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20장 3화 금의환향(1)
대한제국의 양반 계층 가운데 유학을 대신한 새로운 학문, 이학(理學)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생기고 20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는 전 세계에 나아가 학문을 익히는 이들도 생겨났다.
고고학자나 고생물학자는 그 선두에 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연구비와 가산을 모조리 투자하여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대손손 남기는 영예를 얻으려 하였다.
이 투자 중 상당한 액수는 고용비가 차지하였다. 거의 6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돈 청년은 이제 화석 발굴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르신을 따라 세상 구경을 갈 때에는 열다섯 살인데 이제는 스물넷이 다 되어가다니.”
청년은 옛 일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에는 멋도 모르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발굴 현장에서 잔업을 돕게 되었다.
당연히 발굴 현장에서 화석을 캐내지는 못했지만 얻은 것이 있었다. 성품이 올바르고 근면하다는 이유로 다음 화석 발굴 현장에 추천되어 더욱 열심히 일하였다.
당시에는 요동 일대와 한반도 전역을 오가며 화석을 발굴하였다. 삼 년 정도 지나자 곡괭이만 놀려도 어떠한 지층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쌓게 되었다.
여기에 고생물학을 전공하는 이들은 양반이었다. 자신의 하인이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일이 편하다면서 그에게 각종 지식을 알려주었다. 습득한 지식은 현장 업무와 맞물려 어리숙한 청년을 숙련된 기술자로 만들어주었다.
마침내 4년이 지나 성과가 쌓일 무렵,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내 벗이 미국이라는 먼 땅으로 가서 화석을 몇 년 정도 캐려고 하네. 같이 가겠는가?’
연간 300냥이 넘는 급료에 광맥을 찾으면 약간의 소유권을 준다고 하였다. 그 무렵 18세가 된 청년은 용기 하나로 계약서에 이름 석 자를 적고 머나먼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6년 동안 화석 발굴에 참가하게 되었다. 청년은 팔뚝의 흉터, 전갈의 독침으로 인해 피부가 일그러진 부위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나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커졌는데 배는 물론이요 항구 또한 더더욱 커졌구나.”
-입항합니다! 모두 호패와 통행증을 준비해 주십시오!
청년은 등짐을 고쳐 메고 품속에서 신 호패와 신분증을 어루만졌다.
예전의 나무 호패와 달리 알루미늄 재질로 만든 호패는 현대의 신용카드와 비슷한 크기였다. 여기에 보증인으로 자신을 부려 발굴을 진행하던 학자의 추천장이 적힌 통행증도 있었다.
마침내 배가 항구에 닿고 사다리가 내려졌다.
“을묘년 병술월 계미일(1855년 11월 2일) 평양항 제 4부두 입항을 실시합니다!”
이백여 명에 달하는 승객은 미국 동부 연안에서 대한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항구의 관리들은 이들을 줄 세운 다음 하나씩 신분증을 확인하며 입항을 허가하였다.
“다음 분 오십시오.”
“호패는 여기 있고 추천장은 여기 있습니다.”
“이름은 유장손, 거주지는 요동이라.”
자신의 신상명세와 이름 석 자가 적힌 호패를 확인한 관리는 통행증과 이를 대조하였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하며 말하였다.
“오래간만에 귀향한 것 같군. 통행증에 구구절절이 사연이 적혀 있는데 작성한 분의 마음 씀씀이가 좋은 것 같아.”
“육 년 만에 돌아오는 고향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부모님을 만나고 싶군요.”
“그럼 바로 저쪽 대로로 뛰어가서 기차역에 들어가게. 운이 좋으면 십 분 뒤에 출발하는 기차에 탈 수 있을 거야.”
인사를 마친 유장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차역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기차 공사현장에서 잔업을 하였던 장손이였다.
유장손은 숨을 헐떡거리며 기차역으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평양역의 창구에서는 한창 마감이라는 표식을 붙이려 하였다.
“잠시요! 봉천까지 가는 자유 좌석표 가격 얼마나 됩니까!”
“스물 네 냥입니다. 서둘러 들어가세요!”
온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기차에 탑승한 유장손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시대에는 전산 시스템이 없어서 특실 좌석 외에는 모두 자유 좌석으로 취급되었다.
잠시 차 내부를 살피던 유장손은 그럭저럭 괜찮은 창가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기차가 천천히 북쪽으로 속도를 올리자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경치를 바라보았다.
그의 본래 고향은 청주 산골짜기였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머나먼 요동 벌판으로 이주하였고 자신들이 만든 마을을 새로운 고향으로 삼게 되었다.
“부모님은 서신을 자주 나눠서 다행이지. 친구들은 잘 있을까 모르겠는데.”
“자네도 봉천으로 가나 본데? 봉천 어디에 사나?”
옆 좌석에 앉은 유대인 노인은 유장손을 슬쩍 바라보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예전에는 유대인이 돈만 아는 수전노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유대인은 신의를 지키며 장사에서 이득을 챙길지언정 남을 속이지는 않았다. 유장손은 노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답하였다.
“봉천은 아니고 안산 남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물레골입니다.”
