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83화 (183/345)

183화

16장 9화 순한 빨간 맛(1)

이하응의 소개로 순학자, 고생물학자들과 접촉한 마르크스는 이들이 두 부류로 다시 나뉘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단 장우일의 경우에는 매우 여유가 넘치는 학자였다.

“구주의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기기묘묘한 산세를 알려서 무슨 득이 되겠나?”

“강사님은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을 다녀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수려한 산세와 웅장한 자연을 유럽의 귀족들이 확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야. 지리산 깊숙한 곳이나 개마고원이 아니면 호랑이도 자취를 감추었으며 기껏해야 표범…… 정도면 오히려 사냥하기 좋을 것 같군.”

장우일은 자신이 체험한 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나누었다. 이들을 비롯하여 여유가 넘치는 순학자들은 자신의 기행문을 솔직담백한 필체로 전해주었다.

반면 다른 부류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마르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겁에 질린 마르크스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쏘아붙이듯 말하였다.

“유럽에는 셰일 지층이나 각종 퇴적암이 융기한 지층이 있는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아니라면 석회암 지층이나 다른 화석이 발굴된 지층은 없나? 영길리는 이미 영국 왕립 과학협회가 독점 발굴 중이라 다른 퇴적 지층이 필요한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고생물학자는 옆에서 제자가 한 질문에 답해주는 장우일을 지그시 노려보고 다시 마르크스를 노려보았다. 그제서 마르크스는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대한제국은 온전한 화석이나 유적을 발굴한 학자의 이름을 따서 화석과 유적을 명명한다. 예를 들어 장우일이 메리 에닝과 발굴한 발자국 화석은 ‘신영 발자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학문에 발을 들인 입장에서 최고의 영광이며 명예이다. 반면 파편만 발굴한 고생물 표본들은 지역 이름을 붙여서 전시한다.

십 년 이상 학문에 투자하고 성과가 없으니 사람이 미쳐가기 마련이었다.

마르크스는 이들의 기세에 질려서 자신이 들은 정보를 말해주었다.

“제가 알기로 미국 콜로라도 강에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거대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거대한 골짜기라면 화석이라는 물건이 물에 쓸려 내려가서…….”

“고맙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로키 산맥이라는 곳에 다녀올 생각인데 잘되었어!”

문명의 손길이 거의 안 닿은 로키 산맥을 동네 마실 다녀오듯이 다녀올 것이라 말하자 마르크스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반면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산세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걸 어디에 씁니까? 죄다 지층과 관련된 기록 아닙니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화석의 흔적과 지층의 흔적이 전부야. 무얼 바라나?”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 미치광이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무슨 짓을 할지 마르크스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마 화석이라는 물질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사람들이며 시료를 조작하느니 손목을 자르는 사람들이라 학자로 볼 수 있었다.

이들에게서 기록을 받은 마르크스는 다시 이하응과 만나 한탄하였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기는 합니까? 제 수명이 오 년은 깎여나간 것 같군요.”

“지질학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어서 참을 뿐이지. 그럼 속이 답답한데 오늘도 효종갱 한 그릇 먹으러 가지 않겠나?”

“좋지요! 오늘은 제가 내겠습니다!”

마르크스가 가장 만족한 음식은 역시나 볼가네 효종갱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작위를 내려받은 경우가 아닌 한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이들이 흑인이었다.

반면 대한제국에서는 볼가네 효종갱 분점이 생길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며칠째 내장탕에 푹 빠진 마르크스는 국물을 모두 비우고 말하였다.

“스튜 요리에 철학이 담겨서 제대로 된 음식이 되었군요.”

“적어도 헛되이 먹을 요리는 아니지. 그나저나 자네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네.”

이하응도 내장탕에 밥을 말아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말하였다. 마르크스는 이하응의 말을 듣고 놀란 눈으로 물어보았다.

“혹시나 박 후작님이십니까? 아니면 닐슨 총장님이 만나 보자고 합니까?”

“그 둘의 스승이신 분이 아직 살아 계시네. 여유당 대감이지.”

“여유당 약용 정 대감님이요? 그분은 뛰어난 명의이자 과학자가 아닙니까? 저는 철학 박사인데요?”

“그분의 연세가 미수(米壽 - 88세)에 근접한 것을 잊었나? 젊은 시절에는 수많은 학문을 섭렵하신 분이 자네와 백성의 삶에 대해 논하고자 하시네.”

정약용은 본디 유학의 분파인 실학자이자 법학자이며 철학자이자 의학자이다. 박현상과 조일준 덕분에 복권하며 자신의 위치를 의원으로 정한 사람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소식을 입수한 박현상은 그가 먼저 정약용을 만나기를 원하였다. 스승에 대한 배려이자 정약용의 사상과 어느 정도 닿아 있는 그를 배려하였다.

다음 날, 마르크스는 이하응의 안내를 받아 정약용의 저택으로 향하였다. 다른 집이 보일러를 두거나 벽돌 벽으로 개수한 것과 달리 고풍스러운 한옥의 모습이었다.

