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11장 3화 국제 관계(1)
모든 일이 잘 돌아가면 좋겠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일도 있었다.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멕시코에 신형 소총을 보내 무기 테스트 겸 지원을 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효명세자는 내 제안을 듣고 나쁘지 않은 일이라 평가하며 지원을 추진하였다.
총 지원은 신형 소총 삼천 정과 보조 인원 이백 명이었다. 조선에 주재 중인 멕시코 대사가 없었으니 영국을 통해 서신을 보내게 되었고, 이 서신이 태평양을 건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조로 들어가니 예조참판 서희순은 멕시코 중앙집권공화국의 대통령인 산타 안나(Santa Anna)의 서신을 건네주며 말하였다.
“자네도 읽어보도록 하게. 국서는 본래 태자전하 앞에서 읽어야 할 물건이지만 애초에 국서의 틀에도 미치지 않는 서신에 불과하여 멋도 모르고 읽게 되었다네.”
“국서를 보냈는데 서신으로 돌아오다니요? 심각한 결례 아닙니까?”
왜 서희순이 서신을 보여주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서신도 아니고 사실상 욕설에 가까운 편지였다.
대통령 산타 안나 개인 자격으로 보내온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을 믿을 수 없다. 프랑스가 우리 멕시코 공화국에 간섭하려는 시도를 실패하여 조선으로 대신하는 것이 분명하다. 조선에 제대로 된 병기라도 있는가? 기술이 있는가? 결국 스페인과 프랑스의 물건을 보내고 간섭하려 들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투쟁을 통하여 독립하였으며 독재자를 몰아내고 정권을 수립하였다. 내 잘려나간 다리에 걸고 맹세하노니 조선의 행동은 곧 다른 열강들의 간섭으로 보겠다.]
당장 서신을 검열하고 싶어졌다. 동방의 미개국인 조선은 가만히 있으라는 욕설에 가까운 말인데 조선이 동방의 패권국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조선의 행동이 열강의 간섭이면 우리가 식민지라는 소리잖아? 지금 이 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이딴 소리를…….”
“내 말이 그 말일세. 이 서신을 정녕 태자전하께서 보아야 하겠는가?”
“이미 수많은 오욕을 감내하셨던 분이시니 보여 드려야지요.”
멕시코의 외교력이 열강의 간섭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애초에 멕시코의 외교력은 엉망진창이며 개혁가인 산타 안나는 이미 고집불통의 독재자가 되었다.
그저 미국-멕시코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미국의 팽창을 막기 위해 열강들이 간섭하여 위기를 모면하였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거절한 것을 넘어서서 아예 모욕을 가한 것이다.
효명세자는 나와 서희순이 가져온 서신을 읽고는 몇 번이나 다시 읽더니 불쾌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푸념하듯이 말하였다.
“묵서가(墨西哥 - 멕시코)의 통령이 무엇을 가지고 이다지도 망발을 내뱉는단 말이오? 청나라가 나약하다 하여도 완승을 거두지 않았는가? 기술도 없고 군대도 없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유럽 열강 사이에서는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수준이옵니다. 하오나 태자전하께서 말씀하셨듯이 기술은 세계 열국 가운데 두각을 드러내고 있사옵니다.”
정확히는 일준이와 일준이가 불러온 천재들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기술이 발달하였지만. 이런 사소한 일을 자처하더라도 조선은 전 세계 기준으로 무시할 수준의 국가가 아니다.
지금 모든 것을 제외하고 멕시코와 국경을 접해 전쟁을 벌이면 서로 공멸할 수준이 되었으며 아직도 발전 중인 나라이다.
효명세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묵서가의 통령이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소. 독립을 쟁취하는 와중에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스스로의 입지를 다진 사람이니 자존심이 비대해진 것이 아니겠소?”
“자존심이 비대해졌다 하여도 이는 모욕에 가까운 일이옵니다.”
“옳은 말이오. 묵서가는 가만히 두어도 수많은 분쟁을 일으키다 알아서 몰락할 터. 기러기도 날 때 줄지어 날아간다 하였으니 차라리 미국에 지원을 하면 어떻겠소?”
미국에 엿을 먹일 수 없다면 은혜를 입히는 것이 답이었다. 미국은 조선이 온 힘을 다하여 개입하여도 멕시코를 무너트리고 서부를 개척하며 태평양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다.
한 줌에 불과한 신형소총을 멕시코에 지원해 보았자 사람이 호랑이를 상대하는데 바늘 한 개를 주는 수준의 지원이다.
