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25화 (319/345)

225화

19장 6화 페니실린(1)

리프란디를 통해 취합한 정보를 정리하여 효명제에게 보고를 실시했다. 한창 새로운 공업단지에 대해 논의하던 효명제는 내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하면 연해주를 얻어내는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구나. 일대에서 신형 병기를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 좋을 것 같다니?”

“신의 생각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장소이옵니다. 부디 새로운 공장을 마련해 주시옵소서.”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전화에 휩쓸린 백성들의 민심을 다독이는 일이다.”

생각해 보니 쌍성자 일대의 백성들은 이 나라와 연관이 없이 전쟁에 휩쓸린 사람들이다. 이들이 정신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해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으리라.

이건 내가 너무 앞서나간 것이다.

효명제는 내 표정을 살펴보고는 방안을 마련해 주었다.

“아바마마께서 근래에 들어 각지의 백성들을 위무하고 있더구나. 그 가운데 동티단이라는 왈패들을 거느리고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신다.”

“동티단이라 하셨사옵니까?”

“요동에 치안을 유지한다고 삿된 일을 하는 족속이 있어서 이들을 교화한다 하시더구나.”

동티단은 나도 알고 있으나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이들은 자발적인 치안대이자 법을 넘나드는 민중들의 모임이었다.

요동 일대에 아편이 유입될 위험만 아니라면 이들을 당장 쓸어버리고도 남았지.

효명제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바마마께서는 동티단이 의기(意氣)를 가지고 분연히 일어난 백성이라 보고 계신다. 아예 내탕금을 털어내어 이들에게 단복을 지급하고 각지에 파견하여 여러 일을 돕고 있지.”

“여러 일이라 하였으면 혹여나 군인을 대신하여 치안을…….”

“무슨 말이더냐. 수재가 일어난 곳에 방문하여 피해를 복구하고 흉년이 생긴 곳에 가서 농토를 새로 만들고 하더구나. 아예 계급을 마련하고 직책도 설정하였다던가?”

순간 순조에게 일 년 내내 시달릴 동티단이 불쌍해졌다. 나도 순조 아래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 아는데 순조의 눈치는 중요한 순간에만 있고 다른 시기에는 하나도 없다.

자신의 감정이 동요되거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좋은 판단력을 보여준다. 반면 나머지 상황에서는 대충 지나가듯 자기 기분에 따라서 일을 처리한다.

말 그대로 최악의 유형, 기분파 상사이다. 태상황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고 탈퇴는 생각조차 못 한다. 동티단 모두가 순조의 기분에 따라 죽어라 구르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바마마께 간청하여 동티단과 함께 쌍성자를 위무(慰撫)하도록 하겠다. 사소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거라.”

효명제는 앓던 이를 뽑아낸 듯이 후련하게 말했다. 애초에 쌍성자로 이주한 백성들은 순조의 명으로 이주한 이들이라 결자해지(結者解之)와 가까운 행위이기도 하였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끔찍한 경험을 할 동티단이 더욱 불쌍해졌다.

“동티단이 졸지에 수천 리 길을 방황하다니 애처로운 일이옵나이다.”

“행적을 보아하니 그 정도 일은 해야 제대로 반성할 놈들이다.”

보고가 끝나고 자료를 일준이에게 가져갔다. 녀석은 소규모 연구실에서 이제 제대로 된 연구실을 구성하고 설파제를 대량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 자료를 확인한 일준이는 구석으로 가더니 짜증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넌 내가 무슨 귀 뜯어 먹힌 파란색 고양이 로봇인 줄 아냐? 나도 사람이고 한계가 있다.”

“조금만 영국과 거래를 트면 어떨까?”

“개틀링 건 관련 자료를 보내면 암스트롱 본인이 오기라도 하냐? 이번에 신형 전함 개발을 완료한 이점버드 브루넬을 영국으로 복귀시켜서 기술자를 교환하자고.”

