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71화 (171/345)

171화

15장 9화 아편 반란(2)

쿨리들은 잠도 잊은 채 진군하였다. 새벽녘에 공격당한 인근의 토목공사장은 초병 역할을 수행하는 베트남군의 방임으로 기습 공격에 노출되었다.

베트남군은 막대한 실책을 저질렀음에도 전투가 시작된 직후 도주하였다. 이후 외부 초소를 기점으로 하여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공사현장에 남은 군대는 기껏해야 30명이 안 되는 프랑스 외인부대 병사가 전부였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항전하였으나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호응에 몰살당했다.

“프랑스 만세! 루이필리프 전하 만세!”

“다 때려 죽여라! 포로는 필요 없다!”

마지막까지 남은 일곱 명의 외인부대 병사들은 항복을 불사하고 총검을 앞세워 돌격하였다. 쿨리들은 이 돌진을 가볍게 격퇴하고 외인부대의 시체를 갈기갈기 찢고 강물에 버렸다.

또 다시 승리를 거둔 쿨리들은 이번 전투에서 활약한 젊은 청년을 칭송하며 장수로 삼았다.

지휘관의 자리에 오른 젊은 청년 소조귀(蕭朝貴)는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올렸다.

“다들 무기를 들어라! 우리가 잃을 것은 없으며 얻을 것은 아편이다!”

“우리가 얻을 것은 아편이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첫 공사현장보다 조금 적은 이천여 명의 쿨리들이 반군에 합류하였다. 이미 한인 사업가들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반란의 기세가 치솟아 올랐다. 무기가 부족하니 총검을 대나무 끝에 달아서 죽창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소조귀는 다른 이들의 조언을 듣고 여러 지시를 내리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였다.

“필요한 물자는 모두 챙겨라! 다음 공사현장을 해방시킨다!”

“소 장군! 여기 조선 관리자들이 있는데 이놈들은 어떻게 합니까!”

몰살당한 프랑스군이 보호하던 사람들은 동맹국인 대한제국의 토목기술자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두들겨 맞아 포박을 당한 채 살기등등한 눈빛에 오줌을 지리기까지 하였다.

“네놈들이 지금까지 거드럭거리며 우리를 멋대로 부렸지! 모조리 죽여라!”

소조귀는 프랑스 외인부대의 유품인 장검을 들고 기술자들을 참수하려 하였다. 그러한 소조귀의 분노를 다른 쿨리가 나서서 몸으로 막으며 말하였다.

“죽이지 마시오! 조선은 우리 대청의 번국이 아니오. 이들을 부려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쿨리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젊은 편이며 베트남에 오고 얼마 안 된 적극적 반란 분자, 다른 부류는 나이가 많은 편이며 아편을 거의 다 끊은 소극적 협조자였다.

대한제국 기술자들은 머리를 굴려 이 소극적 협조자들의 편을 들기로 하였다.

나름 기술자의 대표를 자처하는 사람은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저희를 살려주시면 대한과 협상을…….”

“이놈은 미쳤구나! 죽여라!”

대한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소조귀에게 상투를 붙잡힌 기술자는 애처롭게 목숨을 구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리들은 기술자를 마구 짓밟아 말 그대로 뭉개 버렸다.

“협상이 아니다! 번국인 조선이 응당 해야 할 의무이다! 더 미친놈이 있더냐!”

기술자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친 짓거리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이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이 미친 행동에 따라야 하였다.

이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패한 베트남군이 도주하고 외인부대의 병사들은 처절한 사투 끝에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공격당해 몰살당하였다. 이들은 각지의 무기고와 공사 현장을 공략하며 세를 불려 나갔다.

결국 4월 12일경, 외인부대 2개 중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투를 준비하였다.

“베트남 이 머저리 새끼들아! 네놈들이 군대냐!”

“여기 있는 대한제국 사람들도 지켜야지!”

베트남 북부는 5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4월 말부터 대기가 불안정해지며 폭우를 쏟아붓는 경우가 있었다. 하필 이때 내린 급작스러운 폭우 속에서 야전을 실시하게 되었다.

20배가 넘는 적군이 밀려왔다. 여기에 화약병기를 사용할 수 없는 불리함 속에서 외인부대는 처절히 항전하였으나 가까스로 전령 두 명만 탈출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 외인부대 병사가 삽날에 두들겨 맞아 빗물 속에 피를 쏟아낼 무렵. 수도 후에(城舖)와 북부 수도 겸 태자가 정무를 처리하는 하노이에 전보를 통해 소식이 전달되었다.

