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41화 (141/345)

141. 13장 3화 행사 준비

내가 시작한 광기의 솜 남편 사업은 점차 정상적인 방향으로 변형되었다. 대부분의 양반 가문에서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량 등 멋진 솜 남편을 하나씩 갖추게 되었다.

1844년 3월이 되자 불법 물량의 단속도 뜸해졌고 다음으로 한양 도성에서 판매된 솜 남편, 촉의 오호대장군은 처음에는 불티나듯 판매되다 어느새 인기가 시들해졌다.

‘자고로 덕질은 한번 맛을 들이면 방이 꽉 차거나 통장 잔고가 바닥나야 정신을 차리지.’

일준이가 지적한 말이 옳았다. 녀석은 덕질을 해본 적은 없지만 과기원에 다니면서 같은 연구실의 사람이 오타쿠라서 그 심리를 어느 정도 꿰뚫고 있으니 틀리진 않았다.

여기에 정약용의 제안을 들은 효명세자가 전국에 퍼진 자카드-에이다 방적직조기를 가진 공장에 공문을 보냈다. 아예 이번 기회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공문이며 좋은 방안이었다.

[궁궐의 격식을 올리기 위하여 바닥과 벽에 계담(罽毯)을 둘 것이다. 여러 종친과 함께 심사할 것이니 각자의 실력을 발휘하여 궁궐에 납품할 물건을 만들어보아라.]

궁궐에 납품하는 것 자체로도 가문의 명예요 실력을 입증하는 길이다. 여기에 조선 내부에서는 격식 때문에 대량 양산할 수 없어도 같은 물량을 해외에 판매할 길도 열린다.

평소에는 사람의 몸을 묘사하려던 이들이 갑자기 노선을 바꾸어 궁궐 납품을 준비하니 인기가 시들해질 만도 하다.

이를 보면서 생각나는 단어가 있었다.

“오덕의 끝은 언제나 덕업일체이지.”

“외무승지가 솜 남편을 보면서 오덕이라 말하는데 왜 오덕인지 궁금하군. 혹여나 다섯 가지 덕을 뜻하는 오덕(五德 - 온화·양순·공손·검소·겸양)에서 따온 덕인가?”

옆에서 내 업무를 심의하던 이광정이 눈을 굴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는데 오타쿠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변명하듯이 말하였다.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다섯 덕목을 생각하였습니다. 과하지 않은 사치, 새로운 물건에 대한 관심, 다른 이를 생각하는 절제,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열정 그리고 포용입니다.”

“이 나라도 서역과 관계를 맺고 많이 변하였는데 자네가 말한 다섯 덕목이 필요하지. 듣고 보니 그럭저럭 괜찮은 덕목이고 조금만 다듬으면 더 좋을 것 같군.”

이 나라에 필요한 덕목을 대충 짚었는데 이광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싸하다 생각하더니 갑자기 툭 내뱉듯이 말하였다.

“생각해 보니 자네의 자는 있어도 별호(別號)가 없었지. 그럼 열 가지 덕목을 생각하고 있으니 십덕(十德)이라 하면 어떤가?”

“제 별호가 십덕이라니요?”

“열 가지 덕목은 너무 많은가? 그래도 열 가지 덕목을 익혀두겠다는 마음은 품어야지.”

이광정 정도의 인맥이라면 도성 전체에 내 별호를 알려줄 것이고 졸지에 십덕 대감이나 십덕 영감으로 불릴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별호는 타인이 붙일 수도 있다.

차라리 혐오스러운 놈이니 타국 뭉개기의 달인이라는 별호라면 내 행적이니 감당할 수 있지만 십덕이라니.

이광정은 내 표정을 살펴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너무 과한 호인가? 생각해 보니 다섯 덕목을 두 번 지키려면 너무 과분한 마음을 품은 것이기는 하지. 그러하니 별호로 오덕을 추천하겠네.”

“차라리 십덕으로 하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다른 별호를 만들어내든가 하지요.”

오덕이나 십덕이나 별 차이는 없지만 최소한 일본에서 생겨날 오타쿠를 생각하면 연계성이 적은 십덕이 나은 편이다.

