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236화 (219/345)

236화

20장 4화 자식 교육(1)

1851년에 시작된 의무교육은 이미 5년 차 입학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졸업생만 따져도 도합 26만 명에 달해서 한양의 교육인구 정체현상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이제는 한양 기준 연간 6만 명 정도의 입학생을 받으면 될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학부(學部)의 업무도 감소하여 박규수를 비롯한 관료들의 업무량도 정상화되었다.

“그럼 뭘 해, 업무가 정상으로 줄어들자마자 중학교를 도입하려 하는데.”

박규수와 학부 관료들은 1855년 12월 다음 교육 준비에 돌입하였다. 성적 상위권 학생들과 자기 집에서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을 위주로 2차 교육을 준비하였지.

그 결과 일선 교사들의 의견, 각종 사립학교 교사와 과외 교사들 그리고 4부 학당의 교육자들까지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퇴근시간을 1시간 가까이 지연시키면서 말이다!

복도에 걸린 시계는 이미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시 퇴근이 아니고 야근을 하나 초조해했는데 학부의 문이 열리고 박규수를 비롯한 관료들이 튀어나왔다.

“미리 말을 안 해두어서 미안하군. 동래에서 올라온 교수들과 면담을 해서 말일세.”

“속이 출출해지던 찰나였습니다. 이야기가 제법 길어지셨나 보군요.”

“서로 의견을 내놓느라 정신이 없었지. 다음부터는 이야기를 조금 끊도록 하겠네.”

박규수는 어느 정도 업무가 줄어든 다음 내 가족사에 관심을 보였다. 순조가 억지로 호적에 넣어주었지만 우리는 친한 사이이며 머나먼 친척이지.

이 시대에는 같은 가문 사람끼리 뭉치게 마련이다. 내가 준비한 주안상에 앉은 박규수는 미리 준비해 둔 독한 소주의 병마개를 뜯고 한 잔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슬슬 자네 자식 걱정을 할 시기 아닌가? 나야 이미 혼사를 끝냈지만 자네는 아닐세.”

자식 걱정이라. 이제 은찬이도 19세가 코앞이고 현대 기준으로도 성인이 되어서 지금부터 걱정을 할 시기이다.

박규수는 내 표정을 보더니 잠시 생각을 하고 말하였다.

“자네 장남이 혼사를 치를 시기가 삼 년이나 지나지 않았나. 본래 관례를 올린 다음에 바로 혼처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하다니.”

박규수의 말을 들으니 절로 미소가 나오네. 이 시기의 평균 혼인 연령은 16세 정도이다. 관례를 서로 올리고 바로 혼처를 찾아 결혼하지.

나와 일준이는 16세를 고등학생, 18세를 성인으로 취급하여 혼례를 그때 치를 예정이다.

아내는 내 말을 따르는 사람이니 별말 없이 따랐지만 주변 사람이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 박규수는 나와 은찬이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은찬이의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혼사를 맺을 것 같아 내 뜻을 먼저 말했다.

“저는 은찬이가 연애를 하여 혼인을 치르기를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당장 나만 해도 수많은 여식을 알고 있는데 연애를 나누어 혼인을 하다니? 이 무슨 망측한…….”

“망측한 일이 아닙니다. 본디 부부라 함은 서로 마음이 화합해야 하는 법이며 부모의 뜻이 들어가면 그 화합이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박규수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내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잔에 맴도는 붉은 소주를 한동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요즘 풍속이 혼처를 찾지 않고 눈이 맞아 혼인하는 일이 자주 있다네. 이를테면 지방에서 올라와 한양에서 일하는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바로 혼인하는 경우지.”

“그렇게 단박에 눈이 맞아 혼인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서로 얼마 정도 사귀어보며 마음을 맞추어야 하겠지요.”

“마음을 맞춘다. 이 어찌 자유분방한 말인가! 너무 나아가서 웃음이 나오는군!”

“이미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유나 말입니다.”

일준이의 장녀 유나 이야기가 나오자 박규수는 소주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렸다. 쿨럭 소리가 나더니 콧구멍으로 바로 소주를 뿜어버렸다.

도수로 40도가 넘는 소주가 콧구멍으로 솟구쳐 나와 고통을 겪던 박규수는 하인이 가져온 세숫대야에 얼굴을 헹구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질색을 하며 말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 부부가 좀 별나서, 욕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말 별나서 하는 소리야. 그 덕분에 장녀인 유나도 성품이 특이하지 않은가.”

