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19장 7화 항생제 시대
대한제국에서 전 세계로 배송된 설파제는 초도 물량으로 40만 회 투약분에 달하였다. 또한 각국 의사 협회를 통해 사용법을 숙지시켰다.
<설파제는 감염증, 패혈증과 화농을 비롯한 질환에 효과적인 약물입니다.>
<염증이 발생한 환자에게 1회 투약 분량 2알을 경구 투여하십시오.>
<피부 화농이 심각한 환자는 알코올이나 요오드팅크를 이용한 세척 후 분말 형태로 가공하여 1회 투약 분량을 환부에 도포하십시오. 환부 면적에 따라 증량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적응을 위한 초기 물량을 미리 배송하였다. 판매 1개월 전 배송된 소량의 설파제에는 취급 주의에 대한 사항이 빼곡이 게재되어 있었다.
<과민 반응이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량을 투여하여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설파제의 유통기한은 2년입니다. 2년 이 지나면 약효가 감소하며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즉각 폐기하십시오.>
<설파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한 생물은 내성이 발생합니다. 확실한 양을 투여하고 무분별한 투여를 피해 주십시오.>
<향후 설파제의 특허 도입 및 생산 공정에 위 3개 사항을 모두 적용할 예정입니다.>
이 권고는 항생제 내성균의 발호와 무분별한 약물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각국의 의사들은 이 조치에 그럭저럭 만족하였다.
다음으로는 가격이 만족할 만한 요소였다. 10회 투약분량 기준 대한제국에서 20냥, 영국 기준으로 1파운드의 판매가격이 결정되었으며 실질적 판매가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의사협회는 100% 마진을 적용, 10회 투약분량 당 2파운드로 영국 내부 시세를 결정하였다. 한편 존 쿠퍼는 조일준이 보내온 답신을 읽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칠 년 전에 미리 실험을 해봤다고! 그럼 왜 공표를 안 해!”
시험용 설파제와 함께 동봉된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7년 전인 1844년경, 우연히 푸른곰팡이가 번식하여 아예 사멸해버린 샬레를 발견한 조일준은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연구에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초기 추출에는 성공하였으나 48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약효가 소멸하였지요. 대신 곰팡이를 수집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최소 1개월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물질을 배출하는 곰팡이가 존재할 겁니다. 이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조일준이 보낸 편지에는 엄연히 실험 기록이 존재하였다. 존 쿠퍼는 쿵쾅거리며 맥박이 진동하는 관자놀이를 억누르며 편지를 읽어나갔다.
<유사 물질을 탐구하던 중 최신 실험으로 발명한 홍인(紅燐 - 적색 불꽃) 염료를 시험하던 인부가 손의 감염증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에 착안하여 신물질을 연구하였고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존 쿠퍼는 아예 눈물을 흘려가며 편지를 고이 접다 바닥에 떨어트렸다. 조일준의 연구는 시작점이 같았으나 발상 자체에서 차이를 보였다.
“효과에만 몰두한 우리와 달리 그는 모든 사람에게 쓰일 수 있는 약물을 만들려 하였군.”
반대편 연구실에서는 이미 설파제의 효능에 대한 검증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존 쿠퍼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허탈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설파제는 섬세하게 보관할 필요가 없었다. 찬장에 보관해도 2년 동안 약효가 유지되며 이론상 5년까지 보관할 수 있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이후 다시금 존 스노우에 의해 설파제의 첫 실험이 실시되었다. 효과는 부족하여도 안정적인 양이 공급되는 설파제는 조금 느리게,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패혈증 환자를 치료하였다.
“이 약만 있으면 패혈증으로 죽는 사람이 사라질 것 같군.”
완치된 환자를 배웅한 존 스노우는 보고서를 의회에 정리해서 올렸다. 마침내 수많은 예산을 들이부은 의회에서 존 쿠퍼를 비롯한 연구진을 소환하여 청문회를 열었다.
“쿠퍼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한제국의 연구진이 만드는 약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팔십만 파운드가 넘는 예산을 소모하고도 이 꼴이라니요.”
“제 연구 방향 자체가 틀렸습니다. 저희 연구진은 대한제국이 만든 설파제가 아닌 효과가 더 나은 대신 보관이 까다로운 새로운 약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영국 정부는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태도로 연구진을 공격하였다. 이후 존 쿠퍼는 자신의 행위를 변호하기 위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연구 활동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분명히 약효를 지닌 약물을 추출해 내기 위해 예산을 사용하였으며 헛되이 쓰인 예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침내 청문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종료되었다.
