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95화 (198/345)

195화

17장 5화 작별

카를 마르크스는 자신이 정리한 서적을 품속에서 꺼냈다. 그러고는 특유의 악필로 뒤범벅이 된 글을 확인하더니 잠시 머뭇거리다 말하였다.

“제 사상의 한 분파로 여유당 대감님의 여전론을 넣으려 합니다.”

“그 정도면 허용할 수 있지. 자네가 나와 논의할 때 내 여전론을 더욱 강화하여 아예 집단농장을 경영하는 방식도 고려하지 않았나?”

“다만 이 사상의 명칭이 문제입니다. 여유당 대감님께서는 의사로 명성이 높으신데 여유당 분파라 해도 되겠습니까?”

“다산 분파라 하게. 내 옛 별칭 중 하나가 다산이었네.”

이 시기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아호 다산이 마르크스에 의해 쓰이게 되었다. 감사 인사를 올린 마르크스는 저술하는 서적에 ‘Dasan’이라는 다섯 글자로 명칭을 기입하였다.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정약용은 기력이 쇠하여 좌식의자에 몸을 기댄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게 내 선물일세. 이제 여유당으로 퍼져나갈 내 호 가운데 철학이나 사상과 관련된 호는 모두 다산으로 칭하라 할 것이라네. 그리 큰 선물은 아니지 않나?”

“아주 크나큰 선물입니다.”

“그렇게 보니 아주 고맙네. 예전에 사용하던 호를 다시 꺼내서 쓰니 별문제도 없겠어.”

정약용이 남겨준 선물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정약용은 현대에 다산 정약용으로 불리는 것과 달리 훗날이 되면 더 명성이 높은 호인 여유당 정약용으로 불리리라.

그런 상황에서 철학이나 사상과 관련된 호는 굳이 다산으로 고치게 한 것이다. 이는 현대인인 우리를 배려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잠시 감동하는 사이 다른 손님들이 다가왔다. 이후 저녁 해가 질 무렵이 되고 모기가 들끓기 시작하자 첫날의 생일잔치가 끝났다.

“모두 숙소로 돌아가서 쉬십시오!”

“여기서 토론을 끝낼 이유가 있나. 대사관에 가서 논의를 더 하자고.”

다음 날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동양학에 관심을 보여서 찾아왔다고 소개한 이 교수는 정약용이 남겨둔 오점 중 하나를 짚어나갔다.

“저는 동양학을 탐독하며 여러 서적을 읽었습니다. 개중에 여유당 대감의 목민심서라는 서적을 읽고 극히 감동하여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떠한 구절을 읽고 감동하였소?”

“목민심서의 변등(辨等 - 등급을 분별하다) 관련 구절입니다. 거기서는 옛 조선의 법률이 변하여 본래대로 돌리고 노비를 더 늘려야 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정약용의 근본은 성리학자이다. 그의 사상 근본에는 각 계급이 명확히 분별 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과정에서 결국 일천즉천, 부모 중 하나만 노비여도 자식이 대대손손 노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러한 항목을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취급하여 무시하거나 옛 실수로 받아들였다. 반면 이 미국 교수는 이 내용에 심취한 듯이 열정적으로 말하였다.

“지금 미국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검둥이를 해방하여 남부 일대의 농장을 고사시키려는 악독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요! 한 방울의 피만 섞여도 검둥이는 영원히 검둥이입니다!”

정약용은 이 광기에 새하얗게 질려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저술할 당시에는 노비 제도에 대한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였으리라.

반면 인종차별과 노예제도에 심취한 미국 남부 꼴통들에게는 동방의 진리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목민심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라 딱히 반박도 못 하였다.

“대한제국은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은 과오를 해소하였습니다. 반면 열등한 인종인 흑인은 더 우월한 백인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내가 나설 차례였다. 생일잔치에 말 그대로 정약용의 오점을 끄집어내 퍼트리는 꼴을 보느니 예의를 어기고 입을 닥치게 할 생각이다.

“잠시만! 그런 내용은 이 자리에서 말 할 사항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 후작님은 여유당 대감을 대부로 모시고 있는 분 아닙니까? 물론 대한제국에서는 노예를 모두 해방하였으나 이는 같은 민족이어서 가능! 우억!”

