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9장 9화 심양성(3)
심양의 상황을 공성전으로 따지자면 성벽 구간에 화재가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 성 내부까지 불이 퍼졌다면 심각한 상황이지만 순조의 명령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벽의 화재를 차근차근 진압한 다음 탈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벽이 네이팜 폭격도 아닌 평범한 화재로 무너질 일은 없으며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마르몽이 모든 성벽을 타격한 수준도 아니었다. 만들어둔 백린탄은 300여 발에 불과하며 절반은 해자로 떨어졌고, 기껏해야 남쪽 성벽과 동서쪽 성벽의 일부만 타올랐다.
“고작 이 정도 화재로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지다니 잘된 일이야.”
냉정하게 생각하면 고작 화재이지만 미신으로 사기를 유지하던 녹영군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이들은 조선군이 포위하고 있으며, 성문 앞이 불에 타고 있음에도 문을 열고 도주하였다.
“남쪽 성벽이 불타오르는데 쥐새끼처럼 모든 성문을 열고 뛰쳐나오는군요.”
“그 쥐새끼들에게 진짜 포탄 맛을 보여줘야겠지. 유산탄 발사!”
마르몽은 다시 지시를 하달하여 유산탄을 발사하였다. 백린탄보다 살상반경이 넓은 포탄이 성 내부로 날아들었고 폭음이 사방에 메아리치며 성 내부를 뒤흔들었다.
“아녀자들이 다치지 않았어야 하는데.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군.”
유산탄 사격이 이어지자 사기는 완전히 붕괴했다. 쥐새끼라는 표현도 너무 고급스러운 수준이며 마치 살충제를 맞은 바퀴벌레 떼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성문을 자발적으로 열고 튀어나오는 녹영군을 상대로 조선군은 머스킷과 포도탄 사격을 날리며 환영하였다. 심지어 성에서 도주하기 위해 해자로 뛰어드는 놈들도 있었다.
일제 사격과 포도탄 난사가 끝나자 성 내부의 녹영군이 침묵하였다. 적들이 성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었음을 알아차린 순조는 안드레이의 기병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성으로 돌입하라!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다들 저 똥으로 뒤범벅된 버러지 놈들을 짓밟아 죽여라!”
“사탄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청나라 황제의 따까리들을 찢고 죽여라!”
카자크 기병들이 성안에 난입하기 무섭게 비명과 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심양고궁(古宮)의 전각 안에 말을 타고 난입하여 녹영군을 학살하고 있으리라.
이윽고 안으로 난입하였던 안드레이가 보무도 당당하게 지휘관의 목을 베어 돌아와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순조에게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놈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복식을 보니 지휘관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더럽힌 청나라 황제의 사원에서 절을 올리기에 말발굽으로 등골을 짓밟고 목을 썰어냈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였네. 보병들도 돌입하라! 청군의 잔당을 소탕하고 아녀자를 구출하라!”
수급을 확인하기 위해 자이콴에게 보냈는데 그는 분노와 울분에 찬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수급을 바닥에 내던지고 짓밟으며 말하였다.
“양팡 네놈이 모든 일을 망쳤다. 이제 태종 선황제께 뭐라 사죄하여야 하느냐!”
심양성의 함락에는 고작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도 각 전각으로 숨어든 녹영군을 찾아내는 과정이 오래 걸렸지, 실제로는 포격 시작 후 삼십 분 만에 저항이 끝나 버렸다.
아녀자들은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녹영군은 대부분 분노한 병사들에게 살해당해 시신이 끝없이 튀어나왔다.
순조는 살해당한 주요 지휘관을 정리하여 관에 넣고 말하였다.
“이 관은 청나라에 보낼 것이며 이들의 죄과도 모조리 적어서 황상에게 알려줄 것이다. 성 내부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으니 어서 안내하여라.”
홍타이지의 무덤인 소릉(昭陵)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를 받은 순조는 착잡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후손이라는 자들을 대신하여 다른 나라의 황릉을 확인하는 꼴이니 마음이 불편하리라.
불행 중 다행으로 온갖 미친 짓을 저지른 청나라 병사들도 소릉에는 손을 안 댔고 이들이 남긴 핏자국이 보일 뿐이었다.