“연구는 실패할 수도 있으며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여섯 가지 항목의 새로운 분석 및 실험 방법을 만들어 내셨더군요.”
“그렇습니다, 기존 과학적 방법을 개량하고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였습니다.”
“미래의 기술 발전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겠습니다.”
청문회 결과 페니실린의 대량 양산은 중단되었다. 응급 상황을 대비하여 런던의 연구시설 한 곳에서만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전부였다.
존 쿠퍼를 비롯한 연구진은 더 이상 페니실린을 연구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푸른곰팡이를 분석하는 작업만 진행하였다.
이후 1845년 1월 1일, 설파제가 영국에서 유통되었다.
가장 많은 설파제가 사용된 곳은 공장이었다. 증기기관으로 인한 화상, 각종 창상이나 자상을 비롯한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공장에 파견된 의사가 즉각 대처에 나섰다.
증기기관 파열로 팔뚝에 쇳조각이 박힌 환자는 제대로 된 마취도 없이 환부를 절개하자 게거품을 물고 기절하였다.
의사는 쇳조각을 뽑아내고 환부를 세척하며 공장장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깊숙한 상처가 나면 간혹 환부 감염으로 염증이 일어나지요. 그러면 환자가 앓다가 죽거나 아예 외팔이 신세가 됩니다.”
“익히 알고 있지. 그렇다고 로버트 리스턴의 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파제를 한번 투여해 보시겠습니까? 염증을 억제할 수 있다 하더군요.”
공장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투약을 결정하였다. 영국의 계속 개선되는 노동법에 의해 공장에서 부상자가 발생하면 4주일 동안 공장에서 비용을 제공해 부상을 치료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죽거나 불구가 되면 즉각 의회에서 보낸 감독관이 공장 가동을 정지하고 시찰 작업에 들어갔다. 이 경우 발생하는 손해는 수백 파운드가 가뿐히 넘어갔다.
공장장은 하루 입원비가 일 파운드가 넘어가는 리스턴의 병원 대신 설파제를 택하였다. 환부에 설파제를 투여하고 열흘 동안 설파제를 먹은 환자는 3주 만에 회복되었다.
다시 3주의 회복기간을 거친 환자는 팔의 힘을 되찾고 공장에 복귀하였다. 최초의 항생제는 이외에도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크림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나 기존 부상이 감염된 환자들이 목숨을 건졌다. 모든 국가에 판매한 설파제로 인하여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병사들이 이 혜택을 누렸다.
러시아 제국은 설파제를 ‘예비 물자’로 분류하여 장교 이상의 직위만 접종을 허가하였다. 이는 러시아 제국에서는 아주 당연한 처사였다.
* * *
감염을 일으킨 설파제를 사용하는 가운데 의외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다. 한 신사는 말을 타다 떨어진 상처로 인해 패혈증에 걸리고 병원에 이송되었다.
의사는 초기 과민 반응 검사를 위해 신사의 몸에 약간의 설파제를 투여하였다. 그리고 신사의 온몸에 시뻘건 두드러기가 피어오르며 발진이 일어났다.
“선생님께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설파제를 써서는 안 되는 몸입니다.”
“지금 뭐라 했나? 내 친구들도 설파제를 투여받아 병을 치유하는데 나는 안 된다고?”
의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설명서를 가리키며 신사를 설득하였다.
“간혹 설파제 과민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대로 투여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합니다.”
“과민 반응이라고? 이 반점은 매독 반점인데?”
“매독 반점과 다른 형태가 아닙니까. 대신 페니실린이라도 투여하시죠.”
“미칠 노릇이군. 고작 이 파운드짜리 약물을 못 써서 한 번 투약에 백 파운드짜리 약물을 쓰다니.”
신사는 어쩔 수 없이 존 스노우에게 연락을 넣었다. 여전히 소량이 생산되고 있는 페니실린이 간신히 쓰임새를 찾았다.
이후 6일이 지나자 신사의 패혈증은 완치되었다. 신사는 완치 판정을 받고는 몸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패혈증이 치료된 것은 당연한데 매독도 같이 사라졌잖아?”
“매독이 치료되었다니요?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조일준이 만들어낸 설파제는 대부분의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포도상 구균을 목표로 만들어낸 화합물이었다.
이로 인하여 감염 및 화농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대신 다른 세균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반면 이 시대의 정제되지 않은 페니실린은 특정한 목표가 없이 마구잡이로 약효를 발휘하였다.
