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37화 (137/345)

137. 13장 1화 욕심은 끝이 없고(1)

*이하응 에피소드 이전인 1843년 9월의 내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흥선군 이하응이 유럽으로 파견 준비를 할 무렵 기나긴 순조와 효명세자의 싸움도 끝이 났다. 여섯 달에 걸친 꾀병을 견디다 못한 효명세자가 양위를 받기로 하였다.

궁궐 공사가 조금 지체되어 1844년 8월 말에 완공될 경복궁에서 칭제건원까지 함께 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효명세자 입장에서 절대 기쁜 일이 아니었다.

“잔을 들도록 하시오. 아바마마께서 쾌차하셨으니 이는 나라의 복이 아니오.”

“얼마 전에 왕태자비께서 회임하셨으니 더더욱 큰 복이옵나이다.”

“옳은 말이오. 복과 복이 겹쳤으니 이 복을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구려.”

명목상으로는 순조가 오랜 병을 쾌차하여서 기쁜 마음에 시작한 술자리이지만 효명세자 입장에서는 울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독한 소주를 마셨는데 바로 술병이 다가왔다.

“한 잔 더 하게! 외무승지가 여러 일을 겸임하느라 고생하고 있음은 나도 알고 있다네.”

“태자전하께서 잔을 내려주시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사옵니다.”

잔이 비워졌는데 다시 술병이 밀려왔고 연속으로 다섯 잔을 마시고 나서야 술병이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밀려오는 술기운에 휘청거릴 지경인데 옆에서는 김좌근이 같은 일을 당하고 있었다.

효명세자도 잔을 계속 받아 순식간에 모두가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덩치가 크고 술에 강한 일준이가 평정을 지켰으나 녀석도 몇 잔 더 받으면 취기가 올라오리라.

“참으로 좋은 시대요. 내가 왜 다섯 잔을 내려주었는지 혹여나 아는 이는 있소?”

“얼마 전 호적 조사에서 농가의 각 가구에서 아이를 다섯이나 출산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져서가 아니옵니까? 신 또한 태자전하와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을 먹었사옵니다.”

“바로 보았소. 그러하니 농무대신은 잔을 더 받으시오.”

정학연이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그만큼 기쁜 일이었다. 비료로 시작하여 각지에 저수지와 보를 세우고 수로까지 정비하니 농업 생산성이 곧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예전이라면 숲이 부족하여 자연재해가 발생하였지만 화전민을 대량으로 이주시키고 숲을 가꾸면서 이런 재해도 사라졌다.

물론 전염병이나 아직도 부족한 위생으로 죽는 사람이 생기니 아이 다섯이 모두 자라지는 않겠지만. 이걸 감안해도 조선의 인구증가율은 3%에 달하는 막대한 수준이다.

“다음으로는 조 총장이 받아야지! 건장한 남아를 쌍둥이로 얻었는데 두 잔 받으시오.”

“태자전하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일준이가 두 잔을 받자 다음으로는 내 차례가 되었다. 미리 술잔을 들이미니 효명세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였다.

“내 안타까운 점이 있으니 두 젊은 신료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았다는 점이오. 본디 가세를 번성시키려면 지금쯤 자식이 여섯은 있어야 하는데 어찌 이런 마음을 품었소?”

“적게 낳아 잘 기르는 것이 마음이 놓이옵나이다.”

“마음이 놓이긴 뭘 놓인다고! 내 외무승지의 빈곤한 후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거늘! 아무래도 벌주를 한 잔 받아야 하겠구려!”

옆에 있는 국그릇을 치우고 술을 잔뜩 따라주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잔을 비우고 속에서 올라오는 술기운을 억누르고 있으니 김좌근이 내 등을 후려치며 말하였다.

“조카사위가 일에만 몰두해서 그래! 조금이라도 일을 덜 하고 아이를 가져야지!”

“처숙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으나 나라의 대업을…….”

