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28화 (128/345)

128. 12장 3화 기술 도약

내 추정 보고, 기이할 정도로 많이 설치된 청나라의 증기기관에 대한 설명을 들은 효명세자는 눈을 깜빡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러더니 더듬거리며 되물어 보았다.

“지금 무어라 하였소? 멀쩡한 증기기관을 사들여서…….”

“태자전하께 감히 말씀드리오니 청나라의 부패한 관리들이 예산을 착복하기 위한 행동이옵니다. 증기기관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증거로 사진만 남겨둔 것이 분명하옵니다.”

청나라를 대할 때 상식을 가지고 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효명세자는 내 분석을 확인하더니 반복적으로 일정 수량이 조립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피식거리고 웃음을 참으며 말하였다.

“청나라는 언제나 상식을 뛰어넘는 나라요. 온전한 증기기관 일천 대를 도입하였다면 그 거대한 생산량을 염려하여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소.”

“실로 그러하옵니다. 하오면 보고를 멋대로 올린 기술자들의 처우는 어찌하실지 궁금하옵니다.”

“생각하여 보니 기술자들도 조립을 하며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을 거요. 자신들이 같은 증기기관을 계속 조립하고 해체하였다는 심증은 있었겠지.”

일이 전개된 과정은 이러하였을 것이다. 청나라에서는 증기기관을 반복적으로 해체 설치하며 조선의 기술자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었으리라.

기술자들은 반복 해체와 설치를 하며 이번 일이 발각되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겠지.

그러니 엄연히 일을 하였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이런 보고를 하였으리라. 횡령은 아니지만 배임(背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짓이었다.

효명세자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짜증을 억누르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같은 증기기관과 방적기를 설치하고 해체하였지만 엄연히 일을 하기는 하였소.”

“옳은 말씀이오나 괘씸한 일이 아니옵니까?”

“괘씸한 자들은 청나라의 부패한 관료들이니 넘어감이 어떻겠소.”

결국 주의만 주고 넘어가는 선에서 끝났다.

효명세자는 이번 보고서를 다시 확인하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하였다.

“아바마마께서 청나라의 부패한 장수들을 이들을 살려 보냈다는 말씀을 하였을 때 어디에 쓸 구석이 있나 의심하였는데 아직 내가 미숙하다는 증거요. 이토록 좋은 방법이 있었구려.”

“적국의 충신은 참(斬)하는 법이며 간신은 오래 살려두는 법이옵니다.”

“오래 살려두다니 외무승지도 생각이 짧은 편이구려. 아예 부패를 권하면 어떠하겠소?”

이건 또 뭔 말인가 궁금했는데 효명세자는 눈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저 멀리서 뿜어지는 공장 매연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가 알기로 증기기관과 공장 기계들의 수명은 잘해야 십 년이고 보통 오 년이오.”

“신 또한 그렇게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강한 힘으로 계속 동작한 기계들이니 대부분의 부품이 훼손되어 녹여서 새로 만들어낸다 알고 있소. 그러니 파손 직전의 기계들을 청나라에 판매함이 어떻겠소?”

효명세자는 상식을 저버린 청나라의 행동을 돕는 짓을 하였다. 고물이 다 된 기계는 그냥 쓸 만한 부품 몇 개만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새로 만드는 것이 답이다.

기껏해야 뛰어난 기술자가 각 기계에서 파손이 안 된 부위를 모아 다 망가져 가는 녀석 하나를 만들어 내겠지.

반면 청나라의 부패한 관료들에게는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다.

“망가진 기계가 있다면 청의 황제가 공장을 시찰할 때 기계가 파손되었다며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소. 여기에 증거품으로 사용할 양목이나 공장제 물품을 전해주면 더 좋을 거요.”

바로 이렇게 쓰는 것이다.

최소한 기계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도광제 입장에서는 알게 뭐란 말인가. 외국에 유학도 안 보낸 청나라 입장에서 어떤 관료가 이를 검증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기계 보수를 담당한 영국이나 조선의 기술자가 속이 터지고 술을 퍼마시며 짜증을 낼 뿐이지.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상식을 버린 놈들에게는 합당한 대처다.