이미 80세가 넘어 쇠약해진 정약용은 이미 손자 정대림(丁大林)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저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정약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로서의 젊은 청년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이 설레어서 부르게 되었네. 내 호는 여유당이며 폐하의 은혜로 노구를 건사하고 있다네.”

“뛰어난 의학자이신 여유당 대감께서 저를 찾아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얼, 북방에 잠시 다녀온 학유(學游 - 정약용의 장남)가 말하기를 자네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여 많이 평안해졌다 하였네.”

본래 역사보다 12년을 더 살아온 정약용의 몸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눈썹과 머리카락 모두가 새하얗게 변하였으며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어나고 피부가 쪼글쪼글해졌다.

그는 물론 아내 또한 얼마 전부터 기력이 급격히 쇠약하여 제대로 거동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형형하게 빛낸 정약용은 마르크스에게 질문을 하였다.

“내가 알기로 자네는 영길리의 압제를 당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지?”

“바로 보셨습니다. 제가 속한 신 페인 독립 운동가들은 아일랜드인의 자립을 원합니다.”

“그러하면 궁금한 점이 있군. 내가 알기로 자네는 보로서 사람인데 아일랜드 사람들을 도울 이유가 있는가?”

마르크스는 눈썹을 까딱거리며 정약용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일랜드의 독립 보다는 아일랜드의 대지주가 강압적으로 소유한 토지의 재분배를 공산주의를 적용해 이룩하려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 같군. 독립보다는 지주들의 땅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가?”

“혹시나 박 후작님이 알려주신 겁니까?”

“아닐세. 나는 그저 방 안에 앉아 서적과 견문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야. 흥선 공이 말하기를 자네는 언제나 백성들과 땅에 대한 이야기를 즐긴다 하였지.”

정약용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가 아는 사실은 조선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며 세계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여 멸망한 것이다.

고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아예 나라를 다 망가트리고 일본이 먹기 좋게 만들어주어서 변명도 못 하였다. 왕조가 멸망한 것도 이쯤 되면 피할 수 없는 비극이라 생각하였다.

나중에 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버리기까지 하였다. 물론 일본의 통치하에서 갖은 고난을 겪다 해방되었으니 반쪽의 백성이라도 건져낸 것이 다행이다.

결국 정약용이 박현상과 조일준의 행동을 지지하고 그들의 개혁에 반발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실패하였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한 정약용에게 카를 마르크스의 행동, 그로 인해 유추한 그의 사상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마르크스는 한숨을 내쉬고 이 말에 답하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토지나 공장을 비롯한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자력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였네. 바로 여전법(閭田法)이라는 방식이지.”

둘은 열띤 토의를 시작하였다. 정약용의 여전론은 농사를 제대로 짓는 농민에게 모든 토지를 소유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끈이 닿아 있었다. 물론 끈이 닿아 있을 뿐 사상의 근본적인 항목부터 차이가 발생하였다.

신분제를 인정하는 여전론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사이에서 차이가 발생하였으나 이를 서로 인정하였다.

“여유당 대감님의 방식은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와 흡사한 것 같군요.”

“무릉도원으로 번역된 서적이지. 나 또한 읽어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덮어놓고 이상적인 제도만 추구한 것 같군.”

“그런 점에서 저는 여유당 대감님의 철학을 존경합니다. 더군다나 사회 제도적 분업을 추구한 점은 참으로 탁월하시군요.”

“나 또한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되었네. 전 세계의 노동자가 일치단결하여 냉엄한 자본주의 사업가들을 물리치고 백성의 낙원을 만들 계획이라. 참으로 좋아.”

마르크스는 며칠간의 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약용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낡고 고리타분한 사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철학을 쌓아 올려 이상세계를 추구한 철학자였다.

정약용 또한 자신의 사상을 이룩하려고 끝없이 사유(思惟)하고 노력하는 마르크스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보아온, 앞으로 얼마 보지 못할 세상 사람들의 행동을 알려주려 하였다.

“그러나 자네의 사상은 실패할 것이네. 성공하더라도 자네가 원하는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상입니다. 앞으로 삼십 년 이상을 투자할 작정이니 염려 마시지요.”

“삼십 년이라. 내가 보기에 필요한 것은 이것일세.”

검지 하나를 들어 올린 정약용을 바라본 마르크스는 피식 웃으며 답하였다.

“백 년이 걸릴 것 같습니까?”

“아닐세, 자본주의 사업가들의 착취로 일억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어야 세상의 주인이 될 사상일세. 아니라면 일억 명의 목숨이 공산주의로 인해 사라지거나.”

정약용은 오랜 세월을 살며 참으로 많은 사람을 보았다. 마르크스의 생각대로 인터내셔널, 전 세계의 혁명이 일어나도 성공할 가능성은 없었다.

희망적으로 관측해도 수천만 명 단위로 혁명에 동참해야 성공하리라.

마르크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가운데 정약용은 손을 내려서 배 위에 얹으며 말하였다.

“내가 보기에 자네의 사상은 정말 가혹한 착취에 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절실히 닿을 것 같네. 배를 곪고 자식이 굶주려 죽어가는 꼴이 아니라면 지금의 사회를 유지하려 할 거야.”