“대업! 대잔(大盞)이나 받게!”

그나마 청주를 줘서 다행인데 술이 더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 술이 오르자 효명세자는 편안하게 조금 뒤로 물러나 난간에 팔을 기댄 다음 말하였다.

“내가 이리 술을 권한 이유는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리하였소. 근래에 들어 태평성대를 이루고 조만간 아바마마께서 제위에 오르실 터. 이런 좋은 시대에도 불만이 있지 않겠소.”

공식적으로 순조는 양위를 하지 않았다. 경복궁 중건 완료일에 올리는 제사를 마치고 양위를 한 다음 보름 뒤에 제위에 오른 효명세자가 칭제건원을 할 것이라 비공식적 합의를 보았다.

효명세자는 이런 상황에서 혹시나 불만을 가진 신료가 있을까 염려한 것 같은데 판단력이 술기운에 흐려져서 저런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효명세자의 말을 들은 신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김좌근이 먼저 나서서 말하였다.

“신 김좌근 간언을 올리옵나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나라의 돈을 받아먹어 사업을 벌이면서 자기 배 속만 채우고 있사옵니다! 이들을 모두 월남의 고무나무 농장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그것참 좋은 말이오. 좋은 말이기는 하나 탁지부에서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을 걷어내야 하지 않겠소. 탁지부에서도 힘을 내야 하니 한 잔 더 받으시오.”

김좌근의 말을 들은 효명세자가 정상적인 술잔에 청주를 한 잔 따라주었다. 국정의 불만을 털어놓을 자리라 생각한 신료들은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다.

“영길리의 치세가 점차 정상이 되어가며 천축이 위기에 처하였으니 토번(티베트)을 독립…….”

“그런 머리 아픈 일은 논하지 마시오. 잔이나 더 받으시구려.”

무차별적인 술잔 폭격이 이어지면 신료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일준이도 새로운 입학생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을 논하다가 쓰러졌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나였다.

“외무승지는 잔을 받게. 그간 여러 일이 있었는데 가지고 있는 불만이 무엇인가.”

“조만간 폐하께서 정하실 연호에 대한 불만이옵니다. 분명 휘황찬란한 연호를 사용할 것이오나 신은 이러한 일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있사옵니다.”

“연호가 마땅치 않다. 참으로 과감한 불만이로군.”

내 판단이 옳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효명세자는 아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양위에 반대해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으리라. 물론 나도 양위에 찬성하지만 효명세자의 마음을 놓게 할 수단 정도는 생각하였다.

“하오니 연호는 격이 넘치지 않으면서 올바른 뜻을 품어야 하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지극한 가치를 신은 효심이라 생각하옵니다.”

“효심이라. 그러하면 연호에 효(孝)를 넣자는 말인가.”

그나마 정신을 차린 김좌근이 허우적거리며 나를 말리려 하였는데 효명세자는 나에게 건네주려던 잔을 치우고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술기운을 견디며 할 말은 하려고 하였다.

“하오니 효명(孝明)을 연호로 건의하는 바이옵나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지극한 가치를 명백히 알릴 수 있으니 어찌 좋은 연호가 아니겠사옵니까.”

“옳은 말이로군. 그러하니 더욱 큰 잔을 주어야겠지.”

효명세자는 나조차도 양위를 권하는 것을 못마땅해하였는지 거대한 탕 그릇에 소주를 두 병이나 말아주었다. 어쩔 수 없이 반쯤 죽을 각오를 하고 잔을 들이켰다.

“욱컥!”

“잔을 비우지 아니하여도 되지만 잔을 비우면 아바마마께 연호로 효명을 건의하도록 하겠네.”

효명세자는 효명제가 되어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술잔을 비우니 벌써 술기운이 올라와 눈앞이 핑핑 돌았다.

효명세자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질린 눈빛으로 말하였다.

“그 의지로 다른…….”