서희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묵서가가 미국에 무너지면 태평양 연안까지 미국의 세력이 미칠 터. 그때가 되었을 때 지원을 논하며 미국을 제지할 길이 열리게 되옵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은 여럿을 두지 않는 법 아니겠소. 이 나라가 발전하여도 국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미국을 우호적 관계로 두고 합의를 보아 국력을 낭비하지 않겠소.”
앞으로 20년 뒤에 발발될 남북전쟁에서 양 진영 합계 300만의 병사를 동원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계획대로 조선이 발전하여도 태평양 서부 연안 한정으로 미국에 우위를 점하는 것이 전부이고.
효명세자는 여기까지는 모르고 있지만 미국에 은혜를 입히려는 생각을 품었다. 훗날의 태평양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생각은 나쁜 일이 아니니 나 또한 적극 개입을 추진하였다.
“하오면 소수의 병사와 장교를 파견하여 경험을 축적하게 하시옵소서. 근래에 들어 병졸들이 다른 나라의 군대가 청나라와 흡사할 것이라 여기는 일이 자주 있사옵니다.”
“그 또한 옳은 생각이로군. 자고로 군대는 여러 방면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 법. 소총이 완성되고 사단이 편성되면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미국으로 파견하겠네.”
현직 미국 대통령은 존 타일러이다. 이 양반은 제국주의를 확대하기 위하여 각종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사람인데 조선의 지원을 받으면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성과로 인식하리라.
미국으로 보내는 국서에는 사실을 기입하였다. 멕시코에 신형 소총을 수출하려다가 모욕을 당하여 이를 갚기 위해 미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서희순은 내용을 보며 말하였다.
“괜찮은 국서로군. 내가 알기로 이 나라의 병사들은 그리 단련되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미국의 군사들에게 육성을 일임하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로 정중할 필요는 있지.”
“바로 보셨습니다. 자식을 새로운 스승에게 몇 년 보내는 격이니 이는 이 나라가 미국에 도움을 얻는 격이기도 하지요. 물론 미국도 명분을 챙기기는 할 것입니다.”
신형소총이 완성되고 훈련이 끝난 1844년에 병력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미국에 최신형 소총 설계도가 빨리 넘어갈 수도 있지만 1848년에 후미장전식 소총인 샤프스 라이플을 개발할 나라이다.
페이퍼 카트리지가 대세인 와중에 신형 소총을 사용한 미군들은 별 희한한 소총도 다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겠지.
이천 명의 병력과 오천 정의 소총을 제공하기로 하고 대사를 통해 서신을 보냈다.
“멕시코와의 분쟁에 조선이 한 발을 걸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즉각 개입은 아니고 군사 경험을 쌓기 위해 미국에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원주민들과 싸우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멕시코의 분쟁에서는 분연히 참전을 결의할지도 모르지요.”
조선군 입장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상대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상대는 청나라와 경험을 쌓으면 되니 이 사실을 확실히 정한 국서를 보냈다.
* * *
일을 모두 마치니 한 해가 지나가기 시작하였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장을 설립하고 만주에 화전민을 보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좋은 선물이 도착하였다.
“유대인 받아라!”
프랑스 선박을 임대하여 니콜라이 1세가 선물을 보낸 것이다. 러시아 관료들의 질시 속에서 배에 선적되어 있던 유대인들이 짐짝처럼 겹쳐 있다가 하역되었다.
총 1,200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은 말 그대로 무작위 추출을 당한 이들이었다. 엉망진창이지만 제법 좋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으며 반쯤 거지꼴로 기어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순조는 이들에게 간단한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유대인이라 하여 나라가 없는 민족들이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하여서 측은한 마음이 생기더구나. 짐의 명령으로 이 땅에 이주하였으니 편히 지내며 능력을 발휘하라.”
“조선의 군주께서 저희를 받아주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희가 열과 성을 다하여 이 은혜에 보답하고 조선을 더욱 강성한 나라로 만들 것입니다.”
유대인의 대표로 랍비 여럿이 나와 순조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들이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말끔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몸을 깔끔히 씻은 것을 보고 순조가 만족하여 말하였다.
“짐이 알기로 유대인은 상업에 능통하고 은행을 설립하는 일에 능하다 하였지. 그러하면 이 나라를 방방곡곡 살피며 여러 재주를 뽐내도록 하라.”
“저희가 몸 하나만으로 이역만리에 건너온지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하니 자본…….”
