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64화 (164/345)

164화

15장 3화 미멕전쟁

마침내 텍사스 공화국으로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미군은 총 8개 보병 연대, 4개 포병 연대 그리고 3개 기병 연대로 첫 군대를 편성하였고 여기에 대한제국의 군대가 포함되었다.

또한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루이지애나 주와 인근 준주에서 자원봉사자 개념의 민병대가 몰려왔다.

어재연은 진군하는 와중에 이들의 행렬을 만나고 의병이라 생각하였다.

“저들이 미국의 의병인가? 가만히 보니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 있군.”

“의병? 저 멍청이들 말인가?”

셔먼이 퉁명스럽게 답하자 어재연은 이들의 면모를 상세히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제대로 된 옷과 최소 두 정 이상의 총을 지참하였으니 자기 보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연령대도 다양하였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들려오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니 어재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멕시코 놈들은 더러운 족속이니 모조리 죽이고 겁탈하며 약탈하자?”

“내가 멍청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군인으로서 나라에 충성하고 전쟁을 적은 피해로 신속하게 승전으로 이끌 의무가 있어. 적을 잔혹하게 짓밟더라도 이를 꼭 완수해야 하지.”

평상시에는 멕시코 놈들을 때려잡자고 훈련에 열을 올린 셔먼은 다시금 민병대를 흘겨보았다. 그러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전쟁은 잔악한 행위야.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좋은 행위이지.”

“자네 평상시와 말이 다른데? 생각해 보니 명예니 정의니 하는 말이 없기는 했는데.”

“당연한 말이 아닌가? 전쟁은 지옥으로 뛰어들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악마들을 찢고 죽이는 행위야. 그러니 잔인하게 적을 죽여서 더 빨리 전쟁을 끝내고 지옥을 탈출해야지.”

반대편 행렬의 민병대들은 서로 호기롭게 구호를 외치며 멕시코 놈들을 찢어 죽이자고 고함을 쳤다.

아예 바닥에 침을 뱉은 셔먼은 허리춤에서 닥터 코크를 꺼내 들이켜고 말하였다.

“저놈들은 전쟁이 축제이며 영광을 거머쥘 수 있다 생각하겠지. 벗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동료가 피를 토하며 죽는 광경을 보았다면 저렇게 피와 복수를 외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청나라 팔기군과 비슷한데. 실전을 치른 적도 없이 백성을 약탈이나 하였지.”

“그건 너무 심한 말 아닌가? 민병대의 기강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도 정도가 있어. 아편에 취해서 성벽에 똥을 바르는 놈들처럼 인간 이하의 돼지들은 아니지.”

청나라 군대의 현실은 이미 전 세계에 퍼져 있으니 셔먼도 정색을 하며 답하였다. 닥터 코크를 모조리 비워버린 셔먼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했다.

“아무려면 좋으니 난 저런 놈들이 끔찍함을 외면하고 약탈과 학살을 저지르는 행위가 역겨워. 그러니 우리 소대를 동원하여 새 전술을 이용해 전쟁을 더욱 빨리 끝낼 생각이야.”

“나 또한 동의하네. 전쟁은 신속히 승리하고 피해는 적을수록 좋지. 더군다나 적국이라 하여도 민간인을 함부로 살해하면 안 되는 법이지.”

“온순한 양처럼 할 일을 한다면 나도 민간인을 살해할 생각은 없네. 그러나 선을 넘으면 연령도, 부유함도, 성별도 그리고 인종도 가리지 않고 고통을 맛봐야 하지만.”

할 말을 마친 셔먼은 민병대의 대화를 듣기 싫었는지 급속 행군 명령을 내렸다.

미국으로 건너와 사귄 친구의 또 다른 일면을 알게 된 어재연은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이로군. 저 친구도 공명심과 명예욕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 심취하지 않고 군인의 의무를 다하려 노력하니 대성할 인물이야.”