더 이상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못했다. 엄청난 술기운에 주안상에 머리를 박아버렸으며 더 술기운이 올라와서 정신이 날아갔다. 적어도 효명세자가 원한 일이니 결례는 아니리라.

다음 날 일어나자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인이 문 앞에서 나를 부르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서 이불 속에서 꿈틀대며 말하였다.

“무슨 일인가. 대체 어인 일이기에 아침 일찍부터 나를 찾는 것인가.”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불란서 출신이며 조선에 방문한 외무 담당자라 하였습니다.”

“불란서 대사는 엄연히 머무르고 있거늘 어찌하여 날 방문했지?”

숙취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몸에서 술 냄새가 풍기겠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리라.

다행히도 상대는 내 사정을 듣기는 하였는지 어느 정도 기다려 주고 있었다. 대문이 열리고 들어온 상대를 확인하자 멋들어진 콧수염에 연두색 연미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한센 박이 오늘 출근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만나려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베트남에 파견된 프랑스의 대사입니다.”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 하셨습니까? 그러하면 백부님께서…….”

“바로 보셨습니다. 제 백부님이 프랑스인의 황제이시지요.”

지금 나폴레옹 3세가 백수 신세로 유럽을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본래 역사라면 1848년의 혁명 이후 대통령이 될 사람이지만 혁명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루이필리프가 프랑스를 압도적인 지지율로 통치하고 있으니 그가 대통령이 되고 정계에 진출할 길이 막힌 것이다. 그래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조선에 방문할 줄은 몰랐다.

“들어오기보다는 함께 출근하시지요.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 방문하였는데 공식적인 자리야 바로 마련해드릴 수 있습니다.”

“한센 박의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명성이 그리 높지도 않고 백부님의 위명 덕분에 편히 살아가는 한량이지만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정도 술기운을 빼고 나폴레옹 3세와 함께 길거리를 걸어 출근하였다. 그의 별명이 ‘인간 아편’이었는데 얼마나 친화력이 좋은지 벌써 나를 휘어잡기 위해 칭찬을 하였다.

“역시 조선이로군요. 제가 영국에서 제법 살아본 적이 있지만 조선의 길거리도 부족한 점이 없습니다. 오히려 몇몇 요소는 좋군요.”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좋습니까?”

“푸르른 산과 쾌청한 하늘 그리고 맑은 공기입니다. 런던도 최근 들어 하수도와 템스 강을 정비하며 많이 나아졌다 하는데 조선의 자연은 보석과 안료로 다듬은 회화 그 자체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백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정반대의 특성을 지녔다. 사람들을 휘어잡는 권위와 카리스마는 비슷해 보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다르다.

나폴레옹은 끔찍한 외교적 실책을 저지르며 내부 통솔조차도 연속적인 전쟁으로 해결하다 몰락하였다. 반면 나폴레옹 3세는 군사적 재능이 끔찍한 수준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 작달막한 사람이 보불전쟁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하였는지는 잘 알고 있다.

물론 미래를 알지 못하고 있는 나폴레옹 3세는 예조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청산유수처럼 달변을 쏟아냈다.

“오를레앙의 왕 루이필리프 전하께서 저를 변방에 유배를 보내신 것 같아서 원망하였습니다. 실제로 겪어보니 유배가 아니고 저에게 크나큰 기회를 주셨더군요.”

“담당하신 업무 중 하나가 베트남에 기름야자 농장을 건립하는 것이라 하셨지요. 크나큰 기회라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동맹인 베트남에 유효한 외교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자리이며 예산 할당도 제법 많이 해주셨지요. 본국에서 허가한 예산이 연간 일천만 프랑에 달합니다.”

본국 지원 예산이 조선의 신냥(新兩)과 거의 동일한 가치를 가진 프랑으로 1,000만 냥, 은자로는 200만 냥이다. 일개 외교관이 부담하기에는 막대한 예산이기는 하다.

