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10장 6화 팽(烹)
내가 담당하는 이민아문의 업무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3만 명의 청나라 사람을 선별하여 조선에 받아들이고 12만 명에 달하는 소작농들을 만주로 이주시켰다.
한정교나 김미계를 비롯한 직급이 낮은 관원들은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며 소작농의 이동사항을 관리하였다. 또한 고문들이 한양에 임시로 모인 이주민들을 통솔하였다.
7월 장마가 시작되는 와중에 나는 잠시 이민아문을 떠나 외교 업무를 겸하였다. 청나라에서는 관료 몇 명을 보내 조선이 할양받은 조차지에 대한 사항을 결정하였다.
“영국의 조차지인 향항(香港 - 홍콩)은 이십 년 기한으로 조차할 땅입니다. 반면 조선의 조차지인 상해(상하이)와 청도(칭다오)는 오십 년 기한이니 여러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지요.”
영구 조차지로 삼고 싶었는데 격렬한 반발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차 기한을 50년으로 삼았다. 어차피 청나라를 또 두들겨 패고 적금을 뜯어내며 조차 기한을 연장하면 충분하다.
양국이 대등한 관계를 맺었으니 청나라에서 보내온 관리는 똥 씹은 표정으로 존댓말을 하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청나라의 관리가 하는 말을 들으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조약에 의거하면 조차지는 양국의 법을 존중하여 적용하기로 하였습니다. 각종 분쟁이 발생하여 양국의 사람이 얽혔을 경우 두 나라의 법관의 판결을 합치시키도록 합시다.”
어차피 엉망진창인 청나라 지방관은 승전국인 조선의 법관의 판결에 의지하겠지.
이외의 사항도 대략적으로 논한 뒤 청나라의 소식을 듣고자 뇌물로 홍삼을 좀 주고 물어보았다.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광주에서 영길리와 맞서 싸운 임 대인이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북경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는데 고생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전공을 인정받으셔서 군기처의 군기대신이 되셨으며 군무국사아문을 총괄하고 계시지요.”
상대는 불편한 일을 왜 물어보냐는 듯이 짜증을 숨기지 않고 대답하였다. 나 또한 대답을 듣고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지금쯤 귀양을 갔을 임칙서가 왜 기관장을 역임한단 말인가.
임칙서의 처분은 최소 귀양에 최대 사형이다. 적과 맞서 싸운다는 명분으로 한인과 객가를 규합하여 군대를 만들고 광주 일대의 예산을 모조리 전쟁에 사용하였다.
물론 북경의 팔기군이 조선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면 위신이 올라간 도광제가 후방을 잘 통솔하였다고 묵인할 수는 있다. 반면 북경의 군대는 조공국 조선에 처참히 패배하였다.
위신이 바닥에 떨어진 와중에 반란군 육성에 준하는 행위를 저지른 임칙서가 아직도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놀라움을 숨기지 않고 더욱 호들갑을 떨면서 물어보았다.
“그토록 험한 일을 하셨으면서 계속 업무에 매진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혹여나 이번 전쟁에서 노획한 영길리의 무기를 분석하고 계시는지요.”
“그 정도의 일을 하면 차라리 나은 형편이지요. 아예 군제를 개혁하고 성과를 거둔 군대에 예산을 배정하겠다고 하니…… 거참 조선에 안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정에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일이지요.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만고의 충신이요 지고(至高)의 능신이니 본받고 싶습니다.”
“군기대신께서 들으시면 참으로 경계할 말이로군요. 박현상이라는 외교관은 부처의 얼굴을 들이밀지만 목 뒤에는 전갈의 꼬리가 있어 경계하라고 했었지요.”
임칙서가 나에 대해 내린 평가가 부처의 얼굴에 전갈의 꼬리라니 조금 심한 평가였다. 굳이 따지자면 겉으로는 순진한 호박벌이요 속으로는 장수말벌이 아닐까?
상대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쳤는데 이 짧은 대화를 통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임칙서는 군사 개혁을 진행하며 수많은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능한 팔기군을 모조리 내치는 한이 있더라도 국력을 강화시킬 작정이다. 그러니 청나라의 지배계층인 만주족과 마찰을 일으키고 저런 불쾌한 태도를 드러내겠지.
도광제가 임칙서를 해임시키거나 아예 귀양을 보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계속 군기대신으로 부임한다면 결론은 하나밖에는 없으니 웃어넘기며 정곡을 찔렀다.
