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78화 (178/345)

178화

16장 5화 이민(1)

해가 바뀌어 1848년 1월이 되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유럽에 대혁명이 일어나 이탈리아, 프랑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버렸다.

반면 이 역사에서는 혁명의 연쇄 물결이 중간에 끊겨 버렸다. 정확히는 미리 홍수가 나서 볼 장 다 본 상황이다. 프랑스에서 전해온 1847년 마지막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루이필리프 민중의 뜻을 받아들여 선양 결정, 새 왕은 내년 3월 세자 페르디낭이 즉위]

“민중의 뜻이고 나발이고 트집 한 번 잡히니까 바로 왕을 갈아치워 버리는군.”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프랑스 사람들 성격 한번 괴팍하더군요.”

내 말에 한정교가 맞장구를 쳤다. 베트남의 쿨리 반란 사건으로 루이필리프는 정말 억울하게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외부가 쓰는 방의 구석에 정리된 신문을 확인하였다. 지난 석 달 동안 보내온 신문에는 프랑스인의 분노가 어떤 방식으로 증폭되었는지 그 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청나라, 루이필리프 전하가 제안한 국서에 어처구니없는 답을 하였다.]

[프랑스의 해군은 뭘 하는가? 루이필리프의 소극적 대처가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루이필리프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군사적 압박이었다. 각지의 개항지를 통해 병력을 주둔시켜 도광제를 위협하면 꼬리를 말고 사죄문서라도 보냈으리라.

이 행동을 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영국의 견제요, 두 번째는 본국 귀환 명령을 거부하고 베트남의 피해를 복구하는 나폴레옹 3세였다.

파견 병력은 중간 기항지인 베트남에서 휴식을 취하고 청나라로 파견된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 3세를 견제하기 위해 병력 파병을 안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나폴레옹의 조카는 피를 흘리며 싸웠다. 루이필리프는 무얼 하는가?]

[쿨리에게서 아편을 빼앗아 간 장본인은 루이필리프이다. 그는 쿨리의 자유를 침해했다!]

참 위대한 논리였다. 모두가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은 내용이라도 정말 어처구니가 하늘로 날아올라 폭죽처럼 터지는 기사 내용이 있었다.

프랑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 논리에 의거하면 쿨리의 아편중독 치유는 본인이 원하는 ‘자유’가 아닌 강압에 의한 폭력이었다. 한마디로 개소리라 한정교를 보면서 평가했다.

“내가 오래 살지 않았는데 이토록 해괴한 신문기사를 볼 줄이야. 한 주임관(奏任官 - 약 5품 관리) 자네는 청나라 노동자들이 아편을 피울 자유가 있다 보나?”

“그게 자유라니요? 그러면 왜국에서 칼로 배를 쑤셔 자진(自盡)하는 것도 자유입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냥 왕이 실수를 저지르니 욕하고 보는 상황이군.”

결국 논란이 증폭되며 시위가 벌어졌다. 루이필리프가 그토록 노력하여 2월 혁명의 단초를 말살하였으나 자그마한 불씨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의 사례를 본받아 너 나 할 것 없이 ‘아주 딱딱한 바게트’를 구워냈다. 듣자 하니 술에 취한 사람들이 바게트로 서로를 두들겨 패 두개골 골절로 즉사했다던가.

루이필리프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음식 소지 금지령’을 내려야 시위를 막을 수 있는데 내리면 더 큰 시위가 터진다. 결국 그는 프랑스인을 달래는 법을 떠올리고 즉각 선양을 택하였다.

좋게 말하면 책임을 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망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리 프랑수아 기조도 같이 퇴임했고 내각도 총 사퇴를 단행하여 3월에 새 내각이 들어선다.

결국 연쇄 혁명이 아닌 중간에 끊겨 버린 맥 빠지는 혁명이 벌어지리라. 자리에 앉아서 프랑스에 보낼 사절을 선정하다가 좋은 인물이 떠올랐다.

