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07화 (107/345)

107. 10장 3화 런던 내각 무너져(3)

영국은 1688년에 일어난 명예혁명 이후 영국 의회에 의하여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법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빅토리아는 이 권리장전의 영역 내에서 시위를 제어하려 하였다.

권리장전 제2조에 의거하여 왕권은 법률이나 그 집행을 무효화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국민이 나서서 왕에게 청원을 하는 상황이었다.

권리장전 제5조는 국왕에게 청원을 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며, 청원을 하였다고 구금되거나 박해를 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확인한 빅토르 위고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분의 행동은 법으로 보장한 국민의 의무요! 이 의무를 쟁취합시다!”

“그렇다면 동지를 구출합시다! 오귀스트 콩트와 프랑스에서 건너온 동지들을 석방하라!”

“그만 두시오. 영국 경찰은 법의 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소이다!”

오귀스트 콩트의 석방은 시위 이후에 얻어내야 할 일이며 지금은 시위의 순수성이 중요하였다. 이스트엔드의 빈민들을 설득한 빅토르 위고는 버킹엄 궁전을 향해 전진했다.

상황을 전달받지 못 한 빈민들이 속속들이 합류하며 시위대의 규모를 부풀렸다. 경찰들은 시위대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무장을 압수하고 단속하며 대열을 정리하였다.

빅토르 위고는 이 한가운데에서 끓어오르는 민중의 의지를 온 몸으로 체험하였다.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문학적 소양이 그의 손을 통하여 발휘되었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자들의 권리를 얻어내려는 노래가.”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라 마르세예즈를 개사한 ‘노동자들의 노래’를 대신하여 빅토르 위고가 즉석에서 노래를 작사하였다. 가락은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였다.

런던 시내로 다가갈수록 시위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부드러운 가락을 흥얼거리며 시위에 호응하였고 시위대의 중심인 사회주의자들과 차티스트 운동가들이 권유하였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기립하고 모두 기립하시오! 우리 모두가 민중이 아니오!”

영국은 제임스 2세 시절에 벌어졌던 명예혁명을 무혈혁명으로 칭송하였지만 실제로는 반란과 내전이 일어나며 수많은 피가 흘렀다.

반면 이 혁명은 빅토리아 여왕의 의지, 의회의 항복 그리고 폭력 행위를 기피하는 노동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진정한 무혈혁명을 달성하려 하였다.

버킹엄 궁전 입구까지 닿은 시위대는 점점 늘어나는 기마경찰들에 의해 멈췄고 ‘민중의 노래’가 주변을 울렸다. 이미 규모는 이만여 명이 넘어갔으며 마침내 궁전의 입구가 열렸다.

“저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이 여왕전하의 명을 전달합니다. 버킹엄 궁전의 호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대표 서른두 명의 출입을 허가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빅토르 위고와 프랑스에서 건너온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여기에 차티스트 운동가 대표와 공장장 대표 그리고 노동자 대표가 합류하였다.

총 33명의 사람들은 즉각 빅토리아를 접견하였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확인한 빅토리아는 프랑스의 사람들을 흘겨보면서 말하였다.

“버킹엄 궁전에 외교관이 아닌 프랑스 사람들이 들어올 줄은 몰랐군요. 본래 국민의 청원을 듣는 것이 제 의무이지만 외국인의 청원도 들어 보겠습니다.”

“저희의 청원은 프랑스 사람으로서의 청원이 아닌 영국의 노동자를 대신하여 올리는 청원입니다. 여왕전하께서는 민중의 노래가 들리십니까?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의 청원 말입니다.”

밖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국민의 노래를 들은 빅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사회주의자들이 나서서 청원을 올렸다.

사회주의자의 청원은 지나치게 이상(理想)적이며 온건하였다. 이들은 노동시간을 10시간 이하로 단축, 공장 환경 개선, 노동자의 권익 그리고 빈민들의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하였다.

“노동법의 추가 개선과 빈민들의 권익 보장 그리고 지원 약속이로군요.”

“국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천재지변에 대한 보상도 필요합니다.”

“심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이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청원입니다. 국민들의 권리는 국가와의 계약으로 인하여 보장받은 것이니 어떻게 보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지요.”

사회주의자들에게 실망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모든 청원을 단번에 얻어낼 수는 없었다. 다음으로 나선 이들은 차티스트 운동가들이었으며 요구 사항이 간단하였다.

“저희는 선거권의 확대를 요구합니다. 부르주아 계층이 아닌 보편적인 성인들이 모두 투표권을 얻어낼 것을 요구하겠습니다.”

