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11장 10화 기름 파동
효명세자는 나를 뚫어져라 살펴보더니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효명세자의 시선을 받은 이항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로 젖혔지만 명령이 내려왔다.
“직접 갈 필요는 없으니 중간 기항지인 서반아령 여송(필리핀)에 머물며 시굴 광석을 분석하시구려. 꼭 필요한 일이오.”
“신이 다시 그 무더운 곳에 다녀오라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렇다고 경험이 일천한 자들만 잔뜩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
이항로가 절망하여 고개를 숙이자 시선이 다시 나에게 닿았다. 효명세자는 한참을 생각하더니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섞어가며 말하였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외무승지에게는 천운이 깃든 것 같소.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모두 화서 대감의 능력 덕분이옵니다. 화서 대감이 아니었다면 구주의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섬 아래에 묻힌 보물을 둔 채 방치하였을 것이옵니다.”
“어찌 이리 겸양을 잘 아는지 모르겠소. 그나저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처우는 물론이고 시굴 작업을 언제 진행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 같구려. 아바마마를 뵈러 갑시다.”
효명세자는 너무 막대한 선물을 받게 되어 머리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최근에는 정무에 참여하지 않는 순조의 지혜를 빌리려 하였는데 함께 찾아가니 순조는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였다.
“가장 북단에 있는 도의 명칭은 북여도라 칭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 장소에 도시가 어디에 있고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오면 기존의 규칙과 같이 도시의 명칭을 변경하겠사옵니다.”
순조는 대부분의 업무를 효명세자에게 일임하고 다음 작업을 진행하였다. 정약용을 비롯한 나이와 경험이 많은 관료들을 중심으로 칭제(稱帝) 이전에 필요한 국가 개선을 준비하였다.
각 시도의 명칭 변경과 관료의 명칭 변경, 그리고 북방 영토에 대한 통솔이 순조의 주요 과업이었다.
효명세자와 함께 절을 올리니 순조는 놀란 눈치로 말하였다.
“어지간한 정무는 태자가 알아서 할 것이라 판단하였는데 이리도 많은 사람이 모여서 나에게 물어볼 것이 있더냐. 혹여나 난해한 문제가 벌어졌느냐?”
“영길리와의 협상을 통해 새로운 강역을 얻어냈는데 금은보화보다 더 한 물건이 발견되었기에 아바마마의 성심(聖心)을 알고자 하였사옵니다.”
이항로의 보고와 효명세자의 판단을 들은 순조는 딸꾹질까지 하면서 주변의 중신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손을 꼽아가며 역으로 질문을 하였다.
“이 사실을 지금 공표하여 바로 채굴에 들어갈 생각이더냐?”
“아니옵나이다. 영길리와 보로서(프로이센)의 사람들이 물러난 다음 채굴할 것이옵니다.”
“아직은 아니다. 자고로 세상일은 정해진 다음 무르자고 청하는 일이 많은 법. 내가 보기에는 섬을 가꾸고 다스려 이 나라의 땅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구나.”
순조는 정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효명세자를 위하여 지침을 내려주었다.
“먼저 증기선이라는 물건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석탄을 저장할 창고를 만들어 두어라. 다음으로는 섬에 있는 주민들에게 적당한 노자를 주어 다른 섬에 살 수 있도록 만들고.”
“하오나 아직 증기선이 완성되지도 않은 시점이옵니다. 더군다나 그 먼 거리에 증기선을 보내려면 막대한 자금이 소모될 것이옵니다.”
“외무승지가 보인 태도가 무엇이더냐? 별 쓸모없는 섬을 남의 눈치를 보며 얻어내지 않았더냐? 이럴 때에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 줄 아느냐?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순조의 논리는 참 대단하였다. 속된 말로 국민들의 ‘뽕’을 채워주기 위하여 별다른 이득도 없는 땅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라는 말이었다.
유럽에서 보기에는 졸부가 가짜 미술품을 사들이고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몰골로 생각하리라. 전략적 거점이 아닌 무역 중계점에 저탄고는 물론이고 주민 소개(疏開)까지 시키면 지나친 대처였다.
“모든 작업을 마친 다음에 우연히 인광석을 약간 발견했다 말하여라. 그렇게 하면 증기선으로 섬을 보호할 수도 있으며 이 나라의 권리를 누구도 염려하지 않을 것이다.”
“아바마마께서 이토록 혜안을 보이시니 소자의 마음이 더욱 누그러지옵나이다.”
순조는 애틋한 표정으로 효명세자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거듭 조아리는 효명세자를 한참 동안 살펴본 순조는 자리에 앉은 채 말하였다.
“그럼 언제쯤 양위를 받고 칭제를 할 생각이더냐?”