“불란서에 보낼 사절단은 간략하게 진행하되 종친을 앞세우도록 하면 어떤가?”

“네? 박 후작님께서 가시는 게 아니고 종친이라니요?”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불란서에 다녀오나? 조만간 미국 서부 개척 협의도 맺어야 하는 데다 이미 대남국(베트남) 개혁에 손을 대고 있는데?”

요즘은 공장에 가서 콜라 시음회도 못 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와 아내를 생각해 퇴근은 가급적 정시에 하려 노력해도 간혹 야근을 할 수준의 업무량이다.

내 업무량을 알고 있는 한정교는 고개를 꾸벅 들고는 실실 웃으며 답하였다.

“박 후작님이 왜국 업무를 저에게 일임하신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뭐 왜국은 알아서 잘 커나가고 있으니 염려 안 해도 되겠지.”

아편 단속은 조직이 점조직으로 붕괴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막부는 여기서 주도권을 한 번 잡더니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다.

여기에 올해 9월 설립되는 일본 최초의 대학 가쿠슈인의 총장만 보내면 1단계 계획은 완성이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나서 말하였다.

“불란서 사절단의 대표는 심양왕 전하의 삼남(三男) 덕완군 대감은 어떠한가?”

“작년에 관례를 올리신 분이로군요. 격식에는 맞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구주에 다녀오시는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이번 기회에 불란서를 시작으로 서역을 한 차례 순방하고 돌아오면 더 좋을 것 같아서. 경험은 젊은 나이에 쌓는 것이 좋지 않겠나?”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군요.”

오후 6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밖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효명제에게 내일 아침 올릴 장계의 작성이 끝났다. 오늘의 업무도 막을 내려서 밖으로 나가니 익숙한 얼굴이 기다렸다.

“조카사위! 요즘 야근을 자주 하는 것 같던데 오늘은 정시 퇴근이로군.”

“처숙부님 아니십니까? 처숙부님은 오늘 야근을 안 하시는지요?”

“예끼! 탁지부에 막 돌아오자마자 야근이라니!”

김좌근은 결국 탁지부로 돌아왔다. 돈을 좀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어도 그만큼 자금을 잘 융통하는 대신이 없어서 아예 탁지부 총괄 담당 대신을 역임하는 중이다.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도열하여 교대식을 실시하는 군관들을 보며 말하였다.

“사실 예산이 뭉텅이로 빠져나가서 일이 좀 줄어들었어. 이를테면 군부 예산 말이지.”

“군부가 요즘 바쁘다 하더군요. 파병에서 병사들이 돌아오고 발칵 뒤집혔다 하던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추가 예산을 달라 해서 신냥으로 일천이백만 냥을 배정했는데 이걸로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네. 참 불편한 일 아닌가?”

실은 편한 일이면서 힘든 척을 하고 있다. 대한제국 군부는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영향을 받아 예산 편성은 누구보다 잘하는 이들이다.

다른 부서의 엉망진창 예산을 심의하다 깔끔한 군부 예산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김좌근은 억지로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콜트라는 사람이 와서 기병들이 사용할 신형 권총 양산을 부탁하지 않나. 미국에서는 갑식 소총은 집어치우고 진식 소총 일만 개를 발주하지 않나.”

“그래도 좋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올해 구월에 한양-동래 노선이 개통된다면서요.”

“좋기는! 백성의 자본이 육 할에 나라의 자본이 사 할 아닌가! 차라리 십 할이면 났지!”

마침내 각고의 인내 끝에 한양-동래 전철이 단선으로 개통될 예정이다. 정부 투자 40%에 민간 투자 60%로 공사를 시작한 이 노선은 수원에서 출발하는 노선이다.

강남까지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 시대의 강남이 범람 위험지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한강 수계 정비공사가 끝나면 노선을 연장할 계획이다.

그 한강 수계 정비공사가 언제 끝날 줄은 모르겠지만. 김좌근은 내가 생각하는 동안 계속 투덜거리다 억지로 참아 넘기며 말하였다.

