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06화 (106/345)

106. 10장 3화 런던 내각 무너져(2)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시련에 직면하였다. 훗날의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자성을 추구하는 사상가들이었다.

사회주의를 정립한 카를 마르크스는 아직 대학생에 불과하였다. 사상적으로도 미숙한 사회주의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사상이지 국제적 조직화는 꿈조차도 꾸지 못할 실정이었다.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였다.

오늘도 사회주의자 몇 명이 맨체스터에서 돌아와 정례 보고를 시작하였다.

“공장의 환기구 부설은 점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쓸데없는 돈을 사용한다고 질책하였지만 노동 효율이 증가하니 너도나도 설치하더군요.”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는 있었습니까?”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 프랑스 사람이라면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답례를 하겠지만 영국은 워낙 깍쟁이들이라 천천히 환수한다고 하더군요.”

영국의 공장들은 나름 노동법을 준수하여 노동자를 배려하는 공장부터 노동법을 무시하고 불법을 자행하는 공장까지 다양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법을 아예 무시한 공장의 노동자들을 이직시키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며 활동하였다. 이 덕분에 노동자들에게 ‘프랑스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도 예외사항이 있기는 하였다. 각종 중금속을 가공하는 안료공장의 경우는 비소나 납 같은 중금속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권리를 쟁취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독성 물질에 대한 연구결과는 현대인이 체제를 정리하는 조선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기에 관여할 수 없었다.

결과를 확인한 오귀스트 콩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번 달에도 세 곳의 공장을 개선하였으니 로버트 오언 공장장께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그분의 후원금이 없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귀스트 콩트는 사회학의 시조이며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본래 역사에서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라서 제대로 된 친구도 만들지 못하여서 영향을 끼친 것이 전부였다.

언쟁을 일삼던 그는 조일준에게 권투를 신청하였고 철저하게 두들겨 맞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물리치료의 효과인지 그는 나름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치아 세 개가 소실되었다.

그는 뒤늦게 공상적 사회주의자에 합류하였다. 순식간에 핵심 인물이 되었으며 다소 독선적이라는 단점을 제외하면 모두가 지도자로 인정할 정도의 자질을 갖추었다.

이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의 재산을 털어내고 후원금을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덕분에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생활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질 수준이었다.

“물론 우리의 후원자인 존 스튜어트 밀과 글래드스턴 경의 성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후원을 통하여 우리는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더욱 굳건한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는 이들은 프랑스의 부호들이나 로버트 오언을 비롯한 몇몇 깨어 있는 공장장들,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소수의 영국 정치인이었다.

언제나 적자만이 가득한 장부였지만 그 적자는 모두 노동자의 권익을 위하여 소모된 돈이었다. 정례 보고가 끝나고 각각의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터전으로 향하였다.

“오귀스트, 저는 맨체스터의 차티스트 운동가들과의 연계를 주선하겠습니다.”

“저는 고아원을 순찰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자금을 조금만 융통해 주십시오.”

“제가 함께하지요. 지금 자금이 조금 부족한 실정이니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귀스트 콩트가 주목한 것은 고아원이었다. 공장 근로자들은 대부분 어른이며 아동 근로자들도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자식이기에 어느 정도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고아들은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이 아닌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이들을 보호해야 할 고아원 원장들은 가혹한 착취를 일삼으며 최대한의 이득을 추구하였다.

착취를 막아내는 활동 또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업무였다. 덕분에 오귀스트 콩트는 ‘털 빠진 쌈닭’이나 ‘대머리수리를 흉내 내는 닭’이라는 별명이 생겨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친 프랑스 쌈닭이 또 왔네.”

“내가 쌈닭이 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지 않나?”

고아원에서 줄줄이 끌려 나와 일터로 향하는 아이들을 감시하려던 콩트는 수많은 아이들이 운집한 것을 확인하였다. 놀랍게도 영국 경찰들이 고아들을 고용하였다.

이미 경찰과 몇 번이고 마찰을 일으킨 콩트는 눈을 흘겼고 순경들이 다가와 조금 망설이다가 설명을 하였다.

“이 아이들을 데려가서 런던 내부에 있는 다람쥐를 생포할 예정입니다.”

“다람쥐를 생포한다고? 그 재빠른 놈들을 어떻게 아이들로 생포할 생각이지?”

“어른들로 시도해 보았는데 밟아 죽이거나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서 짓뭉개 죽이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여왕전하의 명이니 긁어 부스럼이나 일으키지 마십시오.”

