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35화 (218/345)

235화

20장 3화 금의환향(2)

아이내 바, 아마도 ‘아이레(Ire) 바’ 라고 불렸어야 할 술집은 주당으로 손꼽히는 민족 아일랜드인의 문화가 가득 담겨있었다.

요동에 넘쳐나는 목재 자원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참나무로 만든 카운터에 통나무 의자 그리고 두툼한 원목 탁자들이 즐비하였다.

한구석에는 돌을 어설프게 깎아 만든 손바닥 크기의 십자가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50명은 술을 마실 수 있는 거대한 술집은 아직 해가 질 무렵이 아니라 손님들이 별로 없이 한적하였다.

이른 시간에 온 손님들을 바라본 주인장은 퉁명스럽게 질문을 하였다.

“카운터요 아니면 식탁이요?”

“카운터에서 마시자고, 이야기 좀 하려면 카운터가 제격이지.”

서부의 선술집에서 카운터를 많이 사용해 본 유장손은 성큼성큼 걸어가 통나무로 만든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의 친구들도 쭈뼛거리며 평상시 이용하지 않은 카운터에 나란히 앉았다.

“첫 잔은 맥주요.”

주인장은 잽싸게 맥주를 퍼내서 한 잔씩 나눠주었다. 커다란 나무잔에 담긴 맥주는 거품이 잔뜩 낀 시커먼 맥주였다.

“나는 좀 시원한 그…… 맛이 약한 맥주였나? 그걸 마시고 싶은데.”

“라거? 그건 오줌이고 이건 맥주요, 주는 대로 드시구려.”

손훈은 상인 출신이라 대도시에서 만들어진 라거를 자주 마신 적이 있었다.

그가 흑맥주를 보고 짜증을 내려 하자 유장손은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말하였다.

“라거는 멀리 운반하려고 만든 맥주야. 이런 집에서는 만들 이유가 없어.”

“그랬다고? 난 술이 술술 들어가서 라거가 제대로 된 맥주인 줄 알았는데.”

“원래 맥주는 탁주와 비슷한 술이라서 오래 못 가니 유통용으로 만든 술이야. 그나저나 향이 제대로 들어간 맥주네.”

맥주 거품을 슬쩍 맛본 유장손은 건배를 하고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약한 진달래 향과 귤과 비슷한 향이 섞인 흑맥주는 그가 마셔 본 맥주 가운데 꽤나 맛이 좋은 편이었다.

친구들도 진한 흑맥주를 들이켰다. 그들은 예전에 주점이 처음 생겼을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맥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처음 마셔봤을 때에는 버선 구린내가 올라왔는데 이제는 꽃향기가 나네.”

“제대로 띄운 탁주보다 좋은데? 어떻게 맥주로 이런 맛을 내지?”

“비밀이오.”

나무로 만든 맥주잔에 커다란 국자로 맥주를 다시 채워준 주인은 몸을 돌려 화덕의 공기구멍을 열고 부채질을 하였다.

친구들은 이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며 주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왔을 때와 대접이 천지차이네. 그땐 냄새나는 맥주를 억지로 마시고 인상을 찌푸리자마자 돈 안 내도 좋으니 돌아가라 했는데.”

손훈이 이야기를 하자 유장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맥주 사랑은 유별나다니까. 내가 미국에 있을 때도 하나같이 양조장이나 관련 업종에 취직해서 월급 안 받고 야근까지 하던 양반들이었어.”

“그럼 이 독한 맥주를 밤을 지새우며 퍼마신다고?”

“아마도 그럴걸? 아침에 술에 취해서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거든.”

흑맥주의 도수는 제법 높은 편이었다. 유장손과 친구들은 안주가 나올 때 까지 술을 천천히 마시며 취기를 조절하였다.

감자를 썰어내고 물에 한 번 헹군 주인장은 이 모습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우리 아일랜드 민족의 영혼은 위스키요, 삶은 맥주이지. 여기에 정착하고 물과 기후 그리고 품종이 다른 보리와 누룩을 이용해 맥주를 계속 시험해 보다 올해에 성과를 냈소.”

“그럼 계속 실패작을 만들어내다 이제야 제대로 된 만들어냈다는 말씀입니까?”

“실패한 맥주는 없소. 맛이 없는 맥주만 있었다가 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아일랜드 사람은 맛없는 맥주건 맛있는 맥주건 가리지 않고 마신다는 말이었다. 모두가 이 말을 하나둘씩 이해하자 웃음소리가 카운터를 메웠다.

세 잔째의 맥주가 들어가자 모두가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왔다. 분위기가 달아오른 친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유장손에게 전해주려 하였다.

“네가 온갖 장소를 쏘다니느라 요즘 일을 잘 모르고 있지?”