* * *

하노이에는 이미 음울한 기운이 맴돌았다. 상인들은 쉴 새 없이 곡식과 고무 그리고 팜유를 사들였으며 베트남 병사들은 나름 삼엄한 경계를 취하고 있었다.

베트남 조정은 반란을 단순한 소요사태라 규정하였다. 여기에 현장의 부패한 군관들이 ‘곧 제압할 수 있음’이라는 보고를 올려서 대처가 더욱 늦어지기까지 하였다.

이후 마지막으로 탈출한 외인부대 장교가 보고를 올리며 진실이 드러났다.

장 바티스트 세실 제독은 군사 고문관 자격을 앞세워 상황을 보고하였다.

“삼 일 전인 4월 11일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첫날 제6 공구와 제8 공구가 함락당하였고 4월 12일 1, 3, 4 공구가 함락당하였습니다…….”

베트남 북부를 나타낸 지도에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압정이 끝없이 박혀나갔다. 외인부대를 나타내는 파란색 압정과 베트남군을 나타낸 초록색 압정은 이 검은 물결에 휩쓸렸다.

“현재 4월 15일, 반란군의 추정 총원은 이만여 명, 이에 부수적으로 협력하거나 중립적 태도를 취한 쿨리들은 삼만여 명에 달합니다. 또한 반란군은 각 농장을 기습하였습니다.”

각지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보내온 전신은 [수천여 명의 적이 공세를 실시함, 지원 요청]이라는 단문이 전달되고 연락이 끊겼다.

이 전신을 통하여 적의 추정 진군 경로까지 드러났다. 나폴레옹 3세는 군사학적 지식이 궤멸적인 수준이라 장 세실에게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하였다.

“외인부대의 상황은 어떻소? 이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요?”

“모두 고립된 상태로 격멸당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뭉쳐 있다면 두 개 대대로 총원 칠백 명 정도를 편성할 수 있으나 서른 곳의 농장에 소대 단위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럼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농장이 하루를 버티고 함락당한다고 생각하면…… 진군까지 포함해 보름 정도입니다.”

플랜테이션 농장 수비를 위해 잘게 쪼개진 프랑스군은 이런 거대한 반란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나폴레옹 3세는 절박한 눈빛으로 태자 폭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베트남의 황제께서 군사를 파병하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바마마께서 조만간 논의를 하고 전신을 보내오실 거요. 염려하지 마시오.”

착잡하기는 폭티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친 소치제의 은혜로 옛 수도 하노이를 관리하는데 대규모 반란이 발생하였다.

폭티가 알기로 쿨리들은 베트남의 노동자보다 대접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란이 발생하여 이 모든 사태가 프랑스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아바마마의 전신이 오기 전에 하나 물어나 봅시다. 샤를, 대체 뭘 잘못하였기에 저들이 반란을 저지른 거요? 혹여나 프랑스에서 사람을 죽였소? 아니면 구타라도 하였소?”

“아편을 공급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죄송한 일이로군요.”

“그러니까 오로지 아편을 공급하지 않아서 반란을 일으켰다?”

“구호가 ‘우리에게 아편을 달라.’인데 더 할 말이 있는지요. 우리의 잘못이 뭡니까?”

나폴레옹 3세는 분노를 눌러 참고 은근슬쩍 쏘아붙였다. 외인부대 생존자의 보고를 들어보니 베트남군이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다 보고하였다.

최악의 반란군을 최악의 정부군이 상대하여 기세를 올려버린 꼴이다. 폭티는 나폴레옹 3세의 표정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이며 변명하듯 말하였다.

“아바마마께 청원을 하여 내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놈들을 진압하겠소. 멋대로 도망치는 놈들은 모조리 처형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제발 그러면 좋겠군요.”

군관이 귓속말을 하자 폭티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치제의 전신을 받으려 별실로 향하였다.

잠시 뒤 별실에서 돌아온 폭티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하였다.

“군사적 행동은 당분간 실시할 수 없을 것 같소.”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반군이 저렇게 날뛰는데 군사를 다룰 수 없다니!”