쉽게 말해 기술자를 교환하라는 말이다. 이번 문무대왕급 전함은 이점버드 브루넬이 절반, 나머지는 휘하 대한제국 연구진이 절반을 설계하였다.

이 정도면 이점버드 브루넬의 자문만 들어도 된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이다.

일준이는 덜그럭거리는 기계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다시금 말했다.

“암스트롱이 오면 또 일감이 늘어겠네. 아무튼 오고 나서 연구해 볼게.”

“그나저나 저 덜그럭거리는 기계는 뭐냐? 또 새로운 걸 만들었어?”

기계에는 거의 허벅지 두께의 금속 원통이 천천히 돌아가며 잘그락 소리를 내었다. 입구에는 뭔가를 주입할 수 있는 마개가 있는 독특한 형태이고.

자명종이 울리자 연구원은 기계로 다가가 새로운 통으로 교체하였다. 이후 잘그락거리는 통의 마개를 열고 물을 많이 주입하였다.

이 기묘한 기계는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일준이는 내 시선을 확인하고는 바로 답해주었다.

“이게 뭐냐고? 볼 밀링 암모니아 제조법. 가까스로 재현에 성공했다.”

“암모니아 제조?”

“설파제 제조에는 순도가 높은 암모니아가 필요하거든. 하버-보슈 공정은 꿈도 못 꾸는 시대라서 좀 우회해 봤다.”

지금 뭔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다가 암모니아라는 네 글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암모니아를 생산할 수 있다면 비싼 가격에 구아노를 수입할 필요도 없고 인광석으로 충분하다.

순간 기계를 가리키며 일준이에게 뭐라 말하려 했는데 녀석의 말이 더 빨랐다.

“볼 밀링은 순도가 높은 암모니아를 얻을 수 있지 많은 양의 암모니아를 얻을 수 있는 공정이 아니야. 저거 이상적으로 일 년 내내 돌려도 암모니아 십 톤 생산할까 말까다.”

“아…… 그러면 하버 보슈라는 생산 방법은 할 수 있어?”

“날 죽이쇼. 볼 밀링 공정도 베어링이 깨져나가서 생산 수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인데 이 수준의 야금술로 하버 보슈 공정?”

일준이도 나름 기술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나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 기대하느니 녀석의 제자들이 만들 물건을 기대해 봐야지.

일준이 휘하의 연구진은 설파제를 한 단계씩 합성하며 가루약으로 만들어내 차곡차곡 비축하였다.

그러고 보면 지금쯤 일준이의 흉계에 휩쓸려 페니실린을 만들고 있을 영국 연구진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마 지금쯤이면 초기형 페니실린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 * *

영국 왕립협회의 화학자, 생물학자들 대다수는 새로운 약물을 추출해내기 위한 실험에 돌입하였다. 이들은 가장 먼저 모든 종류의 푸른곰팡이를 수집하여 분석했다.

이 작업의 진두지휘는 이하응과 함께 감자 역병 방제에 참가했던 식물학자이자 균류학자 토마스 테일러(Thomas Taylor)의 몫이었다.

본래 아일랜드 대기근을 극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 목숨을 잃은 그는 이하응 덕분에 역사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었다.

그는 샘플 수집 명령부터 내렸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료 수집입니다. 수집할 수 있는 모든 푸른곰팡이를 수집하십시오.”

당연히 영국 내부에서 채집된 푸른곰팡이 샘플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 북아메리카, 인도, 그리고 대한제국 박람회에서 가져온 메주의 푸른곰팡이까지 번식시켰다.

그 수많은 곰팡이는 포자 단계에서 현미경으로 분류되어 샬레에서 대량으로 배양되었다. 이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조일준의 두 가지 발명품이었다.

“샬레와 정온 배양기가 없었다면 이 끔찍한 과정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토마스 테일러는 이하응과 함께 감자 역병을 찾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작은 접시에 감자 토막을 담고 역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를 배양하였다.