“용태(조일준의 자)가 말하기를 키워서 잡아먹는다 말하더군요.”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말을 하자 박규수는 다시금 코에서 물을 뿜고는 수건으로 이를 닦아냈다.

“키워서 잡아먹는다? 하긴 외모만 보면 매구(구미호)와 흡사하지. 여섯 척이 조금 안 되는 훤칠한 키, 오뚝한 콧날과 보석 같은 눈동자! 백옥 같은 피부!”

유나보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은 내가 본 바로는 대한제국에 백 명도 안 될 거다. 당연히 지능으로 따져도 백 명 안에 들어간다.

당연히 15세는커녕 12세부터 혼사가 들어왔다. 이 혼사는 대부분 에이다가 처리했는데 당시에 있었던 일도 참 가관이었다.

“그 아이가 열다섯 무렵에 혼사를 청한 사람이 이미 삼십여 명이 넘었습니다.”

“아무렴 넘고말고. 지금까지 팔십 명의 사윗감을 격침시킨 여식인데.”

유나는 올해 20살인데도 혼인을 안 했다. 일준이는 미모와 지식을 겸비한 장녀가 혼인을 안 해서 심각히 걱정했는데 대답이 한결같았다더라.

‘엄마와 아빠는 수학 대결을 벌이다 눈이 맞았다면서요? 그럼 저는 과학 대결을 할래요.’

유나를 가르친 사람은 일준이와 에이다 부부다. 여기에 지능까지 엄청나서 15세에 대학 논문을 보며 개인연구를 했다. 당연히 이 과학대결에 모든 사윗감이 격침당했다.

심지어 작년에 국립이학대학에 수석 입학해서도 과학 대결을 실시하였다. 처음에는 여성이라 얕봤던 놈들이 많았는데 하나하나씩 격침되었지.

그나마 유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정도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 고학년 학생이거나 석사, 박사들이라 모두 다 혼인을 마친 상태였다. 이 사실은 너무나 유명해져서 관료들이라면 대다수 알고 있었다.

박규수는 최근에 들려온 소식도 알고 있어서 이를 목소리를 낮춘 채 말하였다.

“이상적인 양반가 자제를 교육시키고 나이를 채워 혼사를 치른다 하였나. 춘천에 거주하는 고흥 류씨 집안의 둘째 아들 말이야.”

“듣자 하니 이 년 이내에 국립이학대학에 입학시킬 예정이라 하더군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하는 소리겠지. 국립이학대학에 관례를 올리기도 전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기는 해.”

놀랍게도 유나의 마음에 들어간 사람은 본래 역사에서 위정척사파로 활약한 의암 유인석이다. 이 양반이 작년 13세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한양으로 올라왔다.

각 지방의 부모들은 선진 학문을 가르칠 목적으로 각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고 수업을 참관시켰다. 그 참관수업에서 유인석이 어느 정도 수학적 자질을 보여서 눈에 들어갔다던가.

참 웃기는 일이 따로 없었다. 유나는 20세의 나이에 키가 174㎝에 달하는 큰누나요, 유인석은 13세의 나이에 키가 140㎝ 정도라 막냇동생 수준의 체격이었다.

물론 둘의 사이는 너무 화기애애했다. 국립이학대학에서 본 적이 있는데 유인석 입장에서 유나는 하늘의 별이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신이다. 유나 입장에서 유인석은 충분한 자질이 보이는 미래의 신랑감이고.

심지어 5년 이내에 졸업시키고 결혼까지 할 거라며 나에게 슬쩍 이야기해 주기까지 했다.

“이미 유씨 집안의 자제가 머물며 학문을 익힐 별채를 만들고 있다더군요.”

박규수는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손에 들려 있던 소주병을 빼앗아 자신의 술잔이 아닌 물 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 넣으며 말하였다.

“아예 조 총장의 집에 별채를 마련하여 데릴사위를 들인다 하였는가? 부모가 아닌 자식이 사윗감을 찾아서 데릴사위를 들여? 이게 말이나 되나!”

“데릴사위는 아닙니다. 졸업을 시켜서 혼사를 치르되 나이는 반드시 열여덟 이상에 치를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 이해는 할 수 있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아닌 자신의 수준에 맞는 신랑을 찾다 꾀를 낸 것이라면 이해할 수는 있어!”

