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14장 4화 조짐
두 달도 걸리지 않은 공식 일정을 마치고 대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가 출발한 평양의 항구에서는 환영식이 거행되었는데 가장 먼저 내려야 할 사람들이 먼저 옮겨졌다.
“삼백오십 년 만에 대한의 품으로 돌아온 조상들을 맞이할 것이니 모두 정중히 대하시오.”
본래 역사의 헌종, 이 역사에서는 효명제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태자가 직접 나서서 이들을 환대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온 일만 개의 상자에 예의를 표시한 태자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도성에 계시는 황제폐하께서 친히 제사를 주관하시어 이들의 귀환을 청하고 있으며 제국이 되고 새로 규정한 오악(五嶽)과 사해(四海) 그리고 사독(四瀆)에도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옛적 왜추가 일으킨 변란으로 왜국에 끌려간 모든 이들의 영면을 기원할 뿐입니다.
태자의 추도사가 끝나자 각 상자는 이 자리에 참석한 지방 사학의 관리자들에게 배정되었다.
현대에는 자료가 소실되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정확한 희생자 숫자를 모르고 있지만 각 지방의 서원을 사립대학이자 연구소로 삼은 이 시대에는 달랐다.
각지에서 전해지는 야사와 행장록을 비롯한 기록을 교차 검증하여 더 상세한 지방 역사를 입수하였다.
이를 보면서 감상을 덜고 담백하게 평가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의 유해가 이리저리 섞여 있기는 하지만 뜻깊은 행사기는 하지.”
“이거 미리 배분된 대로 가져가는 것 맞지? 그럼 각 지방 대학에서 어떻게 처리하나?”
“그야 서원의 본래 업무에 충실하니 합동 봉안하고 계속 제사를 이어가겠지.”
일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번 코무덤 귀환으로 임진왜란 이후 어설프게 봉합된 한일 관계가 정리되었다.
남은 것은 정리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일본의 폭주를 막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폭주를 막아내기 위해 앞으로 열심히 일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 뭍에 내렸다.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난학자들과 기술자들이었다.
태자는 이장 행사를 모두 마친 다음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이미 소식은 들었습니다. 조용태 총장의 서적으로 학문을 익힌 이들이라 하였던가요.”
“대한의 태자전하께서 저희를 맞이하여 주시니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고개를 들 수 없다니 당연한 대접이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일본 왕과 귀족들도 이 나라의 통신사를 맞이하였는데 대한도 응당 맞이해야 하겠지요.”
태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할 일을 확실히 하였다. 일본은 막부와 각 지방의 번들 그리고 교토의 덴노와 귀족까지 분열되어 있었지만 대한은 중앙 집권 체계임을 각인시켰다.
난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안내를 받아 도성으로 향하였고 각종 선진 문물을 체험하며 자신들의 계획을 세워두었다.
특히나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은 사쿠마 쇼잔이었다.
“스승님께 여쭈어볼 것이 있습니다. 철골인공석분(철근 콘크리트)은 지진에도 강한지요.”
“이론대로라면 강합니다. 물론 자체 하중이 무거운 편이라 큰 지진을 만나면 폭삭 주저앉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무로 만든 구조물보다는 강하겠지요.”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제가 국립이학대학에 머물면서 이 기술은 확실히 익히겠습니다.”
과연 내진설계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이 전공으로 삼을 학문에 대한 욕망이 생겨났으니 다행이다. 이 과정에서 갈루아가 슬쩍 끼어들어 말하였다.
“그러면 내 아래의 연구생으로 대학 생활을 하지 않겠는가? 보편 학문은 닐슨 총장에게 배우고 철골인공석분의 구조적 연구에 대해서는 나와 함께 시험하도록 하지.”
“갈루아 교수님께서도 관심이 있으시다니 좋은 일입니다.”
“난 모든 사물을 수학으로 보거든. 닐슨 총장이 보기에는 어떻소?”
“아무리 제자를 자처해도 다른 학문을 배울 때는 전문가에게 배워야지.”
난학자들은 스승의 허가를 받자 너 나 할 것 없이 갈루아의 연구실에 들어가려 하였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간 연구생은 보통 3년 정도면 정신이 마모되어서 뛰쳐나오니 문제이다.