오귀스트 콩트가 보기에도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온갖 음식을 훔쳐 먹고 벼룩을 퍼트리는 다람쥐는 유해조수이다. 다만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귀여운 애완동물로 팔 수 있었다. 그 수익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돌아간다면 괜찮은 생각이리라.

아이들과 함께 버킹엄 궁전 인근의 성 제임시즈 공원(St. James's Park)로 향한 오귀스트 콩트는 공원의 정취를 보며 감탄하여 말하였다.

“런던 외곽에는 생지옥이 펼쳐져 있지만 런던 안은 천국이 따로 없군.”

모든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고 일부 상류계층에게만 개방된 공원에는 수많은 다람쥐가 돌아다녔다. 경찰들은 그물을 가져와 구획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이 할 일은 호숫가로 다람쥐를 몰아서 모조리 잡는 거다. 한 마리를 생포할 때마다 십 페니를 지급하도록 하지!”

“한 마리를 생포하면 정말 십 페니를 주시는 건가요?”

“여왕전하께서 보증하신 바이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뭘 하지? 저기 돈이 굴러다니잖아!”

평상시라면 유리 조각을 비롯한 위험한 물건들이 섞인 하수구의 분변을 뒤적거리거나, 더욱 끔찍한 일을 하고 몇 페니(20페니 = 1실링)를 받으며, 그마저도 모두 고아원에 상납하던 아이들이었다.

이스트엔드의 끔찍한 환경이 아닌 상류층들이 돌아다니는 공원이 무대였다. 아이들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움직이며 다람쥐를 몰아세우고 나무에 오르며 굴을 헤집었다.

당연히 재주도 없고 의욕만 앞선 아이들이니 다람쥐를 죽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다람쥐가 죽을 때마다 경찰들은 고의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생각한 경위가 빅토리아에게 받은 명령대로 나섰다. 뼈만 남은 앙상한 아이가 다람쥐를 네 마리나 죽이자 멱살을 잡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생포하라고 했지 죽이라고 했냐!”

“아이들이 다람쥐를 죽일 수도 있지 왜 때리나!”

뺨을 한 대 세게 때리려던 경위의 손이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가로막혔다.

경위는 아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여전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오귀스트 콩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무집행 방해요.”

“아이를 두들겨 패는 것을 막았는데 공무집행 방해라고?”

빅토리아가 내린 명령은 프랑스에서 이주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콧대를 적당한 기회를 보아 꺾으라는 것도 있었다. 그는 곤봉을 사용하려다가 오귀스트 콩트의 작은 체격을 확인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썩 꺼져!”

상대가 주먹을 휘두른 것과 동시에 오귀스트 콩트는 더킹(ducking)으로 무릎을 구부리고 머리를 숙였다.

그는 조일준에게 두들겨 맞은 이후 유행이 된 현대 권투를 구사하였다.

실력은 부족하였지만 방심한 상대에게 한 방을 먹이기는 충분하였다.

경위는 콧대를 꺾으려다가 코에 주먹이 제대로 적중하여 코피를 뿜으며 코뼈가 단번에 부러져 버렸다.

“루카스 경위! 저 프랑스 놈이 루카스 경위를 구타했다!”

“정당방위다! 그렇게 원하면 결투를 하든가!”

“이 개구리 먹는 놈이 정신이 나갔나!”

세 명에 불과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게 빅토리아의 밀명을 받은 여덟 명에 달하는 경찰들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자존심을 앞세워 곤봉을 쓰지 않고 차고 주먹을 휘둘렀다.

“머레이 경위가 당했다!”

“프랑스 놈들은 셋에 불과하잖아! 두들겨 패!”

“가이브러쉬 순경도 당했습니다! 쓰립우드 수석경위님도 실신했습니다!”

공원에서 벌어진 난투극은 주변을 돌아다니던 상류층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밀명을 받아 프랑스인을 두들겨 패고 콧대를 꺾으려던 경찰들이 물리적으로 콧대가 꺾이기에 이르렀다.

얼굴 이곳저곳에 멍이 생긴 오귀스트 콩트가 코피를 풀어냈고 나머지 경찰들은 여덟 명의 동료가 쓰러진 몰골을 보고 몽둥이와 칼을 들고 포위하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있소?”

“그쪽이야말로 할 말이 있나? 약해 빠진 영국 경찰 같으니.”

아이들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생포한 다람쥐를 가져올 무렵, 오귀스트 콩트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폭력 행위를 빌미로 구금되었다.

빅토리아의 계획은 잠시 헝클어졌지만 본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런던의 각 일간지는 공원에서 벌어진 집단 난투극에 대해 논하였고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게 불이 붙어버렸다.

