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36화 (136/345)

136. 12장 9화 떠나간 자리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쏟아진 지원은 아일랜드를 급격히 정상으로 되돌렸다. 우선 영국 본국에서 공급한 80만 톤의 식량은 아무 조건 없이 농민들에게 보급되었다.

여기에 다른 지원이 시작되었다. 이하응은 영국 정부의 권유이자 사실상의 명령을 듣고 아일랜드 남부의 거대 항구인 코크(Cork)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 달 뒤에 여왕전하께서 코크를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일대를 시찰하시고 내륙의 미첼스타운(Mitchelstown)을 방문하신 뒤 돌아가실 계획이시지요.”

“미첼스타운은 봉쇄지역인데 여기를 방문하신다니요?”

“코크 일대만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조금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예정을 변경하셨습니다.”

영국 여왕이 사태를 눈으로 확인하면 더 많은 지원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이하응이 기대를 품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톨릭교회에서도 지원 물품을 보냈다.

“쾰른 대교구에서 아일랜드의 신자 여러분을 위하여 필요한 물자를 보내왔습니다.”

“조금 늦기는 하였지만 마침내 교우들을 위하여 교황청이 움직이는군. 다른 곳은 어떻소?”

“전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들이 방문할 예정이며 프린스 흥선에 대한 세례성사를 거행할 예정이라 합니다.”

극도로 보수적인 경향인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아일랜드의 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만류하였으나 1846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하여 교황청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새 교황의 자리에 오른 비오 9세는 영국과 정면으로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으니 각 주교구 단위나 개인 자격으로 지원을 실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교황청에서는 사태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선언을 하였다.

<성공회로 개종한 교우들을 탓하지 맙시다. 모든 잘못은 이러한 상황에 지원을 하지 않은 교회에 있으니 이번 기근으로 인하여 개종한 교우들은 개종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이제야 빅토리아 여왕이 코크는 물론 내륙까지 방문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3주일 뒤 거행될 세례성사로 인한 권력 손실을 막으려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게 보였다.

“어찌 이리 한결같은지. 궁중에서 편안히 사는 영길리의 여왕이라면 이런 땅에 방문할 마음도 없이 본래 항구만 슬쩍 보고 내려왔을 것인데 권력에 고픈 모양이로군.”

젊은 시절에는 권력이라는 두 글자에 심취할지도 몰랐다. 이런 야욕은 학문을 배우는 동안 왕과 세자가 막대한 권력을 거머쥐게 되며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권력의 추잡한 면을 모두 보았으니 역겨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이하응은 물자 배분 작업을 준비하며 짜증을 숨기지 않고 말하였다.

“언제나 민중을 생각하고 떳떳한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지.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용서할 수 없거늘. 하물며 공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니.”

“실례지만 프린스 흥선께 여쭙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공자가 누구입니까?”

브뤼셀에서 자신을 따라온 봉사자들 혹은 다른 꿍꿍이를 품은 사람은 제법 많았다. 개중에 검은 곱슬머리를 지닌 험악한 외모의 청년이 있었으니 자신을 신문 기자라 칭하였다.

정작 신문 기사는 검열로 낼 수 없다 하였지만 일을 잘 도와주기에 이하응도 나쁘게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하응은 잠시 생각하다 서양 언어로 번역한 논어를 추천하기로 하였다.

“자네 이름이 칼이었던가? 얼마 전 대한제국의 유생들이 논어를 완전히 번역하였으니 이 서적을 읽고 배우도록 하게.”

“프린스 흥선께서 추천하셨다면 좋은 서적이겠군요. 혹시 제 친구 프리드리히가 서적을 읽었을지도 모르니 친구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하응은 깍듯이 인사를 올리고 돌아가는 칼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는 프로이센 출신 망명자라 자신을 소개하였지만 특이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대한제국의 근로 환경이나 세금 제도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삼 주일이 지나고 마침내 이하응에게 세례를 내리기 위한 가톨릭 인사들이 방문하였다.