“그렇지 뭐,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공장은 한양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아서 물레골 살던 사람들은 취직 안 했다고 하더라. 다들 어떻게 지내냐?”

“글 배우고 시험 봐서 하급 관료로 취직했어. 지금은 고향에 돌아와 재산 배분 중이고.”

“난 친척들과 함께 구릉을 개간해서 배추를 잔뜩 기르고 있다.”

“나야 계속 밀농사만 짓지. 쌀농사를 시험하는데 계속 실패하더라고.”

친구들의 자기 자랑이 계속되었다. 요동은 개척한 만큼 자신의 땅이 되는 장소이며 초기에 정착한 화전민들은 부모와 함께 땅을 개척했다.

이후 유대인이 자본금을 얻고 상인으로 활동하며 물자를 적재적소에 배분했다. 첫 세대는 대부분 농사꾼으로 일하며 쉴 새 없이 경작을 하였다.

이후 다음 세대가 되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났다. 이들은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는 부류와 나머지 일을 찾는 부류로 나뉘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정착한 화전민들은 꾸준히 농토를 늘려나갔다. 자식들에게 분배할 땅을 만들려고 스무 결 이상을 경작한 사람도 흔했다.

유장손이 막 미국으로 떠날 때에는 두 번째 경작이 한창 진행될 시기였다. 그는 구 년 사이에 변모한 요동의 모습을 되새기며 말했다.

“다들 열 결은 기본으로 경작해서 다행이네. 그런데 토지가 열 결이 넘으면 일 년 내내 농사만 지어야 하지 않아?”

유장손은 땅을 막 늘려가던 시기에 요동을 떠난 사람이라 요즘 일을 잘 모르고 있었다. 결국 옛 생각만 하다가 친구들을 통해 현실을 알게 되었다.

“무슨 소리야. 요즘 농사일이 얼마나 편해졌는데.”

“추수할 때 하루 온종일 낫질을 했었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이 기계 세 대면 충분해.”

미국에서 막 도입되기 시작한 콤바인, 대한제국 명칭으로 축력(畜力) 수확기는 이미 요동 대부분의 농가에서 공동구입을 실시하고 잘 활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축력 탈곡기는 물론이요 파종까지도 가축의 힘으로 대신하였다.

유장손은 과거와 까마득하게 달라진 농업을 상상하다가 맥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소 다섯 마리를 엮어서 기계를 돌리면 한 결의 밀밭을 두 시간 만에 추수한다고?”

“흘리는 밀이 제법 많기는 한데 그거보다 좀 빠르게 추수할 수 있어.”

“그럼 열 결이 뭐야. 미국처럼 마흔 결은 소유해야 할 것 같은데.”

“마흔 결? 미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냐? 삼시세끼 고기만 먹고 또 고기로 입가심을 하는 나라라면서?”

유장손은 자신이 경험한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하다가 미국의 낮은 물가와 광대한 토지에 대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 그대로 기회의 땅이네. 혹시 이민 갈 수 있냐?”

“이민은 갈 수 있는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문제지.”

“농담을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냐. 우리는 아일랜드…….”

아일랜드 이야기가 나오자 누군가가 다가와 배추농사를 짓는 이정의 등을 후려쳤다. 화들짝 놀란 이정이 고개를 돌리자 50대쯤 된 아일랜드 농부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감자 아저씨가 오셨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아주 평안하게 지냈다, 김치 너도 잘 있었냐?”

“물론이지요. 보내주신 감자는 김치랑 같이 잘 먹었지요.”

“네놈이 친구들을 데려와 카운터를 꽉 막아버렸네. 잠깐 내년 농사 계획이나 이야기하자.”

이정은 아일랜드 농부들이 앉은 탁자로 가서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유장손은 좀 전의 대화를 되새기고는 그에게 역으로 물어보았다.

“아일랜드 사람에게 대놓고 감자라고 욕을 해도 되나?”

“뭐 어때, 아일랜드 사람들은 우리를 해초 먹는 사람, 김치만 먹는 사람 그리고 사시사철 풀 뜯어 먹는 소라고 비꼬던데.”

서로 친하지 않은 사이라면 욕설이요, 서로 친한 사이라면 인사치레로 할 만한 대화이다. 주제가 아일랜드로 넘어가자 대다수가 이들의 생활상을 이야기하였다.

“그 동네 사람들 이상하다니까? 여기 와서도 고기 같은 귀한 음식을 빼면 빵에 유락(버터) 그리고 감자만 먹다가 요즘에 들어서 입이 좀 다양해졌어.”

“그거야 아일랜드는 원래…….”

