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16장 8화 한양 유람
카를 마르크스는 고려시대의 도읍 개성에 잠시 들러 기사를 정리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속한 신 페인 독립 운동 단체에게 아일랜드인의 보고서를 작성할 시기도 되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대한제국 황제의 보살핌을 받아 정착에 성공하였음.]
특유의 달필을 억제하고 간단한 형식의 보고서를 작성한 마르크스는 다음 작업에 착수하였다. 여기에 영국에서 만든 인맥과 엥겔스를 통해 ‘대한제국 여행기’라는 기사를 작성하였다.
며칠 동안 개성의 숙소에서 묵으며 낮에는 산책과 취재, 밤에는 보고서를 비롯한 글을 작성한 마르크스는 개성의 풍경에 대해 화려한 문체로 저술하였다.
[천 년 전의 도읍은 여전히 달밤 아래에 완연한 멋을 품고 있으니…….]
예전에는 개성 일대에서 활약하던 거상(巨商)의 저택은 어느새 개수되어 여행객을 위한 숙소가 되어 있었다. 값비싼 숙소이나 마르크스는 순조에게 받은 후원금으로 별채 전체를 임대하였다.
그는 글을 쓰다 피로로 인해 눈이 침침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고속 증기선의 시대가 막을 올리고 있지. 내 기사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제국 여행을 올지도 모르겠는걸.”
졸지에 자본가의 여행을 권유하는 꼴이 되었으나 투자자인 순조의 얼굴을 보아 꾹 눌러 참았다. 그런 마르크스에게 정원에서 하늘을 올려보던 사람이 아는 체를 하였다.
“곡염 아닌가? 글이 잘 안 써져서 여기 왔는가?”
“아, 육일재(六一齋)로군? 글을 쓰다 피로하여 잠시 나왔지.”
“그럼 달과 별을 보면서 눈을 즐겁게 해야지.”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남병길(南秉吉)은 마르크스와 며칠 사이에 친해진 사람이었다. 천문학자로 두각을 드러내는 그는 유럽 유학을 다녀온 뒤 휴식 삼아 대한제국 여행을 다녔다.
둘은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궁금증을 느낀 마르크스가 남병길에게 질문을 하였다.
“대한제국의 문화는 다양하고 풍경도 이토록 수려한데 어찌하여 외국인이 없는지 모르겠군.”
“외국인이 여행이라? 자네는 이 나라에 오는데 두 달이 넘게 걸리는 걸 알지 않나?”
“그래도 두 달의 여정이 아깝지 않은 좋은 경험을 하였는데.”
“알다시피 수십 년 전만 해도 호환(虎患)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곤 하였으니 권하지 않는 것 같군. 더군다나 이 나라의 사람들은 호젓이 경치를 즐기니 더욱 여행을 권하지 않네.”
대한제국의 양반들은 시대가 변하여도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호젓하게 여행을 떠나 풍경을 즐기는 방식을 택하였다.
울창한 산속에 경치가 수려한 장소를 알아두고 일대에서 유람을 즐기는 방식이다. 당연히 자신만의 장소에서 여행을 즐기기 위해 다른 이에게 권하지 않았다.
카를 마르크스는 눈을 부라리며 남병길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게 뭐 어때서! 그러하면 대한제국 곳곳의 수려한 산야 모두가 관광지이고. 그 관광지가 아무에게도 노출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는 말이 아닌가?”
“바로 보았네. 한번 마음에 정해두면 그곳을 몇 년 동안 다니며 모두 즐기지.”
“이런 답답한 사람들을 보았나.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잠시 심호흡 좀 하지.”
유럽인들은 신비한 경치나 풍경을 즐기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귀족 한 명에 하인 열댓 명 정도가 같이 움직인다.
이들은 한 국가를 정하고 그 국가의 뼛속까지 핥아먹듯이 여행을 하는 자들이다. 아예 사냥 여행을 나설 경우 수백 명 단위의 사람을 고용해 산 전체를 들쑤시는 족속이다.
그들에게 대한제국의 수려한 경치는 진흙 속에 묻힌 보배와 같았다.
카를 마르크스는 심호흡을 마치고 남병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혹여나 여러 산을 다녀온 사람을 알고 있는가? 그 사람을 취재하여 어떤 산에 무엇이 있는지 상세한 기록을 하고 싶은데.”
“당연히 순학자이지. 매번 산과 암반을 들쑤시는 족속들이야.”
“순학자? 화석에 집착하는 사람들 말인가?”
그는 심양 일대에서 순학자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집착이라는 말도 굉장히 온건한 표현이었다.