나폴레옹 3세는 예의범절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폭티의 멱살을 잡으려 하였다. 베트남 금군이 이를 제지하였으나 작달막한 체격에도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콧김을 뿜으며 고함을 쳤다.

“아무것도 못 하는 나라에서 대체 뭘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폭티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폴레옹 3세와 그를 제지한 군관 그리고 주변 제장(諸將)들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손짓을 하며 명령을 내렸다.

“나와 샤를만 남기고 모두 이 방에서 나가시오.”

“태자전하! 아니 되옵니다!”

“당장 나가시오!”

폭티의 명에 따라 사람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고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아직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 한 나폴레옹 3세에게 폭티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바마마께서 반란 소식을 듣고 격노하시다 혼절하시고 의식을 잃으셨네.”

“지금 뭐라 하였습니까? 황제께서 쓰러지셨다니요?”

“절대 발설하지 말게. 마지막으로 각지의 병사를 소집하라는 명을 내리시고 하루가 지나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계시네.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을지.”

소치제가 아예 죽었다면 나은 형편인데 어중간한 명령을 내린 직후 쓰러져 버렸다. 폭티가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서는 순간 황명을 거부하는 꼴이 되었다.

억지로 병사를 동원해도 부패한 베트남군의 상황을 고려하면 진군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각지의 장수들은 싸움을 회피할 명분으로 황명을 들먹이며 정면으로 저항하리라.

나폴레옹 3세는 핏기가 싹 가신 창백한 얼굴로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 하였다. 그는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불운한 일이 참 많지요. 큰아버지께서도 에마뉘엘 그루시 원수를 부하의 실수로 전투에 투입하지 못하였으니까요.”

폭티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나폴레옹 3세는 이 모습을 보고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와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의 군사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프랑스의 대책 회의가 시작되었다. 장 세실을 중심으로 재개된 회의의 주제는 탈출이었다.

“이제는 손을 쓸 방도가 없습니다. 베트남이 무슨 이유에서 군사적 지원을 거부하였는지 몰라도 반란군이 모든 플랜테이션 농장을 불태운 다음에는 우리를 노릴 겁니다.”

장 세실은 체계적인 탈출 계획을 세워두었다. 하노이 인근에 거주하는 이천여 명의 프랑스 사람들을 배에 태워 임시로 남경으로 보내는 것이 계획의 골조였다.

“이상으로 우리 프랑스인 모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벵골의 영국군과 대한제국군에는 소식을 전달했나? 이들이 구원을 올 가능성은?”

“최소한 이십 일이 넘게 걸립니다. 오늘 새벽 전령을 보냈는데 소식이 전달되는데 육 일, 병사를 소집하는데 오 일 그리고 진군까지 감안하면 총 이십 일입니다.”

장 세실의 예측이 틀리지 않다면 4월 30일경, 모든 플랜테이션 농장이 불타고 하노이가 공격당할 것이다. 반면 지원군이 아무리 빨리 도착하여도 5월 5일이 한계이다.

나폴레옹 3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장 세실에게 다시 질문을 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제독 휘하의 해병대와 예비 병사를 모두 전선에 투입하면 어떻게 될 것 같소? 희망이 있지 않겠소?”

“숫자가 너무나 적습니다. 해병대를 모두 긁어모아 보았자 팔백 명, 실질적으로 전투에 참가할 병력은 육백 명 정도입니다. 최소한 이천 명은 되어야 승산이 있습니다.”

“이천 명이라?”

“그 정도는 되어야 화력을 앞세워 적의 선발대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이후 기세가 주춤한 반란군을 밀어내고 각지의 외인부대를 구출하여 군세를 불려 나가야 합니다.”

장 세실은 아예 딱 잡아떼면 나폴레옹 3세가 억지를 부릴 수 있다 판단하여 차분히 설명하였다.

참으로 절망적인 조건이지만 나폴레옹 3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천 명을 만들 수 있지! 당장 하노이의 프랑스인을 소집해 주시지요.”

“네? 현지 징병이라니요! 지금 하노이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마흔이 넘은 사업가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지요. 제독님께 간절히 청하는 바입니다!”

장 세실 입장에서는 사람을 소집해 사태를 설명하고 피난작업을 시작하려던 차였다. 어차피 소집할 사람들이니 나폴레옹 3세에게 별다른 기대도 안 하고 소집 명령을 내렸다.

이 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던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나폴레옹의 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경례를 하면서 보고를 올렸다.

