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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55화 (155/345)

155. 14장 5화 쿨리(2)

각 지방에서 재배되어 가공된 시작한 아편은 청나라 관료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이미 북경으로 유입되는 아편이 수만 근에 달하였으며 이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아는 자가 있었다.

각지에 파견되어 신도를 육성하고 돌아온 배상제회 대신들만큼 이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배상제회의 정기 회합이 시작되며 홍수전이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 상지들이 힘을 쓴 덕분에 지난달에 이만 이천여 명에 달하는 신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칠 할인 일만 사천 명은 하륜이요, 팔천 명은 중륜이니 삼합(三合)에 근거하여 다스려라.”

배상제회는 스스로를 세 개의 계급으로 나누었다. 가장 먼저 예수의 열두제자를 적당히 따라한 10명의 종교 지도자들은 상륜(上輪 - 위쪽 바퀴)라 말하는 종교 인사들이었다.

다음 계층은 중륜(中輪)이라 불리는 객가들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따라 객가를 10개로 분류하였으며 이들이 배상제회의 손과 발 그리고 연락망이 되었다.

마지막 계층은 하륜(下輪)인 한족과 만주족이었다. 상, 중, 하는 분류를 위한 칭호였고 모두 교주인 홍수전의 영도 하에서 대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회의의 이름은 삼합회(三合會)였으며 프레디를 비롯한 영국인들은 열 개의 반지라 돌려서 말하였다.

홍수전의 보고가 끝나자 하륜의 최고 간부인 증국번이 보고를 올렸다.

“회주님께 보고를 올립니다. 일곱 번째 공장이 성공리에 가동되었으며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공장은 자체 설계를 실시하여 시험 가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패하여도 좋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하기 위하여 정진하고 또 정진하시오.”

“옳은 말씀입니다. 또한 하륜에 새로 가입하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으니 좌종당이라는 젊은 인재입니다. 회주님께 천거하고 싶으니 지금 소개하겠습니다.”

작고 똥똥한 체격의 청년이 인사를 하자 홍수전이 반갑게 맞이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구리반지를 끼워주며 말하였다.

“하륜에 새로운 인재가 가입하였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죄송한 말씀이지만 감히 회주님께 말을 올리니 저는 낮은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제 신분을 상륜으로 올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허! 우리는 서로를 상, 중, 하로 나누었지만 모두 대등한 사람들일세. 하륜의 대표인 척생(증국번의 호)은 내 벗이며 하륜을 대표하고 있지 않은가.”

홍수전은 몸을 돌려 벽에 걸린 십자가에 성호를 긋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은 좌종당에게 증국번이 말하였다.

“상, 중, 하라는 칭호는 배상제회에서 모시는 상제와의 연관을 드러내는 것일세. 높을수록 상제의 뜻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그러면 이건 백련교처럼…….”

“어허! 자네 말은 똑바로 하게! 배상제회의 뜻은 상제가 보기 좋도록 이 세상을 온건하게 만드는 것일세. 능력을 발휘하면 우리가 어떻게든 자네를 천거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좌종당은 머리는 좋지만 시골에서 출세하지도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다 배상제회에 가입한 젊은 인재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정계로 진출하려 배상제회의 힘을 빌리려 하였다.

이후 여러 안건이 올라왔고 증국번은 점차 개선되어가는 청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청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는 그는 이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보았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관료 생활을 하면 부패한 관료들에게 시달리다 제 명을 살지 못하리라.

그러하니 종교의 힘을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청나라를 개선하려 하였다.

“다음으로는 징후를 파악해야 하리라. 올해에도 각 지방에 파견된 대신들에게 묻겠다. 어떠한 일이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더냐?”

“남대신 이수성 회주님께 보고를 올립니다. 최근 들어 상해를 시작으로 남부지방 일대에 양귀비 농장과 여기서 생산된 아편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아편이라 하였는가!”

홍수전은 평상시의 근엄한 태도를 집어치우고 이수성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스승인 임칙서가 어찌하여 영국과 맞서 싸운 이유가 아편이었으니 그 또한 아편을 혐오하였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을 부릅뜨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는 홍수전을 바라보던 이수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팔에 힘줄을 불룩거리는 홍수전에게 다음 보고를 올렸다.

“재작년에는 징후가 보였으나 사특한 자들이 소득을 챙기는 줄 알았습니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 본래 양귀비는 약으로 쓰는 식물이니 넘어갔다.”

“그러나 올해는 다릅니다. 단 이 년 사이에 각지의 옥토가 양귀비밭이 되었으며 중독자가 도처에 넘쳐납니다. 제가 추정하기로는 최소 오만 명 이상의…….”

굉음에 보고가 중단되었다. 홍수전은 살가죽이 찢어지고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내리쳤고 탁자에 금이 가버렸다.