“물레골이라, 내가 그 지역에 장사를 자주 다녔는데 번성하고 있으니 염려 말게나.”
“제가 육 년 동안 미국에 다녀와서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군요…….”
상인으로 활약하다 얼마 전 은퇴한 유대인 노인은 유장손과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의 경험만 나누어도 하루가 넘게 걸리는 기차 여행이 즐거워지게 마련이었다.
다음 날 점심 무렵, 기차는 봉천 남쪽의 주요 기차역인 안산(鞍山)에 닿았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어버린 유장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르신 덕분에 미처 듣지 못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자네 덕분에 여러 세상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네. 미국에 이주한 동포들이 잘살고 있을 것 같으니 마음이 놓이는군.”
손을 흔들고 작별인사를 나눈 유장손은 피로를 느끼고 기차역 인근의 숙소를 찾았다. 여기서 하루를 묵고 정처 없이 걷거나 마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여러 숙소를 찾아 기웃거리는 동안 다른 청년이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쭈뼛거리며 다가가 질문을 하였다.
“혹시 물레골 사는 유 씨 댁 장남분 아닙니까?”
“유장손 맞습니다. 혹여나…….”
서로를 유심히 살펴보던 두 청년은 바로 삿대질을 하면서 서로를 가리켰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야! 손훈이 아니냐?”
“장손아! 여기서 널 만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유장손은 자신의 친구이자 예전에는 청나라 사람, 이제는 대한제국 사람이 된 손훈을 만나자 감격하여 바로 얼싸안았다. 6년 만에 만난 친구는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
“너 미국에서 뭘 하고 다녀서 옷이 이렇게 번드르르하냐? 전에 전보를 받았는데 땅 파느라 힘들다면서?”
“내가 좀 많이 돈을 벌어들이잖아. 부모님 호강시켜드릴 돈은 미리 마련해 뒀다.”
“그럼 성공이지! 난 유대인 주인 아래에서 일하느라 이곳저곳 쏘다니고 있는데.”
마침 물레골로 돌아가던 손훈은 자신의 마차 보조석을 내어주었다.
두 친구는 다시 마차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 피곤하고 힘든 와중이지만 옛이야기만 나누어도 피로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두 네가 광부로 취직해서 고생하고 있다면서 걱정했는데 괜한 일이었네.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다.”
“광부 일이 아니고 발굴업자다. 내가 얼마나 전문적인 직종인데 광부라 부르냐?”
“그럼 발굴업자 어르신. 저는 자식이 벌써 넷이고 아내가 배가 또 불러오는데 아내 될 분은 구하셨습니까?”
유장손은 친구의 어깨를 후려치며 고개를 돌렸다. 머나먼 타지생활을 하느라 제대로 된 연애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부모님 속이 타들어 가고 있으리라.
이제 혼인을 하고 분가까지 하여 손자를 안겨드릴 때도 되었다. 마차가 털털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따라 움직여 하염없이 나아갔다.
어느새 도로의 굴곡이 줄어들고 자갈이 많이 보일 무렵, 새 고향인 물레골이 유장손의 눈에 들어왔다.
“많이 변했네. 예전이랑 천지차이잖아?”
물레골은 지난 육 년 동안 제법 발전하였다. 길가에는 자갈이 깔려 어설픈 포장이 되어 있고 초가집이 적어졌다.
여기에 저 멀리 산기슭에 공장으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다. 손훈은 새로 생긴 주택들을 가리키며 설명하였다.
“이주민이 더 늘어났어. 어느 나라더라? 아일랜드 사람들 알지? 그 사람도 왔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봉천 인근에만 거주하는 줄 알았는데 별일이 다 있네.”
“술을 찾는 사람은 어디에나 넘쳐나니까. 거의 다 왔다.”
마차는 유장손이 육 년 전에 떠나간 옛 집 근처에 멈추었다. 등짐을 내려놓고 옷깃을 다듬은 유장손은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삼 일 동안 부모님을 모신 다음에 코가 비뚤어질 때 까지 술을 마시자고! 다들 모이라 해!”
“각오 단단히 해라! 네 옷을 모조리 팔아먹을 때까지 술을 마실 거다!”
“놀고 앉아있네! 좋은 혼사감이라도 하나 물어오면 모를까!”
육 년 만에 돌아온 집을 멀리서 바라본 유장손은 눈물을 훔치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는 예전보다 더욱 부유해져서 기와를 얹고 대문을 크게 고친 집 앞에 서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장손이 돌아왔습니다!”
잠시 뒤, 대문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마침 일을 쉬고 있던 유장손의 아버지는 육 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바라보고 눈물을 훔치며 말하였다.
“왔느냐, 그동안 전신으로 계속 소식을 전해주어서 소식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아버지는 계속 눈물을 훔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멀리서 장을 보고 온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와 장손을 끌어안고 해후를 나누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더냐. 미국이라는 나라는 세상 반대편에 있는데 밥은 입에 맞더냐?”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속이 다 부대낄 지경이었습니다. 염려하지 마시지요.”
“정말이더냐? 전신을 받아도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한 줄 알았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삼시세끼 고기를 먹고 간식으로 고기를 먹는 나라입니다.”