그 순간 일준이가 글러브를 낀 채 달려와 훅을 한 대 날렸다. 상대가 쓰러지자 머리채를 잡고 주먹을 들이대며 으르렁거리며 말하였다.

“야 이 미친놈아! 내년 국립이학대학 입학고사에 흑인이 셋이나 원서를 냈는데 열등한 인종? 네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쳐서 영원히 열등하게 만들어주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썰물처럼 가라앉았다. 정약용은 손짓을 하여 일준이를 제지하고는 어설프게 변명하듯 답변을 하였다.

“당시에는 나라가 혼란하고 곳곳에 변란이 도사리는 시대라 강인한 정책을 추구하였네. 후일이 되어 나라가 평온해지니 그러한 정책이 필요가 없었을 뿐이고.”

“미국은 지금 혼란한 상황입니다. 그러하면 옳은 말 아닙니까?”

“아닐세. 목민심서는 삼십 년 전에 저술한 서적이며 세월이 흐르고 내 생각도 변모하였지. 결국 노비가 많을수록 나라가 변란에 취약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네.”

과거의 오점이 드러난 정약용은 이를 억지로 봉합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목민심서를 모조리 불태우고 싶은 심정이리라.

답변을 들은 교수는 투덜거리며 일준이를 노려보다 돌아갔다. 정약용은 기력이 급격히 쇠하여 머리를 움켜쥐고 말하였다.

“이러다가 흑인을 노예로 다루는 이들이 목민심서를 자서전으로 삼을지도 모르겠군.”

“서적의 일부 글귀에 심취하는 놈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부류이지요. 세상에서 두 번째로 무서운 자는 책 한 부(部)만 읽은 이들이고 가장 무서운 자는 한 권만 읽은 놈입니다.”

목민심서를 모두 읽었다면 흑인 노예를 사람답게 대접은 할 것이다. 채찍 대신 말로 윽박지르고 적당한 봉급을 주어 면천의 기회를 마련하는 방식의 대접 말이다.

애초에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라는 방침이 목민심서의 핵심이다.

난 이렇게 받아넘길 수 있으나 정약용은 표정이 뒤틀린 채 덤덤하게 말하였다.

“예전에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었지. 글이 수백 년 동안 전해져 안목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글이어야 한다고.”

정약용은 자신의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를 되새기며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단순한 글귀마저도 훗날 조리돌림을 당할 것을 염려해야 하거늘 그저 세태만 생각하며 과감한 주장을 늘어놓았지. 이는 내 과오가 아닌가.”

그는 울적한 듯이 움츠려 있다가 다음 손님의 인사를 받고 마음이 풀렸다.

“여유당 대감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프로이센에서 방문한 사람인데 재미있는 물건을 하나 보여드리려 합니다.”

“재미있는 물건이라? 혹시 고산자(古山子 - 김정호의 호)와 관련된 일이오?”

“바로 보셨습니다. 저희 프로이센에서는 전쟁 기교의 근본에 여유당 대감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리학 서적 덕분에 기록과 지리를 결합할 수 있더군요.”

정약용에게 안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도 있으나 이렇게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고증적 측면으로 접근한 정약용의 서적 아방강역고는 이런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올렸다. 인사를 올리고 돌아간 사람들은 당연히 서로 토론을 하면서 학문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종의 기원이 잘못된 근거는 곤충이야! 내가 전에 대모벌을 관찰한 적이 있는데 거미집을 마구 드나들며 거미를 사냥하더군!”

“그러하면 곤충학자 있나? 혹시 레옹 뒤프르의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

“세상에 어떠한 벌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이는 다 주님이 창조한 생물이어서 가능한 일이라니까!”

젊은 학자건 나이가 많은 학자건 정약용의 앞에서 가급적 격식을 지키며 여러 분야에 대해 논하였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종의 기원이나 여러 철학적 담론도 많이 오갔다.

“이제는 여유당이 아닌 다산 철학이라 부르라 했지. 아무튼 다산 철학에 의거하면 각지의 행정체계를 통폐합하라 했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은 한 일이지. 자네 고향인 피에몬테의 지주들은 절대 반대할 것 같지만.”

