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97화 (97/345)

97. 9장 13화 침탈(侵奪)

일주일을 심양에서 휴식하며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심양 주변의 도시를 타격한 그루시의 성과가 드러난 것이었다.

심양성이 함락되고 이틀이 지나자 주변의 소도시들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각 도시를 다스리던 청나라 관료와 팔기군이 모조리 처형당한 뒤 실세가 된 이들이었다.

“조선군이 승전을 거듭하였으니 축하 인사를 드리려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관리가 모조리 처형당한 무순을 임시로 다스리게 된 나라 가비(佳備)라 합니다.”

“저 또한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저는 관리 출신인 마갸 보뢰(普雷)이며 팔기군에 저항하여 투옥되었다 풀려나 철령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저는 한족 출신이며 운수가 좋게도 신민 일대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성은 장씨요 명은 사돈(斯顿)이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 분의 이름을 합치면 가비 보뢰사돈(佳備 普雷斯顿 = 가비 프레스턴)이군요?”

나라라는 성씨와 마갸라는 성씨는 만주족 출신의 성씨였으며 8대 성이라 하여 나름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그냥 온 것은 아니고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였으리라.

표면상으로는 팔기군 포로 중 상태가 좋은 자들을 데려와 협상을 하려 하였다. 이들을 조선에 편입시킬 수 있으면 후일 통치가 편해지니 내가 직접 나서 설득을 하였다.

“잘된 일이로군요. 안으로 들어오셔서 상세한 일을 논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상세한 일이라 하니 조선의 생각을 알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심양성이…… 왜 저렇게 되었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야기하자면 아주 길게 될 것 같습니다.”

심양성은 한창 세척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핏자국이야 당연히 닦아내야 하지만 분변으로 더렵혀진 성벽에 불까지 끼얹어졌으니 형언할 수 없는 몰골이 되었다.

순조는 심양의 거주민들에게 지원금을 내려줄 목적으로 성의 청소를 명령하였다. 하루 종일 성벽에 밧줄로 매달려 물을 끼얹으며 솔로 분변을 씻어내는 고된 작업이었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맴도는 가운데 일에 매진하니 동상을 입거나 간혹 추락하여 부상을 입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설명을 들은 각 도시의 실세들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의심하는 눈으로 되물었다.

“태종께서 머물고 계시는 심양 내성을 분변으로 더럽히다니 말이나 됩니까? 혹여나…….”

“저희 조선에 그런 기이한 풍습은 없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참혹한 나머지 의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진노하신 태종 선황제의 묘소에 제사를 올려 이런 참극을 달래드려도 되겠습니까?”

별문제도 아니고 오히려 만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 잘된 일이다. 나무가 말라죽고 균열이 생겨난 홍타이지의 묘는 순조가 명령을 하여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후손이자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신기오로 자이콴, 현 청나라의 정군왕이었다.

그는 인부들을 시켜 봉분의 균열을 보수하고 있었다.

“외무승지가 왜 방문하였는가? 아직 봉분을 온전히 복구하지 못하였으니 돌아가게.”

“제사를 올리려는 사람들이 방문하였으니 잠시만 틈을 내어주시겠습니까?”

각 도시의 실세들은 아직도 조선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범죄를 저지른 팔기군과 관료들을 처형하였지만 조선은 전쟁을 벌인 침략자이다.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분묘를 훼손하고 심양성을 더럽힐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런 염려와 달리 조선은 여유를 가지고 오히려 분묘를 보수하고 성을 청소하였다.

간단한 제사가 시작되었고 자이콴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이를 흘겨보았다. 제사를 다 올린 도시의 실세들은 자이콴에게 다가가 질문을 퍼부었다.

“정군왕 전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조선군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으니 변란이 일어난 경과를 알고 싶습니다.”

“변란의 경과를 알고 싶다 하였는가? 자네들은 대체 누구이기에 제대로 된 존대도 하지 아니하고 이토록 격분한 태도로 임한단 말인가?”

“정군왕 전하의 이름을 팔아치운 팔기군에게 고을을 약탈당하고 온갖 치욕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필히 알아야 될 사실이 여럿 있습니다.”