프랑스 정부는 베트남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으며 나폴레옹 3세를 희생양으로 보내놓았다. 능력을 시험할 목적으로 돈이라도 많이 주었다고 변명하려는 태도이지.

가뜩이나 내부가 불안정한 데다 흉년이 이어져 민란이 벌어질 인도차이나 일대에서 나폴레옹 3세가 무슨 일을 계획할지 궁금하였다. 그의 달변은 내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기름야자 농장을 세우긴 하였지만 노동력이 문제더군요.”

“근래에 들어서 흉년이 일어났다는 정보는 입수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노동력도 제대로 소집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요.”

“한센 박께서 상황을 명쾌히 판단하고 계시군요. 당장 식량이 부족한데 기름야자 농장 건립으로 불만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은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예산의 효과적 사용이라. 당장 베트남에게 필요한 물건은 군사력이 아닌 내부 정비에 필요한 인력 동원과 농업 생산력 강화라고 생각을 할 찰나 나폴레옹 3세의 답이 나왔다.

“제가 소문을 듣기로는 조선의 궁궐은 시멘트와 철근을 조합하여 기초를 세웠다 하더군요. 이런 기술을 베트남의 농토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지금 뭐라 하셨는지요? 농토에 인공석분을 퍼부을 생각이십니까?”

“수로 정비 사업과 저수지 확충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제가 베트남에 부임했을 때 본 것은 홍수가 일어나고 바로 가뭄이 이어지며 발생하는 끔찍한 기근이었지요.”

나폴레옹 3세는 외교관으로서 보아온 주변의 상황을 정리하여 말하였다. 지금 베트남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늘어나는 인구로 인하여 확장한 농지가 자연재해에 노출된 것이다.

“베트남은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기존의 농토는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 대처를 하였으나 새로 만들어낸 농토는 우기의 홍수에 곡식이 쓸려 내려가지요.”

“그다음에는 각종 전염병이 퍼져 나갈 것 같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말라리아 정도야 훔볼트 교수와 조선의 여유당 정이 만들어낸 복합 치료제로 견뎌낼 수 있지만 콜레라와 장티푸스를 비롯한 전염병이 퍼지더군요.”

베트남의 근대화에서 서구세력은 숨통을 끊었을 뿐이고 멸망 원인은 따로 있었다. 연간 10회 이상의 반란과 이로 인한 생산력 약화 그리고 자연재해의 악순환이 겹쳤다.

이런 악순환의 시작점에 방문한 나폴레옹 3세는 문제의 핵심을 명확하게 짚었다. 심지어 자료조사를 제법 하였는지 조선의 농업을 비교 분석하였다.

“시멘트와 철근을 이용하여 수로와 저수지를 만들면 신규 농지는 물론 기존 농지의 생산성도 상승할 겁니다. 제가 여러 자료를 확인하니 조선의 농업 생산량은 엄청난 편이더군요.”

“비료의 힘이 컸습니다. 그렇다 하여도 한 결, 약 일 헥타르 당 육백 두 정도의 생산량이 한계입니다. 킬로그램으로 따지면 삼천 킬로그램 중반이지요.”

“그 정도면 베트남에서는 손꼽히는 옥토(沃土)입니다. 자연재해로 평균적인 쌀 생산량이 이모작을 해도 일 헥타르 당 이천 킬로그램에도 미치지 못하니까요.”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조선은 1헥타르, 약 1결에 보통 한 섬이 조금 넘는 종자를 뿌려 40섬에 조금 못 미치는 수확을 얻는다.

베트남은 이모작을 실시하니 1결에 3섬가량의 종자를 사용해도 20섬이 조금 넘는 수확이 전부인데 흉년까지 겹치면 어떻게 될까. 나폴레옹 3세는 내 표정을 살펴보고 신중히 말하였다.