“뭐? 지금 우리 피에몬테 사람을 우습게 보나? 글러브 끼고 링 위로 따라와!”

간혹 저렇게 선을 넘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링 위에서 권투를 신나게 즐기고 한쪽이 나가떨어지거나 둘 다 지쳐서 일준이의 판정에 승복하였고.

정약용은 이 광경을 보면서 한없이 즐거운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삼 일 내내 거행된 생일잔치도 마침내 막을 내렸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려 하여 시기도 딱 좋았다. 정약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인사를 올리고 감사를 표시하였다.

“제 욕심을 받아들여 주신 여러분 덕분에 생일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행사를 거행하면 어떠할까 하는데 혹여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내년에도 학회를 한 차례 거행합시다!”

“어허! 오고 가는 데 다섯 달이 걸리는데 매년 할 수는 없잖소!”

“그러하면 사 년 주기는 어떠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4년 주기로 대한제국에 모이기로 하였다. 잘만 하면 기술박람회를 열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이라 정약용도 이에 동의하며 말하였다.

“좋습니다. 다음 모임에 제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다음 모임에는 아예 논문이나 연구 기자재를 준비하자는 말까지 하였다. 이들이 각자 숙소로 돌아가자 정약용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내가 조금 더 오래 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야 옛 과오를 고칠 수 있으며 새로운 학문을 익힐 수 있지 않겠는가.”

“욕심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앞으로 사 년 뒤에는 아예 행사장을 마련함이 어떠합니까?”

“그거참 좋은 생각이로군. 그러하면 며칠 정도는 쉬어야 할 것 같군.”

혹시나 정약용이 생일을 마치자마자 쓰러질지도 몰라 염려하였다. 이런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정리하였다.

자신의 저서를 한 번씩 탐독하고 수정 사항을 적어나갔으며 이를 공표하기까지 하였다.

보름 동안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여 안심하고 있었는데 급보가 들려왔다.

“부친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시네.”

아마 정약용을 움직인 기력은 저서를 수정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으리라.

내가 서둘러 찾아가자 정약용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이 새하얀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박현상 자네는 왜 왔는가. 나라의 일이 중한데 왜 이 늙은이를 본단 말인가.”

“다산 선생님께서 위중하신 상황인데 이 어찌 가만히 둘 수 있겠습니까!”

도성의 의원은 물론 잠시 만주로 도피한 로버트 리스턴도 돌아와 정약용을 진찰하였다. 기력을 북돋기 위한 침이나 탕약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어. 오장육부의 기운이 모두 쇠하였으니 이제는 가망이 없지.”

우리는 구석에 서 있으며 정약용의 자식들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쾌유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벼락같은 말에 정학연이 달려들어 손을 잡고 말하였다.

“아버지! 세상에는 즐거운 것이 넘쳐난다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형님의 말이 옳습니다! 사 년 뒤에 찾아올 학자들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학자들이 있었지. 조금이라도 더 배울…… 필요가 있겠구나.”

우리 모두는 정약용의 죽음을 예감하였다. 조금이라도 정약용의 죽음을 늦추기 위하여 모두가 돌아가며 그에게 새로운 학문을 알려주었다.

“……인하여 지질학적 특성을 고려한 결과 한반도에는 거대한 용암의 흔적이 있다 합니다.”

“좋은 말이로구나. 계속 읽도록 하여라.”

나도 일준이도 근무가 끝나자마자 정약용의 집으로 찾아와 이 자리에 동참하였다.

서양의 철학서적을 읽어나가다 정약용이 숨을 잠시 멈추어 의원을 부르려 하였다. 다시 숨을 내쉰 정약용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내가 말하기를 독촉하였다.

“어서 읽어나가게. 사람이 내일 죽더라도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그…… 사빈락사(스피노자) 라는 사람이 있었던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하면 계속 서적을 읽어나가겠습니다.”

마침내 정약용은 제대로 답하지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하게 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덤덤히 죽음을 기다리는 가운데 정약용이 작은 목소리로 유언을 남겼다.

