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03화 (103/345)

103. 10장 2화 성장(2)

일단은 멕시코가 신형 소총을 구매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재개발 지구의 반상회장 임기보다 대통령 임기가 더 짧은 나라가 외교 태도를 유지할지조차 의문이고.

개발부터 먼저 하고 멕시코에 연락을 넣는 것이 우선이니 일준이에게 조언을 하였다. 나야 군대에 다녀와서 총도 쏴본 적이 있으니 이 경험을 담아서 하는 말이었다.

“신형 탄환의 운동에너지는 삼천 줄 이하, 가급적 이천 줄 초반대로 낮춰줘.”

“이천 줄 초반? 그 정도 운동에너지면 조선군이 사용하는 라이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데?”

“현대에 사용하는 소총 탄환 운동에너지가 이천 줄이 안 되는 수준이야. 더군다나 현대 소총들은 개머리판에 스프링 같은 완충장치를 달아두었는데 신형 소총에도 달아두려고?”

쏘아본 적은 없지만 2,500J대의 탄환을 사용하는 모신-나강 소총의 반동은 증언을 듣기로는 사람이 넘어질 정도라 하였다. 이를 감안하면 지나칠 정도로 과잉 화력임은 확실하였다.

일준이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내가 원하는 탄환 여러 종류를 보여주었다. 하나같이 검은색 먹으로 표시가 매겨져 있었는데 탄환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가장 먼저 개발된 세 종류야. 각각 갑식, 을식 그리고 병식 탄환인데 운동에너지는 병식이 이천오십 줄 정도인데 세 종류 모두가 흑색화약 베이스야.”

“무연화약 탄환은 위력이 더 강한가?”

“가장 위력이 약한 일(一)식 탄환이 이천칠백 줄, 네가 반동이 너무 세다고 지적한 육(六)식이 사천오백 줄이지. 개발한다고 많이 고생했는데 이제 정리 좀 해줘.”

욕심 같아서는 모조리 무연화약 라이플로 도배하고 싶지만 예산이 문제다. 흑색화약이야 인도산 초석으로 마음대로 양산이 되지만 무연화약은 니트로셀룰로오스 제조부터 문제다.

둘 다 포기할 수 없으니 무연화약 소총을 지정사수 소총으로 두고 흑색화약 소총을 일반 병사용 소총으로 사용해야 하리라.

일준이를 위해 간단한 개념도도 그려주었다.

“소총은 두 종류를 개발하자. 하나는 무연화약을 사용하며 스프링을 비롯한 완충장치를 넣고 스코프도 장착 가능한 지정사수용 소총으로. 남은 하나는 이런 걸 다 생략한 흑색화약으로.”

두 소총의 장전장치로는 트랩도어(trap-door) 방식을 채택하였다. 드라이제 소총처럼 바늘공이가 아닌 림파이어 탄약이니 트랩도어와도 잘 어울렸다.

또한 금속가공 기술이 부족하여 총을 발사하면서 포연이 새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트랩도어는 위쪽으로 포연이 새어 나와 사수가 비교적 안전하게 쏠 수 있으리라.

물론 일준이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내가 가까스로 기억하고 있는 스나이더 – 엔필드(Snider-enfield) 소총의 개념을 보여주자 녀석은 한동안 생각하고는 말하였다.

“구조 자체는 복잡하지만 조선의 부족한 기술력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방식인데? 노리쇠를 뒤로 후퇴시키면 기술력 부족으로 마모가 발생해서 사수의 얼굴이 불길에 휩쓸리겠지.”

“그럼 이 두 종류의 소총의 초도물량을 오 년 이내에 개발이 가능할까? 가급적 삼 년 이내에 개발하면 더 좋겠는데.”

“삼 년 이내에 개발하고 남으니 염려하지 마라. 그나저나 스코프를 장착하려면 프로이센에 있을 카를 자이스(Carl Zeiss – 자이스 사의 설립자)를 데려와야 하나?”

카를 자이스면 나도 알고 있으며 현대 광학기기의 정점인 자이스 사의 창립자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한데 일준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이 시대에도 현미경은 있지만 현대의 현미경 구조를 정립한 사람이 칼 자이스야.”

“그 사람 혹시 십 대 초반은 아니지? 너무 어린 시절에 데려오면 죽도 밥도 안 되는데.”

“대학에서 배울 것은 다 배우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공학 지식을 쌓고 있을 거다. 남연군 인맥을 통해 들여올 수 있으니 쉬운 일이기도 하지.”