여기에는 매독균 또한 공격 대상이 되었다. 신사는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확인하고는 존 스노우에게 말했다.
“정말 사라졌군. 내 말이 거짓말 같나?”
신사는 아예 웃통을 벗고 검사를 받았다. 패혈증으로 병원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의 몸에는 매독 특유의 발진과 물집, 그리고 관절염이 빈발하고 있었다.
그런 매독 증상은 대부분 사멸하였다. 6일에 걸쳐 막대한 양의 페니실린이 주입된 덕분에 그의 몸에 존재하던 매독균이 완전히 소멸하였다.
존 스노우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하여 계속 정보를 캐물었다.
그의 상식과 이 시대의 의술을 생각하면 매독은 수은 증기를 쬐어야 간신히 억제할 수 있는 병이었다.
“매독 잠복기로 진행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증상이 시작되고 얼마나 되셨습니까?”
“매독 특유의 발진이 생기고 넉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후 상세한 문진이 계속되었다. 신사가 대놓고 귀찮아하기 시작할 무렵, 존 스노우는 신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매독이 페니실린에 의해 치료되었을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잠복기에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 일 년 정도 상태를 보아가며 성관계를 자제하십시오.”
“일단 알겠네. 내가 보기에는 모두 치유된 것 같은데 의사 말을 믿어야지.”
신사는 매독으로 인한 탈모가 치료되어 막 머리카락이 자라난 자리를 매만지고는 병원 밖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고뇌하던 존 스노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
“페니실린에 쓰임새가 생겨났어! 매독에 걸린 부유층은 천 파운드도 거리낌 없이 낸다고!”
다음 날부터 런던의 페니실린 생산 공정이 다시 가동되었다. 빈민가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극심한 매독 환자 가운데 다섯 명이 병원으로 옮겨져 페니실린 투여 대상이 되었다.
“이 환자는 아예 혼수상태로군, 차라리 잘된 일이니 첫 투여대상으로 삼지.”
온몸의 피부가 짓무르다 못해 무너져가는 환자가 첫 투약 대상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환자의 상세를 확인한 존 스노우는 환자의 정보를 확인해 알려주었다.
“환자의 이름은 에릭 오웰, 나이는 삼십이 세의 남성이며 한때 비료공장에서 근무했던 근로자입니다. 처음으로 매독이 걸린 시기는 칠 년 전. 소변조차 보기 힘들 정도의 중증입니다.”
“이런 환자는 치료 대신 관을 먼저 짜야 할 수준 아닙니까?”
“관을 짜줄 사람이 없지요. 아내는 매독에 걸려서 죽고 자식도 임신 중 매독에 걸려 사산하였습니다.”
간혹 매독이 치료된 사람도 있으나 이 정도로 악화된 사람이 치료된 적은 없었다. 심각한 표정의 연구진과 달리 존 스노우는 환자에게 4시간마다 페니실린을 투여했다.
효과가 불안정한 페니실린을 지속적으로, 막대한 양을 투입하는 치료법이었다. 환자에게 페니실린이 투여되고 사흘이 지나자 피부의 농양이 급격히 사라졌다.
의식조차 찾지 못하고 묽은 죽만 마시던 환자가 의식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는 몇 번이나 애를 쓰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은 채 간호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여긴…… 어디입니까? 제가 왜 여기에 있지요?”
“선생님! 에릭 오웰 환자가 의식을 찾았어요!”
어리둥절한 에릭에게 존 스노우를 비롯한 의사와 연구진이 모조리 몰려들었다. 의사들은 이 기적 같은 광경에 찬양을 마지않았다.
“말기 매독환자가 제정신을 찾고 피부의 농양이 모조리 사라져?”
“환자의 상태를 봅시다. 농양이 식도에 자라나서 죽 외엔 식사도 못 하던 사람 아닙니까?”
존 스노우는 에릭의 입을 벌리고 상세히 살펴보았다. 입안과 식도에 자라나던 매독 종양마저도 자취를 감추었고 거의 짓뭉개졌던 입술조차도 희미하게 선을 만들며 복구되었다.
“제가 어떻게 된 거죠? 몸에 살이 다시 돋아나고 있는데요?”
“신약의 효과입니다. 안심하시고 계속 치료를 받으십시오.”
진찰이 끝난 에릭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 모든 곳에 침투한 매독균이 사라지며 몸이 급격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 뭘 드시고 싶으십니까?”
“싱싱한 채소입니다. 아주 많이 먹고 싶네요.”