유장손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한참 동안 이야기하며 다시 맥주를 마셔댔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술집 주인은 어느새 감자튀김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접시에 담았다.

기근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사람이라 거의 10인분은 될 법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주인은 유장손을 계속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감자를 너무 좋아해서 감자 요리만 내어주겠소.”

“감자 말고 다른 요리는 없습니까?”

“주는 대로 쳐! 드시오.”

주인은 퉁명스럽게 피클, 엄밀히 따지면 김치와 비슷하게 만들어낸 피클을 다시 한 아름씩 놓았다. 감자튀김과 피클을 바라본 이정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기르는 감자 품종이 수십 개나 되어서 먹거리가 늘어났어.”

“네가 기르는 배추 품종은?”

“수많은 종류 가운데 다섯 품종을 많이 기르지. 이 서양 김치에 쓰는 배추는 국립이학.”

-국립이학대학이 아니라 프린스 선의 작품이다!

저 뒤에서 고함이 들려오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이미 수십 명으로 늘어난 아일랜드 사람들은 메밀부침과 순무 절임을 대신한 깍두기를 안주로 삼아 연호하였다.

-프린스 선을 위하여!

-프레이즈 더 썬! 건배!

특유의 건배 구호를 외친 아일랜드 사람들은 맥주를 쉴 새 없이 배워댔다. 그 모습을 바라본 이정은 피식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예전에 학자인 흥선군이 이 근방에 와서 여러 작물을 시험해 본 것 알지? 그 작물들을 학자들이 다시 교배하고 또 교배해서 특징을 만든 다음 우리에게 나눠줬어.”

“그러고 보니 그 양반 아일랜드에서 사람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위기를 넘겼다 하던데.”

“이 사람들이 온 이유도 흥선군 덕분이지. 식기 전에 감자튀김이나 먹자.”

다들 감자튀김을 베어 물고 입안에서 뜨거운 감자를 식히느라 곤욕을 치렀다.

잠시 머뭇거리던 술집 주인은 유장손에게 다가와 맥주를 다시 채워주며 슬쩍 물어보았다.

“미국에 다녀왔다고 하였소? 혹시 동부에는 다녀온 적 있소?”

“한 두어 달 정도 머물렀습니다. 서부에서 찾아낸 광맥을 동부 도시인 뉴욕까지 가서 경매에 부치고 왔으니까요.”

“그러면 우리 아일랜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군.”

친구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유장손은 자신이 보아온 아일랜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들 대다수는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을 하였다.

본래 역사에서 짐짝처럼 미국으로 이주당해 하얀 흑인이라 불리던 아일랜드 사람들이었다. 반면 이 세상에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았다.

미국에서 잘살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증언을 들은 주인장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지기 시작하였다.

“벌써 양조장을 차리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우리보다 더 성공한 것 같군.”

“그야 미국에서는 기술만 제대로 가지고 있어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 좋은 기술을 가지고 왜 대한으로 돌아왔소?”

“제 고향을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인장께서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시겠지요?”

술집 주인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잔을 준비하였다. 그는 유장손에게 들은 동포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상시에 별로 안 하던 짓을 하였다.

약간 뿌연 기가 남은 유리잔에 얼음이 한 덩어리씩 들어갔다. 이후 잘 숙성된 위스키 통을 따내어 여기에 잔에 부어 넣고는 호탕하게 말했다.

“다들 드시오. 만약 이 잔을 깨먹으면 머리통도 깨먹을 줄 아시고.”

“유리잔이네? 주인장께서 돈 많이 쓰셨군요.”

“요즘은 제사에 쓰려고 유리잔 한두 개 정도는 사들이는 세상이니까. 우리도 얼마 전에 사들였고.”

예전이라면 양반가에서 신줏단지처럼 모시던 유리잔이 이제는 비싼 잔 정도로 격하된 시대였다.

유장손과 친구들은 심호흡을 하고 잔을 바라보았다. 상해의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유리잔에 갈색 위스키의 빛깔이 감돌았다.

모두 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건배를 나눈 다음 단숨에 위스키를 들이켰다. 아이리시 위스키 특유의 복잡하고 풍부한 향을 느끼자 유장손이 바로 주문을 하였다.

“어허! 잔이 비면 쓰나! 계속 채워주시지요!”

“돈은 충분하고?”

유장손은 주머니를 더듬어 동전을 짚이는 대로 꺼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주인은 아예 위스키 통을 옆에 가져다 놓고 얼음을 쌓으면서 말했다.

“마음대로 드시오!”

그 날 유장손은 새벽에 거의 기어가다시피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며칠 동안 숙취에 시달린 그는 지금까지 미뤄둔 집안일을 하나씩 하며 원서 답신을 기다렸다.