셔먼이 이름을 널리 떨치려는 이유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언제나 백성출신인 병사의 피가 흐르고 높으신 양반들은 후방에서 병사들을 희생시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휘관을 노리는 전문 병과가 생겨난다면 생겨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셔먼과 자신의 이름이 퍼질수록 더 많은 지휘관은 전쟁을 기피하며 몸을 사리리라.

높으신 양반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어재연의 생각은 자신들을 지나쳐 가는 말을 탄 소년들의 군가로 인하여 끊겼다.

“나는 친구들과 캠프로 내려갔지!”

“재커리 장군님을 따라서!”

“거기에는 우리 같은 소년들이 넘쳐나지!”

“멕시코 놈들을 쏴죽일 총을 가진 소년들이!”

얼핏 보아도 14세 정도의 소년들이 총을 등에 짊어지고 적당히 개사한 양키 두들(Yankee Doodle)을 부르며 후방으로 향하였다.

이들이 민병대로 합류하자 환호성이 들려왔고 어재연의 표정이 구겨졌다. 미국이 다 이런 몰골인지 궁금하여 토머스에게 물어보았다.

“토머스, 저런 애송이들을 보면서 뭔 생각이 드나?”

“멋진데요? 말 타는 자세를 보니까 저보다 어린아이들이지만 모두 배달부 같아요.”

“배달부? 전령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파발에 속하는 이들인가?”

“아니요! 대평원을 가로지르면서 총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편지와 각종 물자를 배달하는 사람들이에요. 고아는 봉급을 두 배로 지불해서 너 나 할 것 없이 배달부를 하려 해요!”

세상이 드넓다 하지만 이런 직업을 본 적이 없었다. 고아에게 봉급을 두 배로 지불한다는 말은 황무지에서 죽더라도 부모에게 시신을 인수해 줄 필요가 없어서이리라.

각종 맹수와 험악한 자연환경 그리고 도적과 적대적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습격을 감안하면 얼마나 죽어 나갈지 몰랐다.

어재연은 아무려면 좋으니 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일을 하기를 원하며 계속 나아갔다.

* * *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은 철저히 계획적으로 벌어졌다. 텍사스에서 국경 분쟁이 일어나고 10일이 지나기도 전에 미군이 휴스턴과 샌 안토니오를 경유하여 진군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멕시코는 텍사스 요새를 기습하였다. 여기서 멕시코 군을 격퇴한 미군은 지휘관 재커리 테일러의 주도하에 팔로 알로 전투, 레시카 데 라 팔마 전투로 기세를 올렸다.

대규모 교전이 일어날 때마다 미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멕시코의 지휘관으로 부임하게 된 산타 안나는 미군의 기세를 무너트리기 위하여 전선을 뒤엉키게 만들었다.

“결국 개판이 따로 없게 되었다니까.”

셔먼은 소대 전술 개념을 수립하기 위해 전역 지도를 가져와 탁자 위에 놓았다. 각 연대가 진군하며 멕시코의 주력 군대를 격파하였지만 멕시코는 각 거점을 사수하며 버텨냈다.

“군대가 멕시코 영토를 넘어선 것은 좋은데 그 이후가 문제로군.”

“재연 자네의 말이 맞아. 이대로라면 민병대에 보병 그리고 기병이 뒤엉킬 것이고 각 거점을 포병을 중심으로 타격하겠지.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할까.”

“민병대가 전선에 나선다고 하였으니 놈들을 미끼로 삼으면 어떨까 싶은데.”

어재연은 민병대라는 족속들이 이미 약탈에 심취하였고 심지어 텍사스 일대의 마을조차 약탈하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

셔먼은 잠시 생각하다 손뼉을 치며 답하였다.

“옳은 말이야. 우리의 전술은 각 민병대의 보급품 지급 및 후방 호위로 정하지.”

어재연의 예상대로 민병대는 약탈과 폭력에 심취하였다. 이들은 남하하는 전선을 따라 이동하며 군대의 손길을 피한, 정확히는 전략적 가치가 없어 방치한 멕시코인 마을을 습격하였다.

이들은 군대를 상대하지 않고 멕시코 사람들을 약탈할 생각만 품었다.