문제는 소릉의 상태였는데 순조는 묘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청 태종의 묘가 어찌하여 저런 꼴이 되었느냐? 혹여나 관리에 소홀하였는지 의심스럽구나.”
“며칠 전까지만 하여도 멀쩡하던 묘가 어찌하여 이런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홍타이지의 무덤은 만주족과 한족의 양식을 어느 정도 결합한 특이한 무덤이었다. 잔디를 심지 않고 석회와 모래를 섞은 일종의 시멘트를 두껍게 발라두었다.
봉분 맨 위에는 만주족의 방식대로 느릅나무를 심어두었다. 이 봉분에 커다란 균열이 세 개나 발생했는데 미루나무가 심어진 맨 위부터 아래까지 균열이 생겼다.
관리인은 당연히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고, 순조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바람에 흔들리는 느릅나무를 살펴보고 말하였다.
“느릅나무가 낙엽이 졌다고 생각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구나. 바람이 불 때마다 잔가지가 찢어지고 껍질이 부스러지니 말라 죽은 것이 아니겠느냐? 대체 어떻게 돌본 것이냐?”
비과학적인 생각이지만 홍타이지가 분노하여 생긴 균열이 분명하다. 분노한 사람이 머리통이 터질 것 같다 말하는 것처럼 봉분이 터지고 분노로 나무가 말라 죽었으리라.
혀를 차며 봉분의 상황을 살펴본 순조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예의를 표시하였다. 그러고는 안타깝다는 듯이 봉분 안에 잠든 홍타이지에게 사과를 하였다.
“후손들이 부덕하여 이러한 일이 벌어졌으니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청 태종께서 편안히 영면을 취할 능침(陵寢)을 복구할 것이니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순조는 마치 윗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이 태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청나라를 건국한 시조이며 명나라로부터 천명을 얻어내 제국을 세웠다.
더군다나 도망도 치지 못한 인조와 세자를 사로잡아 항복을 얻어낸 자이다. 이런 업적을 세운 홍타이지를 욕하면 간접적으로 조선 왕실도 욕하는 격이다.
물론 이런 정중한 인사는 무덤 안에 잠든 홍타이지의 입장에서는 굴욕이나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불어온 세찬 바람에 말라죽은 느릅나무가 꺾여 무덤 아래로 넘어졌다.
“주상전하! 어서 피하시옵소서!”
느릅나무가 넘어져 봉분 아래까지 굴러 내려왔다. 사람들이 느릅나무의 상태를 확인하니 비쩍 마르다 못해 습기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박규수는 이 모습을 사관의 입장에서 모조리 기록하며 평가하였다.
“봉분 안에 잠든 청 태종의 진노가 하늘로 치솟았으니 봉분에 균열이 생기고 나무가 말라 죽기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벌이는 망령된 행동에 견딜 수 없는 몰골이 아닌가.”
“주관적인 기록이십니까 아니면 객관적인 기록이십니까?”
“이 몰골을 보면 객관적인 기록이지. 가급적 회화로 남겨두고 싶을 지경인데……. 사진기 좀 가져올 수 있겠나?”
아예 사진기로 훼손된 분묘의 상황까지 촬영한 박규수는 이를 실록에 박제는 아니고 기록할 자료에 포함시켰다.
이후 일정은 휴식이었다.
“요동의 거점인 심양을 함락하고 주민들의 호응도 얻어냈으니 좋은 일이로구나. 닷새를 푹 쉰 이후 후방을 정리하고 보급을 받아들여 재차 진군할 것이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병사들 사이에서 솟구쳤고 심양 고궁이 조선 병사들의 숙소가 되었다. 심양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성벽의 분변을 닦아주었다.
조선군은 일종의 해방군처럼 받아들여질 지경이었다. 병사들이 심양 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푹 쉬는 동안 순조는 다음 명령을 하달하였다.
“전쟁이 절반이나 끝났으니 협상을 논할 차례가 아니더냐? 청나라가 화평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화평을 논하며 이에 필요한 조약을 제시하면 더욱더 좋을 것 같구나.”
순조도 이 정도 승전을 거두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경양군을 통해 보낸 서신은 조공관계를 재정립하자는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종전 협상으로 맺을 조약에 욕심을 부렸다.