“이런 일을 주도하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사오나 청나라는 이미 부끄러운 나라이옵니다.”

“부끄러운 나라에 합당한 처우이지. 이번 계획을 위복(僞福 - 가짜 복) 계획이라 하면 좋을 것 같소.”

위복(爲福), 복된 일이라는 뜻이 아닌 가짜 복이라는 말이 되어버렸는데 참 어울리는 말이다. 각지의 공장에 서신으로 교체가 얼마 안 남은 기계를 고철 가격의 2배에 구매하겠다고 하였다.

이 애물단지들은 고철 가격의 5배로 청나라에 수출될 예정이다. 아예 청도에 기계 작동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장을 만들라 명령한 효명세자는 내일을 생각하며 염려하듯 말하였다.

“내일은 중양일(重陽日 - 9월 9일)이니 예정대로 경복궁의 중건 작업을 개시할 예정이오.”

“태자전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이번 궁궐 설계는 조선의 모든 기술이 결집된 기술이오니 믿고 지켜보시옵소서.”

“그 궐에 아바마마께서 머무르며 나라를 다스리시고 칭제 건원을 하면 참으로 좋을 일이오.”

부자(父子)가 서로 황제가 되기를 권유하고 있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다음 날, 순조는 미리 정리된 경복궁의 터에 나서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리고 삽을 들었다.

“태조대왕께서 이 나라를 세우실 때 궐을 마련하였으나 임진년의 전화로 모조리 불타기에 이르렀다. 이를 이백오십 년 뒤에 다시 세우니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시기를 바랄 뿐이노라.”

가장 먼저 삽을 들고 근정전 자리의 땅을 한 삽 파헤친 순조는 다음 삽을 효명세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순조가 바닥을 가리키며 명을 내렸다.

“네가 머무를 곳은 이 근정전이 아니더냐. 어서 삽을 놀리도록 하여라.”

“하오나 소자가 머무를 곳은 동궁…….”

“동궁은 태손(太孫)이 머무를 곳이다! 설령 동궁이 네가 머물 자리라 하여도 어명이니 어서 삽을 놀리도록 하여라.”

즉위를 권유하는 순조와 즉위를 거부하는 효명세자의 부자 다툼은 어명으로 막을 내렸다. 어명을 받아들여 근정전의 땅을 한 삽 파내고 다음으로 동궁의 차례가 되었다.

삽을 받은 사람은 태손(太孫)이자 본래 역사의 헌종이었다. 이제 16살인 헌종은 본래 역사에서 건강이 안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기서는 권투를 배우고 승마를 즐겨 훤칠한 미청년이 되었다.

헌종이 삽을 떠내자 다음 삽은 종친들이 돌아가며 각 관청의 자리를 파내었다. 이후 인부들이 달려들어 옛 방식인 달구질 기초 대신 커다란 터를 파내고 기초를 마련하였다.

“자고로 건물의 기초가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다. 인공석분을 타설하고 철근을 묻어 돌로 기초를 만들면 누대에 걸쳐 멀쩡할 것이 아니더냐.”

순조의 말대로 수많은 보와 제방을 축조하며 축적된 철근 콘크리트 기술이 기초부터 적용되었다. 철근과 철망이 깔리고 수많은 인부들이 거푸집에 버무린 시멘트를 부어 넣었다.

무식할 정도로 안전을 고려한 건물들이지만 궁궐의 격식을 생각하면 바람직하리라.

혹시나 몰라 겨울 동안 기초를 내버려 두고 균열이 발생하지 않으면 바로 궁궐을 올릴 예정이다.

* * *

이러한 기술의 결실은 궁궐 공사는 물론 무기로 이어졌다.

한 달 뒤인 1842년 양력 11월 19일. 신형소총 양산 시제품을 완성한 일준이는 북벌에 참가하였던 장수를 대동하여 소총 시연회를 시작하였다.

“새 소총은 두 종류입니다. 작동 원리는 같지만 한 소총은 기존에 사용하던 흑색화약을. 다른 소총은 신형 화약인 솜화약 기반의 무연화약을 사용합니다.”