“그래도 상관없지. 골나(콜라)가 완성되면 내가 기차에 냉동차를 하나 만들 걸세. 거기에 골나를 잔뜩 담아서 사람들이 마시게 하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겠는가.”

“아예 말린 오징어나 볶은 땅콩도 같이 파시면 어떠한지요?”

“그거 더 좋은 생각이야! 먹을 걸 이야기하니 배가 고프군.”

김좌근도 나도 꼬르륵 소리가 뱃속에서 올라왔다. 그러더니 김좌근이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하였다.

“이런 날에는 볼가네 효종갱(曉鍾羹 - 해장국)에 가서 한 그릇 걸치면 좋을 것 같은데?”

볼가네 효종갱은 최근 한양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내장탕 가게다. 다만 아내와 애들을 데려올 만한 장소도 아니라 간혹 집으로 배달시켜 먹는 것이 전부여서 가 본 적은 없다.

“볼가네 효종갱에 자리가 있기는 합니까? 예약을 안 하면 정승도 자리가 없는데요?”

“거 조카사위는 내가 다 계획하고 움직이는 걸 모르나 보군! 이틀 전에 예약해 뒀으니 잔말 말고 따라오게!”

미-맥 전쟁에 파견된 장교 중 한 명인 어재연은 미국의 끔찍한 고기 세례에 질려서 양념치킨을 비롯한 새 요리를 많이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폴을 비롯한 4명의 흑인 노예를 구입하여 요리를 돕게 하고 이들은 모두 해방되어 대한제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한양의 3층 상가를 사들여 바로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 거대한 상가에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렸다.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흑인 청년이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은 하셨습니까?”

대한제국에 도착하고 고작 석 달이 지난 사람이 제법 말을 많이 배운 것 같았다. 김좌근은 미리 끊어둔 예약증을 보여주며 말하였다.

“오리(올리버) 서방은 오늘도 일을 열심히 하는군? 탁지부에서 예약을 해두었네.”

“아! 대신님이시군요! 삼 층에 자리 있습니다!”

일 층은 어깨가 서로 닿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이 층은 그럭저럭 한산하였고 예약 전용인 삼 층은 별실을 두었다.

별실을 두어도 사람이 많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가 들어갈 방을 치우는 동안 김좌근은 흑인 청년을 바라보고 질문을 하였다.

“요즘 들어 신수가 좋아진 것 같은데? 일은 잘되어가고 있나?”

“치킨도 불티나게 팔리고 효종갱도 엄청나게 팔립니다.”

“아무렴 그래야지. 머나먼 이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응당 그래야 하고말고.”

김좌근은 물론이요 관료들 중 상당수가 이 집의 효종갱을 즐겼다. 정식 명칭은 폴 패밀리인데 어재연의 추천으로 볼가네가 되었다던가. 김좌근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주문을 하였다.

“나는 특 내장탕으로 보통 맛 주게. 조카사위는 어떤 맛을 먹겠는가?”

“저는 특 내장탕으로 아주 매운 맛 주십시오.”

“아주 매운 맛? 일단 우리 집과 조카사위 집에 특 내장탕 각각 열두 그릇과 여섯 그릇 배달해 주게.”

이 시대의 대한제국 사람들은 매운맛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다른 나라 음식보다 조금 매운 편이지만 현대와 비교하면 매운맛이 거의 없다.

맵게 해달라고 주문하면 그냥 고춧가루만 때려 넣는다. 당연히 맛의 균형도 깨지고 고추 향이 가득한 요리를 먹는 꼴이 된다.

반면 폴은 여러 종류의 고춧가루를, 심지어 수입산 고춧가루까지 대량으로 들여와 현대와 비슷한 맛을 냈다. 김좌근은 내 주문을 되새기고 질색을 하며 말하였다.

“아주 매운 맛이라니! 그러다가 위장에 구멍이 뚫리지 않겠는가!”