온몸의 피부는 햇볕에 타들어 가 시커멓고 핏발 선 눈에는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여기에 손과 발은 나무껍질처럼 두툼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여기에 순학자들을 호위하는 이들은 외몽골에서 고용된 탐험가이자 전사였다.
이들 또한 술에 취한 채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감히 말도 못 걸 정도의 기세라 모두가 겁에 질려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남병길은 고개를 끄덕이고 즉석에서 추천장을 작성해 주었다.
“국립이학대학에 들를 생각이 있다면 장우일, 호는 신영이라는 자를 만나도록 하게. 그곳에서 지질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니 여러 정보를 알 수 있을 거야.”
“지질학 강사라. 박사 학위는 취득하였는지 궁금한데.”
“자기가 철학 박사라고 같은 박사를 찾기는. 국립이학대학 박사 학위 취득이 가장 힘든 거 알고 있지 않나.”
카를 마르크스는 국립이학대학에 방문하여 이하응을 만나고 후원을 받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는 국립이학대학에 전신을 두 개 보내고 한양으로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 * *
카를 마르크스가 대한제국에서 가장 만족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기차였다.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간 기차 노선을 대한제국은 받아들여 본국보다 더욱 충실히 활용하였다.
과감한 투자로 표준궤나 협궤 대신 2,140㎜의 광궤를 적용하여 든든한 기반을 적용했다. 덕분에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더욱 화려하고 거대한 기차가 등장하였다.
정미(丁未) 기관차라 명명된 1847년 방식 기관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제국 독자 기술력으로 개발된 기관차를 확인한 마르크스는 객차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이 정도면 영국 최신식 노선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기차인데.”
차체는 목재이다. 외부에는 옻칠을 한 나무를 철판으로 감싸고 유리창을 듬직하게 두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화려한데 내부가 더욱 웅장하였다.
솜을 가득 넣은 좌석이 있는 내부 공간은 영국의 협궤와 비교할 수 없이 넓었다. 좌우로 3개씩 의자를 두고 가운데 서너 명 정도는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기차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말 그대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역무원들이 표를 확인하고 사람들을 들여보내자 기차가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들어찼다.
마르크스는 가까스로 구한 좌석에 앉아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평가하였다.
“영국의 기차 운임은 이백 킬로미터당 일 파운드인데 대한제국의 운임은 절반 이하라니.”
한양 – 의주 사이의 노선은 아무런 이득도 남지 않는 노선이었다.
국가의 자본으로 부설하여 최소한의 관리비를 운임으로 받으며 계속 가동하였다. 특히 한양 – 개성 구간의 운임은 3냥에 불과하여 돈이 있는 양반은 물론 중인이나 부농들도 기차를 탔다.
영국이라면 말이나 배를 타고 운행하는 비용보다 약간 값싸게 가격을 책정하여 10실링, 약 12냥에 달하는 운임이 되리라.
간혹 꾀죄죄한 옷을 입은 농부가 멀뚱히 눈을 굴리는 것을 확인한 마르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런 기차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의 국가에 필요한 기차이다. 배울 점이 아주 많아.”
이후 두 시간 사십 분의 여정 끝에 기차가 멈추었다. 종착역인 인왕산 역에 내린 마르크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질주하는 광경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천천히 걸어가도 될 텐데 왜 저렇게 급하게 움직이지?”
그는 인왕산의 수려한 풍경은 물론 기차가 정비를 마치는 장면을 빠짐없이 글로 담으며 천천히 역을 빠져나왔다.
이윽고 역 밖으로 나온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몰려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역 입구에는 또 다른 역이 있어 사람들이 즉각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하였다.
[이 마차철도는 흥인지문으로 향하오! 줄을 서서 타시오!]
[서빙고! 새남터를 거쳐 서빙고로 향하는 마차철도요! 어서 타시오!]
인왕산역의 맞은편에는 한양 내부로 이동하는 마차철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냥 한 냥을 건네 마차철도에 사용하는 토큰으로 바꾸어 제출하였다.
“뭐 이런 제도가 다 있어? 이거 너무 편하잖아?”
마차철도는 런던에서 막 도입을 고려하는 제도이나 대한제국에서는 이미 상용화되었다. 현대의 버스처럼 토큰을 사서 노선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대중교통이다.
역 안에 있는 철제 간판에는 마차철도 노선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현대 한국의 노선도와 흡사한 이 노선에는 4개의 노선이 기입되어 있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목적지인 국립이학대학을 찾아 눈을 굴렸다. 이윽고 서빙고 방면의 국립이학대학 역을 확인한 마르크스가 여행가방과 함께 마차철도에 탑승하였다.