앞으로 내 별호를 새로 창안할 생각을 하고 재차 업무를 시작했다.

“이제 이민아문을 슬슬 폐쇄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화전민을 북변으로 올려둔 덕분에 이제 이주시킬 화전민이 삼십만 명 내외로 감소하였군요.”

“올해가 마지막이지. 남은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 정착하거나 공장에 들어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네.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변하게 마련이지.”

마침내 4년을 이어온 이민아문과 이주 정책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 같았다. 이민아문이야 몇 년 정도 남아서 잔여 업무를 처리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대규모 이주 3년 차에 보내온 자료에는 긍정적인 면이 가득하였다.

기존에 요동과 만주에 거주하던 청나라 사람들과 완전히 융화하진 못하였지만 최소한 큰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침내 목화 재배에 성공하였군요. 그나저나 목화 농사로 인하여 물 소모량이 급증하여 농민들과 분쟁이 간혹 일어난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정에서는 송화강을 비롯한 여러 수계에 둑과 제방을 세우고 치수를 실시하려 하였지만 기술자들이 난색을 표하더군. 아직 자료가 부족하여 시험이 필요하다던가?”

“그런 일이야 몇 년 이내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대월에 불란서의 요청으로 토목 기술자들을 보냈는데 이들이 불란서의 요청대로 치수를 실시할 겁니다.”

수자원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치수공사 기술력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다.

첫 단계는 이미 공사가 완료되고 계속 보수중인 각 지방의 둑과 제방 그리고 배수 관로 시스템이다.

작은 하천을 시작으로 공사를 하여 기술력을 축적했지만 한강은커녕 큰 강들의 치수공사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한반도의 하상계수(河狀系數)는 매우 큰 편이며 이 작은 반도에 큰 크기의 강들이 밀집해 있다.

그러니 중간 단계로 기술력을 축적할 장소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이다. 최소한 기존 농토만 지킬 수 있는 수준의 치수사업을 하여도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나중에 가면 열수(洌水 - 한강)의 치수도 실시할 수 있겠군.”

“그건 좀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하긴 열수가 제대로 불어나면 숭례문 인근까지 물이 차오르지. 아주 오래 시일이 지난 다음에 가능할 걸세.”

이제 이민아문의 업무는 알아서 돌아가게 되었으니 외교 업무에 치중해야 하리라.

조만간 완공될 경복궁과 여기에서 실시되는 칭제건원과 관련된 업무가 남았다. 이민아문에서 퇴청하여 예조로 향하니 예비 참판(參判) 자리가 남아 있었다.

칭제건원을 하면 모든 직제가 변경되고 관리의 직급이 한 단계 오를 예정이니 훗날의 외무 부대신 자리이다.

“업무가 많고도 많구나. 하긴 전 세계에 이 나라가 제국임을 선포하는 자리이니 외교 업무만 따져도 엄청나지.”

경복궁의 완공은 조금 지체되어 1844년 음력 8월 15일 한가위로 예정되었다. 공사에 큰 문제는 없지만 안전을 우선시한 대처이기에 칭제건원도 다소 늦어졌다.

이 과정에서 각국에 서신을 미리 보내고 이들이 파견하는 외교관과 주요 관리를 통해 격식에 맞는 행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니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이 사실을 공표하였다.

수많은 서신을 작성하면서 새 왕위에 오를 사람은 유럽에서 ‘수풀 속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순조가 아닌 ‘뛰쳐나온 호랑이’라 일컬어지는 효명세자가 될 것이라 말하였다.

“이미 정해진 일이고 칭제건원을 실시하기 삼 일 전에 양위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으니 뭐가 문제야. 철도 노선도 조만간 완공될 거고 제국의 격식은 다 갖추었는데.”

이외에도 할 일은 많고도 많았다. 본래의 대한제국은 칭제건원을 멋내기로 생각해 제국을 칭하였으나 지금의 조선은 북방의 만주족을 지배하여서 제국을 칭하였다.

제국에 맞는 힘과 영토를 갖추었으니 북방에 머무르고 있는 만주족 가문들의 봉신(封臣)은 물론 경양군을 비롯한 종친들의 친왕(親王) 임명식도 거행해야 한다.