의심이 사라지자 총사령관인 자이콴에게 분노의 화살이 돌아갔다. 약탈을 한 놈들이 도시로 진입할 때 누구의 이름을 댔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필사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자이콴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총사령관으로서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도시의 실세들은 이를 요약하여 말하였다.

“병사라 하면 적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애초에 병사가 맞기는 합니까? 명령을 거부하고 멋대로 이탈한 팔기군이 사방의 도시를 약탈하였으니 이를 어찌 감당하실 작정이십니까?”

“모든 일은 내 과오일세. 그러하니 책망하려거든 나를 책망하도록 하게.”

각 도시의 주민은 감정적으로 움직일지 몰라도 가문을 이어가야 할 실세들은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화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세들이 조선의 편이 될수록 영토로 편입한 뒤 일이 편해지는 법이었다.

대화를 마친 이들이 정보를 더 입수하도록 심양 고궁의 전각을 가리키며 권유하였다.

“조만간 점심을 먹을 때가 아닙니까? 식사를 하면서 논의를 하게 잠시 심양고궁을 돌아보시며 정황을 알아보시면 좋을 것 같군요. 식사를 대접함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하면 반 시진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잠시 심양 고궁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음식이 어떤 맛일지 기대되는군요.”

각 도시의 실세들에게 역관(譯官)을 한 명씩 붙여주어 이들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도움을 주었다.

각자 흩어진 실세들은 주변의 병사들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자네는 조선의 기병인데 후일 조선이 이 땅을 통치하게 되면 병사로 복무할 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요? 팔기군이라는 머저리들을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 넷밖에 못 죽여서 아쉬운 일인데 열 명 정도 더 죽일 수 있으면 좋겠군요.”

“어찌하여 팔기군을 죽이려 하는가. 혹여나 청나라 사람에게 원한이라도 있는가?”

기병은 잠시 턱에 손을 괴더니 생각에 잠겼다.

예전이라면 조선군 가운데 일부와 정신적으로 압박을 당한 기병들 대다수는 이런 생각을 품기는 했었다.

이런 생각은 심양성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태로 모조리 사라졌다. 어머니가 잡혀간 아이나 딸이 잡혀간 아버지의 통곡을 들으며 분변으로 더럽혀진 성을 확인하였다.

병사들 대다수가 만주족이건 한족이건 민초(民草)에 속하며 부패한 청나라 조정에 핍박을 당한다고 인식하였다.

질문을 받은 기병 또한 이런 생각을 품고 대수롭지 않게 답하였다.

“원한이 있기는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없습니다. 다 같은 백성인데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건드릴 이유가 없지요. 물론 전쟁의 원흉인 청나라의 수뇌부와 팔기군은 아닙니다.”

“좋은 의견을 듣게 되었네. 자네와 같이 늠름한 병사가 천여 명만 있었어도 철령이 무너질 일은 없었을 것인데…….”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고 정보도 입수하였으니 이제 필요한 물건을 얻어낼 차례였다.

식사를 하기로 하였는데 반찬은 따로 두지 않고 일부러 통조림 몇 개를 뜯어 접시에 옮겼다.

“이 물건은 무엇입니까? 사람 머리통 크기의 철로 만든 통에 음식이 담겨있다니요?”

“여섯 달 전에 만들어둔 통조림입니다. 조선 병사들은 급할 때에 이런 음식을 먹으며 끼니를 보충하지요.”

여섯 달 전의 만든 음식이라는 말을 들은 도시의 실세들은 질겁하였지만 통조림은 제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혹시나 몰라 개에게 먹였는데 한 입을 먹고, 먹는 것을 거부해서 문제지만.

통조림 제조공장을 설립한 사람이 효명세자이며 국영 업체이기에 다수의 불량품을 제외하면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맛이었으며 다들 여기에 질색하여 말하였다.

“조선군이 강한 이유가 있었군요. 이런 물건을 먹으며 진군하면 적의 식량을 얻어내기 위해 맹렬히 싸우게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그 또한 옳은 말씀 같군요. 그러하니 여러분들에게 청할 것이 있습니다.”