손에 대충 붕대를 감은 홍수전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황궁으로 들어가 보고를 올리려 하였다.

그러한 홍수전의 앞길을 증국번이 막아 세웠다.

“비켜! 이 끔찍한 해악을 저지르는 모든 놈들을 죽여야지!”

“난 벗을 잃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네. 아편이 백성들에게 퍼져 나갔다면 관료들에게는 얼마나 퍼져 나갔겠나? 각 지방의 아편 농장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짐작 가지 않는가?”

평상시에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회주라 깍듯이 칭하는 증국번은 홍수전에게 간청하듯이 말하였다.

이러한 증국번의 설득에 홍수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말하였다.

“옳은 말이야. 각 지방의 토호들과 지주들이 중앙 정계에 끈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아편이 북경에 더 많이 퍼지던데…….”

“내가 배상제회의 교리는 몰라도 뜻은 알고 있네. 공장을 더 많이 가동하고 제대로 된 성과를 보이면 황상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보아 높은 자리에 천거할 것이 아닌가.”

증국번은 홍수전의 표정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를 바로 넘겼다. 처음 인연을 맺을 때부터 괴짜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보통 사람과 감성이 다르다 생각한 것이다.

홍수전은 이를 눈치채고 세수를 하고 와 표정을 관리한 다음 다시 탁자에 앉았다.

금이 간 탁자를 매만지던 그는 나머지 대신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배상제회에 가입한 모든 이들에게 말한다. 아편은 영혼을 타락시키고 몸을 병들게 하는 해악이니 이 해악을 지나친 고통을 겪어 죽음에 이르지 않는 한 입에 대지도 말라.”

“그러하면 권고입니까 아니면 교리(敎理)입니까?”

“교리이다. 지금부터 상륜의 간부들이 남아 기도를 올리고 교리를 새로 만들 것이다.”

증국번과 좌종당을 비롯한 하륜과 중륜의 간부들이 물러나고 상륜 간부 열 명이 남았다. 홍수전은 손짓을 하여 몇 명이 기도문을 외우게 하고 표정을 바꾸어 이수성에게 말하였다.

“그럼 양귀비밭이 몇 묘(畝 - 토지 단위, 667㎡)나 만들어졌는지 확인했는가?”

“제가 확인한 지역을 다 합치면 삼십만 묘 정도는 거뜬히 만들어졌을 겁니다.”

“목표는 달성하였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해. 중륜을 구성하는 객가들에게 양귀비밭을 더 많이 만들라 하되 절대 아편에 손을 대지 말라 다시금 당부하게.”

창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북경을 한참동안 노려본 홍수전은 다시금 분노를 억누르며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민닝(도광제의 휘) 이 자라새끼의 아가리에 다시금 아편을 밀어 넣고 두 아들들도 아편 중독자로 만들어 버릴 거야. 만주족 놈들이 아편에 취할수록 우리의 계획은 성공으로 다가간다.”

“하륜 신도가 될 한족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 계속 객가들을 동원해 아편을 재배하기를 권하면 온 나라가 아편 천국이 될 겁니다.”

“적어도 우리 배상제회의 교리를 배운 한족들은 아편을 피우지 않았을 거 아닌가? 그리고 아편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여 견제를 하여도 충분하겠지.”

홍수전의 예측으로는 십 년 뒤에는 청나라 전체에서 재배되는 아편의 양이 천오백만 근을 넘을 것 같았다.

이 정도 양이라면 아편을 판매한 영국에 아편으로 복수를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청나라 내부를 들쑤셔서 더더욱 부패하게 만들고 자신이 만들어낼 천군(天軍)의 복수도 용이해지리라.

물론 여기에는 경계해야 할 나라가 있었다.

“다만 조선에 아편이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게. 스승님도 극히 경계해야 할 사람이라 말한 자가 있었으니 박현상이라는 자였네. 그가 개입하면 일이 틀어질 거야.”

“회주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러하면 이 교리를 포함해 양귀비 재배를 퍼트리겠습니다.”

그날 밤 북경에서는 폭죽이 터지며 철도 조기 완공을 축하하였다. 제대로 된 철도가 아닌 양귀비밭을 만들기 위한 날림 철도임을 알고 있는 홍수전은 행복한 표정으로 잠을 청하였다.

* * *

1845년 9월 22일, 상해에서는 철도 시범 운행이 시작되었다. 대한에서 파견된 기술자와 최신 기관차 그리고 객차들이 증기를 피우며 운행을 개시하였다.

“증기압 관리는 이 정도면 적당하고 석탄은 속도를 유지하는 중에도 꾸준히 넣어야 합니다.”

“이미 배웠으니 알고 있소. 그나저나 기차가 제법 빠르군.”

“그야 최신식 증기기관이니까요. 잿가루를 청소하는 방법은…….”