이 업무를 내가 모두 담당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지도를 확인하니 저절로 뿌듯한 마음이 생겼다.

아직 사소한 문제는 많지만 조선은 대한제국이 될 기반을 모두 마련하였다.

* * *

만주 일대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킨 조선 사람과 청나라 사람들은 일괄적으로 베트남의 고무나무 농장으로 이송되었다.

이들은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발작적으로 일어나며 욕을 내뱉었다.

“염병할 나무! 염병할 더위! 염병할 모기! 염병할 세상!”

“좀 닥치고 일이나 해! 빨리 일 안 하면 모두 쓰러져 죽잖아!”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잔불에 의지하여 숲으로 향한 이들은 고무나무에 달라붙어 노역을 실시하였다.

3년 동안 농사를 짓는다는 말에 별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보통 농사가 아니었다.

베트남 남부의 끔찍한 더위는 조선과 만주에서는 훈훈한 봄기운이 맴돌 4월 무렵에 절정에 이르렀다.

고무나무 수액을 최대한 뽑아내려면 이 시기에 최대한 많이 일해야 하였다.

“이 쳐 죽일 나무들! 진짜 쳐 죽일 방법도 없고!”

긁개로 고무나무에 흠집을 낸 인부가 지나가자 다음 인부가 수액 채취도구를 박아서 아래에 둔 나무통에 수액을 흘려보냈다. 여기까지는 쉬운 일이지만 다음 작업이 고역이었다.

고무나무는 많은 영양분을 얻을수록 많은 수액을 배출한다. 사방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모조리 벌채하고 다듬어 퇴비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고 인부들은 낫과 갈퀴를 들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더위와 습도에 찜통에서 쪄지는 만두 꼴이 된 노동자들은 화전민이건 소작농이건 청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이 모두 한 몸이 되어 일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소금이 섞인 물을 쉴 새 없이 들이켜고 이를 바로 땀으로 배출한 노동자들은 해가 어느 정도 떠오르자 나무 그늘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였다.

개중 신입 노동자가 상황을 파악 못 하고 잔업을 하려 숲으로 들어갔다.

“오늘 작업 속도가 좀 늦는 것 같은데.”

“김 서방!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 지금 일하면 바로 쓰러져서 죽어!”

작업 할당량을 조금이라도 채우려던 신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청나라 사람들이 바로 제지하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본 김 서방에게 모두가 제발 일하지 말라 말하였다.

“지금 내가 이 년 동안 일했는데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조그마한 작업이라도 하면 열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더위를 먹어서 쓰러져 있으면 일을 더 못하잖아!”

“그 정도입니까? 잠시 일어나서…….”

“잔말 말고 듣기나 해!”

조선 사람과 분쟁을 일으킨 혐의로 머나먼 베트남으로 귀양을 온 청나라 사람들은 조선 사람과 형제 수준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런 끔찍한 기후와 환경에서 다툼을 일으킬 힘조차 없었다. 간혹 싸움을 벌이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가 있기는 하였지만 이런 이들은 프랑스 관리자가 간단히 제압하였다.

‘여기서도 분쟁을 일으킬 경우 거리가 네 배 정도 먼 아이티 고무나무 농장으로 이주합니다.’

아이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삼 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곳이라 하니 다들 유순한 양이 되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이들은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새참을 받았다.

“이놈의 안남미(安南米)는 사람이 먹을 게 못 된다니까.”

“그래도 먹어둬야 힘이 붙지. 난 이놈의 생선 조림을 도저히 못 먹겠는데 계속 나오네.”

나무 그릇에 담긴 푸슬푸슬한 안남미와 잡곡이 섞인 밥을 반찬과 함께 게걸스럽게 먹은 노동자들은 물을 들이켜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물론 제대로 잠드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빌어먹을 모기새끼들! 숲을 다 불태워 버리고 싶어!”

“그러면 우리 가족에게 돌아갈 돈도 사라지고 자네는 아이티로 이주하겠군.”

사정없이 달라붙어 피를 빠는 모기들을 잡는 노동자들은 가족 생각을 하며 이 끔찍한 노동을 버텼다. 조정에서는 자신들이 버는 돈의 절반을 남은 가족들에게 보내준다 하였다.