당시에는 보존 실패나 시료 오염으로 여러 문제를 겪어 배양에 실패하였다. 그 기억을 떠올린 찰스 테일러는 균이 배양되고 있는 샬레를 확인하였다.

동양에서 수입한 해조류의 분말, 한천(寒天)에 필요 물질을 넣고 일정한 환경을 유지하면 쉽고 안정적으로 세균을 번식시킬 수 있었다.

기존에는 균류 관련 교수들이나 사용하던 실험기구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곰팡이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떼어내 샬레에 넣은 연구진은 저려오는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누가 아니라 합니까. 아마 닐슨 조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실험에 돌입했겠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유리하지 않나? 닐슨이 아무리 천재라도 한 사람이고 우리는 마흔 명이지. 모두 한 몸이 되어서 자료를 분석하고 있지 않나.”

왕립협회에서 석 달 동안 40여 종의 푸른곰팡이가 분류되어 배양 작업을 거쳤다. 페니실린 생산이라는 거대한 길 가운데 첫걸음을 떼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다시금 실험에 돌입하였다. 감염이 일어난 환자의 상처에서 추출한 세균을 배양한 샬레에 푸른곰팡이를 투입시켰다.

“삼 번 배양 균주와 교차 실험입니다. 십사 번 샘플 효과 없음. 십오 번 샘플 효과 미미…….”

“이십칠 번 샘플은 효과가 탁월합니다!”

“사 번 배양 균주, 초록색 군락을 형성한 세균은 곰팡이가 역으로 사멸하였습니다!”

400개의 실험 결과를 모두 확인한 토마스 테일러는 늙은 나이로 인해 침침해져 가는 눈을 부비고 곱슬머리를 긁어댔다. 고작 다섯 종류의 푸른곰팡이가 약효를 보였다.

하나같이 배양이 까다롭다 못해 극도로 힘든 종류였다. 샬레의 뚜껑을 주기적으로 여닫아 공기를 공급하지 않으면 모조리 전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나은 곰팡이를 얻어낼 수 없었다. 결국 더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 힘든 상황이라 여기서 만족하기로 하고 연구를 종료하였다.

“이 다섯 종류를 계속 배양하고 화학자들을 통해 추출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세균 가운데 사 번 배양 균주는 멀쩡한데 어떻게 된 걸까요?”

“나도 잘 모르겠군. 아마 이 배양 균주가 천적이 아닐까?”

아예 연구실 구석의 안락의자에 앉은 토마스 테일러는 이 약을 대한제국보다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고는 달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였다.

“곰팡이의 유효물질을 추출하는 과정에 성공해야지. 이걸 투약하는 것도 문제고.”

신약 출시일인 1855년 1월 1일까지 앞으로 8개월조차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량으로 배양된 곰팡이 샘플을 받은 화학자들은 즉각 곰팡이 추가 배양과 추출에 돌입하였다.

이 과정의 지휘자는 존 쿠퍼, 수많은 기업의 화학적 문제를 해결한 과학자였다.

그는 토마스 테일러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직관적인 관측에 돌입하였다.

“새로운 물질의 정체는 수용성이 확실해. 연구 과정에서 배지 사이를 정제 우지(牛脂 - 소기름)로 나누어 두었을 때 반대편에는 아무 효과가 없더군.”

“그렇다면 푸른곰팡이의 유효물질은 활성탄으로 추출하면 될 것 같군요.”

“정답이야. 닐슨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탁월하다니까.”

다시 까마득한 추출작업이 시작되었다. 배지를 갈아서 활성탄에 물질을 흡착시키고 다시 용출시킨다. 이 액체가 오염되지 않도록 다른 실험실로 옮겨 추가 작업에 들어갔다.

“이 액체를 모조리 사용할 수는 없지 않나. 색층…… 크로마토그래피를 동원하여 분리해 보자.”

“그걸로 될까 궁금한데요. 각 물질을 분화시키는 과정이 너무 험난하지 않습니까?”