아무려면 좋으니 궐내각사로 돌아가 서류를 정리하고 효명제와 함께 보고를 올렸다. 내가 일궈낸 성과를 확인한 효명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후작의 일처리가 마음에 놓이는군. 일본에 은혜를 입혀 배반하지 못하게 만들고 훗날 나라를 경영할 사람들을 이 대한의 제자로 만들었으니 오십 년의 일을 두 달 만에 행하였네.”
“폐하께서 신의 공을 치하하여 주시니 마음이 놓이옵나이다. 하오나 이 모든 것은 일본에서 이 나라의 은혜를 받아들인 덕분이니 이들 또한 공이 있사옵니다.”
“틀린 말은 아니로다. 앞으로 교역을 실시하며 일본을 정상적인 나라로 되돌리고 보답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과의 교역은 무조건 이득만 생긴다.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금과 은의 화폐가치를 1:12로 수정하였지만 결국 더 비싼 값에 은을 팔고 더 싼 가격에 금을 사들이는 격이다.
만주와 요동이 개척되며 인삼 농장도 점차 부설되었고 이로 인한 은의 유입이 경제를 조금씩 좀먹어가고 있었다.
이를 염려하던 효명제는 내색하지 않고 말하였다.
“이 외에도 많은 이득이 있었다. 앞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한 물산을 판매하고 구리와 석탄을 비롯한 물산들을 많이 사들일 것이라 하였지.”
“실로 옳은 일이옵나이다. 지금까지 각 번과 막부의 시세를 조율하며 교역을 행하였는데 일본 막부가 중점적으로 거래를 시작하면 모든 일이 편해질 것이옵니다.”
“이 나라가 칭제건원을 할 적에 교류를 원하면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니 당연한 일이로구나.”
다음으로 할 일은 일본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보류한 사업에 대한 문제였다. 대한 통신사의 과업을 모두 정리한 효명제는 다음 의제를 이야기하였다.
“짐이 칭제건원을 시행하고 각 지방에 명을 내렸다. 제국이 된 은혜를 만백성에게 내려야 하니 각지의 사노비(私奴婢)를 일괄 해방하라 하였지.”
“일 년의 여유를 두고 시행하라 하였으니 올해 구월에 해방될 것이옵나이다.”
“익히 알고 있노라. 이에 대한 배상금은 각 양반가에 전달하였으니 이 나라에 노비가 없어질 것이다. 이를 생각하여 보았는데 노비를 면천(免賤)하여도 거처가 없으면 어디로 가겠느냐.”
의정부 신료들은 물론이고 나와 같은 관료들까지 서로를 돌아보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노비를 해방시키는 것은 좋지만 이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과감한 자들은 요동으로 이주를 택할 것이지만 자신의 고향을 버리지 않을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염려하고 있는 기정진은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를 하였다.
“신 기정진 아뢰옵나이다. 황제폐하께서 논하시는 바가 지극히 옳사오니 요동으로 이주하지 않은 이들은 옛 주인의 거처 인근에서 소작을 받거나 공장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옵니다.”
“결국 신분이 노비에서 평민으로 면천되었을 뿐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같구나.”
실제로도 노비 해방을 한 다음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하면 옛 주인에게 가서 똑같이 머슴 일을 하였다는 증언도 있지.
효명제는 일본에서 전해온 답신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제 대한은 일본의 스승이 되었다. 스승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니 일본에서 육축(六畜)을 기르지 아니하며 육식을 금지하는 일을 좌시할 수 없도다.”
“실로 옳은 말이옵니다. 가축을 많이 길러 고기를 즐기면 일본도 더욱 나아질 것이옵나이다. 하오면 노비들이 양반가에서 육축을 기르는 일을 하였으니 이를 권장할 뜻이시옵니까?”
“공부(工部)대신이 바로 보았구나. 그렇지 않아도 국립이학대학에서 찰스 다윈이라는 강사가 하루를 거르고 가축을 접붙여 가축을 관리하기 난해하다 하였다.”
대한에 와서 기행을 일삼는 찰스 다윈의 이야기가 결국 조정에서 나오게 되었다.
유전 법칙을 진화론에 넣으려 연구하는 다윈은 강사 주제에 강의는커녕 가축 번식에 몰두한다던데, 이 과정에서 국립이학대학 사육장이 포화상태라 하더라.