“아이고 선생님들! 오귀스트 큰 선생님께서 폭력 혐의로 구금되셨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선생님들 덕분에 저희가 사람답게 살게 되었는데요!”

첫 시작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한 오귀스트 콩트의 체포 소식을 듣고 하소연을 하였다.

다음으로는 차티스트 운동가들이 움직였다.

“우리의 동지가 영국 경찰에 의해 구금되었는데 뭘 하고 있소! 어서 움직입시다!”

“이번 기회에 투표권을 쟁취합시다! 모두가 집결할 기회요!”

“엄밀히 말하면 오귀스트 콩트를 비롯한 사람들이 공무집행을 방해했지 않습니까.”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는데 뭔 소리요! 당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프랑스로 추방할 것이라 하였는데!”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동지들의 요청을 듣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인도주의와 자성을 기반으로 한 사상이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여 감화될 것이라 상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이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과의 접견을 통해 동료들의 사면을 시도하였다.

“글래드스턴 경이 접견 요청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요즘 하는 일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제 지인과 관련된 일이 있습니다. 제가 다녀오는 곳이…….”

“이스트엔드의 빈민들과 차티스트 운동가 그리고 프랑스에서 건너온 사회주의자들이지요?”

빅토리아의 눈빛을 확인한 글래드스턴은 이 사건이 여왕의 주도하에 일어난 일임을 인지하였다. 침묵으로 답한 글래드스턴에게 빅토리아는 조소(嘲笑)를 담아 말하였다.

“글래드스턴 경은 최근의 패전 소식을 알고 있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내각은 물론이고 제 목숨까지 위태로울 지경이니 나라를 조금 뒤엎을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여왕전하께서 명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명령을요? 의회에서는 전쟁 거부에 대한 논지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는데 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생각하지요? 스스로 움직이셔야지요.”

빅토리아는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였지만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영국군은 조선-청나라의 전쟁을 부추기고 개입하여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였다.

차티스트 운동가들과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기반으로 정치 세력으로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평소라면 소수의 의원들이 기반이 된 군소정당을 설립하는 것이 한계였다.

지금은 달랐다. 패전 책임을 진 내각이 모조리 사퇴하면 군소정당이 아닌 여당(與黨)까지 노릴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노려 새로운 당파를 창당할 계획을 구상한 글래드스턴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은 여왕전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권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움직이겠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누군가 만들어낸 물결이지만 이 물결을 타고 성공을 거두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여전히 언쟁을 벌이는 차티스트 운동가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모인 장소에 글래드스턴이 들어왔다.

“글래드스턴 경! 여왕전하와의 접견은 마치셨습니까? 오귀스트 콩트의 사면은요?”

“우리가 쟁취해야 할 일이지! 다들 뭘 하시오? 왜 엉덩이를 뭉개고 있소!”

공상적 사회주의자는 물론이요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글래드스턴의 변화를 확인한 차티스트 운동가들은 의문을 품었다.

반면 글래드스턴은 지금의 현실을 일깨우듯이 말하였다.

“영국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으며 조선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형편이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치 세력이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소?”

“그야 상류계층의 반동(反動)에 휩쓸려 구석으로 밀려날…….”

“밀려날 리가 없지 않소! 최악의 사태로 인하여 동방 무역이 완전히 끊기면 공장주들은 물건을 수출할 수 없소! 더군다나 우리가 마시는 차의 대부분이 동방에서 들여온 차요!”

“그러하면 상류층이 우리를 억압할 이유는 없겠군요.”

“일이 달성되면 어느 정도 선을 지켜서 타협을 볼 것이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상류층이 먼저 내각을 무너트리고 정권을 휘어잡을 것이니 서둘러 움직입시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를 규합하고 빈 곳은 차티스트 운동가들이 메꿨다.

사건 발생 이후 나흘이 지난 1월 14일이 되자, 대부분의 공장주는 일방적인 파업 소식을 들었다.

“저희 노동자 모두는 내일 일제 총파업을 단행하겠습니다.”

“이 친구들이 지금 뭐라 했지? 환기구도 설치했잖아!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식사도 제대로 된 것으로 줬는데 일제 파업? 제정신이냐?”

“공장장님께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차티스트 운동가의 설명을 들은 공장장은 머리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였다. 추정에 불과하지만 조선-청나라의 전쟁에 개입한 영국은 패전을 거듭하고 권리를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마시는 청나라의 차도, 자신이 수출하는 각종 물품도 틀어 막히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지금의 영국 정부라면 굶어 죽건 말건 개인의 책임이라며 방임하리라.