“제 얼굴 가죽보다 위장 가죽이 더 두꺼운 데요.”

“그래. 다른 나라 이득을 날름 집어삼키는 우리 박 후작님이니 당연한 일이지.”

“박……. 후작님이요?”

폴의 손자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더니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김좌근은 요리가 나올 때까지 내장탕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에는 내장 요리에 독한 누린내가 나서 먹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아니라니까? 내장을 겉에만 슬쩍 데쳐서 회로 먹거나 아예 누린내를 덮으려고 고춧가루만 뿌리지 않았나?”

“저도 처음 먹어보고 너무나 맛이 좋아서 놀랐습니다. 다만 선지를 안 넣어서 부족합니다.”

“그래! 듣자 하니 집주인이 선지를 영 좋아하지 않아서 안 넣는다 하던데 나중에는 넣을 수도 있지. 그렇고말고.”

다시 방문이 열리며 내장탕이 들어왔다. 일곱 개의 반찬에 고봉밥까지 왔지만 우리의 시선은 내장탕에 집중되어 있었다.

뚝배기에 담긴 시뻘건 국물 속에 소의 위를 비롯하여 각종 내장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마늘과 고춧가루를 잔뜩 집어넣고 곤포당(MSG)을 넣은 이 국물 맛은 현대의 것과 비슷하다.

김좌근의 내장탕은 폴의 특제 양념이 한 티스푼 들어갔다. 반면 내 내장탕에는 매콤한 양념이 한 스푼 넘게 들어가 있었다. 이를 잘 섞어 한 입 먹으니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크어! 역시 이 맛이야!”

“그래 이 맛이지!”

이 시대의 내장 요리와 달리 내장탕에 있는 내장들은 하나같이 누린내도 덜 하고 지나치게 질기지도 않았다. 여기에 국물이 진국이었다.

곤포당이 들어간 진한 소뼈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저절로 이마에서 땀이 솟구쳤다. 자연스럽게 김좌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처숙부님 덕분에 바로 만든 내장탕을 먹게 되었습니다.”

“자네 정도면 예약을 해서 삼 층에 올라올 것 같은데?”

“애들이 질색을 할 겁니다. 나중에 별관이라도 하나 생기면 모르겠군요.”

“그 말이 맞아. 기본적으로 매운 탕국이라 아이들은 입에도 못 댈 거야.”

매운맛으로 따지면 아주 매운 맛이 현대의 매운 해장국보다 조금 못하다. 반면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매운맛으로 느껴지겠지.

아마 아내는 지난번처럼 배달 온 해장국에 사골 국물을 섞어 중화시킬 것 같다. 김좌근이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가게 주인인 폴이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제 은인이신 박 후작님 아니십니까?”

“은인이라니요? 사장님이 저와 무슨 은혜가 있다고 하십니까?”

김좌근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누비옷과 솜을 넣은 단화(短靴)에 모피 웃옷까지 입은 폴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하였다.

“듣자 하니 대한제국군의 파병 관련 업무를 추진한 분이라 하셨습니다.”

“그야 묵서가(멕시코)에게 벌을 내리기 위한 방법이었지요. 딱히 은혜는 아닙니다.”

김좌근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이 양반 아무리 보아도 이번 기회에 비결을 얻어내라는 소리 같은데 얻어먹은 것이 있어서 물어나 보려 하였다.

“은혜라 생각하시면 한 가지만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언어는 어 참령(參領 - 소령)님에게 터득한 것 같은데 비결이 뭡니까?”

“제가 노예 출신이라서 내장 요리에는 익숙합니다. 노예 시절에는 내장의 냄새를 빼려고 밀기울과 상한 밀가루를 넣고 버무려서 씻었지요. 대한제국에 와서는 쌀겨와 상한 밀가루로 두 번을 씻습니다.”

“내장을 두 번이나 씻어내신다니요?”