“분명히 그럴 겁니다. 안 그랬다면 용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물 마시는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켠 박규수는 다시 똑같은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러고는 올라오는 술기운에 머리를 부르르 떨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말하였다.

“조 총장이 어떻게 말릴 수 없나?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들어야지.”

“에이다 교수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습니까? 뜻을 굽히게 하려고 권고하자마자 보름 내내 끼니를 입에도 안 대서 둘 다 항복했다더군요.”

“보름 내내 끼니를 입에도 안 대? 그걸 어떻게 말리나?”

“저도 한 달 전에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품은 온순한데 별일이 다 있더군요.”

“자식 교육을 똑바로! 해야지!”

다시 박규수가 소주를 들이켜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억지로 동의했다.

일준이는 자식 교육을 똑바로 하긴 했다. 문제가 있다면 에이다의 그 불꽃같은 사랑의 열정을 그대로 물려받은 유나가 문제이지.

어머니인 에이다는 첫눈에 반해서 머나먼 영국에서 조선까지 건너온 사람이다. 가족들이 만류하건 말건 오로지 일준이만 바라봤는데 장녀인 유나도 그 성격을 물려받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본래 역사에서 위정척사파로 활약한 유인석은 이제 조유나의 손에 개조되어 철저한 학자가 될 거다. 어떤 학자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잔 받게!”

“취하신 것 같습니다. 안주라도 좀 드시면서 술을 드시지요.”

“일단 받아! 자네에게는 잘못이 세 가지가 있어! 첫째는…….”

박규수는 이미 술에 취해서 머리를 휘청거리며 나에게 넉 잔을 따라주었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오는 와중에 마지막 네 번째 잘못이 귀에 박혔다.

“그 잘못은 자식의 진로를 정하지 않은 것! 은찬이는 뭘 하더냐! 와서 술을 한 잔 받거라!”

생각해 보니 이 시대는 자식의 진로도 부모가 정해주게 마련이었다. 대부분 가업을 이어가거나 같은 관료 생활을 실시해서 재주를 뽐내게 마련이었다.

그런 강압적인 방식은 싫다. 나도 원해서 사학과를 들어갔고 원해서 유학을 준비했다. 물론 원해서 조선시대에 온 것은 아니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방문이 열리고 은찬이가 성큼성큼 걸어 박규수에게 인사를 올렸다. 녀석도 많이 커서 키가 훤칠하지는 않아도 이 시대 평균 신장보다 큰 편이기는 하다.

학문도 이것저것 익혀서 뭘 해도 부족함이 없고 상식도 풍부하지. 여기에 사교성도 풍부하여 척을 진 사람이 없는 내 자랑거리이다.

“은찬이가 왔구나!”

“종숙(從叔 - 아버지의 사촌) 어르신을 뵙습니다!”

박규수와 나는 먼 친척 사이이지만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는 사촌지간으로 지낸다.

박규수는 우렁찬 인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내어주었다.

“한 잔 받도록 하여라. 설마 종제가 너에게 주도(酒道)를 가르치지 않았더냐?”

“부친께서 예의를 가르치시고 모친 가문의 사람들이 예의를 다시 가르쳤습니다.”

박규수는 술주정을 부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은찬이에게 잔을 내어주었다.

은찬이가 술을 마신 다음 잔을 돌려받은 박규수는 술을 받으며 질문을 하였다.

“네 나이가 올해 관례를 올리고도 이 년! 앞으로 한 달만 지나면 삼 년이 지나 열아홉에 이른다! 혼사를 치를 여식을 알아보았느냐?”

“아직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하면 급히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찾도록 하여라. 그러하면 후일 하고 싶은 일은 정하였느냐?”

“저는…….”

은찬이는 내 눈치를 살피고 박규수의 눈치도 슬쩍 살폈다. 내가 보기에 녀석은 내 본래의 꿈, 역사학자가 될 것 같았다.

녀석은 수많은 역사서를 ‘전쟁 위주’로 탐독하였다. 역사에 발을 들이는 계기 중 상당수가 전쟁 관련이며 여기서 지식을 축적하여 심화된 역사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잘못 발을 들이면 밀리터리 오타쿠가 될 테지만 내가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교정하면 문제는 없지.