“단순히 사용해도 잉크의 색을 분리하고 잘만 조절하면 식물 세포의 내부 물질(엽록소)마저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잖나. 고작 곰팡이의 생산물을 분리하지 못하려고.”

이 과정에만 수천 장의 종이가 소모되었다. 존 쿠퍼는 실험 방법을 바꿔가며 크로마토그래피를 반복하였고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었다.

“RA-24 샬레의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거 보라고! 내가 뭐라 했나!”

까마득한 과정을 통해 추출된 페니실린이 약효를 드러냈다. 포도상 구균이 잔뜩 배양된 샬레에 몇 방울을 떨어트리고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세균이 대다수 사멸하였다.

“추출 과정에 성공했군. 이제 푸른곰팡이를 대량으로 배양하면 된다!”

연구진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샬레를 돌려보았다. 대한제국 박람회에 참가했던 과학자는 샬레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극찬하였다.

“닐슨이 만든 것보다 성능이 좋아! 닐슨이 참고 자료로 보여준 샬레는 사십 퍼센트 정도만 세균이 사멸했는데 이 샬레는 구십 퍼센트가 넘는다고!”

“면적으로 따지면 두 배 이상의 성능 아니야!”

“두 배의 성능은 무슨! 농축할수록 성능이 올라가겠지!”

모두가 고무적인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한 과학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휴지처럼 마구잡이로 쓰인 크로마토그래피용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되지요?”

존 쿠퍼는 기업을 경영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들인 돈이 얼마나 되는지 간단히 계산할 수 있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과학자와 기술자 급료가 육만 파운드에 재료 소모가 대충 사십만 파운드쯤 되는군.”

“연구비는 그렇다 치고 지금 실험한 양의 열 배를 투약한다 치면 그 가격은요?”

“어…… 아마 일 회 투약분량 당 백 파운드? 원가로 따졌을 때 기준이지.”

실험실이 정적에 잠겼다. 공장에서 어느 정도 근무한 근로자가 일 년 내내 벌어들인 연봉을 모조리 털어 넣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물론 존 쿠퍼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는 새하얗게 질린 연구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번 만들어낸 약이 사라지기라도 하나? 대량 생산 공정을 도입하면 더 많은 약을 만들어서 보관할 수 있는데 뭘 망설이나?”

“그러면 한 번 투약하는데 십 파운드 아래로 내릴 수 있겠군요!”

“십 파운드는! 닐슨이 일 파운드(약 25냥)에 판매한다 했는데 그 가격을 생각해 보게!”

연구진들은 실험실을 뒤흔드는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 독한 실험용 알코올을 마시고 알몸으로 춤을 추고 흄 후드 내부로 기어들어 가 환기구로 소리를 지르는 미치광이 같은 광경이었다.

이후 일주일의 휴가를 마치고 연구원들이 다시 출근하였다. 연구진 중 한 명은 뚜껑이 덮인 샬레를 다시 잠식하기 시작한 포도상 구균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샬레 뚜껑에 적힌 각인은 RA-24, 분명 성공한 약물의 샬레인데?”

존 쿠퍼가 추출한 페니실린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분해되었다. 이후 며칠이 지날 무렵 포도상 구균이 재차 활동하여 페니실린이 사라진 샬레를 차지하였다.

페니실린이 보관이 매우 까다로운 물질이며 반감기가 매우 짧다는 증거였다.

잠시 생각하던 연구원은 당시 광란의 파티를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샬레를 처분했다.

“뭐 어때. 미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 샬레 뚜껑이 섞인 것 같은데.”

다시 실험이 재개되었다. 고의로 상처를 감염시킨 실험쥐가 약물의 투여 대상이 되었고 대부분 기적 같은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이 시점에서 신약의 이름을 푸른곰팡이(Penicillium)의 학명을 따서 페니실린(penicillin)이라 명명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단계였다.

“드디어 신약의 투여를 실시하게 되었네. 남은 것은 모두 자네의 손에 달렸지.”