“임 대인께서 저를 부처와 전갈에 비유하셨으니 소문이 퍼질까 심히 걱정됩니다. 다른 것이 걱정되니 군기대신께서 영길리와 맞서 싸우시고 연일 격무를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또 전갈의 꼬리를 들어 밀려는 작정이신지요?”
“아닙니다. 다름이 아니고 연일 격무를 행한 제 처삼촌께서도 피로를 호소하실 지경인데 임 대인께서도 막중한 피로로 무너질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속내를 알 수 있었다. 도광제는 임칙서에게 군제 개편의 답을 얻어내고 그 다음 확실히 죽이기 위해 중용하고 있었다.
아마 조정 중신들은 임칙서가 언제쯤 죽을까 기대하고 있겠지. 임칙서가 죽음을 피해 도망친다 하여도 북경에 머무르고 있는 임칙서가 살아날 길은 없었다.
도광제의 속내를 알았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양국의 국서에 상해와 청도에 대한 조약을 마무리하고 순조에게 가져가 어보(御寶)를 날인하였다.
순조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질문을 하였다.
“외무승지는 좋은 조약을 맺었으면서 어찌하여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가?”
“불편한 정황이 느껴지기에 심사가 불안하였나이다.”
“청나라에서 불편한 정황이 느껴졌다 하였는가? 혹여나 지원이 들통났다는 말인가?”
“아니옵니다. 모든 증거가 소실될 예정이오나 만고의 충신이 명을 달리하게 되었사옵니다.”
순조는 잘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표정은 불편하였다. 그도 임칙서의 충성을 알고 있으니 아쉬운 입장을 드러냈으리라.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저절로 푸념이 나왔다.
“도광제가 멍청한 짓을 했군. 임칙서가 억울하게 귀양을 간 상황에서도 후계자를 육성하여 양무운동을 도울 정도로 극단적인 충성심을 보여준 사람인데.”
임칙서의 능력은 둘째 치고 충성심은 이 시대에서 최고라 보아도 된다. 이와 비교할 사람은 당장 떠오르는 게 이순신인데 비교하는 시점에서 사람이 아닌 충성심이지.
만약 임칙서가 조정 중신으로 계속 기용되어 후계자를 계속 육성하였다면 골치가 아플 텐데 이런 일이 사라져서 다행이다.
나는 북경 방향으로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언젠가는 그 충심이 보상받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아직 제자를 육성하지도 못했고 파벌도 만들지 못한 임칙서이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를 기억하여 훗날 기록을 고쳐야 하리라.
* * *
박현상의 예상대로 임칙서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에 불타 군무대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필사적으로 맞서 싸운 장수이니 그 경험은 무엇보다 귀중하였다.
“가장 필요한 것은 전열보병과 제대로 된 포병이지. 총과 화포를 매일같이 훈련하여 숙련도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네.”
자신이 맞서 싸웠던 영국 해병대를 떠올린 임칙서는 눈을 질끈 감고 당시의 상황을 되새겼다. 기함이 대파되는 타격을 입혔지만 이어진 상륙전은 영국군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첫 상륙전에서 동일한 장비인 브라운베스를 사용하였음에도 속절없이 밀려 나갔다. 이후 시가지를 끼고 난전을 벌였지만 근접전조차 영국군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였다.
향용은 총검에 찔리고 근접사격에 무너졌으며 평상시에 계투(械鬪)로 단련된 객가조차도 호되게 당했다. 영국군 한 명이 죽거나 다칠 때 향용과 객가는 열 배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전훈을 받아들여 병사를 훈련시켜야 하는 팔기군 장수들은 임칙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임칙서의 요구사항을 거부하기 위해 억지로 말하였다.
“군무대신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이해하겠으나 조총은 그리 위험한 무기가 아닙니다. 촌부(村夫)를 징집하여 납환 몇 개와 화약 한 줌을 들려 보내는 무기이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오랜 기간 무예를 수련하지 않으면 몇 발 쏘기도 전에 사기가 떨어지고 지리멸렬하여 도주하게 마련입니다. 당장 녹영군이 그렇게 붕괴되었지요.”
“영길리의 군대는 옆의 동료가 월도에 찔려 뱃가죽이 찢어지고 내장을 쏟는 상황에서도, 코앞에서 폭탄이 터져 온몸이 다른 이의 살점으로 범벅이 되어도 총을 장전하더군.”