“하원에 즉각 선거개정에 대한 투표를 요구할 것이나 보편적인 성인까지 대상을 확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빅토리아 입장에서는 뼈아픈 요구였다. 그녀는 한 나라의 군주였으며 이 시대의 정치는 상류 계층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였다.

아예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불만이 축적된다면 자신까지 단두대로 향할지도 몰랐다. 최소한 가시적이고 점진적인 투표 확대로 노동계층의 불만을 해소해야 하리라.

다음으로 청원을 올린 사람은 공장장의 대표였다. 이들은 조만간 벌어질 사태를 짐작하고 빅토리아에게 자신들의 이득을 신장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동방 무역이 조만간 위기에 봉착할 것 같습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차의 수입이 끊기면 수많은 사업가들이 도산할 것이니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옳은 말씀이군요. 특별 대출을 마련하여 피해를 입은 공장을 지원하겠습니다.”

마지막 청원을 올린 사람들은 이스트엔드의 빈민들이었다. 이들은 사회주의자와 차티스트 운동가들이 자신이 할 말을 대신하였기에 생활환경 개선을 요청하였다.

“런던의 환경을 개선해 주십시오. 이스트엔드를 개선하라는 뜻은 아니며 템스 강에 축적된 오염물을 청소하고 하수도를 개수하여 오염물 축적을 막아 주십시오.”

“저 또한 템스 강의 악취를 경험하여 두통이 생긴 적이 있었지요. 좋은 사람을 고용하여 차근차근 하수도를 정비하고 템스 강을 옛 모습으로 되살릴 것입니다.”

영국의 내각은 조만간 동방 무역에 타격을 입은 영국은 경기침체를 겪으리라 예상하였다. 이 경기침체를 되살리기 위한 고용확보와 토목공사가 필요하였는데 좋은 소재였다.

청원이 끝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고 빅토리아는 청원을 정리하여 글래드스턴에게 서류로 만들었다. 이를 하원에 보낼 것을 명하고 청원이 종료되었다.

글래드스턴을 앞세운 사람들이 돌아오자 시위대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가장 먼저 나선 글래드스턴은 빅토리아가 작성한 서류를 높이 들면서 말하였다.

“여러분! 여왕전하께서 우리의 청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하원으로 나아가 뜻이 맞는 의원들을 소집하고 법안을 정립하겠습니다. 인내의 시일이 끝나면 결실이 열릴 겁니다!”

아무런 피를 흘리지 않은 혁명이지만 이제 피가 흐를 예정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정리한 청원을 통과시키게 될 영국 하원은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수정하며 통과시켰다.

“노동법의 개선 중 열 시간의 노동 시간이 통과되었습니다. 다음 법안은…….”

차티스트 운동가와 노동자들을 끌어들인 순간 내각 총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부르주아 계층의 권익을 분배하라는 정책이 대다수였으니 이 책임을 짊어져야 하였다.

투표권을 확대하여 새로운 유권자를 150만 명이나 육성하였지만 현 내각 수뇌부는 정치권에서 완전히 적출될 예정이었다.

이 기회를 노려 글래드스턴은 수많은 의원들과 새로운 유권자들이 뽑을 예비 정치인들을 포섭하였다.

한때 파머스턴 아래에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때가 되었다.

“노동당이라는 새 정당을 창설할 것이며 임시 당수는 글래스고의 공장장인 로버트 오언을 추대하겠습니다. 의원에 당선되면 공식 정당으로 출범하지요.”

한때 토리당이라 불렸던 보수당은 세력이 위축되었으며 내부 파벌도 분열되었다. 이로 인하여 토리당 내부의 자유주의 파벌이 휘그당에 소속되기에 이르렀다.

휘그당은 당명을 자유당으로 변경하였으나 의석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자유당의 정책에 만족하지 않은 이들이 노동당에 합류하였으니 영국의 정계가 뒤흔들렸다.

* * *

의회의 법안은 매일같이 영국의 일간지를 장식하였고 영국의 부호들은 새로운 정책에 반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2월 15일 전해진 소식은 부유층 모두를 들끓게 하였다.

[영국, 조선-청나라 전쟁의 협상에 졸속 서명]

패전소식과 영국이 아무런 이득조차 얻지 못한 협상으로 인한 분노가 상류층을 움직였다. 가장 먼저 의회 앞을 점거한 부유층은 분노를 담아 구호를 외쳤다.

“전쟁 채권이 휴짓조각이 되었으니 네놈들의 재산을 털어서 메꿔라!”

“승산이 있다면서 왜 비참한 패전을 하였나!”

“내각은 사퇴하라! 수뇌부는 모조리 퇴임하여 평생 하수구의 분변이나 치워라!”

“네놈들이 맞아 죽기 싫어서 법안을 졸속으로 통과시켰구나!”