“사실 빨아내는 거지만요. 그다음에는 다시 굵은 소금을 뿌려서 또 손질하지요. 마지막으로 물을 두 번 바꿔가면서 내장을 끓입니다.”

이 시대의 내장은 물에 넣고 한 번 씻어내는데 이렇게 하면 누린내가 많이 남아 먹기 힘든 물건이 된다. 반면 폴은 저 고된 작업을 매번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저렇게 하지를 않는데…….”

김좌근은 폴의 손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한겨울에 얼음물로 내장을 씻어낸 덕분에 손 이곳저곳에 흉한 상처가 가득하였다.

보기만 해도 쓰라린 상처가 가득하건만 폴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더니 주방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한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장의 분류가 그토록 많을 줄은 몰랐지요.”

“그야 이 나라는 소고기를 사랑하는 나라이니 당연한 법이지요.”

“그러니 대한제국 사람들을 위해 좋은 요리를 퍼뜨리려 하였습니다. 어 참령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과 매운맛의 비결을 접목하였지요.”

“그럼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파울스 치킨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폴의 사업체는 하나가 아니다. 파울스 치킨이라고 양념치킨을 파는 가게가 하나 더 있다. 폴은 내 말을 듣고는 해맑게 웃으며 말하였다.

“저희 가족 모두가 대한제국에 이주했습니다. 그러니 아들딸들에게 파울스 치킨을 팔게 하고 매일 한 번씩 들러 소스 맛을 보고 점검하며 유지하는 중이지요.”

“그럼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자는 겁니까?”

“다섯 시간도 못 잡니다. 나이가 먹으니 잠이 줄어들어서 괜찮더군요.”

아무래도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완전히 기반을 잡아두려는 것 같았다. 나는 폴의 상처투성이 손을 바라보며 악수를 권하고 말하였다.

“조만간 이 나라 사람들도 미국에 건너가 일을 할 겁니다. 그때에 볼가네 효종갱을 전파하면 미국의 식탁을 지배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파울스 치킨을 셔먼 소령님께서 퍼뜨리고 계시는데요?”

“치킨은 주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 보셔야지요.”

폴은 자신과 동료들이 머무르는 삼 층 벽돌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악수를 마친 폴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하였다.

“미국 서부에 제 내장탕이 팔리는 그 날까지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미-맥 전쟁에 대한제국이 참전하며 많은 이득을 얻었다. 대규모 병력 운용과 다양한 합동 작전 경험 그리고 저격수 편제를 최초로 도입할 수 있었다.

여기에 식문화까지 단번에 발전하게 되었다. 폴과 같이 전 세계의 인재들을 받아들이면 문화적 측면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음 날 출근하니 미리 전신이 와 있었다. 어제 새벽에 상해에서 들어온 급보는 또 다른 이주민의 대한제국 방문 예정을 담고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이민자가 와? 하긴 흥선공 대감이 일을 잘 처리하기는 했지.”

이하응에게 구원을 받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온갖 서신과 축하편지를 보내며 그를 응원하였다. 그러다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돈을 모아 대한제국으로 이주를 청하였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총원 오천여 명 정도만 이주할 예정이라 하였다. 이 정도면 집단 거주지 하나를 만들면 되는데 이들의 통솔자가 문제였다.

[인솔자 : 카를 마르크스]

몇 번이고 보아도 카를 마르크스 맞다. 프로이센 출신이며 나이 31세라 기록되어 있어서 정말 애송이 시절의 카를 마르크스가 방문하는 것이 확실하다.

“이 양반은 공산당 선언 작성해야 할……. 아 맞네, 혁명 불발이지.”

이 양반이 대한제국에 와서 뭘 할지 참 궁금하기는 하다. 공산주의를 만들어 낸 사람이지만 이 시기에는 그저 혈기 넘치는 사상가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혁명의 물결도 프랑스에서 중단될 상황이라 유럽에 있어 보았자 얻을 것도 없다. 한 달 뒤인 1848년 2월 중순경 방문할 그가 무슨 일을 할지 참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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