임칙서와 팔기군 장수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팔기군은 대부분 조선과의 전투를 경험한 자들이며 조선군의 방진에 뛰어들었던 자들도 있었다.
청나라의 녹영군이 조총 몇 발 쏴보지도 못하고 포격에 궤주한 것과 달리 조선군은 옆의 동료가 화살에 맞아도 총을 쏘고 창검을 들이밀었다.
이미 전쟁의 흐름은 활이라는 병기는 물론이요, 기존의 전략전술을 모조리 도태시키기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임칙서에게 반발하기 위한 팔기군 장수의 답이 들려왔다.
“고작 일백여 보(120m) 이내에서만 유효한 병기가 아닙니까? 그러니 옛 기록에 있는 작은 화살을 쏘아 삼백여 보(360m)에서 적을 유린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작은 화살은 애기살이 아닌가? 삼백여 보나 날려 보내서 적을 적중시키려면 오 년은 단련해야 할 걸세. 자네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기가 있군.”
임칙서가 노획한 무기가 또 있었다. 조선에서도 사용하는 베이커 라이플(Baker rifle)과 이 무기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런즈윅 라이플(Brunswick rifle)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브라운베스 소총과 큰 차이도 없으며 조총을 부풀린 것 같은 물건이었다.
임칙서는 커다란 브런즈윅 라이플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 휘하의 향용 중 한 명이 적이 사백 보(480m) 거리에 있다고 방심하다 가슴이 꿰뚫려 즉사하였네. 이 무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조선군을 상대한 자네들도 알고 있을 것인데.”
팔기군 장수들이 침묵하며 답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새겨 보니 적진이 저 멀리 보일 무렵에 포격이 쏟아졌고 포격을 피한 자들이 바닥을 뒹굴며 낙마하였던 것이다.
이들도 자신이 익힌 무예, 실제로는 약탈과 폭력을 일삼기 위해 배운 잔재주가 이 시대의 전쟁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조선의 기병들도 처음에는 자존심을 세웠다. 결국 하찮을 정도로 가냘픈 군마와 오로지 과거 시험에 통과하기 위하여 익힌 마상재가 실전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반면 팔기군의 자존심은 지배계층 특유의 자존심까지 겹쳐서 더더욱 비대하였다.
이들은 더 이상 답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반박에 반박을 이어갔다.
“결국 기병이 제일입니다. 적을 기습할 기회만 주어졌다면 능히 이길 수 있었겠지요.”
“그래, 모두 다 이해하겠네. 아무려면 좋으니 적이 사용하는 병장기의 상세에 대해서는 꼭 익혀두고 노획할 때를 대비하여 사용법까지 익혀두게나.”
오늘도 설득에 실패한 임칙서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퇴근하였다. 낮에는 장수들과 면담을 가지고 새로운 전략전술 도입에 몰두하고 밤에는 향후 군사제도를 개편할 계획을 세웠다.
도광제의 철저한 보호하에 알력다툼이고 뭐고 필요도 없이 제도를 개편하며 상소를 꾸준히 올렸다.
집에 돌아와 탁자에 앉은 임칙서는 등잔을 밝히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팔기군은 모조리 개편해야지 별수가 있나. 기마 엽병으로 삼만 명 정도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죄다 전열보병과 포병으로 개선해야지 맞서 싸우기라도 하겠군.”
여섯 달 동안 임칙서는 군제 개편 계획을 작성하여 20년에 걸쳐 청나라의 내부 군대를 개혁할 수단을 마련하였다.
임칙서는 도광제가 돌려준 서적을 보며 계획을 읽어나갔다.
“팔기군과 녹영군을 해체하고 재집결하여 전열보병 십이만 명, 포병 일만 명 이상을 유지하고 병장기를 꾸준히 수입해야 해. 이 정도면 숙련도가 부족해도 조선군을 압도할 수 있지.”
팔기군이 개혁에 응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모두가 새로운 병장기를 받고 병과를 바꾼다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리라.
이런 반대는 현실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팔기군을 구슬리거나 아예 황권을 이용해 숙청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기병을 제외한 팔기군은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최종적으로는 20년 뒤 50만 대군을 육성하고 팔기군을 모조리 혁파할 계획이었다. 도광제는 이 계획서를 읽고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고쳐 쓰라 하였다.
한밤중이 되자 피로가 쌓인 임칙서는 잠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온 서신들을 읽었다. 자신의 지휘를 받았던 객가들은 당시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서신을 자주 보내왔다.