“학연에게 말하겠다. 죽거든 삼년상을 줄여서 치르고…… 고향의 언덕에 묻어라.”

“삼년상을 꼭 하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그 시간 동안 새 품종을 연구, 연구해라.”

하나하나 유언을 전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이제 눈조차 뜨지 못하는 정약용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자 억지로 입술을 뒤틀며 말하였다.

“그간 재미있었네. 준 게 없어서 아쉬울 뿐이야.”

“너무나 많은 은혜를 주셔서 감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은혜는 모…… 두 나라를 위해 주어서 되었네. 앞으로 잘하고 나중에도 잘하게.”

다음으로 일준이 차례였다. 녀석은 울먹거리며 무릎을 꿇었고 정약용은 일준이를 위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네에게 많이 배웠지. 나도 많이…… 많이는 못 가르쳤군.”

“다산 선생님 덕분에 제가 학자로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이보다 큰 배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하면 더 많은 지식, 지식 대신 양심을 가…… 가르치게.”

일준이 다음 순서는 손자들이었다.

유언을 남긴 다음 날 아예 의식을 잃은 정약용은 완전히 혼수상태에 빠졌다.

마침내 삼 일이 지난 양력 8월 30일, 정약용은 숨을 거두었다.

일주일 내내 염습과 장례가 진행되었다. 대한제국 이곳저곳에 퍼져나간 방문객들은 다시 한양으로 모여 장례식에 참가하였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수많은 인파가 빗속에서 정약용을 추모하는 행렬에 합류하였다. 마침내 남양주에 시신이 운구되었고 입관을 진행하며 조정에서 시호(諡號)를 하사하였다.

“여유당의 공은 크고도 넘치며 젊은 시절에는 정조 선황제의 치세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 다시 태상황의 치세에서 모범을 보였으니 만고의 충신이로다.”

성균관의 후신 국립학부(學部)대학의 총장을 역임하는 박규수가 평가를 내렸다. 이 동안 정약용의 관 위로 흙이 한 삽씩 끼얹어졌다.

“이전의 의사를 받아들여 정약용에게 봉작(封爵)을 행하지는 아니하나 시호로 성명(誠明 - 지성스럽고 명철함)을 내리겠노라.”

마지막으로 정약용의 자식들, 그리고 양아들로 취급받는 일준이와 내가 비석을 옮겨서 묘 앞에 세웠다.

모든 일을 마치고 정약용의 고향 집으로 돌아오자 울컥한 감정이 샘솟았다.

20년 전 조선시대로 떨어졌을 때와 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건물을 새로 지었으나 정약용은 옛 흔적을 고의로 남겨두었다.

혹시 몰라 창고를 확인해 보았다. 그곳에는 열수환을 담아두었던 됫박을 정약용이 보관해 두었다.

의금부에 하옥될 때 박찬 문은 일부러 나무를 덧대어 보수해 두었다. 마치 우리가 언제라도 돌아와 보라는 것 같았다.

나도 일준이도 괜히 비를 맞으며 마당에 서서 이 모든 풍경을 지켜보았다. 한동안 울적한 기분을 해소하고 있는데 외부 소속 관리가 나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청나라 황제 도광제가 닷새 전 숨을 거두었습니다. 폐하께서 모든 일이 끝난 뒤 소식을 전하라 명하셔서 이제야 알려드립니다.”

“그래? 안타깝게 되었어.”

정약용의 죽음과 딱 이틀 차이이다. 아마 도광제의 죽음이 전해져도 전 세계는 물론 대한제국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리라.

대신 뛰어난 학자 정약용의 죽음이 더 큰 파장을 불러오겠지. 점차 비가 그치고 개어가는 하늘을 보면서 정약용의 유언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잘하고 나중에도 잘하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지.”

정약용의 영혼이 있다면 내가 추모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빨리 움직이라 할 것이다.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급격히 그친 것도 이런 뜻이 담겨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정약용과 함께 한 저택에서 묘를 향해 절을 올려 작별 인사를 하였다.

도광제 이후 즉위할 황제, 아마 함풍제가 될 황제가 어떤 상황일지부터 분석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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