보름 정도 지나자 유장손에게 서신이 여섯 통 도착하였다. 그는 원서 답신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예상보다 나쁜 결과에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어디 보자, 광산국(鑛山局 - 농부 휘하 정부기관) 입사원서는 당연히 탈락했고. 나머지 두 개 기업도 탈락했고…….”

먼저 탈락원서를 가려낸 유장손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머지 원서도 확인하였다. 어느새 그의 어머니가 다가와 답신을 같이 확인하였다.

“어떻게 되었니? 탄락이라는 글은 또 뭐고?”

“모두 다 탈락했어요. 애초에 너무 큰 광산업자라서 제가 들어가기는 힘든 곳이었죠.”

“사람들이 다들 대단한 것 같구나. 네가 큰 곳에 원서를 넣은 것 아니니?”

“눈을 좀 낮춰야 할 것 같네요. 합격한 곳은 없는데 추천인 자격으로 다른 기업에 원서가 들어갔고 여기서 세 군데를 합격했네요.”

유장손에게 면접 심사를 요청한 기업은 각기 영국, 프랑스 그리고 대한제국의 기업이었다.

유장손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 원서를 고이 접고는 말했다.

“광진(鑛唇)이라는 회사는 알래스카라는 미국 북부의 땅을 개척하자 하는데요?”

“거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또 미국 아니니?”

“여기는 안 갈 건데 나머지 두 군데가 문제네요. 하나는 대월(베트남)이고 다른 하나는 왜국이라? 영국 사업자가 뭔 수단으로 왜에 광산을 차리지?”

유장손은 팔짱을 끼고 한참을 고민했다. 나름 명성을 떨치는 업자들에게 입사원서를 보내봤는데 이 원서들이 돌고 돌아 다른 엉뚱한 기업들에게 추천서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한창 일하던 애리조나의 끔찍한 더위를 떠올렸다. 듣자 하니 베트남의 기후는 후덥지근하여 애리조나보다 더욱 끔찍하다는 말이 있었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 영국인이 창립한 ‘카드미아(Cadmia) 컴퍼니’이었다. 이 기업보다 급을 낮추자니 자존심이 상해서 원서를 제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영국사람 아래에서 일 해봐야겠네요. 왜국이면 배를 타고 닷새 이내에 오갈 수 있으니 큰 문제도 아니고.”

“그래도 물을 건너가는데 너무 힘들지 않겠니?”

“별문제가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왜국은 우리 대한사람을 보고 껌뻑 죽는 나라라던데요.”

유장손이 택한 회사는 결국 카드미아 컴퍼니가 되었다. 다시 보름이 지나고 예정대로 면접심사를 보기 위해 의주까지 내려가 심사장에 입장하였다.

하나같이 안면을 튼 사람들이며 자신과 같이 화석 발굴을 도운 경험도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영국인 두 명과 일본인 한 명이 면접관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반갑습니다, 저희 카드미아에 입사 원서를 제출하셨더군요.”

“그야 영어도 되고 경험도 많아서입니다.”

간단한 문답과 광맥 관련 질문이 이어졌다. 일본인 출신 면접관은 흥미로운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고 영국인 면접관은 문답을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이제 면접이 끝났습니다. 혹시나 저희 회사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까?”

“카드미아는 금속 관련 용어 같더군요. 굳이 이 용어를 쓴 이유가 있습니까?”

“그야 저희 회사의 목표이기 때문이지요. 이 학자분이 일본에 있는 진즈 강(神通川)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다량의 아연과 카드뮴이 검출되었습니다.”

지목을 받은 학자는 대한제국에서 학위를 이수해 어엿한 교수가 된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정리한 유장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렇다면 강 상류 어딘가에 아연 광산이 있다는 말씀이겠지요.”

“이미 광산이 한 개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광산의 예상 유출량을 몇 배나 뛰어넘는 많은 양이 검출되었지요.”

유장손의 지식과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충분히 사업성이 있는 내용이었다. 영국인 사업가는 유장손의 눈빛을 확인하며 설명을 보탰다.

“저희 회사는 잠든 아연 광맥을 채취하고 카드뮴까지 모조리 가공하여 동양 전체에 수출할 계획입니다.”

영국인 사업가의 원대한 꿈을 들은 유장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가가 고용한 일본인 학자의 지식과 자신의 경험이 결합되면 잠든 아연을 금방 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뒤, 모든 면접이 끝나고 유장손을 비롯한 네 명의 전문가의 합격이 결정되었다. 유장손은 카드미아 컴퍼니의 기술자로 다음 직업을 정하였다.

유장손과 사람들은 다음 달 바로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올렸다.

간혹 고향을 오가며 시일을 낼 수 있다면 장가를 갈 생각에 그의 꿈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