“다들 물러서시오! 출발!”
마르크스는 사람들 사이에 짓눌린 채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주변 경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껏 부르주아의 생활을 영유하던 런던과 다른 한양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괴석을 깔아 정돈한 길거리와 삼 층 벽돌 건물 사이에 간혹 옛 풍습을 지키는 한옥이 들어왔다. 여기에 철저히 설정된 방화구획이 눈길을 끌었다.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은 물을 배달하는 인부들이었다. 막 성인이 된 앳된 티가 나는 사람들부터 허연 수염을 흩날리는 노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물을 운반하였다.
“이상한 일이네. 런던보다 더 늦게 개수된 도시인데 상수도관이 없다니?”
간혹 마차철도가 정차하여 말을 갈아치우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말들은 하나같이 수도관이 아닌 인부들이 운반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미 한양 남쪽에 흐르는 한강의 존재를 알고 있는 마르크스는 고요하게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물이 말라붙은 한강은 템스 강보다 작은 강처럼 보였다.
“대한제국이 자랑하는 국립이학대학 실력이면 취수장을 만들어서 각지에 물을 공급하고도 남는데. 더군다나 이 작은 강에 다리가 없다니 말이나 되나?”
말라붙은 한강은 그의 눈에 평범한 강 중 하나로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의문점을 품으며 국립이학대학 역에 내린 마르크스는 대학 입구로 들어가 말하였다.
“프린스 흥선을 만나기로 한 사람이오. 혹시 계시오?”
“카를이라는 보로서 출신 기자이시군요. 그렇지 않아도 언질을 들어 두었습니다.”
4층 콘크리트 건물로 개수된 국립이학대학 본관은 총장 조일준의 취향이 한껏 반영되었다. 표면에 검은색과 흰색의 석재를 조합하여 고딕 양식과 이 시대의 양식을 절충하였다.
여기에 수많은 유학생들이 마당에 모여 토론을 하거나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촌마게를 확인한 마르크스는 잠시 멈추어 이를 기록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설비 또한 조일준의 취향에 맞게 구성되었다. 단열을 위한 이중창문은 물론 겨울을 대비하여 증기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드리며 질문을 하였다.
“이 쇳덩이는 혹시 난방기구입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겨울이 되면 증기가 흘러서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르지요.”
“제법 비쌀 것 같은데 벽난로를 사용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원하는 사람은 벽난로를 쓸 수 있는데 한번 여기에 맛을 들이면 벽난로를 닫게 되더군요.”
안내인은 주철 라디에이터를 두드리며 마르크스를 안내하였다.
마침내 이하응이 소유한 강의실에 도착하자 이하응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카를! 자네가 대한에 방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네. 어인 일로 방문하였나?”
“그야 신 페인 독립 운동가들의 일원으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후원금을 받을 생각에 마르크스는 슬쩍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는 대부분의 기자재가 빠져나가 있었다.
“짐을 왜 정리하십니까? 혹시나 박사 학위를 이수하여 교수 자리에 오를 예정입니까?”
“놀라지 말게. 교수가 아니라 총장이 되었네.”
“그 나이에 총장이라니요! 프린스 흥선 업적을 대한제국에서도 알게 되었군요!”
“이야기하자면 길 거야. 잠시 밖을 산책하며 그간 있던 일을 논하지 않겠나?”
마르크스는 자신의 과오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이하응에게 자랑스럽게 신 페인 독립운동 활동을 이야기하였다.
이하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답하였다.
“훌륭한 일을 하였네. 아일랜드 사람들을 인솔하여 대한제국까지 오다니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가.”
“그리 높은 자리는 아닙니다. 그저 엥겔스가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일이지요.”
둘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마르크스가 의문을 품고 이하응에게 한양과 관련된 질문을 하였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기술력이면 한강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설치하지 않으셨습니까? 가만 보니 템스 강보다 작은 강인데요.”
“템스 강? 한강이 템스 강보다 작은 강이라? 자네 성당에 있는 이 표시가 보이나?”
카를 마르크스와 이하응의 앞에는 본래 역사의 당고개 순교성지, 이 시대에는 당고개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약간 높은 지형에 있는 당고개 성당의 주춧돌에는 손가락 표시가 있었다.
“이 손가락 표시는…… 홍수가 일어났을 때 물이 여기까지 미쳤다는 소리 아닙니까?”
“한강은 십 년에 한 번 정도 여기까지는 범람하지. 오십 년마다 한 번 정도는 숭례문 인근까지 물이 올라오고. 이러한 강에 다리를 놓는다? 죄다 쇠로 만들어도 버티지 못할 걸세.”