심지어 연구 자료이니 치킨을 만들 수도 없어서 닭장을 증설한다 하였는데 이걸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면천된 노비와 주인에게 권고하여 각지에서 육축을 기르게 하라. 이를 면천된 자와 옛 주인이 절반씩 나누게 하여 옛 모습을 되찾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신 박현상 아뢰오니 폐하의 은혜가 지극히 크오나 모든 일에는 명백한 이득이 있어야 할 것이옵나이다. 국립이학대학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짐승이 닭이니 이를 먼저 보내시옵소서.”
“닭을 먼저 보내라 하였는가?”
농촌 개선사업의 진행도 알고 있으니 이를 대한에 적용하면 각 농촌의 현대화가 빠르게 추진되리라.
그렇지 않아도 기차 노선이 지나가지 않는 지역은 급격히 쇠퇴할 가능성이 있었다.
“신이 생각하기로는 처음에는 능력을 증명하고 더 많은 투자를 행하는 것이 우선이옵니다. 이들의 능력을 닭으로 가늠하고 돼지와 양을 보내야 할 것이옵나이다.”
“그러고 보니 닭은 가장 다루기 쉬운 가축이기는 하였지. 다음으로는 어떻게 하는가.”
“돼지와 양 다음으로는 소이옵니다. 이 모든 과업을 성공하면 그 고장의 성과를 칭송하고 각종 시설을 부설하며 노비의 주인은 당대의 공신으로 삼아도 될 일이옵나이다.”
공신이라는 말에 효명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대의 농촌은 각 지방 지주가 관리하기 편하도록 향악(鄕樂)으로 묶여 있으니 노비는 갑자기 들어온 돌부리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노비에게 지방 지주이자 양반 계층의 대행자 노릇을 시키는 것이다.
효명제는 내 이야기를 듣고 아예 대회를 열기로 하였는지 간단한 제도를 즉석에서 만들어내었다.
“갑(甲), 을(乙) 그리고 병(丙) 정도로 성과의 차등을 두되 가장 낮은 성과를 거두어도 사력을 다하면 칭찬을 함이 마땅하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즉각 적용해야겠구나.”
“신의 뜻을 헤아려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나이다.”
“또한 찰스 다윈 입장에서도 가축의 품종을 유지할 수 있으니 나쁜 일이 아니로구나. 다만 국립이학대학에 머무르지 않고 이 나라 전체를 돌아다녀야 하니 고단한 일이 되었다.”
효명제는 일 한 건을 처리하고 마음이 놓였는지 벽에 걸려 있는 세계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일본에 붙어 있던 종이를 떼어내고 청나라와 영국 그리고 미국에 붙어 있는 종이를 확인하며 말하였다.
“청나라는 내년에 철도가 완공된 이후 이득을 배분해야 한다. 영길리는 불란서와 외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 나라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였지. 남은 곳은 미국이구나.”
영국이 뭔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정상적으로 일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효명제는 다음으로 미국에 붙어 있는 종이를 확인하고 말하였다.
“조만간 미국에 이천여 명의 병졸을 파견하여 함께 묵서가(멕시코)를 징벌할 것이다. 내 지난 칭제건원 당시 사신을 보내 사과의 말이라도 하였다면 이를 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훗날 적대할 것을 염려하며 우선 화합을 도모한 미국과 천양지차이옵니다. 이번에 이 나라의 힘을 증명할 것이니 실로 옳은 뜻을 정하셨사옵니다.”
권돈인의 화답을 들은 효명제는 군부 인원들을 만나기 위하여 회의를 중단하였다. 이후 며칠 동안 여독을 풀고 외교 업무를 재개하였다.
출근하자마자 권돈인이 쭈뼛거리며 나를 보려 하였다. 일본 관련 대화를 할 줄 알았는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나왔다.
“십덕 자네가 입조하기를 기다렸다네. 청나라의 철도가 완공되어 기공식이 시행된다 하더군.”
“네? 철도는 내년 봄에야 완공될 예정이라 알고 있는데 벌써 기공식이라 하셨습니까? 이재(彛齋 - 권돈인의 호) 대감님께서 혹여나 착오를 겪으신 것 아닙니까?”
“착오가 아니고 서신까지 보내왔다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황제폐하께 보고를 올리고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던 차였지.”
청나라에서 일방적으로 보내온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니 1846년 3월에 완공되어야 할 철도가 1845년 9월에 훨씬 빠르게 완공될 계획이었다.