“미리 시험 사격을 마친 병사들이 말하길 반리 총과 한리 총이라 칭찬하더군.”

나이가 들어 1사단장에서 은퇴한 이유수가 일준이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형 소총은 기본 구조와 설계 시작점은 같지만 초기 완성도를 검수하여 두 종류로 나누었다.

총열 단계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물건은 대량 양산용 흑색화약 라이플로 분류하고 총열이 제대로 완성된 물건은 고급 무연화약 라이플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상위 5%의 완성도를 지닌 물건만 무연화약 라이플이 된다던가.

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앞으로 나서고 이번 시험사격을 담당한 새 1사단장 임성고(任聖皐)가 지시를 하달하였다.

“선 장전!”

아예 장전과정부터 보여주려는지 바닥에 엎드린 병사들이 허리춤에서 탄약을 꺼내 트랩도어를 열고 집어넣었다. 뚜껑을 닫고 노리쇠를 당겼다 풀어 장전을 마치고 보고를 올렸다.

“총원 장전 완료!”

“방포하라!”

총성이 쏟아지며 200m 거리에 있는 표적을 향해 일제 발사가 시작되었다. 흑색화약 특유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자욱하게 메웠으나 이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랑제콜에서 예산을 오십이만 냥이나 잡아먹어서 어떠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지 궁금하였는데 참 좋은 소총이 나왔군. 참으로 간편한 물건이 아닌가.”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이미 몇 번의 시험사격을 거쳤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총과 견줄 수 없는 물건이더군요. 숙련된 사수는 천천히 다섯을 셀 동안 장전을 마칠 수 있습니다.”

“이 소총을 지닌 병사들이 방진을 형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방진을 형성할 필요가 없고 산개하여 자율사격을 해도 충분하겠지.

임성고는 목청을 높여 계속 방포하라 말하였고 소총이 쉴 새 없이 쏘아졌다. 그러던 중 결국 고장이 발생했다.

“상부 덮개가 완전 파손되었습니다!”

“보고를 마쳤으면 즉각 수리하도록!”

아직 부족한 야금술로 인해 트랩도어가 깨져 나가며 소총이 망가졌다. 병사는 보안경을 착용하여 눈에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이마가 그을리고 코끝에 화상을 입었다.

시험 사격 중에 발생한 불량에 혀를 차는 이유수였지만 일준이가 이런 상황을 대비하였는지 바로 설명에 나섰다.

“소총이 자주 고장을 일으켜 돌아와 수리를 하는 것도 문제더군요. 이런 불편한 일을 겪느니 비상 수리도구를 개머리판을 파내서 안에 넣었습니다.”

“그러하면 병사가 고장을 일으킨 총을 수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주 파손되는 부위 몇 군데는 수리할 수 있습니다. 총열이 찢어지거나 방아쇠가 아예 무너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수리의 편의성도 생각하였지요.”

개머리판의 뚜껑을 연 병사는 안에서 일자 드라이버와 미리 준비해 둔 트랩도어 부품을 꺼냈다. 그러더니 자리에 앉아 기존 부품을 분해하고 새 부품을 결합하였다.

“놀라운 일이로군. 이전에 사용한 총이 파손되면 후방에서 완전 분해해야 했는데 이토록 간단하게 수리할 수 있다니.”

다시 사격 대열에 합류한 병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이유수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서른 발의 연속 발사 시험이라 내구성이 제법 떨어지지만 병사 몇 명은 후방으로 나와 소총을 수리하였다.

여기에 이유수의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닥에 널브러진 구리 탄피였다.

사라진 탄피를 찾아 사격장을 헤맨 기억이 있으니 내 표정도 일그러졌고 이유수가 슬쩍 말하였다.

“북방을 얻어낸 덕분에 새 동광을 하나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구리의 대부분은 왜국과 여송(필리핀)에서 수입하지 않는가. 저게 다 굴러다니는 엽전이라 생각하니 아까운 일이군.”

“훈련 중에는 탄피를 모두 회수하여 다시 녹이도록 하여야지요.”

“훈련에서만 그렇게 해야지. 다만 버릇이 잘못 들면 적과 싸우는 와중에 탄피를 찾다 변을 당할지도 모르네. 그런 일은 피하도록 신신당부를 해야겠군.”