“아바마마! 양위는 아니 되옵니다!”
“이 늙은 몸이 칭제를 하라는 소리더냐? 한번 제왕의 자리에 오르면 굳건히 머물러야 하는 법인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대소신료 모두가 순조를 만류하려 하였다. 언젠가는 양위를 할 것을 암암리에 말하고 다니던 순조였다.
양위는 확정된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도 않고 양위와 동시에 효명세자를 황제의 자리에 올릴 뜻을 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영국이 여전히 전쟁으로 인한 여러 피해를 감내하며 내부 구조를 정리하는 가운데 프랑스는 나날이 번성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여러 불만이 축적된 것과 달리 조선이라는 안정적인 자본에 투자한 결과 이런 불만을 해소하였다.
“호외요 호외! 에마뉘엘 그루시의 동방 전쟁 비망록이 출간되었소!”
“배신자 마르몽의 서적도 출간되었소! 나는 배신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읽고 논평을 하시오!”
영국이 철저하게 엿을 먹은 전쟁, 유럽에서는 [조선 독립 전쟁]이라 칭하는 조-청 전쟁의 기록이 전해지며 불만은커녕 루이필리프에 대한 찬양이 가득하였다.
“루이필리프 전하께서 이 늙은이에게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제가 동방에서 배운 겸양을 담아 말씀을 드리니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범죄자에게 벌을 내렸을 뿐입니다.”
“그루시 명예 원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재판을 하며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인생을 다시 산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비망록을 읽어보시지요!”
루이필리프의 평가는 나날이 올라갔다. 인재 발굴의 대가, 노동자의 대변인, 지주 권리의 수호자 그리고 조선과 베트남이라는 든든한 동맹을 얻은 외교의 달인이라는 평가까지.
여기에 조선에서 전해진 서적이 프랑스의 과학 발전을 도왔다. 현대에서 가져온 서적들은 조일준의 손으로 가공되어 각 대학의 강의서로 활용되었으니 영국에게 뒤처진 과학 발전도 점차 따라잡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흥 자본가에게 점진적으로 부여되는 참정권으로 불만을 해소하는 동시에 조선의 2교대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였다.
“오전 근로 끝났으니 다음 교대 인원 들어오시오! 오늘도 고생이 많았소!”
“공장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후 1시가 되자 오전 조의 근로자가 빠져나가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오후 조 근로자들이 밀려왔다. 증기를 뿜어대는 직조기가 다시 작동하고 공장이 재가동되었다.
퇴근한 근로자들 가운데 자신의 농지를 가진 사람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반면 자신의 농지가 없는 사람은 농장주가 제공한 마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대지주들은 2교대 근무 제도를 활용하였다. 오후 조 근로자들은 낮에 농장에서 일하였으며 오전 조 근로자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다음 저녁까지 농장에서 일하였다.
먼 들판을 바라본 공장장은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요즘 밀 수확을 앞두고 있으니 한창 바쁠 시기이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면 피로로 인해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것 같은데.”
“그럼 오후 작업을 담당한 근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실 예정입니까?”
“당연하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사람들이 기계에 휘말려 들어가는 꼴을 보느니 발전기를 돌려서 알루미늄이나 만들자고. 대신 농장주들에게 돈을 좀 받도록 하고.”
공장장은 조만간 만들어질 알루미늄을 생각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공장을 가동하는 것보다 수익은 부족하지만 앞가림을 할 정도로 돈을 벌어들일 정도는 되었다. 루이필리프가 발전기를 양산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만 해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공장장은 증기기관이 뿜어내는 매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영국처럼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아야지. 근로자들을 멋대로 다루면 혁명이 일어나서 뿌리부터 뒤집혀버리는 일이 벌어지니 아끼고 보살펴 노동력을 더 뽑아내야지.”
“다람쥐 혁명 말입니까? 그게 혁명 맞습니까? 다람쥐 운동이라 불러도 어설픈데요.”
“왕 목도 안 썰어보고 혁명이라 하다니 참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 그래도 영국 놈들이 제대로 된 혁명을 해본 적도 없으니 혁명이라 불러주자고.”
멈춰 버린 영국과 달리 발전하는 프랑스를 떠올리자 공장장의 가슴이 뿌듯해졌다.
저녁에는 파리 시가지에서 유행하는 음식인 폼므리트(pommes fretes – 감자튀김)를 잔뜩 곁들인 만찬을 즐길 생각을 마친 공장장은 신문을 펼쳐보았다.
[닐슨 조, 오래 사용한 기름의 해악에 대해 지적하다.]
“오래 사용한 기름의 해악…… 이라?”