“아닙니다! 자본가의 착취에 모두가 동참할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보았지. 양물을 잘라 세금을 덜 내려는 아비의 울음도, 무덤에 들어있는 아버지와 갓난아이의 군포(軍布)를 내지 못하여 소를 수탈당하고 쟁기를 짊어진 가장을.”

정약용은 구구절절이 한때 벌어졌던 지배층의 수탈을 이야기했다. 개혁을 시작하고 15년이 넘게 지난 조선에선 50이 넘은 노인이 ‘예전에는 이러했지.’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였다.

애절양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에서 이러한 점을 비판하였다. 당시의 삼정의 문란은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착취하고 또 착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동참할 것이라 생각하다 갑자기 찬물을 얻어맞아 버렸다.

“이런 끔찍한 일을 겪어도 쟁의를 일으키는 것이 한계였네. 자본가를 뒤엎으려 한다고? 그러하면 죽을 정도로 착취당하여야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르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잘나가는 집안의 자식이었으며 아직 제대로 된 굶주림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반면 정약용은 지방관 생활과 유배 생활로 사람이 어디까지 시달릴 수 있는지 여실히 체험한 사람이었다.

정약용은 마지막으로 젊은 철학자를 위하여 당부를 하였다.

“그러하니 자네의 사상을 조금 더 온전히 다듬고 철학을 완성하도록 하게. 지금 이 자리에서 완성할 생각을 하지 말고 더 많은 세상을 보고 견문을 쌓아나가게나.”

“여유당 대감님의 고견이 저를 일깨웠습니다. 그러하면 박 후작님을 만나고 더 많은 견문을 쌓을 방법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인사를 올리고 돌아간 마르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약용은 하인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의아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공산주의라는 사상은 조금만 잘못하면 독선적인 지도자가 탄생하기 쉬운 사상인데. 생각해 보니 본래 역사의 조선이 해방되고 반으로 나뉜 이유가 독재자 때문이라 하였나?”

정약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핵심을 짚었으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을 다시 정리하였다.

최소한 마르크스가 정리할 올바른 사상에서 독선적인 지도자가 탄생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에 생선 가시가 박힌 것같이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약용은 박현상이라면 이 젊은 천재를 잘 통솔할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 일을 그에게 일임하였다.

* * *

마르크스가 방문할 때부터 정보를 입수하였다. 마르크스가 보내는 전보나 각종 소식 정도는 내 귀에 바로 들어왔다.

외부(外部)의 다른 인원들이 궁금히 생각하자 간단히 답하였다.

[카를 마르크스는 신 페인 독립 운동가 소속입니다. 이 친구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상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상대로 카를 마르크스는 대한제국에 와서 기사를 작성하고 각종 견문을 하며 사상적 활동을 벌이지 않았다. 애초에 30대에 불과한 애송이라 한창 사상을 정립할 시기이기도 하다.

“후작님, 손님이 당도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칠 무렵, 마르크스가 30분 일찍 방문하였다. 일개 기자를 내가 나서서 맞이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하인에게 적당히 말해주었다.

“의복을 정돈하고 방으로 안내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이보시오, 흙먼지가 묻어 있으니 좀 털어 내시오.”

창문 틈으로 슬쩍 살펴보니 마르크스는 내 방에 들어오기 전 덥수룩한 수염을 정돈하고 있었다. 현대에서 인문학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 나의 대 스승을 만나는 격이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마르크스를 빨갱이 대장이고 전 세계를 어지럽힌 악당으로 본다. 그런데 그 악당이 현대 인문학의 대부분 항목에 영향을 끼친 괴물이다.

공산주의 사상 정립은 그의 업적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근대 사회학의 거장이자 리얼리즘 예술, 문학 사조의 선구자이며 정치학에도 손을 뻗쳤다. 여기에 연구방법론을 완성하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수염에 너무 많은 먼지가 얽혀서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날 적에는 의복과 용모를 정리해야 하지 않은가. 편히 몸을 정돈하게.”

그가 없었다면 철학 발전은 한 50년 뒤처졌겠지. 사회학 발전은 좀 덜 해서 30년 정도 뒤처질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완성한 유물론이 사라지면 사학과는 엉망진창이 된다.

아마 2020년대에도 고대 국가의 이념과 가치관에 얽매어서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올바른 판단을 못 하리라. 그렇다고 내가 이론을 대신 정립할 방법도 없다.

나는 미래에서 온 사람으로 답을 알고 있을 뿐 이 시대에 성립된 이론의 공식을 모르고 있으니까.

잠시 뒤 마르크스가 수염을 다 다듬고 문을 노크하였다.

“박 후작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언제든지 들어오시오.”

나는 본래 역사에서 그의 머나먼 제자였다. 이제는 세상의 장난으로 새 스승이 될 마음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태연하게 말했다.

“참으로 반갑네. 나에 대해 취재 기사를 쓰려고 방문하였는가?”

“취재는 아니고 여쭙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특히 사상과 국가 운영 철학에 관련한 질문이 많군요.”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 저런 눈빛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는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운 것같이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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