“형제들이여 그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파리 대교구에서는 아일랜드의 형제들이 성공회로 개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침통히 생각하였습니다. 늦은 지원에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교님을 한낱 신자에 불과한 저 이하응이 뵙습니다. 세례를 내릴 것이라 하셨는데요.”

“물론입니다. 프린스 흥선께서 가장 어울릴 성인을 택하였는데 바로 성 이시도르지요.”

이하응은 그리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지만 어느새 가톨릭의 수호자가 되어있었다.

권력자들의 광고판이 되어서 기분이 불편하였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권력을 혐오하듯 말하였다.

“어차피 자신의 뜻을 내세울 수도 없는 사람들이지. 올바른 뜻조차 유권자들의 지지를 위하여 멍청한 뜻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행동 정도야 이해할 수 있지.”

일주일 뒤에 방문한 빅토리아 여왕 또한 이하응에게 명예 훈장으로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명예 교수 자리까지 내려주었다.

이하응에게 온갖 명예가 함께하였지만 권력자의 야욕을 위한 명예이니 쓸모가 없다 생각할 지경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약속대로 미첼스타운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질문을 하였다.

“프린스 흥선께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군요. 수많은 과학자들을 통솔하여 백만 명이 굶주릴 위기를 모면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처음에는 제가 마음대로 날뛰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더욱 훌륭한 과학자들이 제 연구를 이어받아 더욱 심화 발전시켰으니 이제 소일거리만 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겸손하신 것 같은데요. 프린스 흥선께서는 어떠한 과학자보다 위대한 일을 하였습니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서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빅토리아의 응원 아닌 응원을 듣게 되었지만 이하응은 자신의 수준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몇 날 며칠 동안 토양 시료를 들여다보는 짓을 반복하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더 나은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제 감자 역병 곰팡이는 감자 전분으로 만든 배지에서 토양 샘플을 배양하는 방식으로 확인하였으니 이하응이 상상조차 못 한 일이리라.

고작 머리가 좋은 축인 이하응은 천재들의 발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조선의, 이제는 대한제국에 머무르고 있을 조일준과 루이 파스퇴르 또한 같은 발상을 하였다는 점이다.

학부생에게도 떠밀린 신세가 된 이하응은 돌부리를 걷어차며 한탄하였다.

“이렇게 어중간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명예를 따라 내 고국을 떠났다가 이제는 헛된 것만 얻고 어중간한 일만 하게 되었구나.”

그러한 이하응의 귓가에 야학(夜學)에서 아일랜드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농민들이 자신의 알려준 지식을 바로 익힌 것을 떠올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차렸다.

“재주가 하나 있었으니 남을 가르치는 재주로구나. 학문을 창시하거나 발전시킬 수는 없어도 옛것을 익히고 가르치는 재주만큼은 부족하지 않으렷다.”

1847년 3월이 되었고 아일랜드의 절반에서 감자 파종이 시작되었다. 초조한 분위기가 감도는 와중에 이하응은 모든 할 일을 마치고 대한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고 말하였다.

“여러분을 만난 것은 제 일생일대의 행운이었습니다. 부디 아일랜드의 교우 여러분이 온전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프린스 선! 프린스 선! 프레이즈 더 썬!”

어느새 흥선이라는 군호는 발음하기 쉬운 선(sun)으로 변질되었다. 막대한 환대를 받으며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는 이하응은 자신의 새로운 꿈, 학문의 전파를 위하여 인생을 바치기로 하였다.

* * *

이하응이 떠나고 6개월이 지났다. 인간이 감자 역병이라는 재앙을 몰아내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승리 속에서 더블린 인근에서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간단한 축배를 올렸다.

“아일랜드를 아무 조건 없이 도운 프린스 흥선을 위하여.”

“우리의 신앙을 되돌리는 데 도움을 준 교황 성하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꺾인 자존심을 되돌리는 그 날을 위하여. 건배.”