정차와 출발을 반복하며 한나절 내내 달린 철도는 180㎞를 주파하여 마침내 항주(항저우)에 도달하였다. 그러고는 대한에서 파견된 기관사가 악수를 나누며 말하였다.

“나머지는 미리 배워두셨으니 운행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의 구간은 모두 청나라에서 시공한 구간이니 저희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귀국에서 배운 만큼 우리도 노선을 잘 부설하였소.”

대한의 기술자들은 철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심각히 고민하다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올렸다. 이미 돈은 다 받았고 항주까지의 철도 노선은 대한이 담당하기로 하였으니 관여할 필요도 없었다.

계속 증기를 피워 올려야 할 기관차의 증기가 잦아들면서 천천히 항주 역 바깥으로 이동하였다.

관리는 남은 객차도 모두 항주 역에 정차하여 두고는 진정한 열차를 운행하였다.

“이 문둥이 새끼들아! 자라보다 못한 빚쟁이들아! 어서 튀어나오지 못하겠느냐!”

이미 대량으로 양산된 아편 중독자들은 몸을 허우적거리며 선로 위로 올라갔다. 애초에 날림으로 시공된 선로는 제대로 된 기차조차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니 인력철도가 운영되었다. 이천여 명에 달하는 채무자들은 가산을 탕진한 채 선로 위에 올라간 열차를 확인하였다.

선로 폭에 맞춘 우마차를 본 사람들은 푸념을 하였다.

“우리가 소입니까? 아니면 말입니까?”

“소? 말? 이 기차를 끌고 정해진 장소로 가면 매일 아편을 주겠다. 어서 움직여!”

어차피 항구에서 팔아치울 아편 중독자들을 요긴하게 쓰는 방법이었다. 대충 밥과 아편을 먹이고 화물을 운반하게 하다 마지막에 모조리 팔아치우고 소와 말로 기차를 끌고 오는 방식이다.

화물은 아편 중독자들의 가족이었다. 이들은 기관차 대신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고, 증기 대신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기적 소리 대신 통곡 소리를 퍼트리며 자신들을 판매하는 길에 나섰다.

“다음! 이백 명 여기서 내린다! 남은 공간에는 아편 올려!”

역에 정차할 때마다 화물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인근 능선과 저 머나먼 양귀비 농장에서 재배된 아편이 채웠다. 이런 신세가 되어도 아편을 끊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팔아넘기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이러한 최악의 시대가 시작될 무렵, 청나라와 교역을 시도하는 국가가 있었다. 사쓰마 번을 비롯한 일본 각지의 지방 세력들은 대한과 막부간의 협약에 반발을 드러냈다.

일본을 구성하는 한 축이라는 자존심, 이전부터 네덜란드를 통해 제한적인 교역을 실시한 경험 그리고 대한을 기준으로 삼은 상품 판매에 대한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상품을 엄선하고 네덜란드의 무역선에 비용을 지불하여 청나라와의 교역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차기 번주(藩主)의 명령을 되새기며 선장에게 다시금 당부를 하였다.

“이번 교역에서 이득을 보지 않더라도 세상을 널리 바라봐야 합니다.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 님께서 당부하시길 첫 교역에 심혈을 기울이라 하셨습니다.”

“굳이 나설 필요는 없고 저희에게 일임하여도 좋은 상품을 교역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아야지 않겠습니까? 차츰차츰 눈을 틔우고 언젠가는 대한처럼 머나먼 구주로 사람을 보내 난학이 아닌 진정한 학문을 배워야 할 겁니다.”

선장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파견한 이들은 뜻을 돌리지 않았다.

머나먼 서쪽에서 청나라의 땅이 보이자 체격이 담대한 청년이 돛대 위에서 호방하게 외쳤다.

“가로(家老 - 나이 많은 신하)님 보십시오! 저 멀리 청나라의 땅이 보입니다!”

“기치노스케(吉之助) 자네만 보이지 나는 안 보인다네!”

네덜란드 상인에게 부탁하여 배에 탑승한 사람 가운데는 사쓰마 번에서 기르는 중요한 인재들도 있었다. 올해 17세인 사이고 기치노스케가 이런 인재들 가운데 대표 격이었다.

본래 역사에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주역이자 정한론의 대표주자가 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그의 정체였다. 물론 그는 아직 호방한 청년에 불과하였다.

마침내 모두에게 육지가 보이자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상륙을 위해 뭍으로 다가가는 동안 대표 격인 가로는 다시금 조건을 확인하였다.

“복주(푸저우)에서 실시하는 첫 거래는 화란의 상인 여러분께서 정보를 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비용도 상품 거래 대금에서 납부할 것이니 가급적 이문을 챙겨주시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백 년을 이어온 인연을 잘 활용하여야지요.”