경계를 서고 있던 청년이 날아온 총알에 맞고 망루 아래로 떨어지자 마을 이장이 종을 치며 경고를 보냈다.

“양키들이 몰려온다! 총을 들어라!”

“양키는 믿을 수가 없다니까! 얼마 전에는 우리에게 안심하라고 했으면서!”

전선을 담당하는 재커리 테일러 소장은 휘하 부대에 명령을 하달하여 민간인에 대한 중립적 행동을 취하라 하였다. 이는 쓸데없는 군사력을 소모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다.

전령을 보내 적대 행위를 금지하며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하되 보급품을 제값에 사들이겠다고 하였다.

이를 믿은 대부분의 멕시코 장정들이 군대에 합류하였으나 민병대는 이 명령을 깔끔히 무시하였다.

“여보! 총 가져왔어요!”

“아버지! 여기 권총이요!”

당연히 마을의 장정이 부족하여 노인과 아이들이 총을 들고 맞서 싸우려 하였다. 이장은 아내가 건네준 머스킷을 받고 장전하면서 지시를 하달하였다.

“고마워! 당신 어서 가서 신호용 포를 쏘라고! 마을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려!”

예순 살이 다 된 이장은 마을 외곽의 목책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상대는 목책을 향해 머스킷과 권총을 난사하였다.

구원을 요청하는 포가 발사되었으나 지원군이 올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이미 전선이 뒤엉키고 사방으로 미군과 멕시코 군대가 얽혀 있는 상황이다.

총성이 사방으로 빗발치고 목책에서 대응사격을 하던 마을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민병대라 자처하는 약탈자들도 몇 명이 죽어 나갔지만 사기가 더욱 올라 악을 썼다.

-저 마을에 민간인은 없다! 군대가 있으니 멕시코군을 모조리 죽여라!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모조리 쏴 죽여라!

-화염병 나가신다!

위스키에 양말을 쑤셔 박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급조 화염병이 목책으로 날아들었다. 젖은 천을 덮어 불을 껐으나 그 과정에서 마을에 몇 없는 장정들이 총에 맞아 죽어 나갔다.

“양키 새끼들을 죽여! 모두 총을 들고 응사해라!”

이장은 자신의 옆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예순 살이 가까워진 자신의 아내가 머스킷을 쏘고 있었다.

“여보! 어서 도망칠 준비를 하라니까!”

“말을 타고 있는 놈들을 어떻게 따돌려요! 비참하게 죽을 바에는 그냥 여기서 죽고 말지!”

마을에 남은 아녀자들이 죽은 이들의 총을 받고 쏘아댔다. 한 명의 민병대가 배에 총을 맞고 고꾸라지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는 더욱 악을 쓰며 외쳤다.

-멕시코 놈들이 여자도 군대에 징집했다! 이교도를 모조리 죽여서 주님께 올바른 일을 하자!

“주님께 올바른 일? 이교도? 내가 천주교 신자인데 양키들 말 모를 줄 알아!”

“이장님! 이제 어떻게 해요! 양키들이 너무 많아요!”

이장은 전황을 살펴보며 반사적으로 머스킷을 장전하였다. 이 마을은 60가구가 살고 있으며 병력이라고는 노약자와 아녀자를 포함해 60명, 이제는 40명 아래로 줄어들었다.

반면 미국 민병대는 얼핏 보아도 100명을 넘어섰으며 후방에 있던 놈들까지 합류하여 수가 늘어났다.

불탄 목책을 넘어 들어온 한 무리의 민병대를 보며 이장은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마을 회관으로 후퇴한다! 당장 후퇴해서…….”

“용기병들이 옵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와 함께 상황이 반전되었다. 마을로 밀고 들어오려던 민병대는 급변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였고 멕시코 용기병이 이 틈을 노려 달려들었다.

“발렌시아 중위님! 놈들이 허를 찔렸습니다!”

“양키들을 죽여! 감히 군대가 아닌 민간인을 노려?”