은찬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장교가 되고 훗날 군부의 인사가 되고 싶습니다.”

“장교? 군부 인사?”

“그렇습니다. 이 대한제국의 군대를 호령하여 적을 물리치고 싶습니다.”

은찬이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녀석을 뻔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마음을 굳혔는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뜻을 표현하였다.

“이 나라의 적을 물리친 다음 새로운 병사를 훈련하여 더욱 큰 적을 상대할 것입니다.”

녀석이 왜 이럴까, 지금까지 승마(乘馬)조차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영부영 배운 녀석이다. 사냥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총으로 물새 몇 마리를 쏘아본 것이 전부고.

그런 녀석이 장교로서의 길을 택할 줄은 몰랐다. 한참을 생각한 박규수는 녀석의 등을 손으로 세게 후려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네가 가장 훌륭한 길을 택하였구나. 남이 보기에 가장 훌륭한 길이 아니더라도 군문에 발을 들이지 않은 사람이 용기를 내었으니 너무나 훌륭하다.”

이후 술자리는 은찬이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박규수가 거하게 취해 돌아간 다음 잠자리에 눕자 술기운이 싹 사라질 정도로 걱정이 올라왔다.

군대는 언제나 위험하다, 어떤 나라에서처럼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더라도 눈먼 탄환이 은찬이의 급소에 날아들지도 모르고 각종 자연재해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녀석의 뜻을 돌리려 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뜻을 돌리기보다는 다른 길을 제시해주려는 생각으로 다음 날 아침부터 점잖게 타일렀다.

“아비는 나라의 외교를 전담하여 각 국가의 힘을 빼어놓고 분쟁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고 있다. 네가 군문에 발을 들여 공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더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은찬이는 여전히 공을 세울 수 있다 자신하였다. 생각해 보니 녀석이 어울린 친구들은 이 시대 사람들이 많으며 순조를 따라 조-청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사람의 자식들이다.

이 정도 생각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있으니 다시금 은찬이를 설득하려고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말해주었다.

“좋구나, 공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은 위험한 전장에서 적을 격퇴한다는 말. 만약 탄환에 맞거나 폭탄에 휩쓸려 불귀의 객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한 일이 벌어지면 장교나 장성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죽는 이들이 백성들입니다.”

“옳은 말이지, 그럼 전선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 나라가 패전을 한다면? 그러한 일이 벌어지면 네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다.”

굳이 말릴 생각은 아니다. 그저 녀석이 치기 어린 마음으로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군대에 가지를 않기를 빌 뿐이지.

녀석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내놓았다.

“부친께서 이 나라의 외교를 좌우하시고 각 국가의 세력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그래. 좀 전에 하였던 이야기지.”

“그러하면 질 전쟁을 회피하고 이길 전쟁을 하실 분 아닙니까? 이미 이긴 전쟁에서 제 몸을 건사하고 제 부하를 건사하기만 하면 공훈을 세울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녀석의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안 따라갔다.

분명 나는 다른 나라의 힘을 빼놓고 시선을 돌려서 이길 전쟁, 조만간 터질 청나라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그 전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

은찬이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제가 수많은 전쟁사를 읽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간혹 준비하지 않고 아무 계책도 없이 승리한 경우가 있으나 이런 경우는 극히 적습니다.”

옳은 말이다. 순수하게 힘으로 상대를 격파하기보다 관계를 헝클어트리고 상대의 힘을 빼놓은 다음 좋은 상황에서 공격하는 일이 결과가 좋다.

대부분의 승전은 미리 준비한 자의 차지가 된다. 지금까지 녀석이 역사서를, 그것도 전쟁사를 위주로 읽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저는 아버지의 재주를 믿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고안을 하시며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뚫어 놓은 대로를 걸어가려 합니다.”

조유나의 데릴사위 사건 때 일준이에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 버렸다.

은찬이는 내 행적과 내 가르침을 하나하나 흡수하여 자신이 걸어갈 수 있는, 조금 위험하지만 엄청난 성과가 보장된 길을 따라가려 하였다.

“네 뜻을 알겠다. 굳이 말리진 않으마.”

다음 날, 은찬이에게 전직 장교와 장성들로 구성된 교육자를 붙여주게 되었다.

내년, 1856년 9월에 있을 사관학교 시험을 치러 장교가 되거나 아니라면 내 뜻에 응하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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