조일준의 활약을 반영한 신문의 풍자화는 글러브를 낀 동양인 남성이 시커먼 기름을 구타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기사 내용을 읽은 공장장은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오늘 잡아놓은 일정 취소해. 아니면 새 기름으로 요리를 만들게 하던가.”
공장장은 물론이요, 대다수의 프랑스인의 인식에 의하면 조일준은 명예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제대로 된 학문에 눈을 뜨고 언제나 프랑스의 은혜를 말하였다.
이미 프랑스의 상류층은 조일준의 말이라면 부야베스에 얼음을 넣고 잘 구워낸 에스카르고와 냉면을 넣어 말아먹을 사람들이 되었다.
공장장처럼 신문 기사에 격렬히 반응하는 사람들 중에는 루이필리프도 있었다.
“오래 사용한 기름의 해악이라 하였는가? 나야 언제나 신선한 버터와 올리브유를 사용하는데도 속이 니글거릴 지경이로군. 자네들이 보기엔 어떠한가?”
“처음에는 논문의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 많지만 역시 닐슨 조입니다. 실험 하나는 확실히 하였기에 그랑제콜에 근무하는 유수의 석학들도 반발을 못 하더군요.”
“그러니 신문 기사로 나왔겠지. 쥐의 해부과정을 묘사한 그림이 참 끔찍하기도 하군.”
연구 기간이 비교적 짧은 논문이라 비만으로 인한 쥐의 수명 저하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대신 여러 군으로 분류한 쥐들에게 각기 다른 종류의 기름을 먹여 변화를 관측하였다.
참기름이나 땅콩기름 같은 일반적인 기름을 시작으로 쇼트닝을 비롯한 수소경화면실유, 그리고 각기 1개월, 3개월을 반복 사용한 기름까지 시험한 결과물이 있었다.
개중 루이필리프의 시선에 들어온 것이 3개월 동안 반복 사용한 땅콩기름을 계속 먹인 쥐였다. 그냥 땅콩기름은 쥐가 살찐 것이 전부였지만, 반복 사용한 땅콩기름을 먹인 쥐는 내장에 종양까지 생겨났다.
“파리 시내의 음식점이 죄다 난리가 나겠군.”
“길거리에서 폼므리트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죄다 문을 닫았다 합니다.”
“폼므리트 가게가 문을 닫아? 당장 알제리와 아이티에 연락하여 식용 기름에 대한 수입을 독촉하도록. 여기에 새로운 기름 공급처 확보를 위한 대책 회의를 실시하겠네.”
루이필리프의 대처는 빨랐지만 파리 시민들의 반응이 더더욱 빨랐다. 몇 년 전에 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음식이 현대의 프렌치프라이의 원형, 폼므리트였다.
바짝 튀겨낸 감자에 롯시니의 신비한 소금을 조금 뿌리면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과 기름의 고소한 맛 그리고 글루탐산나트륨의 감칠맛까지 겸비한 중독적인 요리가 되었다.
파리의 계층과 성별 그리고 나이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던 폼므리트는 이제 오래 묵은 기름을 함유한 독극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제가 기름을 아무리 반복해서 사용하였어도 워낙 많이 팔리는 물건이니 한 달 정도만 반복 사용하였습니다!”
“한 달 정도만 반복 사용하였다고? 그럼 내 심장에 기름 덩어리가 끼었다는 말이잖아!”
조일준의 논문을 접한 일간지는 각기 다른 내용을 올려 경쟁을 피하려 하였다. 그런 판국이니 과도한 트랜스지방 섭취로 심근경색을 일으킨 쥐에 대한 실험 내용도 있었다.
여기에는 조일준이 의도적으로 쥐의 심장 혈관에서 밀려 나온 지방을 묘사한 그림을 넣었다.
지난 일 년 동안 튀김 요리를 먹어 살이 잔뜩 오른 부호는 가슴을 움켜쥐더니 결투를 신청하였다.
“네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내 심장에 기름이 끼어 곧 죽게 생겼으니 여한도 없다!”
“저도 신문 기사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백 마리의 쥐 가운데 두 마리만 심장에 기름이 끼었으니 운이 좋다면…….”
“그만두시오! 닐슨 조의 논문을 미리 알고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모르겠지만 서로가 모르는 상황이 아니었소. 그쪽도 오래 묵은 기름으로 튀긴 폼므리트를 잘만 먹지 않았소!”
가까스로 사태가 진정되었지만 가게 안에서 오래 사용한 기름은 죄다 폐유 수거업자에게 전해져 비누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괴짜들도 출몰하였다.
“신문 기사를 보니 오래 사용한 폐유를 먹으면 살이 쪄서 풍채가 좋아진다 했잖아?”