훈련받은 군대라면 정상적으로 방진을 만들거나 시가지 내부에서 난전을 벌이면서 용기병을 격퇴하고 퇴각하였으리라.

그러나 민병대는 이러한 훈련을 받은 이들이 열 명도 안 되었다.

“멍청한 새끼들아! 튀지 마라! 튀지 말고 방진을 형성해! 놈들을 밀어내!”

“방진이 뭐에요 아저씨! 저는 말을 탔는데 방진을 어떻게 만들어요!”

“도망치지 마! 도망치면 따라잡혀 죽는다니까!”

배달부 출신의 소년은 어떻게든 외곽으로 도망치려다가 용기병에게 추적당해 총을 맞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살충제를 맞은 개미 떼처럼 민병대는 용기병에게 무너져 내렸다.

머스킷 사격을 맞아 고꾸라지는 용기병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일부에 불과하였다. 대부분의 민병대는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사방에서 총을 맞아 죽고 포로로 잡혔다.

“멍청한 양키 놈들. 네놈들은 대체 뭔 놈들이라 마을을 습격했나?”

지휘관인 발렌시아 중위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지휘관을 찾았다. 이번 습격을 계획한 민병대 지휘관은 양팔이 뒤로 포박당한 상황에서도 호기롭게 대꾸했다.

“고추나 씹어 먹는 놈들이 지금 뭔 소. 으아아아아악!”

발렌시아는 상대가 제대로 된 관등성명도 대지 못하는 도둑 떼임을 알아차리고 흥미를 잃어버렸다. 권총으로 무릎을 쏘아버린 그는 권총을 재장전하면서 명령을 하달하였다.

“사로잡힌 놈들은 마을 주민들이 알아서 처분하게 하고 잔당을 추적한다.”

마을 주민들이 괭이와 칼을 들고 달려들자 민병대가 자비를 구걸하였다. 이들의 비명이 평원에 퍼지기를 기대한 용기병들은 발렌시아의 지휘에 따라 적을 추격하려 하였다.

“아무래도 동북쪽 저쪽 길을 통해서 온 것 같군. 다들 보이…….”

어디선가 특이한 총성이 들려오고 거의 같은 순간에 발렌시아의 몸이 휘청거리며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가슴의 정중앙이 관통된 발렌시아는 잠시 허우적거리다 숨을 거두었다.

“발렌시아 중위님이 즉사하셨다! 놈들의 잔당이 있다!”

“총성과 피격까지의 차이가 거의 없어! 놈들은 근처에 있는 거야!”

이 시대 머스킷이나 라이플의 탄환 속도는 음속의 2/3 정도였다. 훈련된 군인이라면 저격수를 상대하기 위해 총성과 피격 순간의 시간차를 계산하기 마련이었다.

“놈들은 이백 야드 이내에 있다!”

반면 진식 소총은 음속에 가까운 탄환 속도를 자랑하였다. 예상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를 지목한 소위는 총을 머리 위로 발사하며 명령을 하달했다.

“나 페르난데스 소위가 지시를 하달한다. 이백 야드 이내의 엄폐가 가능한 곳을 찾아라!”

“화약 연기를 찾아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못 찾을 리가 없어!”

경험이 많은 소위들을 중심으로 저격수를 찾아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조만간 저격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달리 다음 총성이 연이어 들려오고 사람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페르난데스 소위님! 소위님!”

“난 가망이 없어……. 다음 지휘는 마르틴에게.”

“마르틴 소위님은 머리에 흉탄을 맞으셨습니다! 가르시아 소위님도요!”

배에서 피와 내장조각이 솟구쳐 나오는 모습을 확인한 페르난데스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총성이 들려올 때마다 비명과 사람이 말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기병들은 사방을 허우적거렸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피격과 오차가 별로 없는 총성을 들으며 적이 지척에 있다 생각하였다.

흑색화약 특유의 연기도 보이지 않았으며 시야가 탁 트여 있으나 총을 쏘고 장전하는 놈들도 보이지 않았다.