실전 상황에서도 탄피에 집착하고 심지어 탄피를 각인번호대로 맞춘 군대를 다닌 입장에서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모든 사격이 끝나고 벌집이 된 표적지를 가져오니 이유수가 마음을 놓고 말하였다.

“몇 발이 명중하였는지 세어볼 필요도 없군. 명중률, 연사속도 그리고 편의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물건일세. 반리 총이라는 별명이 허언이 아니로군.”

“실제로는 삼백 미터 거리에서도 명중탄이 나오는 총입니다. 아직 숙련도가 미숙하여 사격 거리를 조금 가깝게 정하였을 뿐이지요.”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가격일세. 기존에 사용하던 영길리의 브라운베스 소총 가격이 마흔 냥이었지. 이 소총의 가격이 신냥으로 일백 냥 아래라면 좋으련만.”

“일천 정 대량생산 기준으로 일백삼십 냥입니다.”

임성고의 설명을 들은 이유수가 눈을 껌뻑였지만 임성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 가격이 맞다 하였다.

그는 이마를 감싸 쥐며 말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폐하께 모든 소총을 반리 총으로 갈아치우자 간언을 올리고 싶지만 그러다가 나라가 허리 채로 꺾일 것일세. 육만 명의 병사에게 이 소총을 모두 지급하면…….”

“예비 부품을 감안하면 총비용이 천이백만 냥에 달할 것입니다.”

“그럼 십 년에 걸쳐 천천히 바꿔 나가야겠군. 당신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이유수의 옆에서 소총을 평가하던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기술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영국에서 이주한 기술자가 나서서 말하였다.

“지금 프로이센에서 양산 중인 드라이제 소총보다는 여러모로 우수합니다. 정확도야 조금 떨어지지만 금속 탄피 개념을 도입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그러하면 서역의 열국들도 천천히 이 소총을 도입한다는 말이로군.”

“장전 방식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드라이제의 바늘 공이도, 조선의 신형 소총의 트랩도어 장전방식도 부족한 점이 많겠군요.”

영국에서 건너와 소총 개발에 참가한 기술자는 소총 시제품을 가져와 트랩도어를 열고 닫으며 말하였다.

이유수는 점점 진척되는 무기 개발을 가늠하듯 다음 사격을 기대하며 말했다.

“반리총의 사격 시험은 끝났으니 이제 한리총의 사격을 할 차례 아닌가?”

“미리 표적지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저쪽에 표적이 준비되어 있지요.”

“저게 표적이란 말인가? 나는 보이지도 않는데.”

임성고가 가리킨 방향에는 사람 형상의 물체가 서 있기는 했는데 점보다 작은 크기로 보였다. 얼마나 소총 성능에 자신이 있는지 정말 1리, 400m 거리에 표적을 설치하였다.

망원경을 받아 들어 확인하니 표적은 뒤에 더 많이 있는데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거리이며 작은 집도 좁쌀 크기로 보이는 거리가 아닌가.

내가 알기로 숙련된 조선군의 엽병이 가까스로 달성하는 사격 거리였다. 반면 스코프가 결합된 무연화약 소총을 가져온 열 명의 병사들은 표적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았다.

“신중히 방포하라! 가급적 많은 명중탄을 낼 수 있게 노력하도록!”

무연화약도 탄연(彈煙)은 발생시키지만 그 양이 매우 적었다.

바닥에 엎드려 사격하는 병사들이 몸을 움찔거리는 모습을 확인한 이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 같은 양의 화약이라도 솜화약은 세 배 강하다 하였지. 총은 강하게 쏠수록 제대로 날아가는 법이니 명중률이 더욱 올라갈지도 모르는군.”

각 사수가 10발, 도합 100발을 사격하자 기수가 저 멀리 있는 표적에 다가가 종이를 회수하였다. 명중률을 50% 내외로 기대하였는데 놀랍게도 80%에 가까운 명중률이 나왔다.

“명중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 아닌가? 한리 총이라는 별명을 듣고 숙련된 사수 기준으로 사백 미터에서 유효사격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이건 뭔…….”