패전을 책임진 내각 총사퇴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다음으로 시위대는 전쟁의 원흉인 총리 윌리엄 램과 총사령관 아서 웰즐리 그리고 존 헨리 템플 파머스턴 자작을 비난하였다.

이 세 명 중에 그나마 윌리엄 램의 대접이 좋았다. 별다른 치적이 없는 총리가 빅토리아 여왕의 조언가로 활약하다 말년에 판단을 잘못 한 것이라 이해했다.

“총리는 즉각 사퇴하라! 아무것도 안 하다가 처음으로 제대로 한 일이 이딴 짓이냐!”

“총리! 사퇴! 총리! 사퇴!”

대접이 좋은 사람이니 시위대가 저택을 세 겹으로 에워싸고 구호를 외치는 수준에서 끝났다. 다만 아서 웰즐리, 웰링턴 공작은 이보다 조금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많은 전쟁에서 전훈을 세우고 나폴레옹 전쟁까지 끝낸 그의 치적은 대단하였지만 이번 전쟁은 끔찍한 실책이었다.

그러니 시위대는 어깨동무를 하고 저택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런던내각 무너져! 무너져! 무너져!”

“런던내각 무너져! 아이고 우리 여왕님!”

“웰링턴 공작! 네놈은 노망이 들었다! 썩 물러나라!”

시위가 더 번지지 않은 이유는 웰링턴의 휘하에서 활약한 장성들의 보호 덕분이었다.

반면 대 청나라 정책과 외교를 전담하였던 파머스턴의 저택은 살벌한 고함이 들려왔다.

“파머스턴! 우리의 날아간 재산이! 네놈의 멍청한 정책의 피해가 정의를 원한다!”

“집 밖으로 나와라 이 비겁한 녀석! 나와서 심판을 받아라!”

“네가 앗아간 국익과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 앞에 무릎을 꿇어라! 이 국가의 반역자야!”

멋들어진 연미복을 입은 신사들은 대다수가 전쟁 채권 구매자였다. 여기에 각 공장의 공장장들과 해운업자가 합류하였고 다음으로는 자식을 장교로 보낸 부모들이 합류하였다.

파머스턴의 저택을 포위한 이들은 그를 국가의 반역자이자 나라를 말아먹은 원흉으로 보았다. 아예 의회로 들이닥칠 생각까지 하였지만 반역죄이기에 차마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의회 방향에서 한 무리의 기마경찰이 다가왔다. 파머스턴이 온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기마경찰을 돌파하려 하였다.

“저기 매국노가 온다! 파머스턴 이 개자식아!”

“비켜주시오! 외무장관께서 저택으로 들어가야 하니 길을 비키시오!”

잠시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서 각종 물자와 파머스턴의 저택에 있던 하인들이 교대하였다. 이를 확인한 기마경찰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놈은 파머스턴이 아니야! 저건 의회에서 일하던 서기관이잖아!”

기마경찰이 호위하던 사람은 파머스턴이 아닌 의회에서 일하는 하급 서기관이었다. 시위대는 상황을 파악하고 저택을 다시 포위하였다.

“파머스턴이 저기 있다! 저놈이 하인으로 위장해서 저택으로 들어간다!”

“돌을 던져! 신명기에도 나와 있으니 악을 행한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 하였다!”

날아드는 돌팔매를 피해 저택 안으로 들어간 파머스턴에게 분통을 터트린 시위대가 유리창에 돌을 던졌다. 유리창이 마구잡이로 깨지는 가운데 파머스턴은 다음 대처를 시작했다.

가구와 합판을 비롯한 도구로 유리창을 막아버렸으니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사람들이 담장을 넘으려 하자 경찰들이 허리띠를 잡으며 제지하였다.

“도가 지나치십니다. 뭘 던지는 것은 눈감아드릴 수 있는데 저택 안으로 들어가셔서 유혈사태를 벌이시면 저희도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저놈은 나라를 망친 죄인이야! 네놈들이 당장 법정에 세워서 처벌을 내려야지!”

“파머스턴 경은 아직 범죄자가 아닙니다. 설령 범죄자라 하여도 남의 사유지에 침입해 사적인 처벌을 내리는 것은 여러분들의 권리가 아닙니다.”

돌팔매까지는 허용하여도 자택 침입은 불허하였다. 시위대는 장기전을 시작했고 홍차 수입 경로가 막힐 위기에 처한 트와이닝스(Twinings) 사에서 이들에게 협력하였다.

시위대는 천막을 치고 교대로 근무하였으며 간단한 식사를 먹으며 포위를 늦추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이윽고 삼 일이 지나자 의외의 인물이 시위대를 방문하였다.