그나마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노동자를 신경 쓰는 새로운 정권에 이바지하여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도박이로군.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면 재산은 보존하겠지만 기존 내각이 유지되면 덤터기를 쓰고 쫓겨나게 생겼어.”

“그러니 저희의 총파업을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난 도박에 강하니 자네들과 함께 나서겠네. 나도 합류하도록 하지.”

소수 공장장들과 차티스트 운동가 그리고 공상적 사회주의자가 돌보던 노동자들이 일제 파업을 결의하였다.

다음 날인 1월 15일, 영국 경찰을 상대로 빅토르 위고가 항의를 하고 있었다.

“오귀스트 콩트의 혐의는 어린아이들을 구타하려는 경찰을 막아선 것이니 구금할 필요는 없지 않소?”

“그래도 여덟 명의 경찰이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조만간 추방과 입국 금지 조치가 취해질 것이니 돌아가시지요.”

새벽부터 취재를 겸하여 영국 경찰청을 방문한 빅토르 위고는 짜증을 내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마차에 올라 이스트엔드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철부지 친구들이 나름 제대로 된 세력을 만들었다 하였는데 추방과 입국 금지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지원을 할 걸 그랬나.”

빅토르 위고는 작품의 소재를 찾아 눈을 돌렸다. 번화한 영국 시내는 소재가 될 수 없었지만 공상적 사회주의자가 있는 빈민가는 소재가 되리라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과 달리 마차가 멈추었고 풍경이 변하지 않았다. 난데없는 교통체증에 빅토르 위고가 마부를 독촉하듯이 말하였다.

“왜 마차가 멈추었지? 혹시나 내가 프랑스 사람이라고 검문을 하였나?”

“검…… 검문이 아니고 제가 설명드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차의 문을 열고 내린 빅토르 위고는 이스트엔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걸친 사람 수천여 명이 길거리를 틀어막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일어나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아. 일어나라 굶주림의 노예들아.]

프랑스의 국가였던 라 마르세예즈의 가락에 맞추어 아직 인터네셔널 가가 아닌 ‘노동자들의 노래’가 울렸다.

여기에 차티스트와 공상적 사회주의를 결합한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빅토르 위고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거머쥐고 마차에 기대 상황을 바라보았다.

[이성의 불길이 분화구에서 타오르니. 이것은 마지막 외침이 되리라.]

[세상은 밑바닥부터 뒤바뀌고.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모든 것이 되리라.]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깃발을 휘두르고 노래를 불렀다.

이 사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빅토르 위고는 감동의 눈물을 한 줄기 흘리며 말하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건 혁명이 아닌가!”

“혁명이요? 그럼 단두대가 설치됩니까?”

“아니지! 경찰들이 일제 사격을 할 거라네!”

빅토르 위고가 왔던 방향에 있던 경찰서의 경관들이 중무장을 한 채 대열을 막아섰다.

이대로라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제 사격에 희생될 것이라 생각한 빅토르 위고가 결단을 내렸다.

“이 마차를 내가 사겠네! 대열 앞을 마차로 가로막게!”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제정신이 아니지! 그러니까 어서 말과 함께 도망치도록 하게!”

양측이 대치하는 와중에 빅토르 위고가 탄 마차가 움직여 노동자들의 대열 앞을 가로막았다.

빅토르 위고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마차 위로 기어 올라가 외쳤다.

“억압받은 민중이어! 어서 일어나시오!”

“기립하시오! 모두 기립하여 외치시오! 억압받은 민중이어! 일어나라!”

총화기를 앞세운 진압을 염려한 영국 시민들은 눈을 가린 채 손가락 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머스킷을 장전하고 기병 돌격을 준비하던 경찰들은 이 광경을 보고 말하였다.

“모두 퇴각해라! 프랑스의 문호(文豪) 빅토르 위고를 쏘아죽일 생각이냐!”

“그럼 폭동을 진압해야지요! 빅토르 위고건 누구건 간에…….”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게 되면 그 책임은 사격한 놈이 질 것이다! 대열을 열어라!”

경찰 간부들은 빅토르 위고가 대열에 합류한 명분을 앞세워 진압을 포기하였다.

빅토리아의 명령을 받아 계획된 일이지만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외쳤다.

“가자! 버킹엄 궁전으로 가서 여왕 전하를 접견하여 우리의 요구사항을 논하자!”

정부의 개입과 의도적인 경찰의 방임으로 혁명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어느새 시민들과 시위대를 격리하는 역할을 자처한 영국 경찰은 빅토르 위고를 보며 감사를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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