유장손의 부모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다시 부엌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얼마 전 보낸 전신으로 도착 시일을 알려서 삼 일 전부터 소뼈로 곰탕을 우려내고 있었다.
“그런데 곰탕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우려내신 곰탕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럼 잘되었구나. 고기는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 곰탕을 많이 먹도록 해라.”
동네 어르신들 모두가 유장손의 귀환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다. 옛날 화전민 시절에는 질 좋은 젓갈만 들어와도 잔치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제는 쇠고기는 먹어야 잔치라 부를 지경이었다.
갓 구워낸 쇠고기에 새하얀 쌀밥과 초겨울에 구하기 힘든 채소는 물론 남쪽에서 수입한 사과가 대접 되었다. 잔치는 유장손이 곰탕을 세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끝나게 되었다.
밤이 되자 유장손은 계속 관리된 자신의 방과 침구를 바라보며 다시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금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농사는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잘하고 있다. 밀도 기르고 보리도 기르고 요즘에는 더덕과 인삼에 취미를 들였지.”
“아버지께서도 올해 쉰 살이 넘으셨습니다. 피로하지는 않으신지요.”
유장손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가혹한 화전민 생활로 몸이 축나 있어 이제는 무릎과 허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고난을 겪어도 농사를 계속 지어야 자식을 장가보낼 수 있는 형편이었다.
유장손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품속을 더듬어 준비한 물건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몸을 놀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광맥을 여럿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알기로 광맥의 일 푼(1%)조차도 소유하지 못하는데 그리 큰 이득은 아니구나.”
“아닙니다. 광맥을 열두 개나 발견하여 한 해 수익이 삼백 냥에 달합니다. 이 권리를 일부만 판매해도 이천 냥은 족히 될 것이니 동생들 장가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십시오.”
유장손은 아버지에게 서류 모두를 건네려 하였다. 아버지는 서류뭉치를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진중하게 말하였다.
“너도 이제 장가를 가야 하지 않더냐. 분가하면 새집도 마련해야지.”
“제가 받은 급료를 저축한 덕분에 총 액수가 일천 냥이 훌쩍 넘어갑니다. 여기에 제가 어떤 기술자입니까? 광맥을 열두 개나 캐낸 기술자가 아닙니까?”
부자(父子)간의 침묵이 오갔다. 유장손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자신의 팔뚝을 어루만지며 아버지에게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미 광산업자 몇 명에게 입사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광부는 광산이 무너지면 시신도 찾지 못하고 죽는다! 더 이상 땅을 파 들어가지 말고 네가 얻은 것을 종잣돈으로 삼아서 장사를 하여라.”
“저는 광맥을 찾을 뿐 광산 깊숙이는 안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유장손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푹 숙이며 아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를 확인하여 가장 비싼 두 개의 광산은 아들을 위해 남겨주며 말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언제나 준비를 해 두어라.”
“알겠습니다. 저도 조만간 아내를 찾아 분가할 것이니 그때까지만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피곤할 것 같으니 들어가 쉬어라. 푹 쉬고 천천히 혼사를 찾아보자꾸나.”
유장손이 인사를 올리고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참은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는 서류를 곱게 접어 찬장 안에 넣었다. 그리고 조상의 위패를 꺼내 단상 위에 올리고 말하였다.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시고 조상의 혼백이 보호하시어 제 장남이 이토록…….”
온 세상천지를 보아도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방으로 들어간 유장손은 안방 방향을 몇 번이고 바라보고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권리서를 제대로 읽으신 것 같은데 글은 언제 배우신 거지?”
자신이 미국에 다녀오며 변모하였듯이 아버지도 그동안 글을 배우고 세상 물정을 익혔다. 자신이 떠나올 때만 해도 장사는커녕 땅이 최고라 생각하신 분이셨다.
“뭐 유대인들이 장사를 좀 잘해야지. 근처에 유대인들이 살아서 배우신 것 같.”
뭐라 중얼거리던 유장손은 푸근한 침대와 뜨뜻한 온돌의 열기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며 가족과 친척을 만난 그는 마침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 장손아! 반갑다 야!”
“문득아! 훈아! 이정! 이놈의 자식들 안 죽고 여태껏 살고 있었네!”
술집 근처로 가자마자 친구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각기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고 심지어 하급 관료로 일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이들 모두 유장손에게 거하게 얻어먹을 생각으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얼마 전 세워진 서양 양식의 술집을 바라본 유장손은 궁금한 듯이 질문을 하였다.
“이 술집 정말 제대로 된 술집 맞아? 이름이 아이내 바?”
“주인장 성격이 더러운 데 술맛은 더욱 더러워. 이 나라 말도 대충 알아서 간판이 저 꼴이고.”
“더러워? 혹시 아이리시 위스키 파는 데냐?”
친구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장손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가 서부에 머무르며 수많은 술을 섭렵하였고 개중에는 아일랜드 이민자가 우려낸 술도 있었다.
“아일랜드 사람이 만든 위스키가 제맛이지! 각자 한 병씩 마시자고!”
그는 자신의 미국 경험을 설파할 생각으로 술집의 문을 거세게 박찼다.
할 말은 많고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