빼빼 마른 젊은이가 덩치를 키울 생각으로 폐유를 사들여 바게트에 찍어 먹는 진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들은 역한 냄새를 견디며 살을 찌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름 파동이라 불리는 사태는 진정될 줄을 몰랐다. 레스토랑 체인점을 경영하던 로시니는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올리브유를 사용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반면 작은 가게들은 기름 비용을 부담하다 못하여 음식 가격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산패된 기름을 규조토를 비롯한 흡착제에 통과시켜 멀쩡한 기름으로 보이게 만드는 가게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이번 풍자화는 참 대단하군. 나를 짓이겨서 기름을 짜내지 않는가.”
보름 가까이 이어진 기름 파동 사태의 화살은 결국 루이필리프에게 돌아왔다. 평상시 풍자화라면 서양 배와 흡사하게 루이필리프의 얼굴을 묘사하였지만 이번에는 올리브였다.
수많은 루이필리프들이 압착기에 쥐어 짜이며 기름을 뿜어냈고 [국왕은 백성들에게 신선한 기름을 제공하라] 라는 논평이 함께하였다.
이를 확인한 루이필리프는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일단 서남아프리카 연안에서 팜유를 사들여서 위기를 모면하도록 하지. 또한 동방 동맹 중 하나인 베트남에 연락을 넣어 기름야자 농장을 건설하면 어떠한가?”
“지금 베트남의 사정이 영 좋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고무나무 농장에 반란군이 침입하여 저희 주둔군이 가까스로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조선에서 문제가 건너오더니 인도차이나에서도 문제가 벌어지는군.”
“군부에서는 이번 기회를 빌미로 삼아 인도차이나의 식민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루이필리프도 원하는 바였지만 쉽게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인구는 제법 많은 편이며 서쪽의 변방 국가인 미얀마도 영국의 침략을 몇 년이나 버텨냈다.
베트남의 정권이 무너지고 혼란에 빠져도 식민지로 만들려면 지속적인 군대 투입과 막대한 예산이 소모될 일이었다.
그러던 루이필리프의 머릿속에 애송이 한 명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구금된 나폴레옹의 조카 말일세. 그 친구를 베트남에 파견을 보내는 건 어떤가?”
“앙 요새(Château de Ham)에 수감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애송이 말이야. 삼촌의 이름을 팔아먹는 애송이이지만 그루시의 활약에 주목한 보나파르트 주의자들이 감싸 돌고 있지. 그 애송이를 베트남으로 보내면 어떻게 될까?”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훗날 나폴레옹 3세라 불리는 인물은 루이필리프 정권에서 반란을 기도한 뒤 유럽 전체를 떠돌아다녔다.
별다른 세력도 없는 그는 재작년인 1840년 프랑스로 돌아와 단 56명의 추종자와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리고 지방 수비대에게 제압당해 반란은커녕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남아 있는 나폴레옹 추종자들의 반란을 염려하기 때문이었다.
루이필리프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나폴레옹 3세의 처우에 대해 말하였다.
“베트남 주재 대사로 부임하면서 치적을 쌓으면 죄를 면하고 본국으로 돌아오게 만들면 좋을 것 같군. 군사 권한은 제공하지 않을 셈이네.”
“그러다가 베트남의 반란군에게 사로잡혀 살해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살해당해도 알게 뭐란 말인가? 그를 추종하는 보나파르트 주의자들의 잘못이지.”
잘만 하면 보나파르트 주의자들의 협력으로 베트남의 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으리라. 그 이상을 기대할 필요도 없었으며 전쟁을 통한 무력 병합은 최악의 사태에 벌여야 할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폴레옹 3세가 베트남의 무력 소요에 휩쓸려 죽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되면 ‘외교관의 죽음’이라는 빌미를 삼아 무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평범하게 외교관 자리를 역임한다면 계속 방치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이 손해를 볼 이유가 없다 생각한 루이필리프는 귀찮은 덩어리를 치우듯이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프랑스에 두어보았자 탈출해서 어설픈 반란이나 일으킬 애송이 아닌가. 베트남 주재 전권 대사로 임명하고 목표는 기름야자 농장 건립으로 삼도록 하지.”
“전하께서 옳은 판단을 하셨습니다. 그러하면 루이 보나파르트를 방면하겠습니다.”
루이필리프와 프랑스 관료들은 나폴레옹 3세가 자신의 삼촌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동방으로 건너가 온갖 고생을 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군사적 재능도 절망적이라 반란을 일으켜도 즉각 진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덤이었다.
나폴레옹 3세에게는 군사적 재능은 없어도 갈등을 봉합하고 세력을 휘어잡는 힘, 그리고 이 힘을 사용하기 위한 친화력이 있었다.
앙 요새에서 방면된 나폴레옹 3세는 수십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베트남행 선박에 몸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