순조가 손짓을 하자 유대인들에게 투자할 자금이 옮겨졌다. 이 화폐 덩어리를 확인한 유대인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고 순조는 대범하게 말하였다.
“유대인 한 가족에게 정착 지원금 오백 냥을 내리겠노라. 또한 어떠한 사업을 할지는 모르지만 상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할 터. 이율을 매년 삼 푼(3%)으로 정하여 이천 냥을 대출받을 수 있다.”
정착 지원금은 신냥으로 500냥, 은자로 100냥이니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여기에 정착 지원금의 네 배나 되는 특별 대출의 기회를 열어주어 자본을 마련하게 하였다.
옛 조선이라면 엄청난 돈이지만 지금 조선에서는 유대인들이 모조리 대출을 받고 파산하여도 신형 군함 한 척에 불과한 자금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 바로 답변하였다.
“즉각 조선에서 팔리는 상품과 필요한 물품을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저희가 살 곳이 조선의 새로운 영토인 북방이라 하였으니 이 지역의 생활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좋은 말이로구나. 마침 외무승지가 이민아문을 통솔하고 있으니 유대인들의 이주 또한 관여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을 인솔하여 북변으로 다녀오너라.”
순조도 수많은 신료들이 과도한 업무로 나를 공격하는 것은 더 이상 막아줄 수 없다는 소리이다.
어차피 만주를 한 번 보고 올 것이니 담담하게 답하였다.
“북변을 시찰하여 여러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할 기회를 열어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역시 외무승지로구나. 인연이 있는 사람이 봉천(奉天)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으니 잘되었다.”
* * *
한 달 뒤. 막 시작된 겨울 추위와 함께 만주로 향하게 되었다. 양력 11월이 되어 싸늘한 바람이 맴도는 와중에 북방에 파견될 새 병력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대인을 인솔하여 움직였다.
만주의 봉천관찰사로 배정된 인물은 풍양 조씨의 주요인물 중 하나인 조인영이었다. 얼핏 보면 효명세자의 외척인 풍양 조씨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인선 배정이다.
진실은 권력이 아니라 일감을 몰아주는 인선 배정이었으며 조인영은 필사적으로 부임을 거부하였으나 순조의 강압으로 반강제로 관찰사가 되었다.
“어쩐지 제발 살려달라는 서신을 보낼 만하였지. 그나저나 새로운 도의 명칭이 하나같이 대단하기도 하다.”
새로 조선의 영토가 된 만주 일대에 4개의 도가 임시로 창설되었는데 각기 심양을 중심으로 삼은 봉천도, 장춘(長春)을 중심으로 삼은 고(구)려도, 목단강을 중심으로 삼은 영고도(寧古道), 그리고 북부의 넓은 땅을 북여도(北餘道)라 칭했다.
“폐하께서도 참 대단하신 분이지. 각 도의 이름을 배정하면서 역사를 기반으로 청나라의 속을 벅벅 긁어놓으시다니. 거기에 북여도는 아예 남는 땅이라 하시다니.”
내 말을 들은 주변 병사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조선은 요동의 중심도시를 명나라 시절 이름인 심양으로 칭하였지만 청나라는 봉천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에선 계속 심양으로 부르다 이제 와서 도의 이름을 봉천이라 한 것이다. 명칭을 도용한 격이며 봉천이라는 한자가 하늘을 기린다는 뜻이니 천명을 잘 먹겠다는 뜻이다.
장춘을 중심으로 삼은 고려도 또한 청나라의 심기를 벅벅 긁기는 마찬가지이다. 옛 고려라 불리는 고구려의 중심 영역이니 만주족이 고구려의 부하였다는 소리이다.
여기에 영고도는 아예 청나라의 요새인 영고 탑이 세워진 땅이라 영고도라 칭하였다. 만주족이 한 일이라고는 영고 탑과 요새를 쌓은 것이 전부이니 한심하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인 북여도는 말 그대로 황무지와 툰드라 습지가 널린 땅이다. 잉여(剩餘) 할 때 여 자를 사용하였으니 주는 김에 남는 땅을 얻었다는 소리이다.
이 말을 들은 군관이 슬쩍 말하였다.
“이민아문 대신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옳습니다. 병사들이 북여도에 가면 호랑이와 늑대가 자신들보다 많을 것이며 돌아오는 데 한 달이 걸릴 것이라 심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럼 기강이 무너지고 훈련을 게을리 한 병사를 북여도에 배정해야겠구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 험한 땅에서 일 년 정도 머무르며 고생을 하면 군기가 바짝 들고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강해지겠지요.”