“불초(不肖) 의순이 묻겠습니다. 시주들께서는 어찌하여 여기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승려 초의 아니시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그야 트와이닝스 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조선에서 차의 달인으로 꼽히는 초의선사는 몇 년 전부터 영국에 머무르며 불법을 설파하고 트와이닝스 사의 홍차를 만들었다.

그는 속세에 일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손이 멈추었다.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니 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조선이 청나라와 전쟁을 벌인다고 하였는데 전쟁을 촉발시킨 원흉이 저택 안에 웅크려 있다니요.”

“그러니 돌을 던지고 고함을 쳐서 놈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입니다.”

초의선사도 조선 사람이었으며 파머스턴이 주도한 정책에 분노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던진 돌이 창문을 막은 나무판에 부딛히는 것을 보고 혀를 차면서 말하였다.

“시주들께서는 어찌하여 좋은 수단을 가지고 어깨 힘만 사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수단이라 하셨습니까? 돌을 던지는데 어깨 힘이면 충분하지요.”

“목에 두른 스카프를 주시지요. 비단으로 만들어 질긴 물건이면 가장 좋습니다.”

초의선사는 어린 시절에 출가하기 전에 산천을 돌아다니며 놀던 어린아이였다. 어린 시절에 익혔던 석전(石戰)을 떠올린 초의선사는 길이가 1m에 달하는 스카프를 받아들었다.

스카프를 반으로 접고 묶어 투석구(投石具)로 만든 초의선사는 앞의 사람을 비키게 하고 천천히 속도를 높여 투석구를 돌렸다.

이윽고 원심력을 잔뜩 담은 투석구에서 돌이 날아갔다.

손으로 던지는 것의 몇 배나 날아간 돌은 포물선을 그리며 저택의 벽에 충돌했고 대리석으로 만든 외장재가 산산조각으로 깨져 나갔다.

모두가 초의선사를 멍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한 명이 질문을 하였다.

“제가 알기로 승려는 살생 행위를 안 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돌을 맞으면 사람이 머리통이 깨져서 즉사할 위력 아닙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석전을 단 한 번 했을 뿐입니다. 마침 돌이 날아간 자리에는 저택이 있었을 뿐이지요.”

“그나저나 이렇게 간단히 슬링(sling – 투석구)을 만들 수 있다니.”

“조선에서는 여섯 살 어린아이도 이렇게 노는 법입니다. 허리띠로 만들면 위력이 더 좋을 것이니 직접 만들어 보시지요.”

깊게 합장을 올린 초의선사는 스카프를 돌려주었다. 석전을 비롯한 투석(投石) 전통이 17세기 이후 소멸된 영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동방의 선물과도 같았다.

“다들 스카프를 풀어서 슬링을 만들어라! 돌을 더 가져와!”

“조선에서는 여섯 살 아이도 이걸 사용한다더라! 우리도 일제사격 개시!”

어설픈 투척구이지만 어깨 힘의 몇 배에 달하는 위력을 발휘하며 저택의 외장재와 창문을 막은 목판을 관통하였다. 경찰들이 다가와 눈을 부라리자 신사들은 태연하게 스카프를 흔들며 말했다.

“격렬히 시위를 하다 보니 조금 더워서 스카프를 풀어헤쳤소. 문제라도 있소?”

경찰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우박 폭풍같이 돌이 날아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저택은 초토화되었고 나무판이 모조리 깨져 저택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마침내 견디다 못한 파머스턴이 이불과 커튼을 둘둘 말아 뒤집어쓰고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돌에 맞아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쳤다.

“항복! 이러다가 돌에 맞아 죽겠으니 항복하겠소! 원하는 게 뭐요!”

“네놈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파머스턴 이 개잡놈아!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

“외무장관 자리에서 사임…….”

그나마 법적으로 보호를 받기에 목숨을 부지하였지 외무장관 자리를 사임하고 도망친다면 암살자가 따라붙을지도 몰랐다.

파머스턴은 생각을 정리하여 식민지 총독으로 부임하려 하였다. 물론 벵골 총독 직위는 꿈도 꿀 수 없었기에 먼 식민지를 찾았다.

“트리니다드 섬(Island of Trinidad)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국익에 이바지하겠소!”

“포틀랜드 제도도 아니고 그 커다란 트리니다드 섬이라고?”

“네놈은 그 옆에 있는 토바고 섬(Tobago)이 적당하다! 총독은 무슨 총독이야!”

지금의 기세로 보면 토바고 섬의 총독으로 평생 부임해야 할지도 몰랐다.

파머스턴은 내각 총사퇴를 위하여 준비하는 의회에 나서서 자신의 사퇴 대신 부임지 변경을 요청하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파머스턴에게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머나먼 토바고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 피눈물을 흘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