페르난데스는 점차 식어가는 몸으로 답을 찾았다. 대대 수준의 병력이 저격수를 먼저 파병하여 재장전을 하지 않고 숫자로 밀어붙인다는 애매한 답이었다.

“최소 대대 단위의 기습이다. 퇴각…….”

“알겠습니다! 퇴각하겠습니다!”

병사가 이미 희망이 없는 자신의 몸을 짊어지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 위에 올랐다. 상관을 어떻게든 후방으로 후송하려는 기특한 모습 같지만 인간 방패로 삼으려는 의도가 보였다.

퇴각할 무렵, 거의 일흔 명에 달하는 용기병 중대가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이윽고 600야드 거리의 수풀 속에서 셔먼과 어재연의 소대가 걸어 나와 상황을 보고하였다.

“적 전원 퇴각! 아군 피해 없음! 적 피해 칠십 명 이상!”

“훌륭하군. 이제 전장을 수습한다.”

마을 주민들은 용기병이 퇴각하자 미국 민병대에 대한 처형을 멈추고 마을 안으로 꽁꽁 숨어버렸다.

셔먼은 느긋하게 말을 타고 다가와 민병대의 몰골을 살펴보았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어떤 무기로 저희를 구원하셨는지요.”

“그걸 알 필요가 있나? 군인이라면 무기에 대한 제원을 알려주지만 너희는 도적 떼잖아?”

셔먼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경멸하듯이 민병대를 바라보았다. 같은 미국인이기에 구해주기는 하지만 다 죽더라도 애석한 마음이 들지 않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어재연 또한 역겨움을 감추지 않고 총검으로 민병대의 밧줄을 대충 끊어주었다.

오금에 총을 맞아 피를 질질 흘리는 지휘관은 어재연에게 간곡하게 요청을 하였다.

“대한제국 군대군요! 당장 마을을 습격해 멕시코 놈들을 다 죽이십시오! 놈들이 우리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멕시코의 병력을 상대하라 하였지 민간인을 약탈하고 도륙하는 행위에 동참하라 하지 않았는데.”

셔먼도 굳이 마을을 공격해 약탈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멕시코의 마을에서는 자기 방위를 위해 총을 쏘았을 뿐이며 이미 적대 행위를 멈추고 침묵하고 있었다.

당연히 어재연도 셔먼도 이들에게 보복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민병대 지휘관은 바닥을 버르적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야! 지금 이 꼴 안 보이냐! 구크(Gook – 동양인 비하)놈아! 사람이 죽었는데!”

“그러게. 사방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군. 여기에 참 신기하게 시체가 말을 하네.”

잠시 주변을 살펴본 어재연은 리볼버를 꺼내 탄약을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민병대 지휘관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윌리엄! 이 친구 부상이 너무 심해서 내가 총으로 편히 보내주려 하는데 괜찮나?”

“괜찮고말고. 내가 할까?”

“내가 하겠네.”

민병대 지휘관이 바닥을 기어가며 도망치려 하였지만 어재연은 바퀴벌레를 잡듯이 총을 쏘았다. 등짝에 세 발을 쏘아 상대를 확실히 죽인 어재연은 남은 민병대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네놈들이 싸지른 똥을 치워서 목숨을 부지하면 되었지 강도짓을 대신 하라고? 혹시 말하는 시체 더 있나?”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이상의 이견은 없었다. 본진으로 돌아가 공식 항의를 요청한 민병대가 있었지만 항명과 민간인 약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금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셔먼과 어재연의 전술은 약탈을 실시하는 민병대의 후방을 호위하는 척 적의 소규모 부대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하였다.

이 소대의 악명은 두 달 만에 미국-멕시코 전쟁의 동부전선에서 전장의 망령이라 불리게 되었다. 민병대를 제물로 삼아 멕시코 군대를 무참히 격멸하는 망령으로.

#작가의 말

미국-멕시코 전쟁은 앞으로 1년 동안 이어집니다. 계속 다른 나라 전쟁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도 애매하군요.

시간이 흘러갔으니 다시 대한제국의 상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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