“황제 폐하의 조카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보고를 올립니다! 워털루 전투에 참가하였던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병사들과 함께 전장에 나서겠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이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평생 감옥에 갇힐 신세였다. 그는 루이필리프의 명령으로 사면된 것도 아니며 머나먼 베트남에 유배된 신세이다.

당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였으나 루이필리프는 전혀 웃질 않았다. 플랜테이션 농장을 잘 경영하면 사면이요, 그렇지 못하면 다시 감옥에 수감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이 조카가 능력이 부족하여 잃을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에게 황제 폐하의 군재를 내려주시어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게 해주십시오!”

보고를 마친 나폴레옹 3세는 다시 경례를 올리고 몸을 돌렸다.

반란을 진압하면 본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보다 못한 신세가 되리라.

아예 군복으로 갈아입은 나폴레옹 3세는 대사관 입구로 나아가 공터를 바라보았다. 단상 위에서 장 세실이 한창 사람들을 통솔하는 와중에 그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나폴레옹 3세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가장 앞에 선 유력자들은 50대 초반이요, 그 뒤에는 40대 후반부터 이들의 수행원인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사님께서 뭐라도 말이라도 해 보십시오. 지금 어떤 사태가 벌어진 겁니까?”

“정말 플랜테이션 농장이 위기에 처했습니까? 베트남 군대는 대체 뭘 합니까?”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아.”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 혁명기의 국가(國歌)이며 나폴레옹 집권 시기에는 국가가 아니지만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당연히 이 노래는 부르봉 복고 이후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금지곡에서 해금되었으나 국가 자리를 되찾지는 못하였다. 나폴레옹 3세는 이 자리에 모인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을 되찾기 위해 라 마르세예즈를 더욱 크게 불렀다.

“들리는가! 저 들판의 흉포한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놈들이 우리의 지척까지 와서 우리의 아들과 아내의 목을 베려 한다!

사람들은 어느새 라 마르세예즈를 흥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나폴레옹 3세는 미리 준비해 둔 기병도를 허리춤에서 뽑아 칼날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후렴을 제창하였다.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전진하라! 전진하라!

-전진하자! 전진하자!

“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자!”

라 마르세예즈를 흥얼거리던 사람들은 분위기에 열광하였다. 이 사태에서 프랑스의 잘못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아편 중독자들이 난동을 부린 것이었다.

자신들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설파하였음에도 이를 내쳐버리고 폭력으로 화답하였다.

분위기가 계속 치솟자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애마(愛馬)에 올라서 선언하였다.

“내가 선두에 서겠소! 나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선두에 서서 우리의 은혜를 저버린 아편 중독자들을 격멸하겠소!”

대사관 문이 열리고 멍한 표정의 장 세실이 나폴레옹 3세를 배웅하였다. 본래 피난을 위해 소집한 사업가들은 이 열광적인 분위기에 도취하여 한 명의 병사로 탈바꿈하였다.

“나폴레옹의 이름 아래에 모여라! 새로운 나폴레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놈들이 우리 프랑스의 시민! 외인부대 병사를 갈기갈기 찢어 강물에 흘려보냈다!”

“라 마르세예즈를 기억하라! 놈들을 찔러 죽이고 그 피를 플랜테이션 농장의 비료로 삼자!”

마흐숑(Marchons – 진군하라)이라 구호를 외치는 프랑스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나폴레옹 휘하의 병사로 전장을 뛰어다닌 노인과 그들의 증언을 들은 자식 세대였다.

이들은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거나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단 하루의 훈련을 이수하였다.

여기에 장 세실이 동원한 해병대를 합쳐 총원 이천 명의 군세가 완성되었다.

#작가의 말

1847년 베트남에서 일어난 반란은 차마 반란이라 부를 수 없는 끔찍한 사태였다. 오로지 아편을 탐하는 짐승들은 인류 이하의 추악한 행위를 반복하였다.

본 저서를 서술하며 수많은 자료를 탐독한바. 당시의 증언과 전개과정을 통하여 아편 중독자는 어떠한 가치도 없는 인류의 해악임을 다시금 저술하는 바이다.

당시 프랑스의 군대가 과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사람에게는 과격한 행위이나 상대방은 사람이 아닌 해충에 불과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

-카를 마르크스, [아편은 종교보다 해롭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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