술 대신 메밀을 우려낸 찻잔을 마주친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들과 이들의 협력자들은 잔을 마주치고 미지근한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지금까지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던 이들이 다시 집결하였으며 이들의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본래 역사라면 기근으로 굶어 죽거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어야 할 사람들까지 집결하게 되었다. 이들은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듯 독립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은 본래 미국에서 창당될 페니언(Fenian)이라 불리는 과격 단체였다.

“우리 아일랜드의 독립은 필연이라네. 즉각적인 무장봉기와 체계적인 공격을 이어가세.”

마침 이하응이 개발한 백린탄, 본래 역사에서는 페니언 형제단이 개발했어야 할 무기의 제조법을 입수하였기에 즉각 무장봉기를 실시하려 하였다. 당연히 반발이 나왔다.

“그게 쉬운 일이라면 당장에라도 할 수 있겠지. 팔십만 톤의 곡물을 매년 공급하는 영국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말게. 잘못하다가는 군대는 물론 여론에 휘말려 무너질 것일세.”

“쉬운 일이 아니라 하여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조선…… 아니지, 대한제국의 사례를 보게. 인구가 스무 배가 넘는 청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제국이 되지 않았는가.”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들에게 조선은 미지의 국가였다. 이러한 국가의 왕족이 자신들을 지원하며 관심이 생겨났고 조선이 걸어온 길은 일종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

이들이 역사를 배울수록 아일랜드와 한반도의 역사가 동일하게 보였다. 한반도의 국가가 중국 대륙의 국가에게 압박을 당하듯이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게 압박을 당하였다.

조선은 인고의 세월 끝에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다.

마침내 칭제건원을 하고 대한제국이 된 조선을 우상으로 삼은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들은 뜻을 하나로 합쳤다.

“무장봉기 하나로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아일랜드 독립을 추구할 것이네. 과격한 노선은 물론이요 저들과 협력하여 독립을 추구하는 방법도 있겠지.”

“아예 국외로 빠져나가 세력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유대인들조차 각국으로 이주하여 자신들의 기반을 잃지 않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뭐 있단 말인가?”

과격한 무장투쟁, 시위를 중심으로 한 일반적인 투쟁, 해외 거주를 통한 지원 그리고 영국 정치인과의 협력을 통한 독립 보장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이 강구되었다.

“다양한 방법을 모두 해 보아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어떠한 굴욕과 모욕이 있더라도 우리 자신은 모든 방법으로 독립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도록 하지.”

“그러고 보니 집회를 열었는데 구호도 없고 단체의 이름도 없군. 방금 전 ‘우리 자신’이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드니 단체의 이름을 신 페인(Sinn Féin)이라 하지.”

“우리 스스로의 독립을 위하여. 이보다 더 좋은 단체 이름이 있을까.”

본래 무장 투쟁을 불사하였던 과격 정당 신 페인은 50년이나 빠르게 창당되었으며 모든 아일랜드 독립 운동을 총괄하는 단체가 되었다.

모두가 구호를 연호하는 가운데 침묵하고 있는 프로이센 출신의 두 젊은 사상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단상에 올라 발언 기회를 얻고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분의 의지는 확인하였으나 가장 중요한 것이 부족합니다. 독립을 얻어낸다 하여도 아일랜드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되이 돌아갈 겁니다.”

“모든 일이 헛되이 돌아간다. 혹여나 괴뢰(傀儡)처럼 조종당하는 사람이 있을 걸 염려하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아일랜드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이 극심한 곳이 없습니다. 고작 삼 퍼센트의 지주가 토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일랜드의 토지 체계는 이득을 얻어내는 영국 입장에서도 심각할 정도의 불균형 상태였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톨릭 소작농들이 죽어라 감자만 길러 가족을 부양하는 꼴이었다.

이는 아일랜드를 지배할 무렵 영국이 성공회 신자들에게 막대한 보상을 약속한 것이 악순환을 거쳐 내려온 결과물이었다.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에 험악한 외모의 청년은 피 끓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모든 혁명은 낡은 사회를 해체시켜야 합니다. 모든 혁명은 낡은 권력을 전복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혁명을 추구한다면 사회를 해체하고 지주 권력을 분쇄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독립을 추구해도 지주 계층이 반발하면 독립 이후 바로 반발이 올라올 것이니 옳은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름이…….”