“기름야자 농장이 문제가 아닌 인력을 동원하여 기본적인 농업 생산성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는 현 황제이신 소치(紹治)제에게 간언하였지요.”

“그러하면 베트남 정부의 의견이기도 하군요.”

“조선에서는 시멘트로 각지에 저수지를 건립하고 궁궐의 기초를 만들어 세계 제일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베트남에 공사인력 파견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일이지만 나폴레옹 3세의 능력이 엄청난 수준임을 입증하였다. 그는 외교관으로 부임하고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응우옌 왕조의 소치제를 휘어잡았다.

아마 나폴레옹 3세의 속마음은 베트남의 치적을 발판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할 야욕을 가진 것 같지만 조선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조선의 기술자는 베트남의 가혹한 홍수에 버틸 수 있는 기술을 축적할 수 있으며 최소한 철근은 조선에서 수입해야 하니 더욱 좋은 일이고. 그러니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다.

“훌륭한 판단 덕분에 베트남의 내부가 안정화되겠군요.”

“이번 일을 허가한 소치제께서 결단을 내린 덕분이지요. 또한 저에게 막대한 예산을 주신 루이필리프 전하가 아니었다면 이번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번 사업이 성공하면 베트남은 순식간에 발전할 수 있다. 망국으로 향하는 악순환을 대규모 치수사업으로 중단시키면 백성들의 불만도 줄어들고 반란을 억제할 무력도 갖출 수 있고.

또한 나폴레옹 3세의 명성도 끝없이 치솟으리라. 그가 대통령이 될지 총리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황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백부의 명성과 다른 방향을 제시하리라.

“물론 제 사소한 욕심도 있었지요. 젊은 시절에 영국에 방문한 적이 있으니 베트남에서 몇 달 동안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영국처럼 베트남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혹시나 영국처럼 외교를 아주 잘하는 국가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절대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물론 백부님의 이름을 걸고 절대 없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는지 나폴레옹 3세는 표정을 확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는 듯이 손뼉을 치고는 다른 장소를 안내해 달라고 하였다.

“최근에 그랑제콜 조선 분원이 승격하여 그랑제콜 조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쟁쟁한 교수들이 있기에 어엿한 대학으로 승격하였는지 궁금하군요.”

“가 보시면 눈이 휘둥그레질 물건들이 많을 겁니다. 어서 가 보시지요.”

나폴레옹 3세는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각종 혁신적인 체계를 받아들이는 데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각종 기술을 확인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프랑스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보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영국 놈들에게 기술이 뒤처지게 되었으나 그랑제콜 조선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퍼마신 일준이는 출근하지 않았지만 나는 억지로 출근하여 꿀물을 받아 속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 나폴레옹 3세가 향한 곳은 에이다가 근무하는 연구실이었다.

“에이다 교수를 뵙게 되었습니다. 저는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 합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조카 아니세요? 이거 막 기계를 시험하던 상황이라…….”

기름때와 쇳가루에 범벅이 된 에이다는 서둘러 몸을 씻으러 사라졌고 나폴레옹은 에이다가 만들고 있던 기계 세 대를 보았다. 신형 방적기인데 여기서 직조된 옷감을 매만지며 말하였다.

“에이다 교수가 최신식 방적기를 발명하였고 저도 방적기로 직조한 옷감을 입고 있습니다. 신형 기계로 만든 옷감은 섬세하기가 비교할 물건이 없군요.”

나폴레옹 3세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로켓(작은 그림이 담긴 목걸이)을 열고 옷감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안에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로 제 백부님을 인쇄할 수 있습니까? 이론대로면 초상화 수준으로 정밀한 옷감을 직조할 수 있다 하였는데 가능한지 궁금하군요.”

백부님이라 하였는데 로켓 안에는 나폴레옹을 간단히 묘사한 회화가 있었다. 이 작디작은 회화를 확인한 에이다는 눈을 굴리며 세 대의 신형 기계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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