대화 끝에 나온 결론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었다. 지금도 400m 거리에서 저격을 성공하는 조선의 사수들이 무연화약과 광학조준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 발달속도라면 흑색화약이 아닌 무연화약을 사용하는 개틀링건을 1850년대에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예산을 벌어들이려면 조선을 더욱 부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 * *

요동 일대에 기술자들이 먼저 파견되었다. 훔볼트야 프로이센으로 돌아갔지만 그에게 배운 요순학자들은 지질학을 배운 이항로와 함께 시찰에 나섰다.

여기에 중앙은행이 설립되고 김좌근이 임시 은행장을 역임하였다.

심지어 아내마저도 각종 적금 상품의 투자를 위하여 업무를 담당하니 김좌근은 날 마주치자마자 푸념을 하였다.

“내가 이토록 많은 돈을 만지는데 돈을 쓸 시간이 없어! 조카사위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그야 경제학을 배우셨으니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실천하심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농담은 집어치우고 가배(커피)를 달고 살다가 죽어 나자빠지겠으니 어떻게라도 좀 해보게나. 가루가 잇몸 여기저기에 박혀서 치아가 헐어 빠져버릴 지경이네.”

나도 업무는 제법 있었지만 조카사위이니 처삼촌을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대의 커피는 커피콩을 넣은 작은 냄비를 끓이는 터키쉬 커피이니 마시기도 불편한 녀석이었다.

그러니 안 쓰는 천을 이용해 커피가루를 걸러내는 드립커피를 즉석에서 만들어주었다.

김좌근은 커피가루가 모조리 걸러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사소한 일 말고 조정에 얽힌 일을 좀 해주게!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예산을 설정하다가 내 머리통이 터져버릴 지경이야!”

결국 김좌근을 필두로 한 탁지부의 필사적인 요청이 효명세자를 움직였다. 나는 외교 및 요동 이주 관련 업무와 이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통솔하는 이민아문(吏民衙門)의 임시 기관장을 겸임하게 되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백성들을 이주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았느니 심혈을 기울이도록 하라. 또한 다른 부서를 배려하며 이주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문제를 줄이도록.”

“신이 심혈을 기울여 이민아문을 통솔하겠사옵니다.”

“백성들의 이주를 순탄히 거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처가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명심하고 업무를 행하여라.”

효명세자는 나를 배려하여 자율권과 함께 많은 책임도 떠넘겼다. 지금까지 내 행동을 감안하여 보면 이는 신뢰를 드러냄과 동시에 나를 시험하고 기회를 주는 것과 같았다.

나와 일준이는 사실상 순조의 은혜로 이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며 충성심만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세상을 떠난 김조순의 부탁으로 안동 김씨와 혼약을 맺었지만 그 정도는 이 시대에 양반이다.

여기에 조선의 개국을 위해 수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나이다. 나를 의심하기는커녕 충심만 가득한 사람이라 인식하여 능력을 검증할 자리를 주면서 인맥을 쌓을 기회도 마련해 준 것이다.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하라는 말은 인맥을 쌓으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나를 훗날 조정의 중진(重鎭)으로 만들려는 효명세자의 뜻을 되새기면서 이민아문에 처음으로 출근하였다.

“진일(振佚) 영감님을 뵙습니다!”

“첫 출근인데 일찍 나와 계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각자를 소개해 주시면 어떠하신지요.”

내 신체 나이는 40이지만 조선시대의 신분상 나이는 34세에 불과하다.

관원 가운데는 거의 예순에 가까운 사람도 있어서 존댓말을 하였는데 휘하 관원들이 하나씩 자기소개를 하였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영길리에 함께 다녀온 한효정(孝靖 - 한정교)이라 합니다.”

“저는 불란서에서 머무르던 김미계(薇溪 - 김재현)라 합니다.”

“조금 늦었군. 나는 정식 관원은 아니지만 고문(顧問)으로 배정되었지. 얼마 전까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하던 이방야(方野 - 이광정)이라 하네.”

효명세자가 인원을 잘 배정해 주었다. 나를 제외하고 21명에 달하는 이민아문의 직원들은 10명이 혈기가 넘치는 젊은 관원이었고, 8명은 지방에서 갖은 공무를 수행하던 이들이었다.

마지막 세 명은 관찰사 경력이 있으며 고문 역할을 하는 나이 많은 관료들로 배정되었다. 나름 좋은 조합이니 이민아문의 첫 지시사항을 하달하였다.

“이 나라에 새로운 강역이 된 요동과 만주에는 이미 이백여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땅을 고스란히 강역으로 만들려면 몇 년간은 바삐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거대한 지도에는 전쟁 중에 조사한 자료들과 조선에 우호적인 도시들이 있었다. 사실상 조선군의 진군 경로가 한족들의 해방 경로이자 이주민들이 머무를 자리가 되었다.