노동자들의 연봉은 신냥 200냥, 쌀 40섬이며 절반이면 쌀 20섬이었다. 도망갈 곳도 없고 파업이라도 하면 가족들이 굶주리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죗값을 치러야 하였다.

해가 저물어가며 다시 노동이 시작되었다. 한낮의 더위가 아니더라도 습도는 85%, 기온은 32도에 육박하니 모두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말하였다.

“우리는 그나마 숲속에서 일하는데 벌판에서 일해야 하는 농부들은 어떻게 살지?”

“내가 좀 보기는 했는데 씨를 뿌리고 일을 안 하더군.”

“그럼 김도 안 매고 물골 관리도 안 하고?”

“우기에 비가 한번 내리면 벌판이 물바다가 되는데 왜 관리를 하나?”

잡담을 나누며 잔업을 마치고 저녁 늦게 숙소로 돌아간 노동자들은 잠을 청하지 않고 목욕을 한 다음 프랑스인 감독관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도착한 감독관은 숙소의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이번 달에도 고생이 많았네. 할당량을 모두 채웠으니 다음 달에는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사진 여기 있으니 지난번처럼 찢지 말고 잘 보도록.”

노동자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수단이 전달되었다. 삼 개월에 한 번씩 만주에 있는 가족들의 단체 사진과 이들이 보낸 편지를 전했고 노동자들은 여기에 매달려 눈시울을 적셨다.

“내 딸 옥분이라네. 올해 열넷이고 길쌈도 잘하고 손재주도 뛰어나지.”

“우리 순후랑 맺어주면 적당할 것 같은데. 여기 순후가 있는데 자네가 보기엔 어떠한가?”

“체격도 듬직하고 얼굴도 잘생겼군. 형기가 끝나면 혼사를 추진하세나.”

조선 소작농 출신의 이 서방과 만주에 거주하던 진 서방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단체사진을 보며 혼사를 추진하였다. 이미 원한이고 뭐고 다 사라진 이들은 가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돌아가 사돈관계를 맺을 생각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조선의 압박이 들어왔다. 모든 언어는 조선의 말과 글을 중심으로 사용되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모깃불을 피우고 말라리아 환자나 전조 증상이 있는 이들에게 키니네와 아르테미니신을 혼합한 약을 먹인 노동자들은 잠을 청하려 하였다.

그런 이들에게 갑자기 고함이 들려왔다.

“전원 기상! 폐하께서 명을 내려주시었다!”

어명을 전달하기 위해 노동자 전체를 소집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새 농장을 만들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노동자들 모두가 잔뜩 긴장하여 밖으로 나섰다. 한밤중에 횃불이 사방에 밝혀진 가운데 조선에서 내려온 관리가 단상 위에 올라갔다.

모두가 긴장한 와중에 관리는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참으로 기쁘고 기쁜 일이니 올해 구월 폐하께서 궁궐을 완성하시고 황제를 칭하시며 새 연호를 세울 것이라 하였다. 그러니 대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형량을 일 년 줄일 것이다.”

프랑스 감독관도 이미 전달받은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노동자들이었지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 년 줄어든다고! 다음 달이면 집에 돌아갈 수 있어!”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난 석 달이면 된다고! 우기 동안 놀 수 있어!”

“만세! 만세! 만만세! 고작 이 년만 일하면 된다니!”

가장 빨리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5월에 형량이 끝나게 되었고 막 도착한 사람도 2년만 버티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한 몸이 되어 만세를 연호하던 이들이 진정되자 관리가 다음 어명을 하달하였다.

“기쁜 소식은 여기까지이나 다음 업무가 있다. 우기에는 고무나무 농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니 다른 업무를 실시하도록. 북방으로 올라가 치수(治水)사업에 협력하라. 라고 명하셨다.”

“치수 사업이라고?”

우기가 되면 하늘이 무너져라 쏟아지는 끔찍한 폭우를 간접 경험한 노동자들은 몸서리를 치며 관리를 바라보았다.

이런 간절한 눈빛에도 관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 말만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까딱거리는 프랑스 감독관을 바라본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새로운 시련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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