이는 현실적인 대처이기도 하였다. 인구가 4억이며 부정부패로 얼룩진 청나라를 조선이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순조의 요청을 들은 이유수가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화평을 먼저 제안할 필요가 있사옵니까? 군을 움직여 북경을 함락함이 마땅합니다.”
“심양 고궁에 있는 재물만 따져도 은자 일천만 냥이 넘어갈 지경이다. 북경을 함락하면 재물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진군이 불가능할 것이 아니겠느냐.”
사실은 심양 고궁의 재물뿐만 아니라 팔기군이 각지에서 약탈한 재물과 이들이 출병하며 얻어낸 군사비용이지만 뭐가 다르겠는가.
순조는 이를 감안하여 말하였다.
“북경을 함락하고 맺을 수 있는 조약을 지금부터 논하여야 마땅하다. 북경을 넘어서 진군하려다가는 수레가 재물이 너무 많아 무너지고 보인들의 허리가 꺾일 것이 눈에 선하구나.”
순조는 북경을 함락시키거나 함락 직전에 놓인 청나라가 받아들일 수준의 조약을 먼저 제시하려 하였다.
그렇다고 아예 청나라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약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청나라가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이 100이라면 북경을 함락한 이후에는 150 정도가 되리라.
이를 감안하여 신료들과 논의를 거쳐 새로 맺을 조약의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어차피 요동과 만주 일대를 포기할 것이니 이 요구사항은 그리 걸릴 것도 없겠군요.”
“외무승지가 그리 판단한다면 옳은 일이지. 애초에 요동과 만주를 다시 회복한다 하여도 청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일 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수도가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였지만 나름 대국인 청나라의 입장을 고려하며 최대한 굴욕적이지 않은 처우를 논하였다.
포로 항목으로 넘어가자 그루시가 끼어들어 제안하였다.
“포로는 그냥 싹 다 죽여 버리면 아니 되겠나? 한 명당 은자 스무 냥이면 이 범죄자들을 방면할 수 있다고?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야 청나라와 한 번 싸우고 끝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약탈이나 일삼던 멍청한 놈들이 포로 신세에서 벗어난다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야 하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지. 쓰레기를 돈을 받고 파니 돈이 되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일이군.”
청나라가 포로를 얼마나 사들일지는 모르지만 남는 포로는 프랑스에서 경영하는 고무농장에 팔면 충분할 것 같았다. 프랑스도 이번 전쟁에서 이득을 좀 챙겨야지.
조약의 첫 대목은 조선이 아량을 베푸는 것 같은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전쟁 이전에 논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존의 군신관계 대신 형제관계로 맹약을 새로 맺으며 양국이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포로는 한 명당 은자 20냥의 몸값을 받고 방면하며 관직이 있고 직급이 높은 포로를 우선 방면한다. 방면하지 않은 포로의 처우는 조선에 일임한다.]
[포로에 산입되지 않는 비전투 병력은 즉각 방면한다.]
[조선에 항구 3개를 개항하며 이 항구에서의 무역은 양국의 협의하에 매년 조절된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청나라가 이해할 수 있는 조약이었다. 신하인 조선에 뺨을 한 대 얻어맞은 정도라 생각하겠지.
이제는 주먹으로 명치를 후려칠 내용이 시작되었다.
[새 국경을 대릉하(大凌河)로 삼으며 동쪽의 모든 땅을 조선에 양도한다. 주민은 원한다면 청나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이 비용은 조선이 제공한다.]
[전쟁으로 인한 비용 소모를 청나라 측에 배상금으로 요구한다. 은자 600만 냥 혹은 그에 상응하는 금품이다. 5할에 해당되는 300만 냥 이상이 은자여야 한다.]
굴욕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참한 몰골로 패배하였는데 요동과 만주를 어떻게 지배하겠는가?
박규수는 손가락을 꼽아보더니만 조약 내용을 확인하듯이 말하였다.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소모된 전쟁 비용이 신냥으로 칠백만 냥, 은자로는 백오십 만 냥에 조금 미치지 못한다네. 이런 상황에서 소모한 돈의 네 배를 받아내겠다는 말인가?”