“몇 년으로 될 일이 아니지. 화전민들을 쥐 떼 몰 듯이 잡아서 풀어놓을 생각이라면 절대 권유하지 아니할 걸세.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겨날지 모르지 않는가?”

“옳은 말이지. 백성들을 화합시켜 온건히 다스림이 마땅하다네.”

“조정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삼백여 명에 달하는 역관(譯官)을 육성하여 각 고을에 배정시키기로 하였네. 여기에 각 사단의 병사들을 파견하고 경험 많은 지방관을 파견하기로 하였지.”

세 명의 고문들은 내 말을 듣고 즉석에서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각기 형조나 병조 관직을 역임하고 지방관까지 역임한 사람들이니 이를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말해주었다.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니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답이지요. 한족들이 아무리 이 나라에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살면 문제가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 뭐 이런 말이라도 할 셈인가?”

이광정은 효명세자에게 나에 대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이득도 없는 행위를 왜 하겠는가.

농담으로 넘기려고 웃으니 이광정도 웃어넘겼고 다시 진지하게 말하였다.

“가장 쉬운 방법은 죄인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호패 미소지 같은 사소한 범죄도 전가사변으로 처리하여 이주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방안은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러하면 쌍성자에 화전민을 이주시킨 방안을 다시 쓸 생각인가?”

“나중에는 화전민을 보낼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은 나라와 계약을 맺고 신의(信義)를 가졌으며 자신의 땅을 개척할 사람들을 보내야 하지요.”

요동과 만주에 처음으로 이주할 사람들은 여러 손해를 보고 이주하게 마련이다. 한족들의 텃세와 기후 변화 그리고 이주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다.

화전민만 보낸다면 이들은 멋대로 도주하니 통제하기가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협력을 요청할 기관이 있었다.

“익문사에 공문을 보내어 근래에 일어난 범죄 행위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겠습니다.”

새로운 세금제도를 도입하고 오 년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지주들도 더욱 많은 이득을 얻으려고 불법을 저지르리라.

예상대로 지방 지주들 가운데 거대 지주들. 특히 땅을 100결 이상 소유하여 소작농을 수십 가구를 부리는 자들에게서 범죄의 조짐이 포착되었다.

“참으로 좋은 일이로군요. 그렇지 않아도 지방의 지주들을 한 번 단속할 때가 되었는데 익문사와 검리원이 힘을 좀 쓸 때가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라 하였는가? 대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기에 그리 좋은 표정인가?”

“지금 말씀을 드리면 참으로 곤란할 것입니다. 저는 물론이고 여러분 모두가 각지에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누설하면 아니 되지요.”

전쟁이 끝났으니 익문사가 다시 활약할 차례였다. 이미 효명세자의 명을 받은 익문사 관원들은 각지에 사람을 보내 지주 200여 명의 범죄행각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건 조금 나중에 활용하기로 하고 첫 정책부터 결정하였다. 백만 명 이상의 사람을 이주시킬 조선이 꼭 해야 하는 일이 본래 거주하던 한족(漢族)과의 신뢰 구축이었다.

신뢰가 없이 무턱대고 사람만 보내면 대등한 대우가 아닌 강압적인 통치로 보이리라. 그러니 처음에는 사람을 일부 받아들여 의심을 줄이고 조선으로 이주할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여야 하리라.

“익문사와 관련된 일은 나중에 합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사람을 보내기 전에 청나라 사람들을 이 나라에 받아들여 아량을 보여줌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넘쳐나서 논밭이 부족한 지경인데 청나라 사람을 받아들인다 하였는가?”

“모두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하니 이 나라에서 부족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받아들여 나라를 건실히 하며 사람들을 유입시킬 길은 열어주어야지요.”

이미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한양 곳곳에서 좌판을 열고 상업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다들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몇몇 젊은 관료들이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답하였다.

“병사들을 따라서 도성에 몰려온 청나라 사람 가운데 요리에 능한 사람이 여럿 있더군요. 철판에 빵을 구워내고 솥 하나에 돼지고기 덩어리만 있으면 온갖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요동 일대에서 군대 보조를 위하여 요리사들을 소집한 목적이 있었다. 이들은 한양에서 호떡을 시작으로 각종 요리를 만들며 돈을 벌어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 호떡을 먹는 상인들과 돼지고기 볶음을 사들여 찬거리로 삼는 아낙들이었다. 물론 외국 요리이다 보니 입맛에 맞지 않는 관원들이 질색하기도 하였다.

“청나라 요리 말인가? 나는 너무 기름지고 맛도 이상해서 속에 들어가지 않던데.”

“청나라의 요리가 이 나라의 입맛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게 만드는 방법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바로 곤포당이지요.”