이유수는 바로 다음 사격을 지시하였고 그사이에 일준이에게 물어보았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총에 대해 설명하였다.

“한 정당 가격이 신냥으로 이백팔십 냥인데 그 가격을 하고도 남을 수준이…….”

일준이의 말을 끊으며 사격이 실시되고 잠시 뒤 표적이 전달되었다.

800m 최대사거리 시험에서 명중률이 30%에 달했는데 숙련된 엽병들의 솜씨를 감안해도 소름이 돋을 수준이었다.

다만 가격은 좀 문제다. 브라운베스 머스킷의 가격이 40냥이고 이걸 일곱 정이나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가.

스코프 가격을 생각하는데 일준이가 다시 말을 하였다.

“말이 끊겼네. 여기에 스코프 하나의 가격이 백오십 냥이지.”

“그럼 소총과 스코프를 합쳐서 사백 냥이 넘는다고? 소총 한 자루에 십칠 파운드?”

“이런저런 기능을 붙이느라 방법이 없더라. 천 정 단위 대량생산 기준으로 이 가격이고 지금 시험하고 있는 소총은 한 자루에 육백 냥이 넘어간다.”

“대량생산이고 뭐고 성능 이전에 감당이 가능한 가격이야?”

솔직하게 말해서 성능은 우수하다. 후미장전식 소총의 빠른 장전 속도와 편의성을 감안하면 돈값을 하는 물건이었다. 오히려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지만 비용이 문제이다.

현대인인 일준이도 약간의 군사적 지식은 있으니 만족한 것 같지만 소총 제작에 협력한 사람들은 시큰둥한 눈치였다.

군관은 시험 사격 최종 결과를 계산하여 보고하였다.

“시험 사격이 종료되었습니다!”

“최종 명중률은 MOA 기준으로 5가 조금 안 되겠네.”

“MOA가 뭔 단위지? 난 오늘 처음 듣는데.”

“백 야드 당 일 인치의 오차가 1MOA이야. 내가 쏘던 총이 5MOA지.”

내가 쏘던 총이라는 말을 했으니 일준이도 제법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명중률이라면 남북전쟁 시기에 나올 세기의 명작, 휘트워스 라이플과 견줄 수 있다. 여러 개량을 하면 20세기 초까지 쓰일 소총의 토대가 완성된 것이다.

최종 명중률을 확인한 소총 제작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이유수에게 말했다.

“꿈의 소총이니 이 정도 성능은 보여줘야지요. 이 소총을 사용하느니 흑색화약 소총을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나아 보입니다.”

“차라리 흑색화약 소총을 사용하겠다고 했는가? 대체 이 총의 가격이 얼마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가? 이 총 한 자루면 능히 열 명의 병사를 쓰러트릴 수 있다네.”

“이 총의 가격이 브라운베스 열 자루보다 비쌉니다.”

그 한 마디에 이유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일준이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예산을 가늠하듯이 짜증을 부리며 말하였다.

“총을 만들라 하였지 총의 형상을 한 백상(白象 - 흰 코끼리, 돈을 축내는 애물단지)을 만들면 어떻게 하는가? 내 반리 총이라 불린 물건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용하지 아니할 걸세.”

“하오나 청나라를 다시 상대하려면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놈들은 백 명이 죽어 나가도 이백 명을 충원하면 되오나 이 나라의 병사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결국 이유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준이의 제안에 응하였다. 사격 시연회가 끝나가고 소총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일준이는 남에게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걸 양산하면서 개틀링 건 기술도 축적할 생각인데 여기서 끊으면 쓰나.”

“개틀링 건? 지금 개틀링 건이라 했어? 뭔 기술력으로 이걸 만들어?”

“에이다 덕분에 전자석 기술이 발전한 거 잊었어? 개틀링 건의 개념은 이미 도입 중이고 빠르면 오 년, 양산까지 감안하면 십오 년 뒤에 배치된다.”

이쯤 되면 효명세자에게 적극 추천해야 하리라.

명칭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청나라의 군대에 개틀링 건 정도는 갈겨줘야 제대로 된 군대라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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