“돌아가는 병사들에게 은자 열 냥 정도는 쥐여줘야 마땅하지요. 물론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조약이지만 이제 청나라에 몽둥이를 들이댈 차례입니다.”
여기까지는 청나라가 피를 토할 수준이면 이제 몽둥이찜질을 당할 차례였다. 청나라가 내놓을 수 있는 자금의 한계치를 넘어선 수준의 배상금을 적어나갔다.
[정묘년과 병자년의 변란에 대한 배상금을 요구한다. 당시 조선에서 잡혀간 포로들에 대한 배상금이 은자 5,000만 냥, 각종 범죄에 대한 배상금이 은자 2,000만 냥이다.]
[총 배상금은 은자 7,000만 냥 혹은 그에 상응하는 금품이다. 5할에 해당되는 3,500만 냥 이상이 은자여야 하고 기한은 5년이다.]
“이건 몽둥이를 들이대는 수준이 아니고 작두로 사지를 토막 치는 수준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 극히 노하여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들먹였는데 청나라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못해 복장이 터질 소리이다.
조선의 기록에서는 포로가 50만이니 60만이니 논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당시 후금의 인구는 잘 해봤자 300만 명이었는데 인구의 20%에 달하는 포로를 어떻게 관리하겠는가? 현대의 연구결과로는 5만, 아무리 많아도 10만 명을 넘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물론 박규수는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시대의 사람으로서 병자호란의 포로가 50만이라는 잘못된 기록을 믿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옛적에 청나라에 잡혀간 백성들을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긴 하군. 아직 조약이 남았는가?”
“이제 한 줄이 남았습니다. 인조대왕께서 겪은 치욕을 되갚아야지요.”
[삼전도에 세워진 비석을 깎아 이 조약을 기록하며 새로 정해질 국경에 설치한다.]
아예 청나라의 위신을 도끼로 토막살해하고 온 세상에 퍼트리는 짓을 자행하였으니 박규수도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순조에게 이 조약의 내용을 가져가니 한참을 읽고는 평가하였다.
“이 정도라면 격노하여 전쟁을 촉구할 것 같구나. 다만 금전을 요구하는 액수가 지나치게 과도하니 설령 북경이 함락되어도 이 조약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노라.”
“지나치게 과도한 액수이라 하셨사옵니까?”
“은자 칠천만 냥을 논하였는데 이 비용이라면 체면을 무시하고 백만 대군을 소집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상대를 구석에 몰아두되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순조의 상식은 대부분 패배하고 무너졌지만 청나라가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면 발악을 할 것이라는 상식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7,000만 냥을 내느니 그 돈으로 아무나 고용하여 용병으로 삼으리라는 상식이었다.
물론 이 상식은 청나라가 죽었다 깨어나도 한인(漢人)을 규합시키지 않는 점에서 잘못된 상식이다.
돈을 써서 군대를 소집하느니 아예 수도를 새로 세울 놈들이니 순조의 결정에 반대하였다.
“하오나 녹영군도 아니고 어중이떠중이 한인들을 규합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정말 위급한 때가 되면 사람의 생각이 변하겠지. 그러하니 액수를 조절하자꾸나.”
순조는 붓을 들어 내가 제시한 협상안, 약 150 정도에 달하는 요구를 수정하였다.
이 액수라면 청나라는 산해관이 무너질 때쯤 조약을 받아들일 정도인 120이 되었다.
[총 배상금은 은자 3,000만 냥 혹은 그에 상응하는 금품이다. 5할에 해당되는 1,500만 냥 이상이 은자여야 하고 기한은 5년이다.]
너무나 절묘한 액수를 제시하여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순조의 고집을 꺾을 길이 없었다.
최종 수정안을 적어서 청나라로 보내려는 와중에 발칙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북경을 털어봤자 은자 삼천만 냥 정도의 이득이 전부잖아. 일단 조약으로 돈을 뜯어내고 북경은 나중에 털어버려야지. 그동안 북경에 돈을 더 넣을 방법이 뭐가 있을까?”
언젠가는 청나라와 전쟁이 또 일어날 것이고 그때는 정말 북경을 털어버리고 원명원에 축적된 자금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돼지의 살을 찌우듯 북경에 더 많은 자금을 비축시키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