“제 이름은 프로이센의 라인란트 출신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라 합니다. 옆에 있는 친구는 같은 프로이센 라인란트 출신의 프리드리히 엥겔스이지요.”

벨기에로 망명하여 브뤼셀에 거주하던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이 조선의 정책과 결부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비록 절대적인 왕권을 전제로 하였지만 백성을 위하는 정책이었다.

그런 마르크스는 조선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자신의 공산주의 사상을 정립하는 데 사용하였다.

마침 방문한 이하응의 모습은 사상을 정립하던 마르크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저 카를 마르크스가 감히 주장하겠습니다. 아일랜드 독립은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자립이 없이는 달성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하여 아일랜드의 토지 구조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달라지는 것이 있기는 한가 궁금하군. 토지 구조를 뜯어고치려면 영국 의회에 정당을 만들거나 의원을 포섭하여야 하는데 그 힘을 혁명에 사용함이 마땅하지.”

“대한제국을 보십시오! 세금을 정비하여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생산성을 올리고 지주계층에게 이득과 손해를 동시에 전가하였습니다. 이후 공장을 건립하고 사회의 구조를 변혁하였지요!”

아일랜드 사람들은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북부 일부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공장도 없이 벌판 전체가 감자밭이며 인구가 늘어날 뿐 언제나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자신들은 눈앞의 독립을 추구하였다면 카를 마르크스라는 청년은 독립 이후 아일랜드가 발전할 길을 제시하고 있었으며 그는 자신의 사상과 정열을 모조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이 걸어간 길이 모든 프롤레타리아의 자유를 추구하는 길입니다! 부르주아 계층에게는 계약과 보상을 통한 사회제도의 안정을! 이들의 양보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자생을 토지 분배를 통해 이어갑시다.”

“이론이야 좋지만 현실은 냉정하지. 그토록 많은 땅을 가지고 있는 지주들이 호응할까.”

호응이라는 말에 칼 마르크스는 피를 토하듯이 단상 위에서 발을 구르며 말하였다.

“그러하면 혁명을 통하여 지배계급을 무너트려야지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세상입니다!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 합니다!”

신 페인 일동은 서로를 돌아보며 제대로 미친놈이라 중얼거렸고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박았다.

마르크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주눅이 들어 변명을 하였다.

“물론 최후통첩과 격렬한 저항운동에도 변하지 않을 경우 혁명을 한다는 말입니다. 상식적인 입장에서는 영국 의회에서 토지 법안을 통과시켜 독립의 기반을 마련해야지요.”

“일단 알겠소. 그러면 영국 의회를 포섭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하고 회의를 종료합시다.”

신 페인이라는 이름 아래에 집결한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들이 각자의 방안을 택할 차례였다.

이들은 서로의 방법은 달랐어도 한뜻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상징을 택하였다.

“프린스 흥선이 남겨둔 척화비의 조각을 떼어내도록 하세. 이 조각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훗날 아일랜드가 독립했을 때 척화비에 되돌리는 그 날을 기원하도록.”

“우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갈 것이니 아예 척화비를 하나 가져가도 괜찮겠군.”

“자네들 마음대로 하게. 우리는 조선으로 이주할 비용을 모으도록 하겠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척화비가 조각이 되고 십자가로 탈바꿈하여 신 페인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1847년 한 해에만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30여만 명이 이민을 신청하였다.

남은 사람들은 조선 이주선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악착같이 돈을 벌어들였다. 너무 머나먼 고장이라 10만 명 내외가 이주할 예정이었지만 이들은 은혜의 일 할이라도 되돌리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부류는 무장운동가와 카를 마르크스를 필두로 한 정치세력 계파였다. 런던에 잠시 퍼졌던 붉은 물결은 제대로 된 붉은 물결을 만나며 다시 넘실거릴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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