“또한 복주는 불란서를 비롯한 서역의 상인들이 여럿 머무른다 하였습니다. 이들과의 인연을 주선해 주시고 복주 내부의 문물을 확인하는 데도 도움을 주십시오.”

“다른 것은 몰라도 문물은 적잖이 실망하실 것 같습니다. 차라리 대한과 교역을 실시하는 것이 나아 보이는데요.”

선장의 마지막 만류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렇게 된 상황이니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를 존중하여 모든 문물을 안내하기로 하였다.

본래 청나라 상인들이 나가사키에 방문하여 교역을 주선하였지만 이번에는 일본 상인들이 청나라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들의 첫 감상은 찬양으로 시작되었다.

“머나먼 대륙에 당도하게 되었으니 이를 새로운 발판으로 삼으리라.”

상품 하역작업이 시작되고 일본인 가운데 중진들은 네덜란드 상인의 중개로 거래를 시작하였다. 이들의 상품을 확인하려는 중개상이 오는 사이에 젊은이들은 따로 안내를 받았다.

“이런 세상에. 불란서나 미리견(彌利堅 - 미국) 혹은 조선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놀랄 노 자로군. 일본인이 복주에 방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저희도 갑갑한 섬에만 살고 있으니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청나라 상인은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누었지만 상품을 확인하는 눈은 예리하였다. 그는 상자를 열어 이리저리 상품을 확인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상품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군요. 찻잎에 도자기에 유황과 금이라? 유황과 금 정도는 괜찮은 편인데 나머지는 평균 상품보다 미달되는 수준이군요.”

나름 엄선한 상품이 이런 평가를 받자 가로가 눈을 굴리며 옆을 바라보았다.

네덜란드 상인은 이를 확인하고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도자기는 본차이나도 아니고 일반 도자기인데 중국산이 품질이 월등합니다. 하다못해 대한에서 만든 일반 도자기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지요. 찻잎은 취향 차이가 있어서 문제군요.”

“생각보다 거래가 순탄하지가 않군요. 역시 대륙의 상인입니다.”

일본이 지금까지 교역에서 이득을 보았던 이유는 쇄국을 실시한 채 원하는 물건만 거래한 덕분이었다. 홍삼과 같은 주요 상품이 없는 한 이러한 거래에서 이득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거래의 시간 동안 네덜란드 선원들의 안내를 받은 각 번의 인재들은 복주 일대의 길거리를 확인하였다.

개중 한 젊은이는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기묘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역시 당나라(이 시기 일본은 중국을 당나라라 부른다)야. 요시와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유곽이 즐비한데? 기치노스케 너도 악!”

“우리가 배우러 왔지 즐기러 왔냐! 네가 즐기는 동안 난 새로운 문물을 배울 거다!”

자신보다 한참은 작은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찌른 사이고 다카모리는 생각보다 발달하지 않은 청나라의 상황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인재들에게 한 노인이 다가와 말하였다.

“이거 왜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셨군. 젊은 자제들인 것 같은데 젊은 나이에 즐길 일도 많지 않겠나?”

“저희는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대업을 추구할 것입니다.”

“대업을 행할 때에는 항시 날이 곤두서있으면 아니 되는 법이지. 가끔 어른을 만나 문물을 즐기고 차와 연초를 함께해야 하지 않겠는가?”

청나라 상인들은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을 일본에 판매하기로 마음을 먹고 젊은이들을 먼저 포섭하기로 하였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청년들은 주점으로 향하였다.

“우선 이 작품은 두보의…….”

접대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차를 마시며 맛을 분석하고 중국에 판매하기 위한 최적의 차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한 이들에게 곰방대가 전해졌다.

“이 연초는 특별한 연초라네. 한 모금을 마시면 시름이 사라지고 세 모금을 마시면 마음이 맑아지며 열 모금을 마시면 세상에 행복한 일이 가득하지.”

“어르신이 대접해 주신 것이니 감사하게 피우겠습니다.”

은과 금을 섞어 세심하게 가공된 곰방대에 담뱃잎과 검은 가루가 채워졌다. 불이 붙자 사이고 다카모리를 시작으로 모두가 연기를 들여 마시고 약 기운에 취하여 극찬을 하였다.

“마음이 맑아지지는 않고 혼탁해지는데?”

“그런데 시름이 사라지기는 하잖아? 세상에 이런 담배가 있다고?”

“이건 어디선가 경험해 본 기분인데 뭐였지?”

순식간에 곰방대를 비운 청년들은 자리에 널브러져 허우적거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노인은 새로운 소득이 생겨날 것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편을 체험한 젊은이가 생겨났으니 이제 일본에도 아편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리라. 설령 사들이지 않아도 이미 물꼬를 틔웠으니 스스로 나아가 아편을 판매하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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