일준이가 개발한 곤포당은 조선 내부에서는 요리에 들어가는 비싼 재료 중 하나였다. 이 시대 조선 요리에 글루탐산나트륨을 사용하려 해도 한계가 있었다.

육수 맛이 중요한 냉면, 서민들이 잘 먹지 못하는 진한 탕국, 각종 찜, 그리고 볶음 요리에나 조금씩 첨가하였다.

이광정은 곤포당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썹을 찡그리며 답하였다.

“곤포당을 주상전하께서 자주 드신다 하여 한 되를 사 두었는데 국에 넣으니 모든 맛이 곤포당과 같게 변해 버리더군. 그러한 물건을 기름진 청나라 요리와 섞는다고?”

“제가 청나라에 다녀왔을 때 궁중 연회에서 곤포당을 넣은 음식을 먹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기름지고 짜며 맛이 강한 청나라 요리에는 정말 잘 어울리는 재료더군요.”

글루탐산나트륨과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중국요리의 조화는 맛의 폭탄이다. 이를 입증하고 청나라 사람들을 조선에 흡수시키기 위하여 일종의 요리대회를 열었다.

겉으로는 요리대회이지만 실제로는 조선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곤포당으로 청나라 요리사들을 현혹시키고 정착을 돕는 과정이다.

이를 모르는 청나라 요리사들이 몰려들어 자신의 장기를 뽐내기 시작했다.

“저는 산동에서 이주한 사람의 후예인 주예훈이라 합니다. 제 조부님께서 아버지께 물려준 요리를 제가 직접 시연하게 되어 참으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한양에 머무르는 요리사 중 200여 명이 이 대회에 참석하였다. 명목상으로는 군대에 보급용으로 사용할 부식들을 선별하는 자리이니 요리사 여럿이 모여 한 가지 요리를 대량으로 하였다.

한 요리사들은 된장을 사용한 요리를 보여주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아는 요리를 시도하였다.

기름을 부은 냄비에 된장을 볶으며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조부님의 고향인 상동에서는 작장(炸酱)이라 하여 콩으로 만든 장을 볶아서 면에 비벼 먹습니다. 대신 된장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잠시 조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장에 살짝 눌은 설탕물과 곤포당을 약간 넣으면 호응이 더 좋을 것 같군요.”

내 말을 들은 주예훈이 슬쩍 노려보았지만 높으신 분의 뜻이니 받아들였다. 냄비 하나에서는 된장과 다진 고기를, 다른 하나에서는 내 주문대로 변형한 된장을 볶아나갔다.

완성된 요리는 현대의 자장면과 다르게 면 위에 길게 자른 채소와 볶은 된장을 올린 요리였다.

의도대로 맛이 나오기는 했는지 모르지만 서로 먹어보니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청나라 방식으로 만든 요리는 맛이 부족하군. 텁텁하고 너무 짠맛이 강해.”

“반면 진일 영감께서 원하는 대로 맛을 바꾼 요리는 너무나 맛있습니다. 조금 물기가 부족해서 문제이지만 그거야 이걸 좀 부으면…….”

맛은 현대에서 먹는 짜장면과 맛이 달랐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물건이 나왔다.

게 눈 감추듯 사라진 면을 바라본 요리사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조선 사람의 입맛을 모르고 있었는데 곤포당이 답이었군요. 궁중 연회를 드셔보셨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이리도 미각이 뛰어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 뒷발질에 개구리를 잡은 격에 불과하니 칭찬하지 마시지요.”

이외에도 여러 요리가 선을 보였다. 대부분의 요리는 내 주장에 의하여 현대 중식과 비슷하게 개량되었으며 글루탐산나트륨을 받아들여 맛의 폭탄이 되었다.

돼지갈비를 튀겨낸 요리는 살을 발라낸 탕수육으로 변하였다. 양고기를 사용한 훠궈는 냄새가 적은 쇠고기와 곤포당을 넣은 육수를 받아들여 샤브샤브로 탈바꿈하였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병사들은 아예 감사 인사를 올리며 극찬하였다.

모든 요리 소개가 끝날 무렵, 군대에서 쓸 반찬이 병사 투표로 선정되었고 나는 은자 열 냥 정도의 상금을 주면서 제안하였다.

“이런 좋은 요리를 더욱 개량하고 퍼트려 조선에서 인정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까?”

“기회만 주신다면 사력을 다하여 임하겠습니다!”

설득에 성공하였으니 이제 조건을 걸 차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청나라 사람이 조선에 사는 것과 같은 화교(華僑)가 아닌 청나라 혈통을 지닌 조선 사람인 화예(華裔)로 만드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