“아예 노서아의 병사들과 모의전을 치르는 것은 어떠합니까? 북여도는 국경을 시찰하다 적이 침입하면 천 리를 물러나 적을 돈좌시키는 땅이니 실전 같은 훈련 아니겠습니까?”
기병들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보병들은 질린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넓은 땅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침략자 입장에서는 보급도 진군도 힘들게 마련이었다.
설령 러시아와 적대관계가 되어도 북여도 전체를 활용하면 손 쉽게 막아낼 수 있겠지.
심양으로 향하자 새 사단장으로 부임한 임건보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청음(淸音 - 임건보의 호) 장군께서 직접 맞이하여 주시다니 참 좋은 일입니다.”
“굳이 맞이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논하기를 그루시 장군께서 팔기군을 격퇴하였지만 그 잔당이 마을을 약탈하는 일이 자주 있다 하였습니다.”
“잔당이 남아 마을을 약탈한다니요? 전쟁이 끝나고 일 년이 지났는데 말입니까?”
“그야 청나라로 돌아가면 심양을 지키지 못한 죄를 물어 처형당할 것이라 생각하는 놈들이지요. 참 신기한 것이 하나를 소탕하면 다른 잔당이 생겨납니다.”
그럼 치안이 문제가 아닐까 하였는데 임건보는 내 표정을 보면서 아니라는 듯이 말하였다.
“사단장이 직접 나서는 이유는 신병 훈련 때문이지요. 올바른 군인이 되려면 오도(誤導 - 잘못된 길)와 자세(藉勢 - 세도를 부림)를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그렇지 않나?”
-악!!!
아무리 보아도 수상한 군대이지만 임건보가 알아서 육성할 것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으리라.
자신들이 살 땅을 확인한 유대인들은 여러 조건을 확인하고 말하였다.
“가장 빨리 습득해야 할 것이 조선의 말과 글이고 다음이 청나라의 말과 글이로군요. 졸지에 두 언어를 동시에 학습해야 하지만 이래야 장사를 할 수 있지요.”
“장사꾼보다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사람은 없지요. 하다못해 역관들도 장사와 관련된 대화를 두서없이 논하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마련입니다.”
“그러하면 이 땅에서 어떠한 일을 할지가 궁금합니다.”
유대인들이 만주에서 벌일 각종 사업과 농업에 대해 질문하였는데 별 문제도 아니니 바로 답하였다. 가장 먼저 만주는 쌀을 기르기 힘든 땅이라 다른 농사를 지어야 했다.
“일단 옥수수, 감자, 보리 그리고 밀을 식용 작물로 기를 예정입니다.”
“그럼 방앗간을 설계해야겠군요. 투자자금을 받아서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여기에 제철소와 각종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지요. 가장 큰 세 가지를 따지자면 철강, 석탄 그리고 만주에서 생산되는 목화를 중심으로 삼은 직조공장입니다.”
옥수수와 목화는 지력을 갉아먹는 작물이지만 땅은 넓으니 화전민을 시켜 농사를 지으면 충분하였다. 오히려 지력이 회복되면 농토로 탈바꿈할 수 있으니 더 좋고.
유대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목화를 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단체로 모여 공장을 설립하는 일을 피해야 하니 저지하려 하였는데 의외의 답이 나왔다.
“그럼 비누 사업을 추진해야겠군요.”
“비누? 어째서 비누요? 왜 비누란 말이오?”
“저희들이 닐슨 조의 연구논문을 확인하였는데 목화씨에서 면실유를 추출하는 가공 방법이었습니다. 공장이 설립되면 목화씨가 산더미처럼 쌓일 것 아닙니까?”
유대인이 왜 비누를 만드나! 참으로 발칙한 상상이 들며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은 논문을 들이밀면서 말하였다.
“목화씨의 가공 과정에서 석회를 넣어 비누 앙금을 가라앉히는 공정이 있다 했습니다. 독성을 제거하지 않아 식용이 불가능한 비누이지만 비누를 먹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는 거저먹는 장사입니다. 목화밭과 공장 사이에 비누 공장을 만들어 가공 부산물을 얻어내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질이 떨어지는 비누이지만 값이 싸니 무조건 팔리지요! 이 비누를 우리 민족의 명칭을 담아 유대 전설의 비누라 칭하겠습니다!”
콧수염이 돋보이는 독재자가 들으면 머리를 탁 치고 하나밖에 없는 고환을 탁 칠 만한 세기의 명답이 나왔다.
일단 사업 가능성은 있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유대인 비누 사업계획서를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