경계하는 도시의 실세들을 조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자그마한 일을 시키면서 서로 간의 신용을 쌓는 것이 정답이다.

그 자그마한 일 중 하나가 보급 문제의 해결이었다.

나는 맛이 더럽게 없는 돼지고기 간장 조림을 한 입 먹고 인상을 일부러 찌푸린 다음 말하였다.

“여러분들이 거주하는 도시에 각지의 촌락에서 잡혀 온 한인들이 있을 겁니다. 이들을 보인으로 소집하여 진군 경로에 미리 배정하면 이런 음식을 먹을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한인들도 골칫거리였지요. 일단 도시에 두어 한솥밥을 먹지만 서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골고루 분배하여 진군경로와 보급경로에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겁니다. 간단한 일이지만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으니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후 실무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식량이야 팔기군이 충실하게 약탈해 쌓아두었으니 여유분을 급료 겸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으로 제공하기로 하였다.

여기에 팔기군이 사용하던 말 또한 구매하였다. 오로지 짐을 나르고 말에게 먹일 건초가 부족해지면 도축하여 즉석에서 식량으로 사용할 녀석이었다.

마지막으로 포로의 구매까지 마쳤다.

“보인을 지원해 주시면 한 명당 은자 다섯 냥으로, 포로는 은자 열 냥으로 구매하겠습니다. 이들을 청나라에 돌려보낼 적에 은자 스무 냥을 받을 생각인데 조선도 이득을 좀 보아야지요.”

“저희가 팔면 아니 되겠습니까? 포로의 관리가 불편하실 것 같아서 심히 염려됩니다.”

“애석하지만 한인들을 멋대로 팔아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포로를 사들일 때 관리할 병사들도 필요하긴 하군요.”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는 척 은근슬쩍 넘어갔지만 중요한 사항이었다. 이 거래는 조선 정부와 도시의 실세들 사이의 조약이며 계약서도 작성하여 양측이 나눠 가질 예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조선군이 각 도시의 치안을 관리하며 행정에 손을 댈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당근을 주며 가끔 채찍을 보여줘야 일이 쉽게 풀리는 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주와 요동을 동화시키며 화전민과 자발적으로 이주를 청한 백성들을 밀어 넣으면 길어도 30년 이내에 만주는 완전한 조선 영토가 되리라.

보고를 들은 순조는 정리한 내용을 살펴보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창을 열고 아직도 보수되고 있는 홍타이지의 묘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러하면 저 묘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네의 계획이 통한다면 이 땅에 거주하는 한족이야 조선의 백성이 될 것이며, 만주족 또한 조선의 백성이 될 것이 아닌가?”

“모든 만주족이 조선의 백성이 될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청나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에게 수레를 내어주어 분묘를 옮기게 하시옵소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응할지는 모르지만 저 정도 조건이면 조선의 통치를 거부한 만주족이 청나라로 들어갈 계기가 될 것 같았다. 이 과정에서 포로 관리를 위해 후방 부대를 일만여 명이 심양에 남아 후방을 지키기로 하였다.

한창 출병을 준비할 무렵 이변이 벌어졌다. 따로 배정된 전각에서 나름 대접을 받고 있던 아이신기오로 자이콴이 자살을 시도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리스턴을 비롯한 의원들이 모조리 달려들었지만 가망이 없었다. 몰래 숨겨온 쪽가위로 목을 여러 차례 찌른 자이콴의 시신은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창백하였다.

“참으로 딱한 일이로구나. 시신을 염습하여 청나라에 보내도록 하고 자진을 막지 못한 병졸과 쪽가위를 흘린 사람을 찾아 벌을 내리도록 하여라.”

“주상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정군왕의 품속에 서신이 있사오니 이를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자진하기 전 충심을 담아 청의 황제에게 올리는 간언일 것이다. 내용을 확인하여 불손한 어휘가 있다면 불태우되 아니라면 그대로 넣어 보내도록 하여라.”

박규수가 나서서 서신을 확인하였는데 불손한 어휘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외무승지인 내가 볼 수 있도록 서신을 슬쩍 건네주었다.