토마스 테일러와 존 쿠퍼는 눈앞에 선 젊은 의사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의 이름은 존 스노우, 빅토리아 여왕의 출산 당시 마취에 성공하여 출세가도를 달린 의사였다.

이제는 아서 왕자의 혈우병을 전담하는 의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여러 통계자료를 확인하는 미소를 지으며 실험에 동참할 의지를 불태우며 답했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제가 어린 시절 보아온 것이 패혈증으로 죽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패혈증에 특효약이 생겨나다니 믿기지 않는군요.”

“예상대로라면 닐슨 조가 만들어낸 약보다 좋은 물건이야. 투약하고 결과를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각지의 패혈증 환자를 소집하여 투약 실험을 실시하겠습니다.”

며칠 뒤 런던 인근에서 패혈증으로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옮겨졌다. 존 스노우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주사기에 이를 각기 다른 양을 주입하며 환자에게 설명을 하였다.

“여러분에게 주입할 약물은 어제 생산된 시험용 약물입니다. 각기 분량을 다르게 투여할 것이니 혹시나 이상 반응이 일어나면 즉각 말씀해 주시지요.”

“지금도 죽을 것 같은데 약이라도 맞고 죽겠습니다.”

존 스노우는 팔뚝 정맥에 페니실린 주사를 놓고 상태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6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페니실린이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였다.

“투여량이 삼십 밀리리터를 넘어가면 정말 패혈증이 진정되잖아?”

피부가 새파랗게 질리고 체온이 극도로 저하된 환자는 혈색을 되찾고 체온이 상승했다. 반대로 폐렴으로 기침을 일으키고 체온이 지나치게 상승한 환자도 정상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페니실린의 양이었다. 각기 다른 양을 투여하였는데 10명의 환자 중 많은 양이 투여된 3명의 병세가 확실히 진정되었다.

존 스노우는 약물을 추가 공급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무렵 존 쿠퍼는 런던의 연구시설 부족으로 인해 북부의 맨체스터에 추가 배양시설을 마련했다.

맨체스터의 연구진은 정성껏 추출한 페니실린을 기차로 배송하기 전 하루를 묵혀두었다.

이후 런던에 도착하고 다시 하루 동안 상온에 노출된 페니실린이 존 스노우에게 도착했다.

“이제야 좀 더 많은 약물을 투여할 수 있겠군. 패혈증이 한결 나아질 거요.”

주사기에 담긴 페니실린은 두 종류였다. 어제 막 런던에서 생산되어 12시간이 지난 페니실린과 맨체스터에서 배송되어 생산 이후 72시간이 지나간 페니실린이었다.

둘 다 실온에서 보관된 페니실린은 각기 다른 환자에게 투여되었다.

몇 시간 뒤, 환자들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병이 잘 치료되던 환자들에게 고열이 발생했다고?”

새벽녘에 간호사의 보고를 듣고 일어난 존 스노우는 환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상태를 살폈다. 맨체스터에서 생산된 페니실린이 투여된 환자들이 하나같이 병세가 악화되었다.

이 소식은 즉각 존 쿠퍼에게 닿았고 그는 즉각 맨체스터로 향했다. 연구실 내부를 살펴본 존 쿠퍼는 화를 억눌러 참으며 연구진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맨체스터 연구실에서 보낸 약물이 불량이라 하더군. 어떻게 된 건가?”

“나흘 전에 보낸 약품 말입니까? 약품을 보내기 전에 실험도 거쳤는데요?

잘 정리된 실험 보고서와 증거 사진까지 있었다. 오히려 런던에서 추출한 페니실린보다 약효가 조금 우수한 것을 확인한 존 쿠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약효가 삼 일이 지나기도 전에 사라졌다는 말인가? 맥주도 닷새는 보존되는데 약물이 고작 삼 일만에 망가져?”

페니실린 최고의 약점인 보관 문제가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존 쿠퍼를 비롯한 연구진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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