“제가 보기에는 기력을 내기 위해 당분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금방 준비하지요.”
에릭에게 특별 식사로 오이가 잔뜩 올라간 오이 케이크를 제공한 존 스노우는 복도를 뛰쳐나가며 환호성을 질렀다. 매독이 최초로 무릎을 꿇은 순간이었다.
이후 3주가 지났다. 매독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3주의 관찰을 통해 재발이 일어나지 않은 에릭은 완치 판정과 함께 퇴원 통보를 받았다.
그의 외모는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연골 조직을 비롯한 피부 조직이 매독으로 녹아내려 콧대가 낮아지고 입술을 비롯한 피부가 들쭉날쭉하게 엉겨 붙었다.
이 외모조차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정상적이었다. 존 스노우가 특별히 맞춰준 연미복을 입은 그는 마지막으로 병실 문을 나서며 질문을 하였다.
“이런 훌륭한 치료를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저 말고 치료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약효 검증을 위해서 남은 네 명의 매독 환자들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약이 워낙 귀한 물건이라서 한 번에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귀한 물건이라니요? 저에게 사용된 약물 가격이 얼마지요?”
“일만 파운드입니다.”
에릭은 기가 찬 듯이 존 스노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자신이 머무른 병실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였다.
“제가 한창 일할 때 연봉이 사십 파운드인데 이백오십 년을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언젠가는 이런 약도 빈민들이 한 끼를 아껴서 접종할 정도로 가격이 내려갈지도 모르지요.”
“그런 꿈같은 세월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군요.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김에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병원을 막 나선 에릭은 눈을 깜빡거리며 밖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에게 달라붙어 다짜고짜 취재를 실시하였다.
“에릭 오웰 환자분! 정말 매독이 치료되었습니까?”
“어떤 방법으로 치료되었는지 알려주십시오!”
최초로 페니실린을 통한 매독 완치 판정을 받은 그는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설파하였다.
이후 삼 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페니실린 생산시설에 비밀 편지가 도착했다.
-매독 2기입니다, 증상이 잠복기로 진행되고 있는데 빠른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제 지인이 매독인 것 같습니다. 영양제 주사를 핑계 삼아 페니실린 접종을 부탁드립니다.
-아들이 태중에서 매독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이 매독도 치료가 됩니까?
사백여 명이 넘는 상류층 매독 환자들이 보내온 서신을 확인한 존 쿠퍼는 콧노래를 부르며 이를 정리하였다. 페니실린은 매독을 치유할 수 있으나 막대한 양이 필요하였다.
하루 생산량 기준으로 런던은 매독 환자 2명, 맨체스터를 비롯한 기타 3개 도시는 각기 환자 1명을 치료할 양의 페니실린을 생산하였다. 증상별로 치료 기간도 각기 다른 형편이었다.
초기 매독은 5일간의 투여, 말기 매독은 20일 이상의 투여가 필요하였다. 결과적으로 영국 전체에서 치료할 수 있는 매독 환자의 최대치는 연간 320여 명에 불과하였다.
환자의 중증도와 신분에 맞게 치료 순서를 정리한 존 쿠퍼는 달력을 확인하고 코웃음을 쳤다.
“고작 석 달 만에 일 년 어치 매독 치료 예약이 들어왔군. 참 문란하게 살고 있다니까.”
대놓고 첩실을 치료해달란 사람은 양반이었다. 아예 한반도의 ‘지질학 조사’를 통해 불륜을 맺은 사람들이 쌍으로 매독에 걸려 치료를 요청하였다.
변명이랍시고 코튼 레이디(솜 부인)를 교환하다가 매독에 걸렸다는 그럴싸한 이야기까지 있었다. 존 쿠퍼는 환자의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편지를 불태우고 지시를 내렸다.
“일 년 어치 예약이 모두 들어왔다고 신문에 공고를 내. 내일부터 즉각 매독 치료를 실시한다.”
“석 달 만에 일 년 어치 예약이라니요? 그러면 생산량을 더 늘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글래스고(Glasgow) 대학교조차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 페니실린 생산 공정을 멋대로 늘리면 불량품만 양산한다.”
페니실린은 상류층의 매독 치료 목적으로 쓰였다. 기존보다 많은 양이 양산되었으나 너무나 어려운 생산 난이도와 막대한 비용으로 한계가 명백하였다.
이후 전 세계의 항생제는 값싼 설파제와 비싼 페니실린, 두 가지 유형의 항생제가 지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