[황상께 아뢰오니 참담한 일이오나 조선군을 상대로 맞서 싸울 방도가 보이지 않나이다.]

자이콴의 마지막 간언은 덤덤하게 현 상황을 말하였다. 지방에서 소집한 주방팔기는 도적 떼요 중앙에서 보낸 금려팔기는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퇴각하였다고.

심양성에서 벌어진 일은 더 이상 없을 비극이라 뭉뚱그렸지만 그의 분노를 담아 획이 멋대로 뻗쳐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다음 내용이 문제였다.

[조선과 강화를 맺으시옵소서. 조선군을 상대로 사력을 다하여 저항하여도 북경이 함락당할 것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천명이 무너지는 격이니 이러한 일은 피해야 하옵니다.]

[어떠한 굴욕을 겪더라도 십 년을 절치부심하여 군대를 육성하고 나라를 온전히 되돌리면 승산이 있사옵니다. 신의 주검을 갈기갈기 찢어도 좋사오니 이를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박규수는 이 서신이 들어가면 청나라가 개혁을 실시할 것이라 염려하여 내 의견을 물어본 것이다.

반면 나는 양무운동의 실패와 조만간 일어날 태평천국의 난을 알고 있으니 평범하게 답하였다.

“청나라는 대국이니 십 년으로는 부족할 것이며 이십 년은 필요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번국에 호되게 당하여 천명을 찬탈하려는 이들이 생길 것인데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외무에 관련된 일은 자네의 의견이 옳겠지. 그러하면 서신을 봉안하도록 하겠네.”

양무운동이 20년 일찍 일어난다 하여도 청나라가 제정신을 찾을 이유는 없다. 윗선의 명령을 의지 없이 받아들이는 실무진과 여기에 기생한 부패한 관리라면 뭐가 나아지겠는가.

더군다나 개혁 운동을 추진할 세력이 이 시점에선 한인 관료가 아닌 팔기군이라 더더욱 문제다. 부패한 놈들에게 돈을 쥐여주면 도출될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달라지는 점이 있으니 북경에 축적될 자금이다. 일단 세금을 더 많이 걷어내서 투자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니 북경에 더 많은 자금이 축적되리라.

이런 계획까지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으니 자이콴의 시신은 염습되어 관에 담긴 채 먼저 배송되었다.

순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심양성에서 다시 진군을 시작하였다.

“청군의 주력을 격파하였으니 산해관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제대로 된 적이 없을 것이다. 주변을 철저히 경계하며 진군하되 속도를 더욱 높이도록 하라!”

조선군은 이전과 다르게 순조를 앞세워 진군을 시작하였다. 심양까지 올 때에는 하루 10㎞에 불과한 행군 속도도 요동 일대의 도시에서 보낸 보인들로 인해 가속되었다.

이러한 진군이 매일같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후방으로 퇴각한 금려팔기와 요동의 병사들이 도시와 요새에 머물며 결사 항전을 하였다. 물론 겉으로는 결사 항전이었다.

“이 요새에는 승산이 없으니 조선군에게 내어줄 것이네. 다만 부탁할 것이 있으니 하루만! 제발 하루라도 맞서 싸울 기회를 주지 않겠는가? 하루가 지난 다음엔 도망칠 것일세!”

“지금 가짜로 공성전을 벌이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단 하루만 화포를 헛되이 쏘고 총을 마음대로 쏘며 우리가 저항하였다는 증좌를 남겨주게. 이대로 돌아간다면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 아닌가!”

성에서 나온 팔기군 장수가 애걸복걸을 하며 하루만 가짜로 싸워달라고 부탁하였다. 대부분의 성채가 반나절 만에 함락되었으니 자신은 잘 싸웠으나 도리가 없다고 변명하려는 말이겠지.

부패한 관리가 많이 살아남을수록 청나라가 망가지는 법이니 순조도 이 가짜 공성전을 허락하였다.

포탄을 넣지 않은 대포를 발사하고 총을 허공에 쏘아대는 전투를 간혹 벌인 조선군은 25일을 진군하여 마침내 산해관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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