이 정도 수량이면 유럽의 어떠한 강도 발끝에 미치지 못하리라.
마르크스는 주변 민가들이 죄다 허름한 것을 확인하고 말하였다.
“그러면 대한제국의 토목기술이 발달한 이유가 한강 때문입니까?”
“바로 보았네. 언젠가는 다리를 만들어 강남과 강북이 소통하고 더 이상의 수해를 입지 않을 날이 오겠지. 우리는 백성을 평온히 살게 할 목적으로 기술을 연마하고 있네.”
이하응의 말대로 국립이학대학 소속 토목과 교수들은 한강 치수에 대해 연구를 거듭했다. 여기까지 설명한 이하응은 마르크스를 보면서 말하였다.
“대한제국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자네가 보기에 이 나라의 정책은 어떠한가?”
이하응은 마르크스가 대한제국을 제대로 파악하였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마르크스는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바로 답하였다.
“사람들을 북방으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이 땅을 떠나 새 땅을 개척하라는 뜻 같군요.”
“바로 보았네. 이미 박 후작을 필두로 하여 수많은 이들이 연적(硯滴) 계획을 가동하고 있어. 이 나라의 사람들을 연적에서 새어 나오는 먹물처럼 퍼트리는 계획일세.”
대한제국은 이미 화전민을 대다수 이주시켜 안심하였다. 문제는 그 화전민의 빈자리를 순식간에 늘어나는 인구가 채워나갔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예전 조선시대의 사람들처럼 한양으로 향하였다. 결국 한양의 인구는 82만 명에 육박하였다.
박현상은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는 북방 영토를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한양 인구를 80만 이하로 유지할 계획을 세웠다.
굳이 물가를 올리거나 세금을 부과할 필요도 없었다. 식량 공급 비용 증가와 각종 생필품 비용의 고삐를 아주 조금씩 풀어가며 한양 일대의 물가를 지그시 옥죄었다.
이는 소비세 증가나 인두세 부과와 같이 사람을 짓누르는 방식이 아니었다. 물가는 공장에 다니면 가족과 함께 한양에서 살 수 있는 수준에서 증가를 멈추었다.
약간의 반발은 사람이 늘어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 한마디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하응은 마르크스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연적 계획을 굳이 안 해도 된다네. 조정에서 물가 증가를 억제하고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하여 한양에 사람들을 더 많이 모아둘 수도 있었지.”
조정 고위 관료들은 한양 확장계획과 시설 확충계획의 예산을 편성했었다. 회의 결과를 떠올린 이하응은 못내 아쉬운 듯 고개를 슬쩍 숙이며 말했다.
”결국 예산과 확충 가능한 세금이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네. 그러니 돈을 굴리듯이 사람들을 북방으로 자연스럽게 이주시키는 방식이 되었어.”
“러시아 제국의 행동이 떠올라서 욕이 나올 뻔했습니다. 녀석들은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가 시베리아 벌판에 풀어놓으니까요.”
“그런 무식한 방법을 왜 하나. 이미 기차 노선에 주둔 중인 군대도 있으며 아예 고을도 마련해 주지 않는가. 북방을 다녀와 보니 어떠한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쁘지 않아서 더 무서운 일이로군요.”
이하응은 좋은 일이라 판단해 고개를 끄덕였으나 마르크스 입장에서는 너무나 흉악한 계획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본 박현상은 효율성의 화신이며 이 세상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멸절하기 위해. 최소한 동양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싹을 뽑아내기 위한 괴물이었다.
자본주의가 팽배한 대도시는 부르주아에게 짓눌리는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그 프롤레타리아들이 짓눌리기 전에 미리 이주시킨다.
여기에 북방의 새 영토에는 철저한 중앙통제 정부에 의해 비밀경찰과 감찰관들이 활약한다. 이는 계속 확장되는 자본주의의 우리나 마찬가지이리라.
거둬들인 자금으로 본토를 더욱 발전시키면 만주 벌판이 사람으로 가득 차는 그 날까지 무한한 순환이 완성된다.
마르크스는 괜히 코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대한제국은 문제를 미리 알고 이를 사전에 막아내는군요.”
“그동안의 역사에서 문제를 미리 알고도 막아내지 못하였지. 그러한 일을 다시 할 생각은 없다네.”
“그러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혹시나 박 후작님을 접견할 기회를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안 될 건 없네만. 다만 바쁜 사람이라 몇 주 정도 걸릴 것 같다네.”
마르크스의 다음 일정은 박현상의 접견으로 결정되었다.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는 요순학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