이전의 칭제건원에 심보가 뒤틀려 버렸는지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였다. 심지어 도광제의 명령도 아닌 지방 관원이자 철도 담당 관원인 포정사(布政使)들의 이름으로 서류를 보냈다.
“양 철도의 완공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청도와 상해 두 지역에서 대한의 철도를 관리할 인원만 남기고 귀국하라. 지금 한창 설로 부설공사가 시행되는 상황 아닙니까?”
“나도 이 일방적인 서신에 당황하여 공부 사람들과 확인을 하였다네. 놀랍게도 팔 할 정도만 완공할 정도로 선로를 보냈는데 나머지 이 할을 만들어냈는가 아니라면…….”
“착복하였겠지요. 아마 정상적인 구간은 먼저 완공된 대한 담당구간이 전부일 겁니다.”
“에이 설마. 아무리 청나라가 엉망진창이어도 완성하지도 않은 물건을 완성했다고 허위 보고를 하겠는가? 그러다가 걸리면 삼대가 멸족을 당할 거라네.”
이렇게 말을 하였지만 권돈인도 청나라를 신뢰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더니만 머나먼 서쪽을 바라보며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청나라 놈들이 일을 똑바로 하는 것을 바라느니 영길리가 생각을 고쳐먹고 올바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바래야지.”
“앞의 일은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고 뒤의 일은 서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영길리의 외교가 온건해진 모습을 보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같기는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청나라는 나아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내가 답답할 지경이야.”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마음을 달랜 권돈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서류를 정리하였다. 그러고는 나와 함께 노사 기정진이 담당하는 공부에 함께 가서 문의를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청나라의 부패한 관료들이 철도로 자금을 착복하여 조기 완공 성과급까지 받아내려는 것 같다네. 지금 청나라의 철도 노선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는가?”
“듣자 하니 철로 가운데 이 할이 도난당하고 그 자리를 나무를 깎아 옻칠을 하고 다시 기름먹을 바른 철도가 자리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배치도가 완성되었는데…….”
전신은 그나마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 또한 대한에서 파견된 기술자의 사력을 다한 노력 덕분이었다. 매번 끊긴 전신줄을 새로 보수하느라 정신이 나갈 것 같다더라.
보수작업을 하며 철도도 대략 점검하였고 그 결과가 드러났다. 상해에서 시작해 820㎞에 달하는 철도 노선을 나타낸 배치도를 확인한 권돈인은 눈을 찌푸리며 기정진에게 말했다.
“이게 철도인가 양귀비밭에 물을 대는 물골을 나타낸 지도인가?”
기정진은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청나라 놈들이 엿이나 먹으라는 심보로 능선을 스쳐 지나가는 철도 노선을 설정하였다.
그 결과 철도 노선이 스쳐 지나간 산이 모두 양귀비밭이 되었다. 각 노선에 지시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인근 양귀비밭의 대략적인 크기를 나타내었다.
철도를 부설할 때 부패한 관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인부를 굴려 양귀비밭을 만든 것이다.
기정진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며 답하였다.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노선을 단축한다는 명목으로 능선을 슬쩍슬쩍 거치게 하였는데 철로 주변의 숲 대다수가 양귀비 재배지가 되었지요.”
권돈인은 한숨을 내쉬다가 아편이 수십만 근 단위로 쏟아질 것이라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기정진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노사 대감님께서 일을 이렇게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좀 많이 미안하게 되었네. 이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을 줄은 몰랐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양귀비밭을 만들 줄 알았지.”
기정진이 뿌린 씨앗은 청나라가 완벽하게 받아들였다. 기차 노선 주변이 죄다 양귀비밭이니 가공과 응축작업을 거친 아편이 중국 전체에 퍼지고 대한에 올 우려가 있어 대책을 논했다.
“일단 할 일은 해야지요. 황제폐하께 장계를 올려 아편 유입의 대처를 논하도록 합시다.”
아편 정도는 끈질기게 대처하면 막아낼 수 있다. 철도 노선을 통해 전해질 것이니 유통에 개입한 관리를 일벌백계하고 단순 가담자라 하여도 큰 벌을 내려야 한다.
다만 이후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본래 역사에서 1860년 2차 아편전쟁 이후 대량으로 팔려나가던 쿨리들이 더 빨리 등장한 것이다.
청나라 내부에서 양산되는 아편으로 인한 중독자들이 수십만 단위로 생겨날 것이다.
이들이 어떤 일을 겪을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