[임 대인께 저 홍수전이 서신을 보냅니다. 임 대인께서 가르쳐주신 요점을 파악하니 머리가 맑아오고 책이 더욱 쉽게 읽히니 다음번에는…….]
“홍수전 이 친구는 잘만 하면 과거에 합격할 것 같군. 좋은 일이라니까.”
임칙서가 영국군을 돈좌시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자는 홍수전이었다. 그는 조선의 잡서를 읽어 일대에 간혹 창궐하는 콜레라가 분변으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영국군이 머무르는 수원지를 콜레라 환자의 분변으로 오염시켰으며 천 명이 넘는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여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객가 출신이니 조정 중신이 되어도 별문제가 없을 사람이었다. 혹여나 여유가 생기면 제자로 삼겠다는 답신을 쓴 임칙서는 다시 서적을 작성하였다.
“황상께서는 이 서적이 아직 완성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니 더욱 고심하여야지. 그럼 무기 수입 방법과 외국의 군사고문을 받아들일 방법을 논해볼까.”
“나리, 황궁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이 시각에 황궁에서 사람을 보냈다 하였는가?”
황궁에서 도광제의 명을 받아 내려온 내시는 향나무로 만든 나무상자에 무언가를 담아왔다. 도광제의 선물을 받은 임칙서는 방으로 들어가 뚜껑을 열고는 감탄하였다.
“황상의 은혜로구나. 이렇게 진한 탕약을 내려주시다니 은혜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구나.”
상자 안에는 은으로 만든 대접 안에 담긴 탕약과 종이에 감싸둔 환약이 있었다. 진한 인삼 냄새를 느낀 임칙서는 종이의 글귀를 보면서 더욱 감탄하였다.
“팽(烹)이라 하였지. 자고로 기력을 북돋우는 인삼은 끓여 마셔야 하는 법이지.”
황궁을 향해 절을 올리고 화로에 탕약을 덥힐 준비를 마친 임칙서는 종이를 펼쳐 환약을 확인하였다. 무슨 환약인지는 모르지만 금박으로 덮인 환약에서 기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귀퉁이가 깨진 환약을 만지자 아릿한 기분이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임칙서는 향을 맡아보고 환약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환약은 초오(草烏 - 투구꽃, 사약에 쓰이는 재료)가 아닌가.”
어찌나 강하게 농축한 투구꽃 환약인지 입이 아닌 손에 닿아도 아린 느낌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당황한 임칙서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도광제의 뜻을 알아차렸다.
“탕약을 끓이라는 팽이 아닌 토사구팽의 팽이로구나. 황상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중히 여기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이상한 일을 겪었다. 북경으로 올라올 때만 하여도 반역죄로 사형당하거나 귀양을 갈 것을 염려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도광제는 그를 존중하고 대신 자리에 두었다.
많은 권한을 주어 각종 대신들에게 예산을 받아내라는 요청까지 하면서 마구 날뛰었다. 이 모든 행동은 도광제가 개혁을 위한 정보를 얻어내고 자신을 죽이려는 큰 그림이었다.
이대로 약을 거부하면 다른 방법으로 죽을 것이 분명했다. 온갖 명분을 들먹여서 역적이 되거나 아예 다른 대신들의 손에 암살당하고 결국 역적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이 약을 먹어야 죽어서도 온전히 충신으로 남을 수 있겠구나.”
화로에 올린 대접의 약이 끓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임칙서는 마지막 충심으로 황궁을 향해 절을 올리려다가 몸을 멈추고 대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한동안 저택이 떠나가라 웃은 임칙서는 환약을 털어놓고 뜨거운 탕약을 들이켰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에 환약을 감싼 종이를 접어서 윗입술 사이에 넣으며 말했다.
“내 충심은 사약을 받음으로써 다하였다. 누군가는 후대에 이 사실을 알아 내 원한을 풀어내리라.”
임칙서는 뜨거운 탕약으로 입에 화상을 입었지만 고통조차 느끼지 않았다.
잠시 뒤 위 속에서 용해된 투구꽃 성분이 급격히 몸으로 퍼져 나가면서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몇 번 몸을 꿈틀거린 임칙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과로로 심장이 멈춘 사람처럼 책상 위에 널브러졌다.
그는 홍수전에게 보내려던 서신을 손에 움켜쥔 채 세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