가져간 물건은 장정과 내년에 파종할 종자겠지. 노인은 데려가 보았자 쓸모가 없으니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히고 방치했고.”

비극이지만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팔기군과 청나라에 대한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서는 조선 사람들이 증오심을 품을 대상이 명확하게 규정되리라.

처음에 조선의 여론을 하나로 모을 때 고려했던 것이 증오심을 품을 대상의 선별이었다. 이 증오가 한인이나 만주족을 대상으로 삼으면 최악의 경우 학살이 벌어질 것을 염려하였다.

반면 한인과 만주족이 팔기군에게 고난을 겪고 있다면 증오의 화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통을 겪은 사람을 탓할 정도로 조선 사람들은 악독하지 않다.

청나라 조정과 왕족 그리고 하수인인 팔기군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들이니 증오의 화살을 맞아도 되었다. 이렇게 되어도 조선의 여론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나중에 조절하면 충분한 일이다.

다시 진군이 시작되었고 앞에는 여전히 약탈당한 마을만이 있었다. 몇몇 장병들도 청야전술이 아닌 이상한 행적이라 생각할 무렵 팔기군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주상전하께 보고를 올리옵니다! 후방의 보급대를 적의 기병 일천여 기가 기습하였으나 무사히 격퇴하였사옵니다!”

“혹여나 기만전술일지도 모르니 추격을 중단하고 본대로 복귀하라 전하라!”

“이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백여 기는 퇴각조차 못 하고 일제사격에 몰살당하였사옵니다!”

의주를 건너오고 10여일이 지난 양력 10월 8일 무렵이 되자 팔기군의 분견대가 출몰하였고 연이은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승리라 할 것도 없으니 물자 호위를 담당한 전열보병 부상병이 당시 상황을 말하였다.

“놈들이 느릿느릿하게 돌격하기에 대열을 형성하고 즉각 일제사격을 하였사옵니다.”

“대승을 거두었는데 어찌하여 부상을 입었단 말이더냐. 혹여나 내게 숨긴 다른 부상병이 있지는 않더냐?”

“참으로 송구한 말을 올리겠사옵니다. 정리를 하며 팔기군의 시신을 확인하다 돌부리에 걸려 크게 고꾸라지는 바람에 팔이 꺾이게 되었사옵니다.”

마침내 조선군에서 첫 부상병이 등장하였으나 실수로 인한 부상이었다. 다른 장병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였고 순조도 크게 웃었지만 웃음을 그치더니 말하였다.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보급을 훼손하여 공을 세우려는 자들이로구나. 이렇게 자만심이 넘치는 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니 군율을 지키고 기강을 삼엄히 하라.”

순조의 명령으로 조금 풀어지던 기강이 다시 잡혔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조선군은 산악지형을 만나 진군 속도가 더뎌지고 병사의 피로가 점차 가중되었다.

결국 행군 속도가 조금 늦어져서 하루 10km의 진군속도를 유지하여 천천히 북방으로 향하였다. 마침내 개전 17일이 되고 기병이 첫 목표인 심양의 남부인 본계(本溪)에 도달하였다.

작가의말

순조 : 이게 전쟁인가?

그루시 : 피크닉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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